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동물원 나들이 (2)
* * *
진귀한 동물들만 모아놨다더니 확실히 볼거리는 많았다.
이런저런 세상이 합쳐져버린 지금.
그렇게 합쳐져 버린 세상들은, 저마다의 세상과 아주 약간씩 다를 뿐, 이른바 페러렐이니 뭐시기하는 세상 비스무리한 느낌인 세상이 있는 반면 아예 모든 것이 전부 다른 세상도 있는 법이니까.
예를 들어서, 이종족의 하나로 분류되는 리저드맨.
그들 스스로는 드라고니아라고 불리는 이들은 연구 결과,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오래전에 진작 멸종해버린 공룡들이 진화한 것이라고 알려지기도 했고.
아무튼, 여러 세상들이 섞이다 보니, 그런 세상도 있기 마련이었다.
사람이라고 부를만한 존재들이 전혀 없었던 세상.
동물의, 야수들의 세상 같은 것도.
그런 세상의 동물들도 죄다 모아버리고서, 그들이 본래 살고 있던 생태계에 맞춰 제각각의 구역별로 조정한 인공 생태계를 갖춘 동물원은, 그야말로 수많은 세상을 한 곳에 모아놓은 집대성을 보는 듯 싶었다.
이런 데 볼거리가 없을 리가 없었다.
굳이 동물을 보지 않아도, 동물원 자체가 관광거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덕분에, 원수라고 해야할지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다고 해야할지 싶은 동물도 볼 수 있었다.
“왜 그래? 안 만져봐? 귀여운데.”
“전 쥐새끼가 싫어요.”
특히 전기를 뿜어내는 쥐새끼는.
웨어래트, 서인족인 벨라는 어디까지나 쥐의 특징이 있을 뿐인 사람이니까 제외하더라도. 그냥 쥐는 존나게 싫었다.
“그러하느냐? 이렇게 귀여운데... 아쉽구나.”
파직, 파지직하고.
아직 새끼라서 그런지 가벼운 정전기를 일으키는 수준이 전기만 겨우 내는 쥐새끼를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랑 호아란들이었지만, 죽어도 저 새끼들을 쓰다듬을 생각은 없었다.
날 2년간 날백수로 만들어버린 원흉 중의 하나인 녀석들이 뭐가 좋다고...
“...좀 귀엽게 생기긴 했네요, 그래도.”
포동포동하게 생긴게 귀엽긴 했지만, 그래도 만지고 싶진 않았다.
저 둘이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만져대고는 있었지만, 막상 만져도 좋다고 해서 만진 다른 몇몇이 따가운 전기에 호되게 당하는 걸 보기도 했고.
발기중인게 아닌 이상, 여느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신체능력을 지닌 내가 만지면 그꼴이 날게 분명했다.
“아무튼, 슬슬 다음으로 가죠.”
다음에는 뭐가 있나 싶어서 봤더니,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다음은 뭐 있어?”
“귀여운 것이더냐?”
“아뇨, 사람에 따라서 귀엽다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대부분은 좆같게 여기던 동물의 이름이 보였다.
내 세상에서는 흔히 길거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세상이 뒤바뀐 탓에 그런지 적응하는데 호되게 실패해버린 모양이라,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참 뭐시기하는 이름이.
“이건 거르죠.”
“왜?”
“무슨 이유라도 있더냐?”
“냄새가 좀 심하거든요.”
그런 내 말에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둘을 보고서, 참 뭐시기는 거르고서 다음에나 있는거나 찾아봤더니, 일각수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사진이 첨부되어있었는데.
멋드러진 뿔을 달고 있는 새하얀 말이 보였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뿔들이 달려있는 동물들도 잔뜩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일각수라는 이름대로 뿔이 하나씩 달려있는 동물들을 모아둔 곳인 듯 싶었다.
“헤에, 뿔 달린 말이라니 신기하네.”
내 옆에서, 내가 들고 있던 팜플렛을 보더니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그런 릴리스에게 내가 말했다.
“어머니도 뿔 있잖아요.”
“시끄러워.”
옆구리를 꼬집혔다.
존나게 아파서 몸을 비트는 나를 보고서, 흥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릴리스.
그런 나를 보고 괜찮냐며 다가온 호아란이, 역시 내 팜플렛을 보더니 말했다.
“예쁜 말이구나.”
확실히 예쁘긴 했다.
새하얀 뿔을 달고 있는 새하얀 말이라니, 존나게 멋지기도 하고.
“그럼, 이거나 보러 가보죠.”
중간에 참 뭐시기하는 생물들이 갇혀있는 구역을 그냥 지나쳐서 곧바로 일각수들이 있다는 곳으로 향하자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히히힝ㅡ”
사진에서 봤던 일각수, 유니콘이라는 이름의 새하얀 말들이 잔뜩 보였으니까.
실물로 보니까 덩치도 일반적인 말보다도 크고, 뿔도 훨씬 길어서 존나게 멋진 말이었다.
꼭 신화 속에서나 볼법한, 영웅들이 타고 다니는 그런 말처럼만 보였다.
생김새가 그래서 그런지 인기도 많아 보였고.
더군다나, 잘 보니까 몇몇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내밀어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허락하는 일각수도 보였다.
그런 일각수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꺅꺅거리는 어린아이나, 여자, 혹은 남자들을 보아하니까 성격도 엄청나게 얌전한 동물인 것 같았다.
“어서 가자꾸나!”
“흐응, 보기보다 얌전한 생물인가보네.”
그런 사람들을 보더니,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와 호아란.
만질 수 있는 동물들이 있으면, 냅다 만지고 봤던 둘이었다.
둘 다 귀여운 동물 같은 걸 마구 쓰다듬거나 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대놓고 일각수를 빨리 만져보고 싶다는 얼굴인 호아란이나 아닌 척해도 어깨가 들썩이고 있는 릴리스를 보고서 냉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다가갔을까.
몇몇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애교를 부리던 일각수들을 제외하고선, 얌전히 풀이나 뜯고 있던 일각수들도, 전부 고개를 들어올리더니 이쪽을 보는 것이 보였다.
뭐지.
갑자기 이게 뭔가 싶었는데, 일제히 그 녀석들이 앞다투어 다가오더니 릴리스와 호아란에게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 보였다.
“히히히힝...!”
“히히힝!”
수십 마리나 되는 일각수들이 그러다 보니까, 당연하게도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뭐, 뭔데?”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을 무척이나 잘 따르는 모양이구나.”
살짝 당황했던 둘이었지만, 어차피 철창 너머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는 양 애교를 부리듯 머리를 들이밀거나 하는 일각수들을 보고서 이내 손을 뻗어 그런 일각수들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헤에... 털이 부드럽네.”
“뿔도 참 예쁘구나.”
갈기나 뿔 따위를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릴리스랑 호아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둘에게 쓰다듬어진 일각수들이 좋아 죽으려고 하는 표정들을 짓는 것이 보였다.
뭐지, 진짜.
“한조야, 너도 와서 쓰다듬어 보거라. 아주 얌전한 아이들이구나.”
“저도요?”
“그래, 어서 만져 보거라.”
호아란이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한번 만져볼까 싶어서 다가갔을 때였다.
“푸륵...!”
“푸헤헹!”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나는 일각수들.
“어...”
갑자기 뭔 오물이라도 본냥 나를 보더니 화들짝 물러나는 일각수들이 보였다.
유일하게, 릴리스가 쓰다듬고 있던, 유난히 덩치가 큰 일각수를 제외하면 거진 대부분 물러나버린 일각수들을 보고서 입맛을 다셨다.
“...아직 남아 있지 않으냐? 저 아이라도 만져 보거라.”
나에게 일각수를 한번 만져보라고 제안했다가, 갑작스러운 일각수들의 도망에 무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호아란.
괜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호아란을 보고서 내가 아직 남아있는 일각수를 쓰다듬고 있는 릴리스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도 그거 좀 만져볼게요.”
“응? 뭐, 그래.”
내 말에 릴리스가 순순히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도 다른 일각수들과 달리 도망치거나 하지 않는 일각수를 보고서, 이 녀석이라면 만져볼 수 있겠다 싶었을 때였다.
“푸르르르륵...!”
갑자기 왜 가래 끓는 소리를 내지.
어디 아프기라도 하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푸훽!”
내 얼굴에 냅다 가래침을 뱉는 일각수.
철퍽, 하고.
철창 너머로 가래침을 정확히 내 얼굴을 명중시키까지한 일각수였다.
덕분에 찐득거리는 가래침이 얼굴에 잔뜩 묻어버렸다.
지금 내가 뭘 당한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이내 올라오는 고약한 일각수의 가래침냄새에 현실감이 물씬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 씨발놈이?
내가 노려보자, 어쩌라는 듯이 혀를 낼름거리던 녀석이 푸르륵, 하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무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카르윽! 퉷!”
그것도, 땅바닥에 퉷하고 침을 거하게 내뱉으면서.
“...저 씨발 말고기 새끼가 진짜?”
주르륵,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일각수의 가래와 존나게 꼬운 일각수의 궁둥이를 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자, 그런 나를 보고 있던 릴리스가 빵 터지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네 얼굴이 취향이 아니었나 보네.”
“괘, 괜찮느냐? 한조야?”
끅, 끅,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면서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와 자기가 만지라고 했는데, 정작 내가 일각수에게 가래침을 맞자 어쩔 줄 몰라하는 호아란을 보고서, 일단 얼굴에 잔뜩 묻어버린 가래침을 슥슥 닦았다.
릴리스랑 호아란한테는 그렇게 얌전했으면서.
애당초 다른 사람들한테도 몇몇을 제외하곤 다가가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던 일각수가 왜 하필 나한테만 가래침을 쳐 뱉어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냄새 존나 구리네, 씨발거.”
뭘 처먹어댔길래 냄새가 이렇게 고약한지도 알 수가 없었고.
“이, 일단 냄새부터 지우자꾸나.”
그런 내게 그렇게 다가오다가, 움찔한 호아란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얼굴이며 가래침을 닦아낸 옷이며 일각수의 침 냄새로 가득했던 것이 사라져서 그래도 그럭저럭 기분이 괜찮아졌다.
“여기 보니까 일각수는 순수한 사람한테는 친근하게 대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낸다네. 아무래도 네 시꺼먼 마음 때문에 그렇게 화냈던 모양인걸.”
팜플렛에 일각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때문에 다시 기분이 상했지만.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호아란이라면 몰라도 릴리스도 순수랑은 좀 거리가 멀잖아.
유독 어린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각수를 보아하니, 아주 틀린 설명은 아닌 것도 같지만, 그래서야 내가 화를 내다 못해서 일각수들이 기겁하면서 도망치거나 가래침을 뱉어댈 정도로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꼴이라 인정하기 싫었다.
그냥 개또라이 말이라고 생각하는게 훨씬 마음 편하지.
“...그래서, 다음은 뭐에요?”
재수라곤 지지리도 없었다 치기로 하고서, 다음 동물이나 구경하기로한 내 물음에 릴리스가 말했다.
“아까 내가 얘기했던 도플갱어.”
도플갱어라...
아까 릴리스가 설명하기로는 슬라임의 아종.
다만, 지성과 인격을 갖춰 종족으로, 사람으로 취급받는 슬라임과 달리 이성이나 지성이 없어서 몬스터로 분류된 도플갱어는 자신이 보거나 한 존재의 모습을 흉내 내거나 따라 하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의태.
모습만 따라 할 뿐이긴 했지만, 아무튼 제법 똑같이 따라 한다는 모양이니 흥미가 생겼다.
“가죠, 도플갱어 보러.”
좆같은 일각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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