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야 꿀벌 (2)
* * *
얼마나 지났을까, 19912호와 20134호의 신체측정인지 애무인지 모를 것을 받으면서 도착한 허니비 자치구는, 그녀들이 왕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높지는 않았지만, 성벽 비스무리한 것도 있고 그 중앙에는, 번쩍번쩍해 보이는 궁전까지 있었으니 누가 봐도 왕국이라고 부를만한 모습이었다.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강한 좆님.”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왕국의 안쪽에 있는 궁전 안을 6974호의 안내를 받으며 걷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자기를 3만 어쩌고라고 소개한, 메이드복 차림의 여자에게 건네받은 옷을 입고서.
정말이지 입기 꺼림칙한 노란색과 검은색 투 컬러의 정장 차림으로 호화스러운 궁전 안을 걷고 있자니 쪽팔림이 몰려왔다.
씨발.
디자인 한 번 진짜 개쩔어주는 정장이었다.
이걸 입으라고 건네줬을 땐, 쪽팔려서 입기도 싫었는데...
막상 거부하기에는, 왕국에 도착하자 존나게 많아진, 6974호를 꼭 빼닮은 사람들의 시선에 쫄려서 그냥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쪽팔리는 와중에, 어째 그런 나를 보는 시선들이 많아서 더더욱 쪽팔렸다.
“......”
아무튼, 덕분에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허니비 자치구.
이들이 왕국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온통 여자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궁전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갑옷 차림의 여자들이나 지금도 주변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메이드복 차림의 여자들도, 하나같이 전부 여자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지금 내 안내를 돕고 있는 6974호나 오는 동안 내 몸을 마구 더듬었던 19912호, 20134호와 똑닮은 외모인 것도 그렇고.
덕분에 살짝 오싹해졌다.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옷을 건네줬던 3만 번대 이름을 가지고 있던 여자.
그 여자의 이름이나, 여태껏 보아왔던 거나 이것저것 따져가며 생각해보건대, 최소 이러한 이들이 3만 명 이상은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아, 언니. 도착하셨군요. 그리고 그쪽이... 강한 좆님?”
“맞습니다. 여왕님을 뵈러 가는 길이니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8012호.”
“네, 실례했어요.”
간간이 6974호에 인사를 해오는 여자들도, 그녀를 언니언니하고 부르는 걸 봤을 때 이 모두가 자매라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 수 있었고.
그나저나 저 사람은 8000번대구나.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숫자들이 낮아져 가는 것은 기분 탓인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숫자가 낮으면 낮을수록 꽤 존중받는 기분이기도 하고.
궁전 깊숙이까지 들어왔는데도 6974호보다 낮은 숫자의 이름을 가진 여자는 아직 보지도 못한 걸 보면, 지금 내 안내를 해주고 있는 6974호가 꽤나 높은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이제 곧 볼 수 있다는 여왕님이라는 존재가 마냥 두렵게 여겨졌다.
정말로 내가 생각한 대로...
그 여왕님이란 존재가, 여태껏 봤던 여자들의, 눈앞의 6974호를 포함한 모두의 어머니라면?
그렇다면 최소한 3만 명 이상을 낳은 여자라는 소리가 됐다.
아무래도 나는 그 여왕님이란 존재에게 지명을 받은 모양이었고.
존나 눈앞이 깜깜해질 것 같았다.
일억에 홀랑 낚여서, 출산 경험 3만 이상을 찍은 꿀벌 여왕님인지 꿀카스인지 뭔지에게 끌려가게 됐다는 생각을 하니 진짜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이미 왕국 깊숙이까지 들어왔고.
도망친다고 한들, 최소 수천 명에게 쫓기다가 붙잡힐 신세가 될 것은 뻔해 보였으니까.
“...여기입니다. 강한 좆님.”
커다란 문 앞에서 멈춰 서서는 그렇게 말하는 6974호의 말에 꿀꺽 침을 삼켰다.
이 문 너머에, 최소 3만 명의 자식을 낳은 것으로 추정되는 꿀카스가 있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하고 있자니, 그런 나를 보며 6974호가 말했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여왕님은 무척이나 상냥하신 분이니 말입니다. 지나친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면 모쪼록 이해해주실 겁니다.”
아니, 딱히 그것 때문에 긴장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여왕님인지 뭔지를 뵙는다는 사실에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런 말을 해오는 6974호였지만 내가 두려운 것은 그런 것보다 여왕님 그 자체였다.
최소한 눈앞에 있는 6974호 정도만 돼도 씹가능인데.
키는 좀 작긴 했지만, 6974호도 미녀에다가 가슴도 컸고. 꿀벌이라 그런지 엉덩이도 컸으니까.
“그럼, 열겠습니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를 쳐다보는 내 시선에 그렇게 말한 6974호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이들이 여왕님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눈앞에 일직선으로 쭈욱 깔린 레드카펫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십 명의, 갑옷을 입고 있는 여자들이 만들어낸 길.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가장 끝자락에 있는 황금빛의 옥좌에 앉아있는 존재는, 그야말로 여왕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였다.
이제껏 보아왔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금발의 여자가 도도한 표정을 지은 채로 옥좌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어서 오너라, 이 몸의 왕국에 온 것을 환영하마.”
아...
여태껏 보아왔던 여자들과는 달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커다란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여왕은 내가 생각했던, 3만 명이나 낳은 여자라고는 생각되지도 않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꿀카스가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존나 꼴리게 생긴 누님이이라니.
“가능.”
저 정도면 씹가능했다.
“...가능?”
내가 내뱉은 말을 따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여왕을 보고서 아차 싶었다.
이게 아니었지 참.
예상했던 것과 달리, 꿀카스가 아닌 커다란 젖탱이를 아낌없이 내보여주는 누님이라서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와버렸지만, 이게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오는 동안 6974호에게 전해 들었던 인사를 떠올리고선, 무릎을 굽히며 땅에 닿게 하고는 말했다.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시는 분, 세계정부로부터 자치의 권리를 부여받으신, 명실공히 모든 허니비들의 어머니이자, 여왕이신 지고한 존재를 뵙습니다.”
이게 씨발, 대체 무슨 인사가 이렇게 긴 것인지 싶었지만.
광활한 영토 어쩌니 했지만 기껏해봐야 구 하나 정도인 크기이기도 하고. 그야 그것도 크긴 한데...
아무튼, 하라는 대로 하고서 올려다보자,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가슴을 피는 여왕이 보였다.
쭈욱, 하고 앞으로 내미는 가슴.
아리아드만은 못해도 어지간한 미노타우로스만한 젖가슴이 덕분에 더욱 더 잘 보이게 되니 이런 거라면 인사 한 두 번 정도는 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이 몸이야말로 이 왕국의 지배자이자, 모든 허니비들의 어미인 자이니라. 이 몸의 왕국에 초청받아 온 그대를 이 몸이 환영하마. 그리고, 우선 이곳까지 온 그대의 노고를 달래주는 것이 여왕인 이 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겠지.”
짝, 하고 손뼉을 두드리는 여왕에 그녀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여자들이 내 앞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이건?”
영롱한 황금빛의 액체가 들어있는 병을 받아들고서 고개를 갸우뚱하자니, 그런 내게 여왕이 말했다.
“이 몸의 하사품이니 감사히 받거라.”
음, 과시욕이 많으신 분이구나.
아무쪼록 좀 더 과시해주셨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현물보다는 돈이 더 좋지만.
“뭘 이런 걸 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존나 비싸 보이는 거라서 감사히 품에 챙기려고 하는데, 그런 내 손을 6974호가 붙잡았다.
“여왕님의 하사품은, 그 자리에서 마시는 것이 예의입니다.”
아.
가져가서 뭔지 알아보고 비싸거나 그러면 팔려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이게 뭔데요?”
마시라는 모양이니 먹는 건가 본데.
“여왕님이 직접 짜내신 로열젤리라고 합니다. 본래는 여왕님과 그 후계자이신 분에게만 주어지는 것. 이번에는 강한 좆님께 특별히 내어주신 것이니 감사히 여기십시오.”
로열젤리...?
그러니까, 꿀이라고?
아.
그제야 웨어허니비란 종족이 어디서 들었던 건지 기억이 났다.
얼마 전에 호아란의 심부름으로 장을 보았을 때 샀던 꿀.
옥봉의 꿀을 만드는 것이, 웨어허니비였었지.
최근에 어디서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봤던 거였나.
옥봉의 꿀이라든지 하는 것만 유명하고 종족 자체는 모습을 드러내거나 하지 않는 편이라 잘 알려지지 않은 종족이었던 탓에 떠올리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로열젤리라고 하면, 그 옥봉의 꿀의 로열젤리인걸까?
그냥 꿀인 옥봉의 꿀도 기존의 꿀이랑 비교하면 존나 비싼 편인데, 이건 얼마나 할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최소한 꿀의 열 배는 할 텐데...
이걸 지금 마시라고?
그냥 갖다 팔면 안 되나... 아까운데...
“......”
갈등하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6974호는 둘째치고.
주변에 있는 기사 차림의 여자들이나, 내게 로열젤리를 건네준 메이드복 차림의 여자들이나, 그 모두를 제외하더라도 눈앞에서 다리를 꼰 채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왕의 시선에 어떻게 몰래 숨기고 챙겨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병을 따서 안에 든 로열젤리인지 뭔지를 마셨다.
“...별로 달지는 않네요?”
아니, 달기는 한데.
꿀이라는 느낌보다는, 뭔가 푸딩 같은 걸 먹은 것처럼 후루룩, 목 너머로 넘어갔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편이었다.
근데 아리아드의 수액같은 달달한 맛이 좀 부족해서 아쉽다는 느낌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갑자기 몸에 열기가 후욱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거기까지라면 괜찮은데, 눈앞이 어질어질해지기까지 했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내가 방금 먹은 로열젤리인지 뭐시기인지가 독이였던걸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개썅...”
먹으라고 줬다고 넙죽 먹는 게 아니었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시적인 현상이니, 금방 편해지실 겁니다.”
내게 그렇게 말하는 6974호의 말에 울컥했다.
금방 뒤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근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6974호의 말대로, 얼마 안 가서 몸에서 나던 열기도, 어지러움도 가셨으니까.
대신에...
“...애미, 씨발. 이건 뭔데?”
스르륵, 하고 내 머리 위에서 내려온 두 개의 더듬이에 존나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손을 더듬어서 만져보고서, 이게 내 이마에서 돋아난 것을 알게 되고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게 6974호가 말했다.
“멋진 더듬이십니다.”
이 씹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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