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내 꿈은 식신 마스터 (4)
* * *
“뭐야, 너 오늘은 안 나가게?”
평소에는 늦어도 아침을 먹은 뒤에는 출근했는데 호아랑 같이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빈둥거리고 있으니까 양치를 하고 온 릴리스가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래서 그런 릴리스에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좀 쉬려고요.”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하나 어제 말은 괜찮다고는 했어도 내심 섭섭해 보였던 호아란에게 주술이나 배우기로 했다.
뭐, 본격적으로 다시 주술을 배우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호아를, 식신을 다루는 쪽으로 몇 단계 껑충 뛰어서 배우기로 했다고 해야 하나.
아직 주술의 기초도 떼지 못한 나였지만, 식신을 직접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만 제공하는 탱크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봤는 데 가능할 거라고 호아란이 말해서 그래서 배우기로 한 거였다.
“그래...? 뭐, 잘 배워봐. 배워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넹.”
아무튼, 내가 하겠다는 것을 기어코 사양하면서 자기가 설거지를 하기로 한 호아란을 기다리면서 호아랑 놀고 있으려니까, 앞치마 차림의 호아란이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한조야.”
“아, 설거지 끝나셨어요?”
“지금 막 끝났느니라. 그리고, 릴리스. 침대 위에선 과자를 먹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내 마음이지. 이따가 내가 치우면 되잖아?”
그런 릴리스를 보고선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는 호아란이었지만 나로서는 그나마 저게 어딘가 싶었다.
호아란이 없을 적에는 항상 릴리스가 어지른 걸 내가 치웠으니까.
호아란이 하도 뭐라고 하니까 자기가 먹은 과자 봉지나 맥주캔은 자기가 치우는 릴리스는, 내가 봤을 때는 엄청 성장한 셈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릴리스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던 호아란이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 그건 나중에 다시 말하고... 식신을... 호아를 다루는 법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하였었지.”
“네, 일단은 양도받기도 했고 알아둬서 나쁠 건 없잖아요?”
“좋은 생각이니라. 기왕이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것이 더욱 좋겠지만... 여기서는 며칠을 수양하더라도 여우의 숲에서 하루를 수양하는 것보다는 못할 테니, 차라리 그쪽을 익히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하고 호아란이 말을 이었다.
“호아의 경우에는 따로 무엇을 배운다기보다는, 호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니라.”
“어... 그래요?”
“한조 네가 제법 주술에 재능을 보이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식신을 다루는 법은 고작 하루만에 배울만한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느니라. 한조 너는 오늘만 시간을 내어 본녀에게 호아를 다루는 법을 배워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더냐? 그렇다면 그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니라.”
그것도 그렇지?
나도 하루만에 뭘 배우고 그럴 생각은 없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호아란이 내 품에 안겨있는 호아에게 말했다.
“우선, 호아의 꼬리에 대한 것이니라. 너도 알다시피, 본녀의 분신... 식신에는 제각각의 이치를 담은 꼬리가 있느니라. 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주술을, 제각각의 꼬리에 담아두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니라. 하여,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수록 더욱 많은 꼬리가 나있는 것이 특징이지. 더욱이 본래 호아의 경우에는 ‘체’의 이치만을 담았으나, 이번에 강화하면서 더욱 많은 이치를 담아냈느니라.”
“호아.”
그런 호아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호아가 꼬리들을 살랑대는 것이 보였다.
무려 다섯 개나 되는 꼬리들이 나있는 호아.
자랑스레 꼬리를 흔들어대는, 호아의 작은 엉덩이를 보고 있자니 호아란이 그런 나에게 말했다.
“본래 호아에게 담아두었던 ‘체’의 이치와 더불어서, ‘심’의 이치와 ‘기’의 이치를. 그리고 ‘음’과 ‘양’의 이치를 담아내었으니, 지금의 호아는 본녀가 만들어낸 식신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강한 식신이니라. 호아가 사용할 수 있는 주술만으로도 백 여 가지가 넘으며 이를 스스로 판단하며 사용할 수 있는 자아마저 갖췄으니, 사실상 가장 강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니라.”
호아 장난 아니게 강했구나.
하긴, 꼬리 하나 달린 호아란들의 분신들과 비교해서도, 꼬리가 다섯 개나 달린 호아니 단순 계산만으로도 다섯 배는 강한 셈이니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다른 식신들과 달리 호아는 호아란이 굳이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으니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강화재료로 무려 유스티티아의 드래곤 하트까지 사용하기도 했고.
“허나, 어디까지나 그건 기를 꾸준히 공급받았을 때의 이야기이니라. 기본적으로는 식신의 강함은 소유주의 강함에 비례하느니라. 아무리 강한 식신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밑바탕이 되어야하는 소유자의 기가 빈약하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느니라. 호아에겐 드래곤 하트가 있으니 큰 무리를 하지 않는 이상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서야 이번에 배울 것이 없을 테니 이번에는 드래곤 하트의 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만 호아에게 주술을 사용하게 해보거라.”
“어, 그 말은...?”
“식신을 다루는 법을 알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기만을 사용해서 호아를 다룰 수 있다면, 당장은 그걸로도 충분할 것이란 이야기이니라.”
대충 그럴듯한 이야기여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런 나를 보고선 호아란이 말했다.
“우선, 호아야. 여우불을 사용해보거라. 이번에는 드래곤 하트의 기를 사용해도 좋느니라.”
“호아!”
호아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호아가 손을 펼치자 화르륵, 하고 그런 호아의 손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둥실하고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오...”
화끈해진레후.
호아의 손 위로 여우불이 피어오르자마자 순식간에 방 온도가 몇 도는 오른 기분이었다.
바로 코앞에 불꽃이 피어올랐는데, 겨우 그 정도인걸 보면 호아란이 뭔가해서 주변을 보호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옆에서 우릴 구경하면서 과자나 먹고 있던 릴리스가, 덥게 갑자기 뭐하는 짓이냐면서 맥주캔을 따는 것이 보였는데... 그냥 덥다는걸 핑계 삼아서 대낮부터 술이나 퍼마시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그런 릴리스의 모습에 또다시 한숨을 내쉰 호아란이 이내 나를 보고는 말했다.
“이번에는 한조, 네가 호아를 부려 여우불을 사용해보거라. 호아야, 이번에는 한조의 기만을 사용해서 여우불을 사용해보거라.”
“호아.”
“넹.”
호아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랑 호아.
아무튼, 이번에는 내가 호아에게 여우불을 사용하라고 말해봤다.
근데...
“호아.”
존나 멀뚱하게 나를 쳐다볼 뿐인 호아.
사용해보라고 한 여우불은 안 쓰고 그러고만 있는 호아를 보고 있으려니까 하아하고 한숨을 푹 쉬는 듯한 호아가 보였다.
“호아아...”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아다가 자기 머리 위에 올렸다.
“호아.”
‘기 줘야지.’
“아.”
호아의 말에 내가 급히 기를 끌어올려서, 그런 호아에게 주입하자 화르륵, 하고 호아가 여우불을 피워 올리는 것이 보였다.
“...됐네요?”
대충 느낌상으론, 한 번 사정한 정도의 피로감이라고 해야 할지, 내게서 기가 쪽 빨리는 감각과 함께 호아의 손바닥 위로 피어오른 여우불을 보고서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내저은 호아란이 말했다..
“됐을 리가 없지 않으냐? 항상 그런 식으로 기를 줘서는, 호아가 한조 너에게서 떨어졌을 때는 어찌할 생각이더냐?”
“...어, 목마라도 태우고 다니면요?”
그러면 떨어질 일도 없고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는 호아란과 호아가 보였다.
그런 둘의 시선에 내가 말했다.
“...안 되나요?”
“안되느니라.”
“호아...”
딱 잘라서, 둘에게 안된다는 소리를 들어버렸다.
호아란은 둘째치고서 호아에게까지도 그런 소리를 들어서 침울해하고 있는데 그런 내게 호아란이 말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느니라. 여우 구슬을 들어 올렸을 적을 생각해보거라. 그때도 분명, 한조 너는 손을 대지 않고도 여우 구슬을 들어 올렸지 않았더냐? 그때는 기가 아닌, 심상으로 그리한 것이지만 요령은 비슷하니 문제는 없을 것이니라. 여우 구슬을 대신하여 호아를, 심상을 대신해서 기로 움직인다는 느낌으로 하면 되느니라. 여우 구슬 때와 달리, 호아는 직접적으로 너와 연결되어있으니 훨씬 나을 것이니, 한조 너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니라.”
여우 구슬을 들어 올렸을 적을 생각해보라고?
그때랑 같은 방식으로 호아를 다루라는 호아란의 말을 들어도 그때랑 같은 방식을 쓰기엔 좀 그랬다.
그야, 그땐 여우 구슬을 들어 올린다는 일념을 위해서 호아란이나 릴리스의 치마를 들춰올린다는 생각을 하며 여우 구슬을 들어 올려댔었으니까.
순수하게 들어올린다는 일념을 위해서, 호아란의 치마를 들춰서 팬티를 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한 일념으로 여우 구슬을 들어 올렸는데 그때랑 같은 방식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야 호아란이야 그 사실을 모르니까 저렇게 조언한 거겠지만...
“...호아아.”
“아.”
내 생각을 읽을 줄 아는 호아가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아니,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기프트가 폭주해서 그런지 존나 성욕으로 머리가 가득차있던 상황이기도 했고.
“호아...”
진짠데.
의지보다는 욕망으로 가득한 정신력이었지만 덕분에 두 배는 훨씬 쉽게 여우 구슬을 들어올렸으니까 변명이 아니라 진짜였다.
“왜 그러느냐?”
그런 나랑 호아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 호아란.
그런 호아란을 보고서 급히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아에게 들킨 것은 그렇다고 쳐도, 호아란에게도 사실을 밝힐 생각은 없었기에 그렇게 대답하고서는 빨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봤다.
그때야 들어 올린다는 심상을 강화한답시고 그랬었지만, 지금은 좀 달랐으니까.
이번에는 기를 호아에게 줘야하는 상황이니, 들어 올린다기보다는 주입한다는 느낌의 심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주입이라...
마침 떠오른 것이 있기는 한데, 호아한테 하기에는 그런 생각이라 집어넣기로 했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호아란이 조언삼아서 했던 말 중에서 나랑 호아가 연결되어있다는 말이 떠올라서 확인해봤다.
“오...”
두 눈에 집중해서 나랑 호아 사이를 보자, 가느다랗게 실 같은 것이 연결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기의 실이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근데 이상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은 호아만이 아니었다.
“이건...”
당장 침대 위에서 아침을 먹고서 곧바로 다시 수면에 들어간 유스티티아랑도 연결되어있고, 그거 말고도 여러 갈래로 나뉜 실들이 다른 어딘가와도 연결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호아랑은 조금은 다른 느낌이긴 한데.
이런 게 언제부터 내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던 거지.
이걸 이제 와서 알아차린 것도 어메이징한 일이긴 한데, 능력을 써서 내 몸을 보거나 한 적은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제 와서라도 눈치채는데 어딘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대충 이 실의 정체는 알 수 있었다.
호아만이 아니라 유스티티아와도 연결되어있고, 그 외에도 세 갈래 정도가 더 있는 걸 보아하니 이 실에 대한 것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 기프트.
그리고, 기프트를 발현중에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이종족들의 능력들의 근간이 되는 연결이 분명했다.
아마 에일레야랑 사티, 그리고 릴리아나가 여기에 있었더라면 그런 그녀들과도 연결되어있는 실이 보이지 않았을까 싶었으니까.
“...어디.”
슬쩍, 호아와 연결되어있는 실에 집중해서 그 실을 통해 기를 주입한다는 느낌으로 기를 옮겨봤다.
“...호아?”
그러자 흠칫하더니 나를 돌아보는 호아.
호아가 반응하는 걸 보니 확실히 효과가 있는 듯 싶어서 내가 말했다.
“호아, 여우불.”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호아가 손을 펼쳤다.
화르르륵...!
“됐네요?”
“...빠르구나. 요령을 알려줬다고는 해도, 깨우치는데 오늘 하루는 걸릴 거라고 생각하였거늘.”
그러자 희둥그레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호아란이 보였다.
“어... 빨랐어요?”
“그래, 아직 한조 너는 주술의 입문에 겨우 든 몸이지 않느냐? 그런데 이 정도로 빠르게 깨우칠 줄은 몰랐구나. 역시, 한조 너는 주술의 재능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재능 같은 건 모르겠는데.
하는 방법을 전부 알려줘서, 그냥 그대로 한 것에 불과했고.
과연 본녀의 자식이니라,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호아란을 보니 괜히 낯이 뜨거워지려고 했다.
“하지만 좋구나, 이러면 다음 것도 금방 익힐 수 있을 것이니라. 하루만에 호아가 쓸 수 있는 주술을 모두 다루는 것은 무리겠지만, 적어도 몇 개는 더 배울 수 있겠구나. 음, 다음은 강체를 써보자꾸나.”
“강체요?”
“본래 호아가 가지고 있던 ‘체’의 이치에 속하는 주술이니라. 신체를 강화하는 주술이지.”
“아, 그거요.”
백발 여자를 물리로 줘패던 분신을 떠올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돼요?”
“그건 아니니라. 여우불은 ‘심’의 이치에 속하는 주술 중에서도 가장 기초에 속하는 주술이니. 강체는 ‘체’의 이치에 속하니, 따지고보면 두 단계 윗줄에 있는 주술이니 조금은 다르니라. 우선, 이번에는 기로 호아의 몸을 감싼다는 느낌으로 두르거라. 또...”
호아란의 설명을 들으면서, 열심히 호아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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