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아티펙트 (4)
* * *
이틀 뒤, 소집일날 아침부터 우리 집은 꽤나 부산스러웠다.
그야 요 이틀동안 정말로 잠을 줄여가면서 아티팩트를 만드는데에 집중했던 유스티티아가 내게 자신이 만든 아티팩트를 건네줬으니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벨트에, 은은한 푸른 빛을 띤 장갑까지.
정말로 이틀 만에 뚝딱하고 유스티티아가 만들어준 아티펙트를 차고나자, 그런 내게 상당히 졸려 보이는 얼굴로 유스티티아가 물었다.
“...착용감은 어때?”
“아무 느낌도 안 나는데요.”
착용감이라고 해야 할지, 벨트고 장갑이고 무게감이라든지 위화감이라든지 존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툭, 툭하고 직접 건드려보면 유스티티아의 비늘로 만든 장갑답게 딱딱하다고 해야 하나, 존나 튼튼한 게 느껴지는데 정작 그렇게 건드려봐도 내 손으로 전해져오는 느낌도 없다시피 하니 신기한 느낌이었다.
“응, 다행이네... 그럼, 어디 한 번 테스트해보자. 우선 장갑 쪽에 마나를 불어넣어 봐.”
용어를 좀 통일시켜줬으면 좋겠는데.
호아란은 기라고 부르고, 유스티티아는 마나, 릴리스는 정기라든지 생명력, 마력이라고 부르니까 존나 헷갈렸다.
결국 지칭하는 힘은 같으니까 셋이 타협봐서 하나로 통일해줬으면 좋겠다.
일단 입문이기는 해도 주술에 호아라는 식신까지 다루다 보니 좀 더 익숙해진 기쪽이면 더 좋고.
아무튼, 유스티티아의 말대로 이제는 제법 잘 다루게 된 기를 움직여서 차고 있던 장갑에 불어넣을 때였다.
촤르르르륵...
장갑이었던 것이, 팔뚝까지 올라오는 건틀렛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와...!”
개쩔어!
팔뚝까지 감싸오는 건틀렛으로 바뀌어버린 푸른 장갑.
감탄하면서 아티팩트를 보고 있을 때 그런 내게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일단은, 용 발톱이라고 이름을 붙여뒀어.”
“용 발톱이요?”
확실히 개쩔게 생긴 건틀렛이라 간지가 철철 흐르긴 한데, 발톱이라는 느낌은 전혀 안 나서 의아해하고 있자니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응, 지금은 확실히 ‘발톱’같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웨어허니비의 독침을 써볼래?”
“어... 여기서요?”
“아, 참... 그랬었지. 자, 여기.”
스윽, 하고 입고 있던 티셔츠를 잡아 내려서 젖가슴을 보여주는 유스티티아.
갑자기 저럴 줄은 몰랐는데, 어째선지 브래지어도 차지 않고 있던 유스티티아 덕분에 생으로 본 분홍빛의 젖꼭지에 순식간에 자지가 발기해버렸다.
아무튼, 그 덕에 발현한 기프트에 유스티티아가 말한 대로 웨어허니비의 독침을 사용해봤다.
그랬더니, 어째서 유스티티아가 이걸 용 발톱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푸슉, 하고.
용 발톱에서 솟아나온 독침을 보고는 확실히 발톱같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으니까.
원래 한 번에 낼 수 있었던 독침은 하나뿐이었는데, 내 양팔을 감싼 건틀렛 끝으로 각각 다섯씩 튀어나온 독침들.
이래서야 누가 보더라도 발톱으로밖에는 안 보일 것 같았다.
아무튼, 단순하게 숫자만 봐도 원래의 열 배나 되는 독침이 생겼는데, 정작 소모된 체력은 원래랑 차이가 없어서 신기했다.
“근데 이거 왜 하얘요?”
“응? 아, 그거. 그건 라미아의 송곳니를 써서 그런 걸 거야. ‘용 발톱’에 주력한 건 강화랑 증폭... 네가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대인전에 특화된 능력인 웨어허니비의 독침을 강화하는 것을 중점으로 손봤거든. 웨어허니비의 독침에, 라미아의 맹독이 더해졌으니까 아마 나라도 제대로 맞으면 조금 저릿할 정도는 될 걸?”
독뎀을 더블로 받는데 조금 저릿하고 만다고?
그야 드래곤이 거의 모든 속성에서 한없이 면역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한 내성을 지닌 거야 알고는 있었는데.
“뭐, 그쪽이 주력인 게 아니니까. 말했잖아? 증폭에 강화라고. 독은 그냥 덤이고, 주력은 원래대로 웨어허니비의 독침의 진짜 능력... 독침을 ‘쏘는’ 것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쪽이라면, 확실히 저릿한 정도로는 끝나지 않겠네. 살짝, 아플지도.”
구멍이 뻥하고 뚫리긴 했다.
웨어허니비의 독침의 주력이 독뎀이 아니라 발사하는 독침 그 자체였다면 이해되긴 했다.
조금 저릿한 거랑 살짝 아픈 거랑 어느쪽이 대단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렇게 말하는 거보니 아프다고 한쪽이 더 대단한거겠거니 넘어가기로 했다.
“한번 쏴봐도 돼요?”
“그랬다간 여기가 난장판이 될걸... 그러면 내가 호아란한테 혼나니까 안 돼...”
너 가면 바로 자려고 했단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유스티티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조금 아쉽지만 성능 테스트는 나중에 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그게 네 호신용 무기라면... 그쪽은 호신용 방어구라고 해야겠네.”
내가 허리에 찬 황금빛 삐까뻔쩍한 벨트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는 유스티티아.
호아란의 꼬리털을 소재로 써서 만들어서 그런지 너무 황금빛인 벨트를 내가 바라보자,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어디, 그것도 한 번 사용해봐.”
“넹.”
‘용 발톱’ 때랑 마찬가지로 벨트에 기를 흘러 보내보자, ‘용 발톱’과 마찬가지로 촤르르륵하고 내 몸을 감싸오는 두터운 갑주가 보였다.
“오...?”
뭔가 개쩔었는데, 갑옷이 ‘용 발톱’이 달린 팔을 제외하곤 얼굴도 죄다 감싸버려서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확인하기가 좀 힘들었다.
“거울은 없어요?”
“자, 여기.”
거울 대신, 마법을 사용해서 내 모습을 비춰 보여 주는 유스티티아.
덕분에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여우 가면 비스무리한 형상의 투구까지 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전십 갑주를 뒤집어쓴 몰골이었다.
여우라 그런지 뭔가 전신 갑주치고는 묵직하다보다는 날렵해 보이는 인상이기는 한데.
장난 아니게 멋져 보이긴 했다.
“그건, 천호의 갑주라고 이름 지어봤어. 대부분의 소재는 호아란의 것을 썼으니까. 내 비늘도 조금 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덤으로 쓴 거고.”
천호의 갑주라.
천호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호아란의 꼬리털로 만든 아티펙트니까 어울린다면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폭신폭신한 호아란의 꼬리 털로 만든 건데, 어째선지 딱딱하기 그지없는 갑옷이 된 건 유스티티아가 조금 넣었다는 비늘 때문인가.
“그쪽은, 아무래도 갑옷이니까 보호 능력 쪽에 모두 집중했어. 고룡급의 드래곤이 내뿜는 숨결에도 십 초 정도는 거뜬하게 버텨줄 거야. 그 뒤에는... 구워지기 싫으면 어떻게든 해야겠지만.”
고룡급의 드래곤이 내뿜는 브레스에 십 초 정도 버티는 게 많이 버티는 건지 아닌 건지 잘 감이 안 오는데.
아무튼 개쩌는거구나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근데...
“이거 색...”
‘용 발톱’은 유스티티아의 비늘에 쉬라스갈의 송곳니를 소재로 만들어서 그런지 푸른 빛의 건틀렛에, 새하얀 웨어허니비 독침이 각각 다섯 갈래씩 튀어나오는 형상이고.
‘천호의 갑옷’은 황금빛 여우 형상을 날렵한 형태의 갑옷이었다.
둘 다 따로따로 보자면 하나같이 멋짐이란 게 폭발하려드는 아티펙트기는 한데, 둘을 같이 쓰려니까 색이 깔맞춤이 안됐다.
전신은 황금색의 갑주인데, 정작 양팔은 시퍼런 건틀렛이 같이 붙어있으니 영 그렇다고 해야 하나.
“응, 그건 나중에... 거기까지 신경을 쓰긴 시간이 너무 적었으니까.”
그럼 어쩔 수 없지.
이틀 만에 이런 걸 뚝딱 만들어준 게 어딘가 싶었다.
“나중에 시간을 들여서 좀 더 눈에 안 띄게 바꿔줄게. 아무래도 지금은... 좀 너무 튀니까. 급하게 만들다보니까, 아직 미흡한 부분도 있어보이고...”
그런거 전혀 못 느끼겠는데, 유스티티아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가보다 생각하면서.
촤르륵, 하고.
기를 거둬들이자 순식간에 원래의 벨트랑 장갑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두 아티펙트를 보며 내가 말했다.
“기왕이면 색도 둘 다 시꺼멓게 해주실래요?”
“검은색으로? 왜...?”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스티티아.
왜 검은색이냐고?
그야...
“간지는 역시 리얼 블랙이니까요.”
무사히 유스티티아에게 아티펙트도 건네받았고, 소집 시간이 다 되어가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릴리스랑 호아란, 유스티티아가 마중을 나와줬다.
“뭐, 잊은 건 없지? 호아는 잘 챙겼어?”
“여기요.”
릴리스의 말에 인형폼으로 돌아간 상태인 호아를 주머니에서 꺼내서 보여줬다.
“혹시 모르니 이것도 가져가거라. 사이한 것이 다가오면 반응할 것이니라.”
내게 부적을 한 무더기 건네주는 호아란에게 부적도 잔뜩 받아서 품에 챙겼다.
“이건, 그냥 가져가 봐. 혹시 쓸데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아직 미완성 상태라서 그냥 폭주할 뿐인 기프트 폭주제도 한 움큼씩 받아서 주머니에 챙겨뒀고.
“그리고... 자, 이거 받아.”
릴리스랑 유스티티아에게 뭔가 잔뜩 챙겨 받고 있을 때, 릴리스가 내게 휙하고 무언가를 건네주며 그렇게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본 병인데.
요구르트가 들어가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병을 보며 내가 말했다.
“뭐에요, 이건?”
“뭐긴 뭐야. 네가 세 병이나 퍼마셨던 거잖아. 벌써 잊어버렸어?”
엘릭서가 맞았나보다.
한 병에 5억짜리.
아직도 전부 갚지 못한 내 빚의 주범인 엘릭서인데... 그걸 내게 건네준 릴리스를 내가 쳐다보자, 살짝 얼굴을 붉힌 릴리스가 말했다.
“가서 이상한 거에 다쳐서 뒈지지 말라고. 만일의 사태가 생기면, 그냥 바로 마셔버려. 해독에도 효과가 있으니까... 너 정도면 어디가서 이상한거 먹고 중독같은건 안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어... 고맙긴 한데, 이거 쓰면 또 갚아야죠?”
“당연하지.”
아니.
이럼 쓰기도 애매하잖아.
일단 챙기긴 하겠는데.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거뜬하게 붙여주는 엘릭서니까 예비 목숨이라고 치면 좋을 테고.
어차피 웨어울프의 재생력에 맷집이 있으니 어지간하면 내 팔다리가 잘려서 붙여야 될 일은 안 생기겠지만.
잘 잘리기만 하면 그냥 가져다 대면 붙지 않을까 싶기도 하니까.
하여튼 세 마망에게서 받은 것들을 다 품에 챙기고 나니 장난이 아니었다.
어릴 적에 다니던 학교에서 소풍을 갈 적에, 엄마들에게 뭘 잔뜩 챙김 당하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겪었던 일을 내가 겪어보다니, 이런 일이 살다 보니 다 있구나 싶기도 하고.
그때랑 달리 내가 챙김 당하는 건 간식이나 도시락 같은 게 아니라 하나같이 호신용이니 뭐니하는 것들이긴 했지만.
사실 호신용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게 지금 내 몸에 걸쳐져 있는 아티펙트나 호아, 거기에 이런 저런 거까지 다 더해지면 전장 한복판에 떨어져도 안 뒈질 것 같았다.
오히려 너무 많이 걸치고 있으니까 황금 고블린이 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누가 날 잡아서 루팅하기라도 하는 순간, 아티펙트 두 개에 드래곤 하트가 달린 호아에 엘릭서까지.
아주 두둑하게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누군가의 황금 고블린이 되어줄 생각은 없지만.
뭐, 아무튼.
슬슬 소집 시간이 되기도 해서 내가 말했다.
“그럼, 저 다녀올게요. 유스티티아 엄마는 잊지 말고 잘 챙겨 드시고, 호아란 마망은 유스티티아 엄마가 이상한데 쓰지 않도록 잘 봐줘요. 그리고...”
내가 릴리스를 바라봤다.
“...뭔데?”
그런 내 시선에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를 보였다.
호아라던가, 아티팩트의 소재가 된 꼬리털을 제공한 호아란이나 애당초 아티팩트를 만들어준 유스티티아랑 달리 엘릭서만 달랑 챙겨준 것이 미안해서인지 평소보다 다소 주눅이 든 것처럼만 보이는 릴리스.
그런 릴리스에게 내가 말했다.
“릴리스 어머니도, 엘릭서 구해다 주셔서 고맙다고요.”
말이 한 병에 5억짜리지, 애당초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엘릭서였다.
그걸 고작 이틀밖에 안 되는 시간 안에 구하겠다고 릴리스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안 봐도 훤했기에 그렇게 말하자, 릴리스가 휙하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시끄럽고, 빨리 가기나 해. 안 그럼 늦잖아.”
“넹.”
부끄러워하기는.
그래봤자 호아란이랑 붙어지내다보니 서로 닮기라도 한 건지 살랑거리는 릴리스의 꼬리가 훤히 보여서 아무 소용도 없는데.
뭐, 보기 힘든 릴리스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니 제대로 눈에 담아두기로 했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못 볼 테고.
“그럼, 진짜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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