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65화 (65/523)

〈 65화 〉 외전) 천호 호아란, 호곡편

* * *

한낱 작은 여우 요괴로 태어났다.

사이하고 사특한, 세상에 남은 찌꺼기 같은 업에서 태어난, 이매망량 중의 하나로 태어났다.

여우의 귀와 꼬리를 갖고, 인간의 몸을 가진.

그런 작은 여우 요괴로.

살기 위해 벌레를 먹었고, 살기 위해 토굴에 숨어들었다.

짐승과 같은 삶을 살기를 어언 6년.

푸른 새순이 돋는 봄날이었다.

요괴와 마주쳤다.

그 요괴는 나보다 강했고, 나를 보고 약하다며, 약한 요괴는 쓸모없다고 말하며 장난치듯 주먹을 휘둘렀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그런 요괴의 주먹에다리가 부러지고, 바닥에 엎어져서 신음하는 나를 요괴는 비웃으며 떠나갔다.

마치 죽이는 것조차도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다리에 상처를 입고서 하루를, 꼬박 하루를 그곳에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약하긴 하나, 요괴는 요괴, 가까스로 움직이게 된 다리로 보금자리인 토굴로 돌아가던 중에 이번에는 퇴마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요괴는 사악한 존재들이라며, 나를 죽이기 위해 사흘 밤낮을 뒤쫓아오며 화살과 부적을 날려댔다.

어째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도망치던 중에 맞은 화살과 부적은 약하디 약한 나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다른 요괴들과 달리, 뛰어난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나였기에.

고작 가볍게 부러진 다리로도, 하루를 꼬박 앓아누워야 했던 나였기에.

단지 죽음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우는 소리가 들려왔더니, 작은 여우 요괴였구나.’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나를 쫓아왔던 퇴마사들과 비슷한 부적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

나는 여기서 죽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삶을 포기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눈을 뜨고 있기엔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에 그러했다.

하지만,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나는 그 사람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채로, 그녀의 집에서 다친 상처들을 치료받게 되었을 때, 그저 아무 말도 없이 그런 나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자신을 살리느냐고, 그렇게 묻는 내 말에 그녀는 말했다.

‘네 상처를 보았다. 화살과 부적은 인간의 것이지만, 그 전에 그 다리는 요괴에게 다친 것이더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말했다.

‘불쌍하구나, 가엾구나. 세상에게서 낳아졌을 뿐인, 가녀린 여우야. 너는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모두에게 미움받는구나.’

태어나기를 약하게 태어났기에 요괴들에게도 배척받고.

태어나기를 여우의 귀와 꼬리를 가졌기에, 인간들에게도 배척받고.

결국에는 요괴와 퇴마사들에 의해 죽임당할 뻔했던 나를 거두어준 그녀는, 말했다.

‘그러하니, 본녀 하나쯤은 그런 너를 사랑해주마. 어떠하냐, 작은 여우야.’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멍하니, 그런 그녀의 말을 중얼거리듯 따라하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여우 아이이니, 앞으로 호아라고 부르마.’

여우, 그리고 아이.

그렇기에 호아(??).

처음으로 자신에게 이름이 생겨난 순간, 눈물이 흘렀다.

대부분의 요괴는, 부모가 없이 태어나기에 이름을 가질 수 없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세상에 남아버린 원과 망, 그것들이 뭉쳐진 업에서 스스로 태어나는 무수한 요괴 중의 하나였으니.

그렇기에, 나 또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요괴가 그러하니 상관없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요괴는 인간에게 두려움을 받아 생겨난 이명이, 그 이름을 대신할 뿐이었다.

하지만 약하디 약한 여우 요괴, 하물며 요괴에게서도 인간에게서도 배척받는 그런 여우 요괴인 자신에게 이름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 내게 이름이 생겼을 때.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요괴일진대, 어찌 호아, 네 눈물은 이리도 투명할까.’

그런 내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는 농을 했다.

‘본녀가 이름을 잘못 지은 것이 아닐까 싶구나, 이토록 울보인 줄 알았더라면 호곡이라고 지을 것을.’

그 또한 좋았다.

호아라는 이름도.

호곡이라는 이름도.

어느 쪽도 이름일진대, 무엇이 싫을까.

단지 나를, ‘나’로 불러주는 이름이라면 그 무엇이든 좋았다.

‘정말이지, 눈물이 많은 아이로구나.’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는 그리 말했다.

후에 듣기로, 주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혈연으로든, 인연으로든,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진 이들에게 행하는 것이라 알게 됐다.

그녀는 그때 내게 이름을 지어주며, 나를 딸로 삼은 것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울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서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

하고, 그렇게 말하며 우는 나를 보며 그녀는,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너는 울보구나.’하고.

그 뒤에 어머니에게 길러지며, 주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뛰어난 주술사였고, 나에게는 주술의 재능이 있었다.

요괴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약했던 몸은, 그러한 재능을 타고났기에 그랬던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120년.

세 번째 꼬리가 생겨났을 무렵에, 내가 심기체의 이치를 깨달았을 무렵에 어느덧 늙어버린 어머니께서는 말했다.

‘마침내, 그 어렸던 여우 아이가 이렇게나 컸구나. 한때는 본녀보다 작았던 아이가, 이제는 본녀보다 크게 자랐구나.’

특히, 이 부분은.

그렇게 농을 하며 어머니는 내 가슴을 쿡, 하고 찔렀다.

하지만, 평소라면 부끄러워서 하지 말라며 말했을 것을, 그런 어머니께 이번만큼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요괴로 태어났지만 때 묻지 아니하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주술을 익혀 사용하니. 마치 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구나. 그래, 네 이름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이제껏 호아라고만 알고 있던 이름.

호아라고만 불려왔던 내 이름.

그것이 단순히, 나를 부르기 위한 임시적인 이름이었음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것보다는 등이 굽고, 주름이 생겨나, 늙어버린 어머니에게 다가오는 죽음이 덧없이 슬플 따름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나는 죽음의 향이, 어찌할 도리가 없이 찾아온 죽음이 덧없고, 하염없이 슬플 따름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호아란. 여우 아이가 커서, 꽃이 되었으니. 너는 앞으로 호아란이란다.’

그제야 내 이름은 호아란(???)이 되었다.

여우 아이는, 자라나, 마침내 꽃이 되었다.

예쁜 이름.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어째서, 어머니께서 내게 이름을 지어줄 때마다 이토록 눈물이 나는 것일까.

어째서, 생물은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순리는 다만 순리일 뿐, 거스를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째서 어머니가.

수많은 인명을 구하고.

수많은 요괴들조차도, 그 죄를 묻되 함부로 죽이지 아니하고, 억울하게 핍박받는 요괴라면, 설령 그것이 요괴일지라도 구하던.

수많은 인간과 요괴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아온 어머니가 대체 어째서.

늙고 병들어,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150여년.

인간치고는 긴 삶을 살아온 어머니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이었다.

요괴로 태어나, 인간의 아이로 자란 내게 있어서는.

결국에는 요괴인 내게 있어서는 한없이 덧없고, 짧은 세월.

120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인간의 기준으로 이제 겨우 소녀티를 벗게 된 내게 있어서는, 한없이 짧은 그런 세월.

고작 150여년.

요괴인 내게 있어서는, 고작 그런 세월에 불과한데.

너무나도 짧은 세월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을 앗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차라리, 어머니를 되살리자.

그래서 설령 어머니가 요괴가 될지라도.

그래도 다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같이, 어머니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니는 말했다.

‘너의 어머니가 될 수 있어서, 행복한 인생이었구나. 본녀는 무척이나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좋은 인생이었구나.’

늙고, 병들어 흐릿해졌던 어머니의 두 눈동자가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하니, 슬퍼하지 말거라.’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다시 저물며 씨앗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본녀의 인생에서 꽃이 피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 저물 때가 됐음이라. 꽃은 결국에는 지는 것을 알기에 아름다운 것.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툭, 하고 그런 내 머리 위에 어머니의 앙상하게 마른 손이 올라왔다.

한때는, 듬직하기만 했던 손.

또 한때는, 따스하기만 했던 손.

또 때로는, 따끔하기도 했던 손이.

그저 앙상하게 말라서, 그것이 슬펐다.

꽃은 지기에 아름답다 말하며, 내가 하려던 짓을 만류한 어머니가 야속하기에 슬펐다.

그런 어머니의 말을, 한평생 동안 따라왔던 어머니의 말을 도저히 따르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러나, 결국에는 내가 그런 어머니의 말을 따를 것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슬퍼서,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니는 또다시 농을 했다.

‘정말이지, 그때 네 이름을 잘못 지은 모양이구나. 네 이름을 호곡란이라고, 그렇게 지었어야 했어.’

맞아요.

저는 여전히 울보예요.

어머니, 그러니까 제 곁에 있어 주세요.

부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망자를 되살리는 주술.

어머니 정도의 주술사라면 그것을 쓰지 못할 것도 없었다. 설령, 더 이상 인간으로 남을 수 없게 되어버릴지라도, 그러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요괴가 되어버리지만. 그러나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살아서 내 곁에 남아주셨으면 했다.

딸인, 제자인 내가 요괴일진대.

누가 어머니가 요괴라며 욕할 이가 있을까.

설령 있더라도... 그때는 자신이 나서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어리광만 부리는구나.’

콩.

내 이마를, 살짝 때리고선.

‘허나, 호아란아. 너는 이제 컸으니, 어리광을 부릴 때가 끝나지 않았더냐.’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본녀가 죽거든, 내 몸을 불에 태워 바람에 실어 날려주거라. 죽어서라도 세상을 떠돌며 유랑하고 싶은 마음이구나. 저 머나먼 곳까지 날아가,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고 싶구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맙구나.’

어머니는 졸리다는 듯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셨다.

눈을 감고 잠든 어머니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를 꼬박 울었다.

잠에 든 어머니가 깨었으면 하고, 그랬으면 하고 바라면서.

하루를 꼬박 울었지만, 어머니는 다시는 깨지 않으셨다.

어머니를 유언에 따라서, 흐르는 바람에 실어 장례를 치르고서 다시 이백 년이 지나고. 셋이었던 내 꼬리들은 어느덧 아홉이 되어있었다.

‘심기체’

의지와 세상과 몸.

그 세 가지의 균형에 이르는 이치를 익히고.

‘천지인’

하늘과 땅과 사람.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도리를 알고.

‘음양도’

어둠과 차가운 것, 빛과 뜨거운 것, 그리고 그 길을 앎이니.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내 일은 그릇된 길에 빠진 요괴들을 구제하고, 악인을 벌하고, 선인과 억울한 이들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나 또한 그러한 길을 걸었다.

그런 내가 가장 많이 보게 된 것은,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무수한 요괴들이었다.

많은 요괴들을, 때로는 봉인하고, 때로는 퇴치하고, 때로는 거뒀다.

요괴는, 업에서부터 태어난다.

그렇기에, 태어나기를 어둠을 품고, 태어나기를, 욕망에 쉬이 빠지며, 태어나기를, 악에 물들기 쉬움이나.

그럼에도 결국에는 업.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에서 태어나기에, 요괴라 할지라도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이니.

나 자신이 그 첫 번째 증명이 되어, 악한 요괴를 물리고, 때 묻지 아니한 요괴들을 거두고, 인간과 서로 힘을 합치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렇게 살아가기를 다시 수십 년.

‘여우님.’

‘하늘에서 내려오신, 여우님.’

내 세상의 모두가 나를 알게 되었으며, 그들이 나를 부르기를.

‘천호, 호아란님.’

나는 천호, 호아란이 되었다.

좌르르륵, 소매에서 쏟아져나오는 부적들이 거대한 요괴를 옭아맸다.

다섯의 마을을 덮치고, 수백이 넘는 인간을 잡아먹고.

하물며, 같은 요괴마저도 노예로 부리던 거대한 요괴는 내가 쏟아부은 부적들에 감싸인 채 비명을 질렀다.

‘너는, 너 또한 요괴이거늘 어째서 나를 공격하느냐...!’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몸에 달라붙은 부적을 떼어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요괴는, 울부짖었다.

‘원망스럽지 않더냐? 이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느냐. 우리는 죽음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원망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갈망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다만, 부족함에서 태어나는 자들이다! 빼앗고 싶지 않더냐? 저들이 가진 것들이 탐나지 않더냐? 약한 주제에 가족을 만들고, 약한 주제에 마을을 일구는, 저들의 것을 부수고 싶지 않더냐! 부수고, 빼앗고, 그러고 싶지 않느냐! 너 또한 그러하리라! 너 또한 요괴이니! 갈망하고, 빼앗는 것이 우리들의 천리이니!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막아서느냐.

그런 요괴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에, 내가 물었다.

‘요괴야,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이름? 그런 것은 이 몸에게 필요 없다! 오직 나만이 오롯하게 나 자신을 증명하나니, 이름이란 것이 대체 어찌하여 필요하단 말이더냐! 감히 하찮은 인간들이 부르기를, 태산과 같이 크고 주먹을 휘둘러 집을 무너뜨린다고 하여, 나를 태산붕거라는 우습지도 않은 이명으로 불릴 따름이라! 그따위 것, 겨우 그따위 것, 내게 필요치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하더냐, 하고.

요괴의 대답을 듣고서.

나는 나지막하게 주언을 읊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부적들은, 어느덧 불타는 여우들이 되어 요괴의 몸을 태우고, 옥죄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요괴에게 내가 말했다.

‘네가 말했지, 같은 요괴이면서 어찌하여 자신을 막느냐고.’

쿵,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는 태산붕거라 불리는 거대한 요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본녀는 요괴가 아닌, 천호. 호아란이기에 그러함이니라.’

‘본녀에게는 나를 길러준, 어머니로부터 받은 이름이, 호아란이란 이름이 있기 때문이니라.’

‘너, 태산붕거라 불리는 요괴야. 네가 죽어서도, 네 이름을 기억해줄 이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겠구나.’

이름 따윈 필요치 않다 말하면서도, 자랑스레 자신을 태산붕거라고 말하던 요괴를.

나는 가엾게 바라만 보았다.

‘나,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결국, 무너지듯 죽어버린 요괴에게서 흘러나오는 업이 보였다.

버림받은 아이들.

부모가 있음에도, 타고난 천형으로 인해 버려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원망이 모여서...

가족을, 그런 가족들이 모인 마을을.

다만 바라보다가 죽어간 이들의 원혼이 모여서 생긴 요괴.

자신을 버린 주제에, 자신들을 버린 주제에.

그렇게 모여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죽어간 아이들의 원망이 모여서 태어난 요괴.

‘...네가 정녕 원하던 것은, 부수는 것이 아니라 너 또한 그곳에 있고 싶었음이겠지.’

허나, 더 이상 그 바람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여우님.’

‘감사합니다요. 여우님...’

‘천호님, 저희 가족들의 원수를 갚아 주셔서...’

연신 내게 감사를 표하며, 동시에 죽어버린 요괴 시체를 원망스레 바라보는 인간들.

저들이 요괴에게 품은 원망은 또 새로운 요괴를 낳으리라.

‘요괴란, 결국에는 주술과 같은 이치에서 태어나는, 가엾은 존재들이란다.’

‘바라고, 비는 것이 그것이 주라면, 그렇게 빌고 빌어도 이루지 못한 소원은 망이 된단다. 그리고, 요괴는 그러한 망에서 태어나지.’

‘결국... 우리가 다루는 주술과, 이 세상에 태어난 수많은 요괴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란다. 바라고, 빌어, 결국 이루어내는 것이 주술이라면... 결국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간 망들에서 태어나는 것이 요괴이니.’

‘그들을 가엾게 여기거라, 호아란.’

어머니가 생전에 하셨던 말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저, 여우님. 요괴의 퇴마비로는 무엇을 드려야...’

비굴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묻는 촌부의 말. 그 말을 듣고서, 내가 눈을 뜨고서 그런 촌부를 보며 말했다.

‘저 요괴의 장례를 치르고, 그 위에 묘를 세워 공양하거라.’

‘네? 하지만...’

‘공양받는 요괴는 더 이상 원망을 품지 않고, 다시금 태어나 인간을 덮치지 않는 법이니. 또 화근을 만들고 싶지 않거든, 본녀의 말을 따르거라.’

‘...넵, 알겠습니다요.’

언젠가.

어머니가 말했던 대로, 그런 날이 올까.

‘호아야, 호아야. 언젠가, 언젠가는 말이다.’

모든 요괴와 인간이, 서로 이해하고 같이 살아가는 날이 올 거란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그런 세상이.

그런 어머니의 꿈을, 내가 대신하여 이뤄주고자 했다.

하지만, 힘들었다.

거두어들인 요괴들과, 인간 아이들로 이룬 마을이 이제는 셋.

요괴와 인간들이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마을이 이제야 겨우 셋.

아직은 막연하기만한 소망이었다.

모든 요괴와 인간이 화합하는 세상은 고작해야 작은 마을 셋밖에는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가 이루지 못했던, 끝내 보지 못했던 소원의 세상.

모든 세상이 그러한 세상이 되는 것은, 아직 멀고도 먼 그런 일이었다.

허나.

‘수수개생신세엽 화화쟁발거년지라.’

지금은 한량없는 일로밖엔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들 또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되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하셨던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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