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이모지자 (2)
* * *
“꺄악?!”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난 나를 보고서, 그대로 주저앉는 분홍 머리의 염소년.
그 호구같은 새끼가, 제 다리를 분질러 먹기까지 했던 이 염소년을 용서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진짜 좆같았는데.
심지어 이 년의 주인이 됐다 뭐다 했을 때는, 그게 대체 뭔 개소리인지 이해하기도 힘들었는데.
그래도, 녀석의 지인이라고 할만한 염소년.
부들부들 떨며, 입고 있는 앞치마 자락을 꼬옥 쥐는 염소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야.”
“네, 넷...!”
“그 녀석... 한조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당장 말해.”
“네? 주, 아니... 오빠요?”
“오빠는 지랄, 네 나이 다 알거든 이 좆같은 년아?”
한조보다 두 배는 더 살은 년이 오빠, 오빠하면서 꼬리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당초 지한테 좆같게 굴었던 년을 왜 그렇게 챙겨주는지, 그 녀석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호구 같은 새끼.
언젠가 등골마저 처먹힐 새끼.
속으로 바보 같은 녀석을 욕하고 있을 때, 염소년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사, 사티로스는 인간보다 몇 배는 더 사니까, 그렇게 치면...”
이 씨발년이.
묻는 말에나 대답할 것이지.
“지랄 말고 대답이나 해. 언제 봤어?”
“그, 그러니까 며칠 전에 만두를 사간 이후로는...”
본 적이 없는데요, 하고 우물쭈물 대답하는 염소년의 말에 이가 갈렸다.
그날로 이 염소년도 한조를 본 적이 없다는 건가.
그러니까...
그날 이후로, 뺀질거리며 매일 출근하던 것도 안하고, 그렇다고 매일 같이 장을 보던 마트도 들른 적이 없고.
그동안, 집에도 단 한 번도 들어온 적도 없고.
아주, 그냥 사라져버렸다고.
“히끅!”
딸꾹질하며 나를 올려다보는 염소년.
그년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만약에, 나한테 거짓말한 거면... 그땐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거,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 그런데 한조 오... 아니, 주인님을 릴리스님이 왜...?”
“......”
그러고 보니 이 염소년, 나랑 한조랑 어떤 사이인지 몰랐었지.
염소년의 말에 냉수를 들이부은 듯,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오빠라고 하지 말라니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염소년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오빠나 주인님이나, 남자들이 사족을 못 쓰는 말들이었으니까.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대체 몇 명이나 따먹었는지도 모를 년 주제에, 녀석에게 아양 떠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좆같아졌다.
녀석도, 이 염소년이 이러니까 그렇게 호구처럼 굴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설령 내가... 한조의 양어머니라는 사실을 이 염소년한테 밝힌다고 해도, 그렇다고 내가 이 염소년한테 뭘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나?
“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차자, 그런 나를 보며 어깨를 움츠리는 염소년.
“히익...!”
꼴사납게 이상한 소리나 내고 있는 염소년에게 말했다.
“아무튼... 너. 그 녀석 보게 되면, 나한테 보고해.”
“네?”
의아해하는 염소년을 보며 으득, 이를 갈며 말했다.
“나한테 보고하라고, 귓구멍 막혔어? 내가 잘 들리게 뚫어줄까? 응?”
“아, 아뇨! 안 막혔어요...! 그, 근데 어떻게...?”
번호를 알려주려다가, 이내 스마트폰을 개박살내버렸던 것을 떠올린 릴리스는 혀를 차며 다른 것을 염소년에게 건네줬다.
“이건...?”
“그쪽으로 연락하면 될 거야.”
한 다리를 걸쳐서 내게 소식이 전해지겠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내게 연락이 오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염소년에게 뮤리의 번호를 알려주고서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이 염소년이 모른다면, 다른 녀석들에게도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에일레야...
뮤뭉뮤뭉...
마노...
메리...
녀석과 관계가 있던 년들.
디스펜서로서 일하면서, 그 녀석이 안았던 여자들을 찾아가 봤지만, 그중에서 그 누구도 한조 녀석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몇 명은 한조의 행방을 묻는 내게 되려 녀석이 대체 어디 간 거냐고 물어오기까지 했다.
불쾌했다.
하나같이 지들이 한조의 뭐라도 되는 냥, 요즘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거냐며 걱정하는 꼬라지들이 불쾌했다.
고작 디스펜서와 손님이 전부인 관계였던 주제에, 대체 지들이 뭐라고.
아니...
애당초, 겨우 이런 거로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쁜 이유가 뭘까.
“후우...”
진정하자, 릴리스.
흥분해봤자 좋은 것도 없으니까, 아직... 전부 찾아본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런데도 찾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아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
없다.
그 어디에도, 한조 녀석의 흔적은 물론이거니와 녀석의 행방을 아는 이들이 단 하나도.
이젠 인정해야만 했다.
라미아 년이 디스펜서를 납치했던 일과이번 일은 모두 어떤 개같은 새끼가 꾸민 일이라는 것을.
나에게 원한이 있든, 아니면 스물둘의 영웅에게 원한이 있든 간에, 나를... 한조를 노리고 꾸며진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
어디서 정보가 샌 거지?
한조랑 나의 관계를 아는 녀석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아리아드나 호아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데.
그게 아니라면...
“설마, 내가 남긴 기운 때문에?”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애당초 나를 엿먹이려고 들었던 새끼가, 마침 내 기운을 묻히고 다니던 한조를 발견했던 거라면...
그런 거라면.
내가 그 새끼였어도 잘됐다고 한조에게 관심을 보였을 테니까.
족쇄를 찬 채로, 정신이 망가진 채로 멍하니 있던, 라미아에게 납치됐던 디스펜서가 떠올랐다.
원한이 이유라면.
그래서 한조를 납치한 거라면...
그렇다면, 그 이름도 모르는 디스펜서보다 더한 꼴을 당했어서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니, 그때부터 지금까지...내게 이렇다할 연락같은 것도 없는 걸 보면.
이미...
“하... 하하.”
그때 갔으면 안 됐다.
그냥... 알아서 하라고 밑에 애들이나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한조가 사라져버렸다.
내걸ㅡ 빼앗겨버렸다.
그렇구나.
이게 빼앗긴다는 기분이구나.
태어날 때부터, 서큐버스 종족이 지배자 종족으로 군림하던 세상에서, 그 서큐버스들의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었다.
그저 숨만 쉬는 것으로도 강해졌고, 가만히 있어도 내게 정기를 가져다 바치거나 충성을 맹세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그렇기에 감히 내 것을 빼앗으려 드는 녀석은, 이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빼앗겨버렸다.
내가 아들로 삼은, 한조를.
그래, 얕보인 거구나.
나를.
내 것을 빼앗을 생각을 할 만큼, 얕잡아 보인 거구나.
스으읍.
숨을 들이켰다.
주변에 있던 마나들이, 가득하게 내게 빨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서큐버스 퀸.
태어나기를, 서큐버스들의지배자로 태어난 존재.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생명력을, 마나를, 정기를 빨아들이는 서큐버스 중의 서큐버스.
그런 나에게는 여러 이명이 있었다.
여제.
포식자들의 포식자.
그리고, 차원 포식자.
한 차원에서, 자연스레 태어난 초월종.
처음부터 한계를 벗어던지고 태어난 차원의이레귤러가 나였다.
기존의 서큐버스들과는 아득하게 웃도는 힘을 갖고 태어난, 부모조차도 없이 홀로 태어난 서큐버스.
하나의 세상이, 차원이, 그 스스로를 떼어내서 낳은 존재.
그것이 나라는 존재였다.
서큐버스라는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본질적으로는 차원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 나라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런 나를 봉인했다.
나날이 강해지던 힘, 성장을 거듭할 수록,나날이 더욱 많이 먹어 치워가던 주변의 마나와 생명력에,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말 거라고 생각했기에.
아직 내가 어린 시절에, 몇 단계로 봉인했던 힘들을 차레 대로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인을 풀어감에 따라,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뿔이 자라나고, 피부가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뻗어 나오는 손톱과, 내 몸에 둘러지는, 마나들이 타올랐다.
푸른 불꽃.
그 불꽃들이, 이내 내 몸 위에 달라붙는 갑옷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하아아아...”
갑갑했던 것을 풀어낸 것처럼, 온몸에 힘이 끓어올랐다.
평소의 몇 배나 치솟아 오른 뿔, 푸른 빛을 띠게 된 피부, 날카롭게 뻗어 나온 손톱...
아마 눈도, 검게 물들었으리라.
핏빛처럼 붉은, 그래서 싫은 동공만 빼고서, 전부 시꺼멓게.
어린 시절에는, 주위의 서큐버스와는 다른 이질적인 자신의 외모에 그토록 싫었던 모습으로.
서큐버스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형상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누군가에겐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보기 흉한 모습이기도 하고.
하지만, 풀어낸 봉인만큼 온몸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강해져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도시에 있는, 수백 만이 가뿐하게 넘는 이들의 생명력을, 정기를 빨아들여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강해져 가고 있었다.
딱히 원하지도 않는데도, 제멋대로 남의 생명력이나 빨아 대면서 강해지는 몸에 짜증이 치솟았다.
애당초, 이런 모습을 하게 만든 한조에게, 그런 한조를 데려간 씨발 새끼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어떤 씨발 새낀지는 몰라도...”
다시금 기감을 펼쳤다.
원래의 세상에 비해서, 몇 배는 더 넓어진, 이 반도에 있는 모든 도시에 기감을 덮었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은 없었다.
그렇다면 더욱 넓히면 그만이었다.
“반으로 찢어주마.”
그 녀석에게 해코지를 했다면, 그래서... 녀석이 어떻게 되기라도 했다면.
영원히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서, 영원하게 찢어발길 거라고 맹세했다.
“...찾았다.”
의외로, 한조의 흔적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몇 배는 더욱 예민해진 지금에서야 기감이 찾아낸 한조의 흔적.
그 흔적이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펼치기 위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빌딩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이, 씨발 뭔데?”
그 녀석이 여긴 왜... 아니지, 한조를 납치한 녀석이 여기까지 끌고 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생뚱맞게도, 빌딩의 꼭대기에 도착해버렸지만, 이내 생각을 다잡고서 한조의 흔적들을 찾았다.
기감을 좁힌다.
좁아진 대신에, 더욱 예리해진 기감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대규모 술식... 그것도 상당히 고위급의 주술...”
시간이 지나서, 거의 사라져버린 술식들이 발동한 흔적을 찾아냈다.
사람을 물리는 주술.
사람을 들이는 주술.
그 밖에도 여러 마법들... 이건, 혈마법?
세계 정부에서 금지된 마법까지 사용된 흔적이 발견됐다.
좆같은 모기 새끼들이 주로 사용하던, 피를 매개로 하는 마법의 흔적이.
거기에 시간을 돌리는 주술까지.
마지막의 것은, 시간을 돌리는 주술은 거의 호아란급의, 영웅급의 대주술사나 그마저도 아니면 수십 명의 고위 주술사가 겨우 펼칠 수 있는 주술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주술이기도 했고.
모기새끼들과의 전쟁에서, 십만이 넘는 노예들을 제물로 바치며 펼치려들던 대규모 혈마법을 호아란이 시간을 돌리는 것으로 막아낸 것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러한 주술마저 펼쳐졌던 흔적에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이만한 주술을 써가며 납치했다면, 그렇다면 당장 목숨을 어떻게 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씨발...”
어딘가로 향하는 문을 열었던 주술의 흔적 역시 찾았지만, 흔적에 남은 마나를 되짚어봐도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 정확한 좌표가 남아있지 않았다.
마법이라면 몰라도, 주술로 연 문의 좌표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지금 와서 더듬어 알 수 있는 능력은 내겐 없었다.
“...호아란.”
대주술사인 호아란이라면 몰라도.
“아이씨, 진짜...”
한조의 일로 다퉜던 호아란에게 부탁하긴 그런데.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호아란도... 한조의 일이라면 도와줄 테고.
부탁하는 처지에서, 호아란의 영역인 여우의 숲에 무작정 공간이동으로 갈 순 없었다.
급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촤악, 날개들을 펼쳤다.
하늘을 덮을 듯, 거대하게 펼쳐진 세 쌍의 날개들을.
그 날개들을 휘두르며,호아란이 있을 여우의 숲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