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휴식 (2)
* * *
“그럼 다녀올게요.”
대충 사야 할 것들을 전부 메모장을 켜서 적은 내가 장을 보러 나가기 위해 신발을 갈아 신으며 그렇게 말하자 호아란이 아, 하고 내게 인형을 건네주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 이걸 챙겨가거라.”
“어... 네.”
호아란이 건네준 인형, 꼬리가 셋이나 달린 인형을 받아들자 호아란이 내게 말했다.
“그거라면, 혹여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간 벌이는 해줄 것이니라.”
이게 그 꼬리 셋 달린 호아란의 분신으로 변하는 그거라면 시간 벌이가 아니라 그냥 다 줘패서 해결해줄 것 같은데.
“근데 이걸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요? 뭔 일 있으면 집어던지거나 그러면 돼요?”
“그건 그 아이가 알아서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 아이가 알아서 해준다니?
그때, 내가 안고 있던 호아란을 꼭 닮은 인형이 팍, 팍하고 내 가슴팍을 치더니 입을 열었다.
“호아ㅡ?”
“와, 씨. 깜짝이야.”
인형이 말도 하네.
알아서 해준다니 뭐니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아무튼, 자꾸만 내 가슴팍을 쳐대는 인형을 놓아주자, 낑낑대며 내 주머니 속으로 쏙하고 들어가는 인형이 보였다.
“호아.”
그리고 존나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내 주머니에 자리를 잡는 호아란의 인형.
이것도 주술이겠지만, 이렇게만 보니 그냥 작은 생물로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어딘가 조금은내가 살았던 세상에 있던 테엥거리는 참프인지 뭐시기하는 생물이랑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걔네들은 존나 못생긴 반면, 호아란이 인형은 호아란을 똑닮아서 귀엽게 생기긴 했지만.
“그럼, 잘 부탁하마. 한조야.”
“아, 네. 다녀올게요.”
호아란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집을 나섰다.
혹시 모르니 챙겨가라고 호아란이 내게 건네준 인형을 주머니에 장착한 채로 집 근처 마트에 오자 평일 대낮부터 마트에 온 사람은 얼마 없는지 대부분은 마트 직원들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보자...”
호아란이 사오라고 했던 것들을, 메모장을 확인하며 하나둘 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하나같이 몸에 좋아 보이는 것들뿐인데.
이미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것들만 해도 거의 다 채소나 버섯 따위들이었다. 나야 안 가리고 다 먹지만 이래서야 릴리스가 뭐라고 한마디 할 것 같았다.
릴리스도 딱히 가려 먹지는 않지만, 풀떼기만 있다고 뭐라 하기는 하니까.
대충 릴리스의 몫으로 고기나 맥주도 챙기고 있을 때, 빼꼼하고 내 주머니에서 호아란의 인형이 얼굴을 내밀었다.
“호아?”
“응?”
뭔데?
뭔일이라도 생긴걸까 싶어서 잔뜩 긴장하며 인형을 보고 있을 때, 폴짝하고 내 주머니에서 뛰쳐나온 인형이 풀썩,바닥에 착지했다.
오...
히어로 랜딩.
생긴 건 그냥 쪼만한, 짜리몽땅한 호아란이라서 폼이 난다기보단 그냥 귀여웠지만.
아무튼, 대체 왜 저러나 지켜봤더니, 총총걸음으로 걸어가서 매대에서 무언가를 집어 드는 인형이 보였다.
“호아아!”
“이거 사자고?”
“호아.”
아무래도 사고 싶은 물건이 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근데.
이거 그냥 인형 아니었나?
뭔가 자유의지가 철철 넘치는 호아란의 인형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인형이 폴짝거리며 내 장바구니에 집어넣으려는 것을 대신 집어 들었다.
그리고 대체 이게 뭔가 싶어서 확인해봤다.
“여우 유부...”
뭐지.
여우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 건가?
딱히 호아란이 사오라고 했던 것 중에는 없는 건데.
뭐, 그래도.
“호아...?”
가만히 여우 유부를 집어 들고서 보고 있으려니, 그런 나를 올려다보는 호아란을 꼭닮은 인형을 보고서 그냥 장바구니에 담았다.
별로 비싸지도 않고, 유부야 이것저것 넣어서 먹을 데야 많으니까 하나 정도는 사도 괜찮겠지.
“호아...!”
“그래그래.”
기쁜 듯이 내 바짓자락을 붙잡고 껑충거리는 인형을 다시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또 남은 게 뭐가 있더라...?
메모장을 확인해보니, 대체 이게 뭔가 싶은 것들이 몇몇 있었다.
“옥봉의 꿀? 백년 하수오? 만드라고라? 이런 것도 마트에서 파나?”
그나마 내게 익숙한 건 옥봉의 꿀이었다.
아라크네처럼, 곤충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종족, 정확히는 꿀벌의 특징을 가진 종족이 만들어내는 고급 꿀이었던가?
꽤 비싼 거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작은 마트에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사 오라고 했으니 일단 찾아보기로 하고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
저쪽에서도 날 봤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사티.
그런 사티가 갑자기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쪽으로 온 사티가 내 손을 붙잡고서 어딘가로 질질 끌고 갔다.
“아니, 뭔데.”
사티의 손에 잡혀서 질질 끌려가면서 그렇게 말하자, 그런 나를 끌어당기며 사티가 말했다.
“오빠야말로 이런 데 있으면 어떻게 해?!”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냥 장 보러 온건데.
그러고 보니, 문자로 사티가 이상한 소리를 했었지.
같이 도망가주겠다니 뭐니...
대체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딱히 사티 녀석이 내게 뭔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그냥 그대로 사티에게 끌려가기로 했다.
어차피 기프트가 발현중이라면 몰라도, 내가 사티의 완력에 저항할 방법도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질질 끌려서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해야 할지, 직원들만 들어올 수 있는 창고 비스무리한 곳까지 오게 되자 사티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보다 그제야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대체 뭔데 이래?”
“그러는 오빠야말로 뭔데 그렇게 태평해?”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야...”
꿀꺽, 하고 어째선지 겁에 질린 얼굴로 사티가 말했다.
“그, 릴리스가 오빠를 찾고 있다고... 모르고 있던 거야?”
릴리스가 날 찾고 있다고?
근데 그게 왜...
아.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건진 모르겠지만, 오빠 여기 있다가 걸리면 큰일 난단 말이야! 릴리스가, 오빠를 찾으면 연락하라고 나한테까지 찾아 왔었다고...! 게, 게다가 다른 사람들한테도 릴리스가 오빠를 찾아서 들렀다는 소문도 있고... 아무튼,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아니.”
아무래도 릴리스가 날 찾으러 다녔을 때 사티에게도 들렀던 모양이었다.
나랑 릴리스의 사이가 어떤 줄 모르는 사티는내가 사고를 쳐서 릴리스한테 쫓기고 있는 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었고.
하긴.
릴리스한테 한 번 크게 혼나본 사티니까 그럴 만도 했다.
릴리스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사고친 년들을 잡아다가 참교육하는 것도 있었으니 그것도 한 몫 했을 테고.
어떻게 오해를 풀어야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런 내게 사티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었다.
“지금은 아직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서 이것밖에 없지만... 일단 이걸로 어디 숨어 있어. 일 끝나면 내가 찾아갈 테니까, 그동안...”
오랫동안 주머니에 있었던 건지 꼬깃꼬깃해진 돈.
몇 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내게 쥐여주며 그렇게 말하는 사티를 바라봤다.
오해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사티의 입장에서는, 내가 릴리스에게 쫓기고 있고 그 와중에도 날 숨겨주기 위해서 얼마 안 되는 돈을 탈탈 털어서 내게 쥐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나저나, 길거리에서 노숙하면서 지냈다더니 세상 돌아가는 꼴을 정말로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몇 만원을 보고서, 사티에게 말했다.
“이거론 어디 방 하나 못 빌려, 임마.”
그런 내 말에 잔뜩 주눅들은 표정으로 사티가 중얼거렸다.
“너, 너무 적나...? 그래도, 지금은 그거밖에 없는데...”
“아니, 필요 없어. 애당초...”
릴리스가 날 해코지하려고 찾았던 것도 아니고, 그때 일도 이미 다 해결된 후였다.
근데 그걸 사티에게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마땅히 없어서 좀 답답했다.
톡 까놓고 말해서, 릴리스가 내 어머니라는 걸 알려주면 전부 해결되는 일이긴 했지만... 사티는 어떻게 믿을 수 있다고 쳐도, 이딴 세상인데 기억을 들추거나 하는 능력을 가진 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장 나만 해도 웬 미친년한테, 릴리스의 아들이란 이유로 습격을 당했었는데 거기에 사티를 끼어들게 할 순 없었다.
그러니까.
“...진짜 별일 아니거든. 그냥 내 일이랑 관련해서 그랬던 거니까걱정하지 않아도 돼.아까 문자도 보냈었는데, 못 봤어?”
“문자를 보냈다고...? 그게, 근무중에는 휴대폰 사용은 금지라서...”
일하는 중에 휴대폰도 못 쓰게 한다고?
직원 복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엉망인데.
단골 마트 바꿔버릴까?
그때,꼬르륵하고눈앞의 사티에게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울 만큼, 꽤나 우렁차게 들려온 소리에 사티를 쳐다보자, 그런 내 시선에 얼굴을 붉힌 사티가 입을 열었다.
“아, 이... 이건... 아직 밥을 안 먹어서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그렇게 쳐다보지 마...!”
“아니, 잠깐만.”
월급도 아직 못 받아서, 내게 꼬깃꼬깃한 몇 만원을 겨우 쥐어준 사티였다.
애초에 얼마 전까지는 길거리를 전전하고 다니면서 디스펜서나 습격해서 따먹고 다니던 년이었고.
그래서, 내가 물었다.
“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
“...여기서 점심은 지원해주거든? 그리고, 가끔... 식어버린 시식용으로 구운 것도 집어먹기도 하고... 아, 진짜 가끔이니까 오해하진 말아줘...거기에 폐기된 것도 주기도 해서, 그걸로...”
“그거 말곤?”
“......”
푸욱, 고개를 숙이는 사티.
아니...
존나 궁상맞게 사네 진짜.
왜 이렇게 애가 짠하게 사냐.
첫 만남 때의 인상은 그냥 썅년이었는데, 왜 점점 궁상맞게 사는 년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년의 주인님인지 뭔지가 되버린건지도 모르겠고.
한숨을 내쉬며 사티에게 받았던 돈을 도로 사티에게 쥐여주며 말했다.
“아무튼, 이거 필요 없으니까 돌려받고. 너, 일단 따라와라.”
“어, 어디로?”
“밥 줄 테니까 따라오라고.”
“밥...? 그치만, 나 아직 일하는 시간인데...”
내 말에 얼굴을 붉히는 사티.
그런 사티를 보고서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그 밥 말고 이 변태 년아.”
그 밥 말고 진짜 밥, 이년아.
대충 사티를 끌고서 마트 안에 자그맣게 있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에 도착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봤자, 여기서 파는 것도 별거 없긴 한데.
그냥 간단히 배를 채울만한 거나 팔지 제대로 된 걸 파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하는 애를 데리고서 밖에서 사먹일 수도 없으니, 이걸로 땡칠 수 밖에는 없었지만.
“아... 그럼...”
슬쩍, 내 눈치를 보던 사티가 메뉴판을 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저, 잔치국수? 저거면 되니까...”
“이 썅년이.”
밥 사준다니까 제일 싼 걸 고르고 앉아있네.
돌아버렸나.
세상 사는 법을 모르는 년이었다.
원래 이럴 때는 얼굴에 철판 깔고 적당히 비싸 보이는 걸로 사는 건데.
“여기 주문이요.”
“네에ㅡ”
사티를 대신해서, 대충 적당히 주문하자 그런 내게 사티가 말했다.
“너무 비싼 거 사주는 거 아냐...?”
“별로 비싸지도 않거든? 정 미안하면 이따가 뭐 좀 사야 하는데 그거 찾는 거나 도와주던가. 직원이니까 잘 알 거 아냐?”
만드라고라인지 뭔지랑 백년 하수오인지 뭔지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감도 안 왔다.
그냥 여기서 안 파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그냥 그렇게 말해놨다.
괜히 공짜로 얻어먹는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이렇게 말하는 쪽이 사티도 마음이 편할 테니까.
“그거라면... 응, 도와줄게.”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는 사티.
그렇게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왔다.
너무 많이 시켰나.
사티가 하는 짓이 개빡쳐서 대충 주문했는데, 나온 음식들이 꽤 많았다.
“...다 먹을 수 있지? 참고로, 난 이미 먹고 와서 못 먹는다.”
“...어, 조금... 많은 것 같은데...”
식탁 가득 채워진 음식들을 보고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티를 보고서, 내가 재차 말했다.
“다 먹을 수 있지?”
“먹을게...”
그런 내 말에 울상이 된 채로 대답하는 사티.
결국, 꾸역꾸역 시킨 음식들을 전부 먹은 사티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만드라고라랑 백년 하수오인지 뭔지는 살 수 있었으니 좋게 끝난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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