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95화 (95/523)

〈 95화 〉 외전) 유스티티아

* * *

“유스티티아!”

콰앙, 수십 겹으로 쳐진 결계를 주먹으로 휘둘러 깨부순 릴리스가 들이닥치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푸른 머리카락의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후아암. 또... 무슨 일인데...? 나... 조금 전에 잠들어서... 아직... 졸린데...?”

입은 건지 그냥 대충 걸친 것인지도 모를, 잔뜩 흐트러진 옷차림의 여인. 속옷차림이나 다름없는 얇디 얇은 잠옷 덕분에 내비친 여인의 몸매는, 많은 남성들의 음욕을 자극할만큼 매혹적이었지만 그딴건 서큐버스 퀸인 릴리스에게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딴 것보다 쩌억, 하고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릴리스는 조금 전에 봤던 문양을 허공에 그렸다.

“이거, 뭔지 알겠어?”

“흐으으음...?”

흐느적이며, 만사가 귀찮아 보이던 여자가 그렇게 허공에 수놓아진 각인을 보고서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괴짜.

하나같이, 자기를 제외하면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괴짜들만 모여있는 스물둘의 영웅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괴짜인 것은, 눈앞에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여자일 것이었다.

“헤에... 흐응... 뭐야? 꽤 재밌는 걸 가져왔네... 릴리스...”

조금 전까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했던 주제에, 관심이 가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만 해도 그렇고.

“이거, 어디서 찾은 거야...? 아니지... 아니야...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런 것보다는 구조부터 확인해볼까나...?”

스르륵, 허공에 자신이 그려둔, 릴뭐시기하는 이름의 웨어허니비의 엉덩이에 새겨져 있던 각인이 풀어헤쳐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모양만을 따라 했을 뿐인, 단순한 그림에 불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호오, 흐응, 그렇구나... 이거... 좀... 재밌는걸...”

분해되어가는 각인들을 푸른 빛이 감도는 눈으로 좇는 유스티티아는, 단순히 그림에 불과한 그것으로부터 정답을 알아낼 정도의 지성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스티티아,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자.

스물둘의 영웅의 일각이기도한 여자의 종족은, 수많은 세상이 뒤섞이고 합쳐진이러한 세상에서도 가장 희귀하고 희소한...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재앙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강대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야...

“아아... 하지만, 이거... 다른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이것저것 전부 섞여 있는걸...? 하지만마법은 아니야... 주술도 아니고... 종족 특성... 아니, 뿌리는 맞겠지만, 그걸 섞어서 강화한 느낌인걸... 이런 게... 이런 게 가능한 건가...? 타고난 종족의 특성을... 섞고...바꿔버렸다고...? 신기한걸... 아주... 아주 재밌어... 정말로... 재미있어... 이거 뭐야...? 엄청 재밌는데...?”

대체 뭘 알아낸 것인지 다소 흥분한 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유스티티아의 등 뒤로 스르륵, 스르륵하고 거대한 꼬리가 흔들거렸다.

파충류를 닮기도 한, 하지만 그보다 더욱 강대하고, 강인한 꼬리가 마치 간식을 받은 강아지처럼 마구 흔들거렸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유스티티아가 그 강대하고, 위대한 종족으로 알려진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아... 하아... 내가... 내가 모르는 거야... 이 내가 모르는 게 아직도 있었어...”

저 미친년을 보고서, 대체 누가 숨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종족인 드래곤이라고 생각할까.

“하악... 하아악...”

완전히 해체되어버린, 각인이었던 것을... 더듬으면서 숨을 헐떡이는 저년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믿을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정체를 알고 있는 나도 믿기지 않는데 믿을 사람이 있을 턱이 없지.’

겉보기에는 그냥 젖탱이가 존나 큰 머리 파란 년에 불과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릴리스에게, 벌떡 몸을 일으킨 유스티티아가 와락 안기며 말했다.

“릴리스으... 이거 어디서 찾은 거야...? 어디...? 실물로 보고 싶어... 이런 거 말고... 진짜... 진짜를 보고 싶어... 어디야...? 어디야...? 어디야...?”

“좀 떨어져 이 미친년아!”

반쯤 진심으로 유스티티아의 머리를 내리찍자, 그제야 좀 진정이 됐는지ㅡ 아니, 여전히 진정이 되지는 않은 것인지 숨을 할딱이며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너무해... 이런 걸... 이런 걸 알려줘 놓고... 이런 건... 진짜 너무하다구... 이런걸 알아버린 이상... 전부 파헤치기 전까진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는데... 너무해... 릴리스...”

“개소리하지 말고. 이게 뭔지나 말해봐.”

마법의 종주라고도 불리는 드래곤이다.

더군다나 이래봬도 유스티티아는 다른 드래곤들에게도 숭앙받을 정도로 강력하고, 능력이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알기로는 나이가 얼마 되지도 않은 드래곤이라고 알고 있는데, 수천년을 살은 것으로 알려진 고룡들도 눈앞의 유스티티아에겐 쩔쩔 맬정도였다.

하지만 이해는 했다.

유스티티아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으니까.

적어도 이 세상에서도 몇 안 되는, 온갖 준비를 다 마친 호아란과 더불어서 진심을 다한 자신과도 겨룰 수준의 존재이기도 했고.

실제로, 자기도 뭔지 알지 못했던 각인의 정체를 얼마 보지도 않고서 대충 정체를 파악한 모양인 유스티티아의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알려주면...? 알려주면 이걸 어디서 발견한 것인지 말해줄 거야...?”

“......”

그렇게 묻는 유스티티아의 성격은, 능력을인정하고 자시고는 둘째치고 꺼림칙하기 그지없었지만.

세로로 갈라진 푸른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스티티아에 릴리스는 입을 다물었다.

호기심의 괴물.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다름 아닌 눈앞의 유스티티아니까.

알려준다면...

그렇다면, 이 미친년은 분명히 그 꿀벌 년한테 찾아갈 것이 분명하고, 어떻게든 각인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끝내 한조, 그 바보 녀석에게까지 이 미친년의 마수가 닿을 것이 분명했다.

이 미친년이 한조를 알게 된다면 어찌 될지는 알수도 없었다.

능력의 기원을 알아야한다며 한조의 자지를 해부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안되지.

절대로 안되는 일이었다.

그게 누구건데.

하지만...

“...생각은 해볼게. 일단 들어보고서.”

그래도, 아주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이년이 사실대로 알려줄 턱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자, 유스티티아가 빤히 이쪽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흐응, 하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아... 이것도, 그때 그거랑 관련된 일이구나...? 나한테 가져갔던 거. 그거랑... 맞지...?”

“...닥쳐. 알려고 하지도 말고. 나랑 척을 지기 싫다면.”

“무서워라... 그리고 귀찮기도 하고... 싸우는 건 전혀 재미없는걸... 뭐, 좋아... 제법 심심풀이는 됐으니까... 따분하거든, 이것저것 심심풀이로 만들기는 해도,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진 않았으니까... 이미 알아버린걸, 조합하고... 그렇게 만드는 것따윈 하나도 재미없는걸... 그래도, 이번 건 제법 좋았어... 그러니까, 특별히 알려줄게...”

그렇게 말하고선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한 영혼을 일방적으로, 한쪽에게 속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예속 각인의 일종이야... 매개는... 실물로 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거라면... 보통은 생명력이 가득한 것을 매개로 하는 것이 보통이겠지... 예를 들어서, 피나... 정액 같은 거라든가...? 그러고 보니... 저번에 가져간 그거... 양산해서디스펜서들에게 제공하는 모양이었지... 아마...? 네가, 관리하고 있는... 걔네들...”

“내가닥치라고 했지.”

“아아, 네가 그러니까... 더 흥미가 생기는데... 대체 뭐길래 그렇게 꼭꼭 숨기는 걸까나... 릴리스...?”

실수했다.

너무 흥분해서, 오히려 저 미친년에게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릴리스는 속으로 한탄했다.

멍청한 년.

스스로에게 그렇게 욕지거리를 하고선,

“경고했어, 유스티티아. 알려고 하지 마. 그러지 않으면, 네가 아끼는 여기가 불타 없어져 버릴 테니까.”

봉인을 풀며, 다시 한번 유스티티아에게 경고했다.

“이야... 더 강해졌네... 릴리스... 그런데...”

꾸드드득, 거대하고 거대한 드래곤의 앞발이 쾅, 하고 그런 릴리스 앞에 떨어졌다.

“싸우는 건 재미없어서 싫지만... 나는 내가 싸움을 못한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투둑, 하고 떨어져나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서,릴리스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올랐다.

“해보자 이거지?”

“글쎄... 개인적으론 그냥 네가 내 작은 호기심만 채워주면 만사가 편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말하는 유스티티아.

그리고, 그 말은 명명백백한 도발이었다.

“그래, 해보자는 거네? 유스티티아.”

“네가 정 그러고 싶다면야, 귀찮지만... 어울려줄게...”

귀찮은 건 이쪽이거든, 그렇게 생각하며 릴리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아... 가지마... 제발... 힌트, 힌트만이라도 주라... 으응...? 릴리스...”

“시끄러워, 망할 년 같으니라고...”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유스티티아를 발로 차서 떼어내고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 릴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이게 뭔 고생이야...”

한바탕 하느라 마력을 홀딱 다 써버려서, 공간이동을 통해 돌아가기도 힘들었다.

그야 물론, 마력이야 다시 빨아들이면 그만이기도 했지만.

그래서야 이 주변 일대가 비쩍 말라버릴 테니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날개를 휘둘러서 그 먼거리를 날아가야한다는 소리였다.

이렇게 고생한 이유가 다 그 바보 녀석 때문이란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진짜, 개변태새끼.”

어찌 됐든 간에, 유스티티아를 통해 알아낸 것들.

전부는 모르겠지만, 그 꿀벌년에게 새겨진 것이강력한 예속 각인... 그것도 영혼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란 걸 알았으니까.

그 매개라는 것이 아무래도 정액인 것 같았지만.

기프트는, 소유자의 성질을 닮는 만큼...

그 꿀벌년에게 예속 각인을 새겨버린 것이 한조의 기프트 탓이라면... 그건 진짜 한조 그 새끼가 개변태새끼란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액으로 여자를 노예로, 아니 그보다 더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니.

단순히 호감을 사는 정도에 불과했던 한조의 기프트가 그정도까지의 힘을 발휘하게 될만큼 성장한 걸까?

하지만, 그전에...

“여태까진 안 그러더니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또 뭔데?”

한조 그 녀석이 떡치고, 싸질러댄 정액만해도 대충 드럼통으로 몇 통은 나올 것이 분명한데 그 꿀벌년에게만 예속 각인이 새겨진 이유는 여전히 몰랐다.

어떤 조건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 조건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유를 모르는 이상, 또 그 꿀벌년 같은 사례가 몇 번이나 다시 나올 테니까.

이상한 곳에서 감성이 넘치는 바보니까, 그렇게 자기에게 속하게 되어버린 여자들을 내버려둘리도 없으니...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여자들만 한 트럭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억제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하... 진짜...”

내가 어쩌다가 그딴 자식을 아들로 삼아가지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릴리스는 집으로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꽤나 시간이 지나서, 진작 잠이나 퍼질러자고 있을, 매번 사고나 쳐대는 바보 녀석이 있는 곳으로.

“아파라...”

매정하게,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훌쩍 떠나버린 릴리스를 보며 유스티티아는 커다란 혹이 나버린 머리를 쓰다듬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쩔 수 없네... 귀찮지만... 일일이 찾아봐야겠는걸...”

그리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딱, 하고 그런 유스티티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릴리스와의 다툼으로 무너졌던 레어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호아란이 펼쳤던 역전의 술.

그것을 보고나서, 레어에 새겨뒀던 결계로 인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레어와, 다시금 돌아온 전용 이불을 보고는 그런 이불로꾸물꾸물, 기어들어간 유스티티아가 중얼거렸다.

"우선... 릴리스가 관리하는 지부부터 하는 게 맞겠지...? 그치만... 졸리니까... 다음주부터 하자..."

오랜만에 너무 움직였어... 그렇게 중얼거리곤,

하품을 하며 유스티티아가 꼬옥, 이불을 손에 꼭 쥐고선 눈을 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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