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이모지자 (1)
* * *
거의 일주일에 걸쳐 수색한 끝에, 디스펜서를 납치해간 라미아 년이 숨어든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설마하니 하수도, 그 안쪽에 있는 공동에 보금자리를 만들어놨을 줄은 몰랐는데.
“이 씨발년아, 이런데 숨으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냐?”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찾아냈다는 거였다.
이미 기절해버린 라미아 년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런 라미아 년의 모습이 아니꼬웠지만, 기절시켜버린 것은 자신이니 뭐 어떻게 탓할 수도 없었다.
분풀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런 라미아 년의 꼬리를 질질 끌며 단단히 봉인되어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별 지랄은 다 해놨네.”
마법으로 쳐진 보호막에 덕지덕지 조잡하게 붙여진 부적들로 이루어진 결계, 그리고 주변에 있는 여러 기물로 만들어낸 진법까지.
삼중으로, 나름 단단하게 만들어둔 봉인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딴 장난질이나 쳐대면, 못 열 줄 알아?”
문고리에 손을 대자, 파지직하고 튀어대는 불꽃 따윈 손에 자그만 상처조차 내지 못했다.
호아란이 피워낸 불꽃에 비한다면, 그 망할 년이 토해내는 숨결에 비한다면, 가벼운 화상조차도 일지 않는 조잡스러운 불꽃따윈 무시하며 그대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보호막과 결계, 진법들이 그러한 릴리스에게 반발해왔지만.
겨우 그따위 것들로는 릴리스를 막을 수 없었다.
빠캉!
문째로 뜯겨나간 삼중의 봉인. 그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릴리스조차도 할 말을 잃었다.
“애미, 씹. 개지랄을 했네 진짜, 씨발.”
욕은 잃지 않았지만.
두 팔에 족쇄를 찬 채로 입을 헤벌린 채로 주저앉아있는 디스펜서. 대체 그동안 무슨 꼴을 당했는지는, 주변에 보이는 이런저런 분비물을 보면 뻔히 알 수 있었다.
정액과 애액, 땀, 피, 오줌에 오물, 그 외에도 온갖 것이 뒤섞인 냄새.
속이 울렁거릴 고약한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뒤집어 쓰고 있는 디스펜서는, 자신을 보고서도 이렇다할 반응조차 없었다.
“씨발 진짜...”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정신이 어딘가 망가졌을 것이다.
그나마 살아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것일까.
정신은 이미 몇 차례나 기억 세탁을 해놔야 돌아올 만큼 망가졌을 텐데? 아니, 이거라면 아무리 기억 세탁을 해도 돌아올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사실상 죽음이란 소리였다.
무너진 정신은, 그 스스로가 다시 일어서지 않는 이상은... 아무리 기억을 지우고 지랄을 하더라도, 결국 산송장이나 될 뿐이었으니까.
한숨을 푹 내쉰 릴리스가 품에서 꺼낸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의 신호가 채 끝나기 전에, 곧바로 전화를 받은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왕님...! 무슨 일로...
“끝났으니까 애 데려가서 병원이나 보내. 정신 감정도 해놓고, 문제 있으면... 보고서 올리고 기억 지우는 게 낫겠네. 차라리 아예 잊어버리는 쪽이 나을 테니까 그리고 이 씨발 좆같은 뱀년 뒤에 뭐 있는지 알아보고.”
마법과 주술, 거기에 진법까지.
서로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것들.
그것을 한낱, 라미아가 전부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만한 재력이 있어 보이는 년도 아니고... 자신을 봤을 때, 눈이 돌아가서 다짜고짜 달려들었던 것부터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라미아...
이쪽 지부의 지부장을 중상을 입혔다는 것치고는 존나 약했다.
그년이 엄살이 심한 년이긴 한데, 그렇다고 이렇게 약한 년한테 어떻게 될 녀석은 아니었다.
배, 배후에 뭐가 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까?
“그거야 난 모르지, 그러니까 알아보라는 거잖아.”
만약 이 라미아년이 디스펜서를 납치한 것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라면...
그런 거라면...
“...잠깐만, 이건 나중에 마저 이야기하자.”
자, 잠깐만요 아직 어디인지 말씀...
불현듯 머리에 스쳐 지나간 불길한 생각에, 통화를 종료한 릴리스가 이내 다시금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신호가 가도, 전화를 받지 않는 녀석.
“...일하고 있는 거겠지.”
저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으니까, 아마 그럴 것이다. 설마하니 그때처럼 또 자빠져 자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이번에는 케이크 정도로 넘어가 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뭘까.
이 꺼림칙한 느낌은.
“...마침 잘됐네, 이 기회에 이 씨발놈들한테서 예산이나 잔뜩 타내야지.”
디스펜서들을 위한 아티펙트, 바디 체커는 본래 기획에서는 디스펜서의 생존만이 아닌, 그 몸의 보호를 위한 이런저런 마법들이 추가될 예정이었다.
근데 그걸 예산 문제로 매번 거절한 끝에, 지금의 바디 체커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디스펜서의 건상 상태나 알 수 있고, 죽기 직전까지 쥐어짜일 때만 발동하는 보호 결계가 전부였다.
이 디스펜서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번 건을 빌미로 다시 예산안을 올릴 수 있을 듯싶었다.
이번에도 거절하면...
“그땐 내가 찾아가야지.”
어지간하면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이런 일이 있는데도 배째라고 한다면, 정말로 배를 째버릴 생각이었다.
지금도 납치된 디스펜서가 차고 있는 바디 체커, 아마도 라미아년이 그걸 보면서 한계까지만 쥐어짜댄 모양인데.
그런 바디 체커에 위치 추적마법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진작에 디스펜서를 구출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 좀 더 강력한 보호막이 있었더라면...
어디까지나, 간살 방지용의 보호막이 아니라, 디스펜서 자체를 보호하는 보호막이 있었더라면...
애당초 이런 일이 일어날 일도 없었을 거고 그때 그 염소년 때문에 그 바보 녀석이 다칠 일도 없었을 거다.
“......아니, 씨발 진짜 안 받네. 이 새끼가 진짜 처자고 있나?”
다시금 전화를 걸어봤지만, 이번에도 신호음이 다 끝날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 한조에 인상을 찡그린 릴리스가 날개를 펼쳤다.
“며칠 동안 안 봤다고, 그새 날 개무시한다 이거지.”
이 시건방진 아들 새끼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릴리스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날개를 펼쳤다.
“...그나저나 집이라.”
스물둘의 영웅 중 하나이자 아직까지도 이쪽에 관여중인 자신에게 세계 정부가 내준, 정말이지 호화스러운, 하지만 단지 그뿐인 집이 아니라.
그 녀석의 좁아터진 집구석을 어느새 집이라고 여기고 있는 자신을 보며 릴리스는 피식, 웃었다.
“뭐, 집은 집이지.”
아들이 사는 곳이니, 그 어머니인 나한테도 집은 집이리라.
“돌아가자.”
그 녀석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전히 좁아터진 녀석의 집안이 보였다.
“아직 안 왔나 보네.”
녀석의 신발이 없는 것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긴, 녀석이 오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할 테니까.
돈도 꽤 벌기 시작했으면서, 그놈의 신발 하나도 제대로 사놓지 않는 쫌생이같은 녀석에게, 이참에 한 번 같이 쇼핑이라도 할까, 싶었다.
대외적으로는 비밀이라곤 해도, 자신의 아들인 녀석이 신발 하나만 덜렁 신고다니는 것도 조금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
좁아터진 집구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자그만 접이식 빨랫대. 거기에 걸려있는 옷들이, 저번에 봤던 것과 똑같았다.
아니, 며칠이나 지났으니까.
그새 또 빨아다가 널었던 걸 수도 있었다.
우연히도, 그런 것에 불과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눈 곳곳에 들어오는, 쌓인 먼지들.
매일 침대에서 과자를 먹지 말라니, 좀 치우고 살라니 잔소리해대던 녀석이, 생긴 것답지 않게 깔끔은 오지게 떠는 녀석이, 저런 것들을 보고서도 치우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냥 치우기 귀찮았나 보지.”
그래, 그럴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걸음을 옮겨서 냉장고를 열어봤다.
‘만두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이 사 들고 왔던 만두 봉지가 하나만 덜렁 뜯어진 채로 전부 그대로 남아있었다.
“또, 또 사 온 거겠지. 꽤 맛있었나 본데, 돌아오면...”
아니다.
눈 돌리지 마, 릴리스.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씨발.”
바보 아들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아. 전화, 받으라고.”
이어지는 신호에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이번에도 뚜하고 신호음이 끝날 때까지 녀석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빠지직!
움켜쥔 스마트폰이 그대로 박살 나버렸다.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헛웃음은, 폐부에 남아있던 공기를 쥐어짜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니다.
아닐 거다.
아직 확실해지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확인하기로 했다.
손가락을 튕긴다.
눈을 깜짝할 시간조차 걸리지 않고서, 순식간에 도착해버린 빌딩.
이종족간지원센터니 뭐니하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실제로는 착정목장인지 뭐시긴지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본래 내 자리에서 대리로 일을 시켜놓고 있던 서큐버스, 뮤리가 그런 나를 보고선 화들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여, 여왕님? 오, 오셨어요?”
“시끄럽고, 오늘 출입한 디스펜서 명단... 아니, 지난주부터 오늘까지 출입한 디스펜서 명단 다 꺼내.”
“앗, 네.”
뮤리가 허겁지겁 들고 온 명단을 확인해봤다.
녀석의 이름이 없었다.
내가 녀석을 떠나가고서, 그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그 부지런하게 싸돌아다니던 녀석의 이름이 없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빠르게, 몇 번이고 다시 살펴봤지만, 녀석의 이름이 없었다.
없었다.
없다고.
대체 왜?
그럼 대체 어디 있는 건데?
“여, 여왕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뮤리에게 대답조차 하지 않고서, 기감을 넓혔다.
넓게, 퍼트려서녀석에게 묻혀놓은내 기운의 흔적을 찾았다.
100km.
이 도시를 전부 훑는다.
녀석은 도시 안에 없었다.
200km.
주변의 도시들마저도, 모두 샅샅이 찾는다
그 어디에도 녀석이 없었다.
300km...
뻗어 보낸 기감으로, 한계에 가깝게 녀석을, 내가 녀석에게 묻혀놓은 기운을 찾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이, 씨발...”
어딘가 수상쩍었던 라미아 년.
지부장에게 중상을 입혔다던 주제에, 존나게 약했던 년.
그래서, 그 라미아 년의 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배후.
일부러,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런 짓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머리에 스쳐 지나갔던, 불길한 생각들.
그것들이, 다만 불길한 예감일 뿐에 불과했던 것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히, 히익...?!”
새된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 뮤리를 흘끔 쳐다보고서, 냉정을 되찾았다.
아닐 거다.
그래야만 했다
딱, 손가락을 튕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