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동물원 나들이 (3)
* * *
개같이 멸망해버렸던 일각수 구경을 끝내고서 도착한 도플갱어 우리는 슬라임의 아종인 도플갱어를 가두기 위해서인지 틈새라곤 전혀 없는 유리로 사방이 꽉 둘러싸인 형태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보여야 하는 도플갱어는 없고, 유리로 된 우리 너머로는 사람들만 잔뜩 있었다.
“이게... 대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누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이 사료통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이 섞여 있는 음식들을 얼굴을 처박고서 우적우적 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더더욱.
설마하니 이 좆망한 세상의 사회의 어둠이라도 보게 된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니였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사료를 퍼먹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이내 꾸물거리더니 이내 점액질 형태의 생물체로 바뀌었으니까.
도플갱어였구나.
존나 식겁했다.
자기가 본 존재로 변할 수 있다더니 아무래도 도플갱어들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관광객들의 모습으로 변하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난 또 씨발, 사람도 일단 동물이라면서 사육하는 줄 알았잖아.
불과 얼마 전의 나라면 먹을 거만 제때 챙겨준다고 한다면 지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던 것이라 상당히 소름이 끼칠 뻔했다.
아무튼 그런 끔찍한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도플갱어들을 구경했다.
“별거 없네.”
“별거 없구나. 아니, 오히려 본녀에게는 그리 썩 좋은 기분이 드는 구경은 아닌 것 같구나.”
“그러게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거야 신기하긴 한데, 그거 말고는 별거 없는 생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도플갱어들 진짜로 본능적으로만 행동해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먹고 자고 그러고 있는 게 대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본능적인 것에는 말 그대로 번식, 성욕도 포함되어 있기도 했지만.
사람들로 변한 도플갱어가 사료통에 얼굴을 처박고 음식들을 먹는 광경이나, 서로 다른 도플갱어들...
그것도 같은 성별로 변한 도플갱어들이 서로 붙은 채로 꿈틀거리는 경우는 심각하게 끔찍했다.
여자끼리 그러고 있는 거라면 몰라도, 남자의 모습으로 변한 도플갱어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그저 씨발이란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그나마 아무리 모습이 변했다고는 해도, 도플갱어는 도플갱어인지 교미라고 해봤자 서로 붙어서 꾸물거리는 게 전부이긴 한데.
그걸 사람의 모습으로 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 아무튼 별로 좋은 의미로서의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어쩐지 들어오기 전에 미성년자 제한을 걸더라니, 이래서였구나.
“다른 거나 보러 갈까요?”
“그럴까?”
“그러는 게 좋겠구나.”
셋의 의견이 같은 모양이니, 다음 동물이나 구경하러 가려고 했다.
마침 호아란이 보러 가자고 했던 여섯 날개가 달린 새라든지, 포유류인데도 알을 낳는 기상천외한 생물 같은 것이 다음 구역에 있다는 모양이고.
이거나 보러가자고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그런 우리들의 앞으로 꾸물거리며 세 마리의 도플갱어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뭐지, 싶었는데 그 세 마리의 도플갱어들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우리들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오.”
처음부터 변해있거나 하는 모습만 봤을 뿐인데, 이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신기했다.
그런 도플갱어들이 우리를 꼭 빼닮은 모습으로 변해서 그런지 더더욱 그랬다.
“헤에, 우리 모습을 따라한 모양이네.”
“음, 정말로 똑같기는 하구나.”
자신들의 모습을 따라 한 도플갱어들을 보고서 다시 흥미가 생겼는지, 그런 도플갱어들을 구경하는 릴리스와 호아란.
의태를 하고자 하는 습성 때문일까, 릴리스나 호아란의 행동을 조금씩 따라하는 도플갱어들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유리 너머로 자신들을 닮게 변해버린 도플갱어들을 구경하는 릴리스와 호아란. 그리고 그런 릴리스와 호아란의 행동을 따라하듯, 마찬가지로 유리에 착 달라붙다시피하는 도플갱어들.
이래서야 마망 두 배 이벤트라도 하는 것 같았으니까.
“보거라 한조야, 이 두 마리는 서로 사이가 무척이나 좋은 모양이구나.”
그리고, 같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도플갱어들을 보며 호아란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그 릴리스와 호아란을 꼭 닮게 변해버린 도플갱어들이 서로 찰싹 달라붙는가 싶더니,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아.”
갑자기 서로 격렬하게 뷰비기 시작한 릴리스랑 호아란.
아까도 말했듯이, 이 도플갱어들은 어디까지나 의태를 할 뿐인, 본모습은 슬라임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교미, 짝짓기는 서로 몸을 붙이고 꿈틀대는 거고.
그러다 보니 본래 모습일 때는 그냥 두 점액질의 생명체가 서로 붙어서 꾸물거리는 것이 전부인 반면, 서로 의태한 채로 교미하기 시작하면 서로의 입술이고 얼굴이고 가슴이고 맞붙인채 뷰비적거리는 형상을 하게 된다는 거였다.
덕분에 도플갱어들을 보며 사이가 좋다고 말하고 있던 호아란이 입을 떡 벌리는 것이 보였다.
“아, 아니... 한조야... 이건, 그러니까...”
갑작스레 벌어진 참사에 호아란이 더듬더듬 그렇게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였다.
내 모습으로 변한 도플갱어가 서로 격렬하게 몸을 뷰비적거리고 있던 릴리스랑 호아란으로 변한 도플갱어를 그대로 깔아뭉개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백합뷰빔에 난입한 쥬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를 꼭 닮은 도플갱어에게 깔린 릴리스와 호아란의 도플갱어가 이내 내 도플갱어와 붙어서 꾸물거리기 시작했으니까.
“세, 셋 모두 사이가... 조, 좋은...”
갑자기 1대2로 얽히며 폭풍 같은 교미를 시작한 도플갱어들을 보고서 얼굴이 시뻘게지는 호아란이 보였다.
그런 호아란의 표정을 따라 하듯 호아란의 도플갱어 역시 얼굴을 붉히자, 호아란 도플갱어 위에서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어대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한 도플갱어 덕분에 진짜로 섹스하고 있는 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플갱어들이야 실제로 폭퐁 교미 중이긴 한데.
문제는, 그게 도플갱어들의 교미라기보단 그냥 내가 호아란을 후배위로 격렬하게 박고 있는 모습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계속 호아란 도플갱어하고만 교미하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릴리스 도플갱어가 돌연 그런 호아란 도플갱어를 밀쳐내더니 그대로 내 도플갱어에 찰싹 달라붙는 것이 보였다.
“오...”
다시 시작한 폭풍 같은 도플갱어들의 교미.
호아란, 아니 호아란의 도플갱어와 달리 릴리스의 도플갱어 쪽이 주도적으로, 대면입위하듯이 서로 찰싹 달라붙은 채로 폭퐁 교미를 해댔다.
“너, 너 이 새끼...”
호아란과 마찬가지로 도플갱어를 구경하다가 굳어있던 릴리스조차도, 자신을 꼭 닮은 도플갱어가 그러니까 얼굴을 붉히면서 나를 노려봤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존나게 억울했다.
심지어 이번 건 내가 아니라 릴리스, 아니 릴리스 도플갱어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
아무튼, 갑작스러운 도플갱어들의 교미에 내가 괜히 피를 보게 생겼다.
정작 도플갱어들은 본체인 우리가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고 열심히 교미중이었지만.
특히 내 도플갱어는 특히나 열심히였다.
호아란 도플갱어에서 릴리스 도플갱어로 파트너가 바뀌었는데도 그딴 건 존나 신경을 안 쓴다는 듯이 열심히 허리를 흔들며 릴리스 도플갱어와 교미해대는 내 도플갱어를 보고 있으려니까,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로 가득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세상에...”
“저기 좀 봐ㅡ.”
수군수군, 하고 세 도플갱어의 교미를 보며 키득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사람이 모였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도 그럴게, 모습이 조금 변했다고는 해도 릴리스나 호아란이나 둘 다 엄청난 미녀들이었다.
그런데 말이 도플갱어들의 교미지 겉으로만 보면 그냥 그냥 그런 릴리스나 호아란을 꼭 닮은 여자들의 공개 야스나 마찬가지인 꼴을 하는 도플갱어들은, 당연하게도 눈에 띄는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기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런 거나 보려고 모여있던, 존나 음습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닮은 도플갱어가 다른 관광객을 닮은 도플갱어를 따먹거나, 따먹히는 거를 구경하는 음습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갑자기 기분이 존나게 나빠졌다.
기껏 해봐야 도플갱어들이고, 심지어 그마저도 변한 모습의 릴리스랑 호아란을 따라한 도플갱어들에 불과했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이 지켜본다는 사실에 울컥하고 짜증이 치밀어오를 때였다.
내가 모여든 사람들한테 무슨 구경났냐고 한 소리 하려고 했을 때.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과 달리, 하등 관심도 없다는 듯이 도플갱어의 우리로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검은색으로 된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뭔데 저 사람은 놀러와서 저렇게 칙칙하게 입고 왔느냐는 생각보다도, 어째선지 그 사람이 무척이나 꺼림칙하게만 느껴졌다.
오싹오싹,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
이건, 알고 있다.
이 느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스윽, 하고.
후드를 눌러쓴 사람이 도플갱어들의 우리에 손을 올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후드 밑으로 언뜻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 무척이나 시꺼먼ㅡ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 정말로 시꺼먼 것이 보였다.
꿈틀...
그런 나와 시선이 마주친, 아니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꼈을 때였다.
저 시꺼먼 새끼를 어디서 봤었는지 떠올랐다.
백발 여자.
그 씨발년이 몸에 슈트처럼 입었던 그거랑 똑같이 생겼다.
그 덕분에 내가 느꼈던 꺼림칙함이라든지, 아까부터 오싹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애미, 씨발.”
키이이잉ㅡ!
귀를 찢어대는 이명과 함께 쩌저적, 도플갱어들을 가둬둔 우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릴리스와 호아란이 이상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도 먼저, 내가 손을 뻗어 그 둘을 감싸 안았다.
파캉ㅡ!
그 직후에 도플갱어의 우리가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유리 조각들이 튀어 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