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외전)망아의 용 공주
* * *
“생각보다 찾기 어려운걸...”
그 릴리스가 싸고도는 만큼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모으기 시작한 디스펜서들의 정액들.
귀찮아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그래도 벌써 수백 명분의 정액을 구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성분 등을 조사할 수 있었다.
물론, 여지껏 조사한 디스펜서들의 정액들 중에는 특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정액에 깃든 정기의 양이라던가, 정액 그 자체의 양이라던가 등등 소소한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때 보았던 각인과 같이 특이한 구석이 있는 경우는 전무했다.
“잘못짚은 거려나...?”
릴리스가 가져간, 지금은 디스펜서들에게 양산하여 지급하고 있다는 아티펙트나 그때 디스펜서를 언급했을 때 릴리스의 반응을 봤을 때, 분명 릴리스가 숨겨두고 있는 이가 디스펜서들 중에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와선 어쩌면 그마저도 릴리스의 블러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릴리스치고는 너무 지나치게 감정을 내보이기도 했고.
고의적으로 정보를 혼동시키려고 그런 짓을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으니까.
“귀찮네... 그냥 때려칠까...”
디스펜서들의 정액들을 사모아서, 이를 조사하는 단순 반복과정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난생처음으로 보는 유형의 예속 각인의 정체라든지, 그 매개가 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 밖에 여러모로 궁금한 게 많았기에 귀찮음을 꾹 참고 버티고는 있었지만, 반복된 작업에 귀찮음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늘은... 이거만 하고 끝내야지...”
아직도 잔뜩 쌓인 샘플들 중에서 하나를 집어 들며, 유스티티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충 여기까지만 조사하고, 다른 방법으로 찾아보는 것이 덜 귀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어차피 이번에도 특별한 건 없겠거니하고 샘플의 용기를 집어 들었던 유스티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좀... 많네...?”
디스펜서들마다 정기의 양이라든지, 정액량이라든지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유의미한 차이였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오차범위의, 평범함의 범주에 들어가는 차이에 불과했으니까.
그날의 영양상태, 건강 상태, 그 밖에 이런저런 것들이 섞여 있었다고 한들.
결국 오차 안의 평범한 것들에 불과했다.
근데...
이번에 집어 든 용기 안에 가득 채워진 샘플, 정액은 조금 달랐다.
이제껏 봤던 것들과 비교해서도 압도적인 양이었다.
단순한 양만으로도 평범함을 아득하게 상회하고 있었다.
하물며, 용기에 떡하니 적혀져 있는 종족이 인간이었다면 더더욱.
설마하니 뭔가 착각해서 여러 번에 걸쳐서 모아오기라도 한 걸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정답이겠지만.
디스펜서들이란 것이 대충 어떤 건지는 알고 있는 유스티티아였기에 그런 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릴리스의 제안으로 처음 디스펜서라는 것이 생길 적에 그런 그녀에게 이런저런 아티펙트들을 뜯기는 와중에 호기심이 생겨 살펴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유스티티아는 디스펜서들의 생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1회분의 정액만으로 100만원.
그만한 돈을 지불해가며 디스펜서들의 정액들을 모은 이유도, 그 정도의 돈이면 요즘 새로 생겨났다는 상위권의 디스펜서들에게도 혹할만한 가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의뢰에 응해서 샘플을 제공한 것도 어디까지나 이쪽이 돈을 대가로 지불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흐응...”
돌연변이 적으로 양이 많거나 한 걸까.
흔한 것은 아니지만, 간혹 유독 특정한 부분으로 뛰어난 개체가 생겨나는 거야 흔하디 흔한 일이니까.
그것도 아니면 특별한 기프트가 있다거나.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양이 많다 할 뿐 그 외의 특별할 필요가 없어 보였으니.
어서 조사를 마치고서 이불 속에 기어서 들어가 잠이나 생각을 하며 유스티티아가 용기의 봉인을 풀었다.
그리고...
봉인을 풀자마자 터져 나오는 향기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찔해질 만큼 강렬했다.
“이건...”
두근두근두근두근...
동시에 찾아온, 자신의 몸의 이변.
모르는 것을,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격렬하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꾸욱, 그런 자신의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두근두근, 가슴 너머로도 느껴지는 고동은,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흐응...?”
혈통으로 이어진, 너무나도 강한 힘 때문에 생겨난 부조화로 인해 선천적으로 타고난 불감증.
자신은 태어날 적부터 자극이 흐릿했다.
희로애락을 비롯한 감정부터, 미각청각후각등의 오감까지도. 짙은 안개 너머에 갇힌 것처럼, 그 어떠한 것에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좋았다.
유일하게 지식욕을, 호기심을 충족시켰을 때만이 자신이 가장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강대한 드래곤이라고는 해도, 결국에는 필멸자에 불과한 드래곤인 몸에 섞인 ‘피’가 지나치게 강했기에 생겨난 장애.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자신에게 이어지면서 희석되고, 희석됐음에도 불구하고 진하게 타고난 ‘피’는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아버지와 할아버지조차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태어나는 순간 주어진 천업인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짊어지게 된 천업은, 수백 평생을 그 천업를 짊고 살아왔던 유스티티아에게는 이제와선 당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흐릿하다할 뿐, 맛있는 것을 먹으면 맛있다고 느끼고 기분이 좋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단순히 남들보다 둔하다고 할 뿐이었다.
단지, 그것이 드래곤이라는 종족이었다는 것이 문제가 됐을 뿐이었다.
기나긴 수명을 가진 드래곤은, 설령 정상적인 삶을 영유하더라도 결국 지치고, 퇴락하여, 살아가기 위한 유희를 즐기기 마련이었다.
더한 자극을 찾아나서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일반적으로 수천년은 살은 고룡들이나 즐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 한계가 극히 짧았던 자신은, 유일하게나마 자신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던 지식욕이나 호기심은 백 년도 전에 진작 채워버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온 것이었다.
온갖 것이 뒤섞이고, 혼란스러운 이곳은 자신이 모르는 것 또한 끊임없이 생겨났으니까.
조금이나마 지루함을 달래줄 것들이, 이곳에는 있었으니까.
이 세상은, 그녀에게 있어선 최적의 유희장소였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이라할지라도 즐길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다리다보면, 또 새로운 것이 어련히 찾아오겠거니 그를 가장 먼저 알아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병이라든지 저주라든지의 이유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이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자신의 몸에 찾아온 이변은, 그 말대로 이변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치 미지의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감정이 고양되기 시작했다.
알고 싶다.
그런 생각이 치솟았다.
이것이 정상이 아니란 것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생각했잖는가, 특별한 구석이 없다고.
그랬는데, 그 판단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버렸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특별했다.
선천적으로 모든 종류의 속성에 강대한 내성을 지닌 드래곤인 자신에게조차도 영향을 끼치는 이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자신이 아직까지도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이건... 재미있네...”
단순히 처음 보는 종류의 각인과 릴리스의 반응 때문에 생겨났던 호기심에서 자신에게까지 이만한 영향을 끼친 존재 그 자체의 흥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릴리스가 꼭꼭 숨겨두고 있던 존재가, 바로 이것을 자신에게 보내온 자라는 것을.
스윽, 정액이 담겨있던 용기의 띠에 둘러있는 것을 읽으며 유스티티아는 눈웃음을 지었다.
이미 머릿속에 전부 기억해두고 있던 명단 중에 있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마침 잘됐네...”
이만한 능력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해당 디스펜서는 이동의 자유를 얻은 상위권의 디스펜서였다.
평범한 디스펜서였더라면, 그와 접촉하려면 릴리스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자신이 직접 찾아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무척이나 호재였다.
이전에도 가볍게 힘을 겨뤄본 결과, 무력으로 그녀를 이긴다는 것은 어지간히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으니까.
서큐버스였지만, 서큐버스가 아닌 존재.
태생부터 하나의 세상에서 자연스레 태어난 차원종이자 초월종.
이런 세상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이 태어난 차원이었더라면 자연스레 성장한 끝에, 그 차원에서 신격을 얻었을 릴리스는, 자신이 아무리 진한 ‘피’를 갖고 태어났더라도 어떻게 하기 힘든 상대였다.
그러니, 이럴 때는 정공으로 하는 편이 나았다.
자신만큼이나, 이 세상을 아끼는 그녀가...
스스로 세운 규칙을, 계약을 어기지는 않을 테니.
“어디보자... 지명이란 걸 하면 된다고 했었지...?”
어디까지나, 릴리스가 정한 룰 안에서 그를 이쪽으로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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