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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79화 (79/523)

〈 79화 〉 휴식 (3)

* * *

사티 덕분에 호아란이 사 오라고 했던 것들을 모두 무사히 살 수 있었다.

만드라고라인지 백년 하수오인지는 영약을 파는 곳에서 따로 팔고 있었던지라, 사티가 없었으면 꽤나 헤맸을 텐데 다행이었다.

동네 작은 마트에서 아무리 하급 영약이라고는 해도, 이런 걸 판다는 게 좀 신기하긴 한데.

효과가 애매한 하급 영약의 경우에는, 과포화 상태나 다름없는 마나 농도로 인해 양식하기 쉬워진 세상이라 그렇다니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게 쇼핑을 마친 내가 아까 먹은 밥이 여전히 소화가 안 됐는지 영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 사티에게 말했다.

“덕분에 다 샀네, 고맙다.”

“아니, 이정도야 뭐... 그런데, 오빠.”

“엉?”

나를 올려다보며 사티가 말했다.

“정말로, 별일 없는 거 맞지?”

걱정스레 날 바라보며 그렇게 묻는 사티를 보며 피식, 웃은 내가 그런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읏...”

“내 걱정은 말고 너나 잘해. 쫄쫄 굶고 다니지 말고. 그래야지 빚 갚을 거 아냐.”

그렇게 말하자 사티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갚는다니까, 진짜로... 이번에 월급 받으면... 아니, 이번달은 좀 그렇고다음달이면...”

“그래, 알겠으니까. 열심히 일해서 꼭 갚아라.”

사티의 머리카락을 헝클듯 쓰다듬어주었다.

“정말... 머리 다 헝클어지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을 거부하지 않는 사티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주고 있었을 때였다.

우웅, 하고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들려왔다.

“아, 잠깐만.”

사티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낸 내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누구한테 온 전화인지 슬쩍 확인해보자 에일레야였다.

“에일레야?”

릴리스나 그것도 아니면 호아란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전화여서 살짝 놀랐다.

평소랑 달리 문자도 아니고 전화인 것도 그렇고.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그냥 받기로 했다.

“여보세요?”

­아, 여, 여보세요~? 혹시 지금 통화되니~?

에일레야의 목소리.

살짝 망설이는 듯,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 내가 말했다.

“네, 가능은 한데. 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 일하느라 문자를 지금 봐서 말이야, 요새 너 나오질 않았잖아~? 문자에선 그동안 아팠었다고 했는데 좀 괜찮아졌냐고... 물어보려고... 미안, 너무 오지랖이었나...?

말하면서도 점점 주눅이 들어가는 듯한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 에일레야에 내가 말했다.

“아뇨... 뭐, 오지랖이라고 할 것까지야... 아무튼,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지금은 다 나아서 멀쩡해졌어요.”

솔직히 말해서 아픈 적도 없었지만, 문자는 아파서 쉬었던 거로 해뒀으니까 그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그런 내 말에, 전화 너머로 한숨을 내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아, 혹시 내일은 나온다고 들었는데, 벌써 지명 같은 거 받은 게 있을까~?

“아뇨, 아직은 없는데요.”

­그럼...

내일 부탁해도 될까, 하고 묻는 에일레야의 말에 잠깐 생각했다.

내일?

“누님, 아직 발정기 오려면 멀지 않았어요?”

에일레야의 발정기는 얼마 전에 끝났으니까 당분간은 괜찮았을 텐데. 보통 한 달에 2, 3일 정도간 이어지는 발정기이니만큼 고객들의 발정기 주기 정도는 계산하기는 나름 쉬웠다.

아무튼, 대충 계산해보니 에일레야의 다음 발정기는 대충 3주, 혹은 4주 뒤에나 있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묻자, 그런 내 말에 에일레야가 말했다.

­아니, 꼭 그거 때문은 아닌데... 혹시 싫은 거니...?

싫다고 할 것도 없었다.

솔직히 에일레야야 처음에는 릴리스때문에 좀 색안경을 끼고 본 것도 없잖아 있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였고. 오히려 돈도 많고, 딱히 이렇다 할 진상 짓도 하지 않는 우량 고객님이었다. 더군다나어차피 내일은 일하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미리 지명을 받은 셈 치면 그만이었다.

꼭 발정기 때만 디스펜서를 이용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아니, 싫은 건 아니고요. 네, 그럼 그런 거로 알고 있을게요.”

내일 만날 시간이나 장소 같은 걸 이야기하던 중에, 에일레야가 그런 내게 말했다.

­아, 혹시 괜찮으면, 저번에 했던 약속도 이번에 하는 건 어때~?

그렇게 말하는 에일레야의 말에 멈칫했다.

그야 에일레야의 말이 존나 금시초문이니까 그러했다.

저번에 했던 약속?

그게 뭐였더라.

­그, 같이 저녁 먹기로 했던 거 있잖아...? 내가 사준다고 했던 거... 혹시 잊어버린 건 아니지...?

“아, 아아아, 그거요?”

그러고 보니 그런 약속을 했었던 것도 같았다.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야 그때는 그런 걸 머릿속에 담아둘 정신이 없었으니까 별수 없었지만.

연락이 씹힌 릴리스의 화를 어떻게 해야 풀 수 있을지만 존나게 생각하고 있었지.

저녁, 저녁이라...

공짜 밥이야 환영이긴 했지만, 지금 바로 에일레야랑 그런 걸 약속하긴 조금 곤란했다.

“아뇨, 저녁은 좀... 죄송한데, 그때 가서 봐야 알 것 같은데요.”

밖에서 저녁 먹는 건 아무래도 릴리스나 호아란에게 얘기라도 해둬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자, 잠깐 아무 말도 없던 에일레야가 내게 말했다.

­그, 그래? 그래도, 내일 보는 건 맞는 거지~?

“네, 그건 괜찮아요.”

­그래, 그럼 내일 봐...

뭔가 의기소침한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에일레야.

“네, 내일 봬요.”

그런 에일레야에게 대답하고서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있으려니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티가 보였다.

“뭔데?”

사티에게 묻자, 그런 내 말에 사티가 입술을 살짝 깨무는 것이 보였다.

그러던 사티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게 말했다.

“...누구 전화야?”

누구 전화냐니.

“알아서 뭐 하려고?”

“아니, 그냥... 뭐...”

그런 내 말에 우물쭈물하는 사티.

이내 추욱, 하고 고개를 떨구는 사티를 보고서, 재차 그런 사티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마구 사티의 머리카락을 헝클며 말했다.

“그냥 일 쪽으로 아는 누나 전화니까 신경 쓰지 마.”

“일이라면... 그, 디스펜서 쪽?”

“그럼 그거 말고 또 뭐 있냐?”

당연한 걸 묻는 사티를 보고서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난 이만 가볼 테니까 너도 열심히 일해라.”

“아... 응.”

“그럼 난 간다. 잘 있어라.”

“응... 잘 가, 오빠.”

내가 헝클어 놓은 머리를, 손으로 덮으며 그렇게 말하는 사티.

아까보다 한층 더 표정이 좋지 않아진 것 같은 사티가 괜히 신경 쓰였다.

아까 너무 먹여서 체하기라도 했나?

조금쯤은 같이 먹어줄 걸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양손 가득 장을 본 것들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를 마중을 나온 듯, 밖에 나와 있는 호아란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호아란을 발견한 것처럼, 호아란도 날 발견했는지, 총총걸음으로 다가온 호아란이 내게 말했다.

“조금 늦었구나, 별일은 없었느냐?”

“네, 잠깐 아는 녀석이랑 만나서요. 그보다 릴리스 어머니는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느니라.”

하긴, 아무리 릴리스라도 벌써 퇴근하거나 할 시간은 아니긴 했다.

저녁 무렵에나 오려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주머니에서 폴짝 뛰쳐나온 인형이 그런 호아란에게 안기는 것이 보였다.

폴짝, 하고 호아란의 젖가슴에 파묻히듯 안긴 인형이 입을 열었다.

“호아.”

“음? 무슨 일 있었느냐?”

“호아, 호아...!”

“음...”

뭐지?

호아, 호아하고 뭔가 말하는 듯한 인형과 그런 인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호아란을 보고 있는데, 대뜸 호아란이 내게 말했다.

“저번의 그 사티로스 아이와 친해진 모양이구나. 한조야.”

“네?”

아니.

지금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었는데, 호아란에게 아까 사티랑 만났던 일들에 대해서 고자질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편리하기도 하고, 생긴 것도 귀여워서 나중에 호아란에게 저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아니, 뒤통수는 아닌가...?

딱히 이상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호아란의 분신, 인형이었으니 딱히 나한테 뒤통수를 쳤다 뭐했다 할 것도 없기는 했다.

그래도, 내가 여우 유부도 사줬는데 좀 괘씸하긴 했다.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호아란에게 내가 했던 일들을 들켰다고 생각하니 괜히 찜찜하기도 하고.

괜스레 긴장한 채로 호아란을 보고 있자니, 그런 내게 호아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남을 용서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니라, 그런데 한조, 너는 그 어려운 일을 하였구나. 과연, 본녀의 아들이로다.”

“아, 뭐... 네...”

릴리스는 사티를 용서해준 거로 호구 새끼니 뭐니하고 말했는데 호아란은 그런 나를 잘했다며 칭찬해왔다.

이렇게나 성격이 차이가 나니까 그렇게 티격태격해대는 걸까?

여러모로 정반대인 릴리스랑 호아란이 어떻게 해서 친구가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날이 춥구나. 자,어서 들어가자꾸나.”

그렇게 말하며, 내가 사 온 것의 절반을 대신 들어주는 호아란.

릴리스였다면 맥주가 들어있는 봉투만 홀랑 들고 날랐을 텐데...

이게 마망?

릴리스는 그럼 뭐지...?

아니지, 굳이 둘을 비교하거나 할 필요는 없긴 했다.

릴리스도 릴리스 나름대로 내게 잘해줬고.

비교하기보단, 제각각 다른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릴리스는...

내게 씽씽이도 줬고. 호아란과 달리 나름 세계 정부 관할의 기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권력자기도 했으니까.

그나저나...

아까부터 뭔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데 대체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뭔가 놓친 듯한 그런 찝찝함.

뭐 빼놓고 사 오지 않은 거라도 있었나 싶었지만, 몇 번인가 확인해봤으니 그건 또 아닐 거였다.

“왜 그러느냐? 혹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런 나를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쳐다보며 묻는 호아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 중요한 일이었으면 금방 떠오르겠지. 그러지 않은걸 보면 별거 아닐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서, 호아란을 뒤따랐다.

“좀 늦는구나.”

“그러네요.”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제 일곱 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나랑 같이 출근했을 적에도 나보다 먼저 퇴근해서 집에서 빈둥거리던 릴리스였으니, 평소였다면 진작에 집에 왔어야 할 시간인데도 오지 않았다.

“언제쯤 오나 전화라도 해볼까요?”

“그러는 것이 좋겠구나. 이미 식사 준비는 끝났으니, 마냥 기다리는 것도 좋지 않을 터이니.”

호아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릴리스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을 때였다.

우웅, 하고 문자가 날아왔다.

­곧 도착하니까 기다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릴리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그런 릴리스로부터 온 문자였다.

“아, 금방 온대요.”

“그러하더냐? 그럼 다시 음식을 덥혀야겠구나.”

“제가 좀도와드릴까요?”

“아니, 딱히 그럴 필요는 없느니라. 단순히 데우기만 하면 그만이니.”

스윽, 하고 그렇게 말하고서 저녁 준비를 하러 가는 호아란.

나도 가만히 있긴 그래서 릴리스가 오면 곧바로 저녁을 먹을 준비를 위해 상을 차리고 있던 중에, 띠로링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설마 나 빼놓고 밥 먹은 거야? 문자도 보냈는데?”

“아뇨, 문자 보고서 저녁 먹을 준비하던 거였는데요. 아무튼, 다녀오셨어요?”

상을 들고 있던 나를 보고서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는 릴리스에게 그렇게 대답하자, 그럼 됐고, 하고 말한 릴리스가 내게 휙하고 무언가를 던졌다.

“응?”

대뜸 던지길래 받고 보니까, 황금빛의 팔찌였다.

“이건 또 뭐예요?”

“신형 바디체커, 그건 시제품이긴 하지만. 아무튼, 네 바디체커 앞으로 그걸로 바꿔.”

“신형이요?”

“그래, 기존 것과 다르게... 아, 됐어. 이런 건 이따가 이야기하고, 배고픈데 밥은?”

“금방 준비되니 기다리거라.”

주방에서 호아란이 그렇게 말하자,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옆에 앉는 릴리스.

“아니, 뭔데 바로 앉아요. 상 차리는 거나 도와주던가.”

“시끄러워. 일하고 와서 힘들단 말이야.”

“아니.”

몸살에 근육통까지 나서 끙끙대는 나도 장도 보고 별거 다 했는데.

뭐, 됐다.

대놓고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릴리스에게 뭘 바라는 것도 사치였다.

얌전히 혼자서 상을 차리고 나니, 호아란이 음식들을 가지고 왔다.

장을 봐온 덕에 풍성해진 식탁에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릴리스가 말했다.

“으에... 버섯 전골? 고기는 없어?”

“사 왔어요. 샤브샤브처럼 먹으면 될걸요? 되죠? 호아란 마망.”

“안될 건 없겠지. 다만, 그러려면 본녀의 것은 따로 덜어둬야겠구나.”

“아, 고기는 싫어하세요?”

“싫은 것은 아니나, 딱히 내키지는 않는구나. 그럼, 전골을 덜을 냄비를 가져오마.”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몸을 일으키는 호아란.

호아란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이런 점에서도 릴리스랑 다르네.

진짜 어떻게 둘이 친구가 된 거지?

“맥주는? 없어?”

“그것도 사 왔어요.”

“새끼...”

그런 내 말에, 와락하고 어깨동무를 해오는 릴리스.

덕분에 온몸이 쑤셨다.

“아 쫌...”

“그래서? 내 팬티는 사왔지?”

“아.”

아까부터 계속 찝찝했던 게 이거 때문이었나.

그런 나를 게슴츠레 바라보는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설마, 안 사 온 건 아니겠지?”

“아니, 그게요.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까, 안사왔다는 거네?”

꾸욱, 하고 더욱 나를 강하게 끌어안아 오는 릴리스에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평소였다면, 몸에 닿고 있는 릴리스의 가슴의 감촉을 즐긴다든지 했었을 텐데, 몸이 말이 아니라서 그럴 겨를이 없었다.

뿌득, 뿌드득하고 내 몸의 관절에서 물리적으로 비명을 질러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 그딴 걸 즐길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장난은 그쯤하고, 밥이나 먹거라, 릴리스.”

다행히, 그런 릴리스를 전골을 덜어 먹을 작은 냄비를 들고서 온 호아란이 말려주긴 했지만.

“내일도 안 사 오기만 해봐라.”

그런 호아란의 말에 나를 풀어주며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를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내일은 근육통도 가라앉을 테니, 이럴 거면 그냥 안 사 오는 것도 이득이지 않을까?

“내일도 안 사오면 존나게 때려줄 거니까 그런 줄 알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게 릴리스가 그렇게 말했다.

“아.”

그런 릴리스의 말에 내일은 까먹지 말고 사오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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