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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98화 (98/523)

〈 98화 〉 동물원 나들이 (1)

* * *

꼬박 하루를 침대 위에서 호아란의 간호를 받으며 요양한 뒤에야 겨우 부활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출근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게, 릴리스가 당분간은 나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갑작스레 몇 단계나 오른 내 좆태창의 영향을 받아서, 기프트가 언제 또 폭주하거나 할지도 모르니까 잠시 지켜보자는 취지였다.

그거 말고도 뭔가 더 숨기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냥 릴리스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릴리스에게 비밀로 하기는 했지만, 매일 아침 내 기프트가 폭주해서 호아란의 도움을 받고 있기도 했고.

확실히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제일로 중요한 거지만.

자지야 어떻게 부활하긴 했는데, 한동안 그럴 생각이 말끔히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하나...

이른바, 현자타임 상태에 빠진 덕분이었다.

그야 세우라면 세울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일하러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할 일이 없네...”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리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었다.

‘맘마통’이나 ‘야넣자’에서 유동으로 뻘글이나 써재끼면서 노는 것도 질리고, 릴리스에게 빌린 만화책도 다 봐서 진짜 할 게 없었다.

“아직 덜 봤어요? 어머니.”

나랑 마찬가지로, 당분간 쉬기로 결정한 릴리스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아작, 하고 과자를 까먹으면서 빌려온 만화책을 읽던 릴리스가 흘끔 나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정 기다리기 힘들면 다음 권 먼저 읽던가.”

스륵, 그렇게 말하며 꼬리로 페이지를 넘기는 릴리스.

“아니.”

한 권 넘겨서 보면 그걸 뭔 재미로 보라는 건데.

게다가 막 하이라이트인 부분에서 뚝 끊긴 차여서 다음권이 아니면 안 됐다.

“좀 빨리 봐요.”

“아, 씨... 쫌, 기달려 새끼야.”

그런 릴리스에게 빨리 보라고 재촉하자, 꾸욱꾸욱하고 그런 내 머리를 발바닥으로 밀어대는 릴리스.

존나 너무한 어머니였다.

“둘 다 애도 아니고, 겨우 그런 거로 다투지 말거라.”

그런 나랑 릴리스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하는 호아란.

“호아아...”

심지어 옆에서 호아도 그런 호아란과 마찬가지로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릴리스에게서 떨어져서 다시 멍때리고 있자니, 호아란이 그런 내게 말했다.

“정 할 것이 없다면, 본녀와 수련이라도 하겠느냐? 요새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하지 않았느냐?”

“수련이요...?”

호아란의 말에 고민했다.

호아란이 말한 대로 요새 주술 수련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기는 했다.

근데...

할 게 없어서 빈둥거리는 것도 질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술 수련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 게 없어도, 죽어도 공부나 생산성이 있는 다른 무언가는 하고 싶지 않은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호아란에게 그렇게 말하면 잔뜩 실망하겠지만.

일단 호아란의 자식 겸 제자기도 하고.

“혹시 싫은 게냐...?”

대답이 없는 나를 보고서, 그렇게 말하는 호아란에 이대로 가면 그대로 주술 수련이랑 명목으로 여우 구슬이나 들고 있게 될 것 같아서 급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그때, 그냥 배경음악 대신으로 틀어두고 있던 텔레비전에서 때마침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화제가 되는 곳 이곳 한반도 지구에 생겼다는데, 혹시 시청자 여런분들도 아시나요? 수많은 세상에서 넘어온 진귀한 동물들로만 이루어진 동물원이 생겼다네요! 저희랑 함께 보시죠! 현장에 나와있는 뮤나 앵커?

­뮤나다냥, 지금 여기는... 잠깐, 저 말 왜 여기로 달려오냥? 잠... 꺄아아악?!

­뮤나 앵커? 뮤나 앵커?!

갑자기 화면 너머로 흰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싶더니 비명이 들려오긴 했지만.

덕분에 나나 호아란, 과자를 집어 먹으며 만화책이나 읽고 있던 릴리스도 텔레비전을 쳐다봤다.

우당탕탕, 카메라가 흔들리는 모양인지 이리저리 어지러운 화면이 보였다.

이윽고 털썩, 하고 비명 끝에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으드득하는 이 가는 소리와 조금 전에 비명을 질렀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좆같은 말들이 다 뒤지고 싶ㅡ

­아무래도 연결이 불량한 듯싶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죠. 다음은...

순식간에 다음 화제로 넘어가는 진행자의 모습은, 실로 유능해 보였다.

심지어 보기 드문 인간 종족이고.

이따위가 된 세상이다.

저만한 순발력이 없으면 인간이 저런 자리에 있기 힘들다는 거겠지.

나 같으면 갑자기 저런 일이 터지면 얼타고 있었을 테니까.

아무튼, 마침 호아란과의 주술 수업을 회피할 좋은 명분을 발견한 내가 말했다.

“주술 수련은 나중에 하고, 저기나 한 번 가보실래요?”

“...너 지금 저거 보고도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냐?”

그런 내 말을 들은 릴리스가, 나를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릴리스의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저런 사고야 언제나 터지잖아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요새 큰일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자잘한 사건사고는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실거에요 말거에요?”

재차 그렇게 묻자, 만화책을 덮으며 릴리스가 말했다.

“...뭐, 나는 상관은 없는데. 호아란 너는?”

“동물원이라... 나쁘지는 않은 생각 같구나.”

안 그래 보였지만 릴리스도 심심했던 건 마찬가지였는지 냉큼 떡밥을 물은 데다가 호아란도 혹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서 내가 말했다.

“그럼 가죠. 동물원.”

즉석에서 결정한 일이지만, 살다 보면 원래 이런 경우도 있는 거였다.

뭐든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는 법이고, 반대로 말하자면 계획 없이 진행되는 일도 있는 거니까.

대부분 무지성 무계획 나들이 같은 건 실패하고는 하는 법이긴 한데, 어차피 시간이나 때울 목적이니 아무래도 좋았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으냐는 호아란에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그냥 아무거나 걸치고서 가면 그만이긴 했지만, 둘은 그럴 수 없을 테니까.

“그럼 먼저 나가 있을까요?”

“그러는 게 좋겠구나.”

그렇다니...

나 먼저 후딱 준비를 끝내고서, 먼저 나가서 오랜만에 타게 될 씽씽이의 시동이나 걸기로 했다.

“오랜만이다 씽씽아.”

릴리스에게 받은 날에 한 번 달리고는 그 뒤로는 타지도 않고 주차해두기만 했던 내 애차 씽씽이를 쓰다듬었다.

“아.”

덕분에 손에 먼지가 잔뜩 묻어서 시꺼메졌다.

하긴, 내버려 둔 지 몇 주는 됐으니까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요즘 비가 온 적도 없었고.

언제 날 잡고서 세차라도 해둬야겠다고 생각하며 릴리스랑 호아란을 기다리고 있자니, 저만치서 동물원 갈 준비를 마친 릴리스랑 호아란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다만...

금발인 릴리스와 그 반대로 흑발인 호아란의 모습이였다.

릴리스의 뿔이나 꼬리, 호아란의 여우 귀나 여우 꼬리들도 온데간데없어졌고.

그도 그렇게 스물둘의 영웅인 둘이 평상시의 모습으로 사람들이 득실득실할 동물원 같은 데 갔다가는 대소동이 벌어질 테니까 별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머리색을 서로 좀 바꾸고 뿔이나 귀, 꼬리 정도만 숨겼을 뿐인데 인상이 확 달라져 버린 둘이었다.

“...뭘 그렇게 봐?”

“어떠하느냐, 한조야?”

그런 내 시선에, 그렇게 말하는 둘을 보고서 내가 말했다.

“두 분 다 잘 어울리네요.”

오랜만에 보는 릴리스의 외출복.

평소랑 다른 소녀틱한 외출복도 그렇고, 이번에 처음 보는 호아란의 외출복.

발목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치마의 나들이복 같은 느낌의 옷도 그렇고.

둘 다 굉장히 잘 어울렸다.

본판이 되다보니 뭘 입든 어울리기야 했껬지만.

“흥, 당연한 소릴.”

“어울린다니 다행이구나.”

둘도 내 칭찬에 만족한 듯 하니 냉큼 동물원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호아란이 들고 있는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근데 그건 뭐예요?”

“나들이를 가는 것이지 않느냐? 간단한 도시락을 좀 만들어 왔느니라.”

아니...

기다린지 고작 몇분도 안됐는데 그새 도시락도 쌌다고?

“...갑자기 왜 날 쳐다봐?”

아니.

호아란은 그 잠깐 사이에 도시락도 쌌는데 릴리스는 그동안 뭐했나 싶었지.

내 시선에서 그런 낌새가 느껴졌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릴리스를 보고서, 냉큼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그럼 타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둘이 동시에 조수석으로 향했다가, 서로를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내가 여기 탈 건데? 넌 뒤에나 타지? 도시락도 들고 있잖아? 앞에 타면 불편하지 않겠어?”

“도시락은 본녀가 안고 있으면 되는 것이니라. 릴리스, 너야말로 뒤에 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넓으니 누워있어도 좋을 테니.”

“내가 무슨 허구한 날 누워있는 사람인 줄 알아?”

“그럼 아니였느냐?”

아.

알만한 사람들은 오히려 타기 꺼려하는 조수석 가지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돌아올 때도 있잖아요. 그냥 두 분이 번갈아 가면서 타세요.”

“......”

“......”

그런 내 말에 나를 쳐다보는 릴리스랑 호아란.

그것도 잠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둘이 말했다.

“...어쩔 수 없네.”

“어쩔 수 없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서로 다시 조수석을 열려고 하며 말했다.

“그럼 갈 때는 내가...”

“그럼 갈 때는 본녀가...”

째릿, 하고 둘이 서로를 노려보는 릴리스와 호아란.

...대체 언제 출발할 수 있는 걸까.

오늘 안에는 출발할 수 있는 거 맞겠지...?

우여곡절 끝에, 내 중재로 인해 가는동안에는 호아란이, 돌아오는 동안에는 릴리스로 결정됐다.

그도 그럴게, 릴리스야 저번 일로 아리아드를 만나러 식물원에 가는 동안 조수석에 타지 않았냐는 말로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었다.

뒤에서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어대는 릴리스가 거울에 비쳐보여서 상당히 곤란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동물원.

오늘 막 텔레비전에서 나온 탓인지 꽤나 사람들이 잔뜩 보이는 동물원을 올려다봤다.

“존나 크네요.”

도중에 알아보니까, 이 주변 일대를 통째로 동물원으로 탈바꿈한거라더니 진짜 더럽게 크긴 했다.

“드럽게 비싸네요.”

그래서 그런지 입장비도 존나게 비쌌다.

성인 한사람 요금으로만 거진 10만원씩을 받아대는 충격적인 바가지 요금에 투덜거리고 있자니,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어차피 잔뜩 벌면서 뭘 그렇게 아까워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잖아요.”

돈 많이 번다고 낭비하는 버릇을 들이면 언젠가 후회할 일이 생기는 법이었다.

그래도 뭐...

“한조야, 저쪽에 날개가 여섯 달린 새가 있다는구나. 가보지 않겠느냐?”

입구에서 집어온 팜플렛을 보더니 그렇게 말하는 호아란.

꼬리들을 숨겼는데도, 휙휙 흔들리는 것이 보이는 착각이 일만큼 신나보이는 호아란을 보니 상관없지 않나 싶었다.

“저쪽에는 도플갱어라는 것도 있다는데, 어쩔래?”

“그거 동물이였어요?”

“슬라임의 아종이라는데? 이성이나 지성은 없어서 몬스터 취급한다는 모양이야.”

이 동물원 몬스터도 있구나.

아무튼, 릴리스도 꽤나 흥미를 느끼고 있는 모양이고.

동물원에 오길 잘한 것 같았다.

“그래서? 뭐부터 볼건데? 날개 여섯 개 달린 새 같이 별로 재미도 없어 보이는 거 말고, 역시 도플갱어지?”

“뭐...? 날개가 여섯 개가 달려있다는데 왜 재미가 없단 소리더냐?”

“어디의 누구는 꼬리만 아홉이나 달려있으면서 날개 여섯 새가 뭔 대수라고...”

그런 릴리스의 중얼거림에 호아란이 릴리스를 보고 말했다.

"지금 본녀를 보고 말한 것이더냐?"

"글쎄...?"

“...아니, 좀.”

별것도 아닌 걸로 다투지만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냥, 여기 나와 있는 거 차례대로 보면 되잖아요."

선택 장애를 위해서인지 이런저런 동물들이 모여 있는 구역마다 번호가 있었으니까 그냥 그 순서대로 보면 그만이었다.

마침 입구에서 가까운 순서대로기도하고.

그런 내 말에 릴리스와 호아란이 서로 쳐다보더니,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내 양 팔을 하나씩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럼 가자."

"어서 가자꾸나."

어디로?

천국으로?

팔이 뜯겨나갈 것 같으니까 그만둬줬으면 좋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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