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나르메르 왕국에서의 나날 (1)
* * *
소집장소에 도착하자 나를 제외하고도 반도 지역에 여덟 곳이나 있는 지부에서 뽑혀서 모인 디스펜서들이 보였다.
역시나 인간이 대다수기는 했지만 오크도 두 명 정도 있고 고블린도 하나 껴있었다.
그나저나, 고블린이 대체 어떻게 최상위 디스펜서로 뽑혔나 싶었는데 다리가 세 개가 달린 고블린이어서 납득했다.
크기가 전부는 아니긴 한데, 저건 인정해줘야지....
아무튼, 모이라는 곳까지 오긴 했는데 대체 여기서 그렇게 모인 디스펜서들도 서로 얼굴을 보면서 무안하게만 있을 때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금일, 여러분들의 운송 및 보호를 맡은 한유진이라고 합니다.”
댁이 왜 여기서 나와.
아니, 그것보다 전에 봤던 말끔한 양복 차림이 아니라 어디 마녀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는 한유진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가,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
“......”
존나 어색하다.
아무래도 세계 정부측에서 뽑은 인선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쪽 사정을 전부 알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 아닌가.
그때야 그냥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시민과 공무원이었는데.
지금은 남창 새끼랑 공무원이라는 느낌이 되니까 괜히 쫄렸다.
마지막 날에는 특히 날이 서게 대하기도 했었고.
“...우선 확인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쪽도 근데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는지, 서류철을 꺼내 들더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보였다.
“최강의 구렁이씨, 맞습니까?”
“네.”
“꺼지지 않는 피닉스씨, 맞으십니까?”
“맞수다.”
이윽고, 서류철에 적혀져 있는 디스펜서들을 호명하는 한유진.
근데, 씨발.
이름이 왜 다 저따구야.
한유진이 호명할 때마다 대답하는 디스펜서들.
하나같이 어질어질한 예명을 가지고 있는 디스펜서들을 쳐다보자, 나랑 눈이 마주친 디스펜서들이 무안하게 헛기침을 하는 것이 보였다.
자기들도 쪽팔린 건 알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강한조... 아니, 강한 좆씨...”
“...넵.”
근데 나도 남보고 뭐라 할 예명은 아니긴 했다.
슬쩍, 하고 나를 부르고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던 한유진이 필사적으로 시선을 고정하려 드는 것이 보여서 더더욱 그랬다.
옘병.
차라리 보면 봤지 이렇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니까 더 쪽팔렸다.
“...아무래도 모두 모인 모양이군요. 그럼, 이동에 앞서 주의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마나... 그러니까, 기나 내공에 대한 내성이 없으신 분들은 다소 어지러울 수 있으니 주의해십시오. 또...”
주의 사항이랍시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을 말하던 한유진이 이내 품에서 작은 스태프를 꺼내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영창하기 시작했다.
“어...”
마법사였어?
아니, 그야 인간이면서도 세계 정부 소속의, 그것도 저렇게 젊어 보이는 나이로 꽤나 중요해보이는 안보니 보안이니 하는 이름의 기관에 속해있던 걸 생각하면 나름 능력자일거라고는 생각했는데.
한유진이 고위 마법에 속하는 공간 전이 마법을, 영창을 한다고는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일 줄 몰랐다.
아무튼 확실한 건, 적어도 한유진이 나랑 같은 세상에서 넘어온 인간은 아니겠다는 것 정도였다.
그야 내 세상에는 마법의 마도 없었고, 마나조차도 없었으니.
“여기서 이어라, 세계와 세계를.”
이윽고, 몇 분에 걸쳤던 영창이 끝났을 때였다.
쩌어어억, 하고.
릴리스나 호아란이 펼치는 공간 전이나 전이문이랑 달리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작은 문이 생겨나는 것이 보였다.
“후우... 이제 됐습니다. 지속 시간은 얼마 안 되니, 차례대로 신속하게 이동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한유진에 차례대로 질서를 갖춰서 넘어가는 디스펜서들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꺼낸 것에 빨대를 꼽더니 쪽쪽거리는 한유진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강한조, 아니 강한좆씨.”
“아뇨, 그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내 시선이 향한 곳, 그러니까 빨대까지 꽂아서 쪽쪽 빨고 있던 것을 보고는 살짝 얼굴을 붉힌 한유진이 말했다.
“...이거 말씀하신 겁니까? 최근에 개발된 마나 포션입니다. 기존의 것과 달리 맛이 제법 좋아서 호평이죠.”
“아, 그래요?”
마나 포션이었구나.
어디서 많이 본 비쥬얼이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나도 아닐 거라고는 생각하긴 했다.
우리 집에서 최근 유스티티아만이 아니라 릴리스나 호아란도 매일 세끼마다 밥에 뿌려 먹는 드레싱이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테고.
집에서도 없어서 매번 만드는데 필요한 정액을 유스티티아한테 쥐어짜이던 형편인데, 그런 걸 팔아 재꼈을 리도 없을 거니까.
“그럼, 궁금하신 것도 끝나셨으면 어서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아직 여유가 있지만, 이동 중에 마법이 끊기게 된다면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가장 최근에 있었던 공간 전이 사고로는... 목만 전이해왔던 거였었죠.”
그건 좀 무서운데.
릴리스나 호아란이 펑펑 써재끼는 공간 전이가 고위 마법이나 주술에 속하고, 둘이 특이할 정도로 쉽게 사용하는 것이지 고난도의 공간 마법인걸 알고는 있었지만 목만 전이한다든지 하는 사고가 있었던 것까지는 몰랐다.
아무튼, 한유진도 그렇게 말하니까 냉큼 전이문을 넘어갔을 때였다.
후욱, 하고.
넘어간 순간부터 순식간에 더위가 몰려왔다.
“아.”
그러고 보니 사막이었지 참.
나보다 앞서서 넘어간 다른 디스펜서들은 벌써 땀을 뻘뻘 흘려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몇몇은 미리 챙겨온 옷으로 갈아입은 것도 보이고.
난 그런 거 안 챙겨왔는데.
뭔가 잔뜩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정작 더위 대책 같은 건 하나도 않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우픕...”
“아, 죄송해요.”
내 뒤로 따라온 듯한 한유진이 전이문 바로 앞에서 멈춰서있던 내 등 뒤에 부딪힌 것을 보고서 사과했다.
“아닙니다... 제가 부주의했을 뿐이니까요. 그보다, 아직 전부 도착하진 않은 모양이군요.”
내 사과를 받으며 그렇게 말하는 한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다른 곳에서도 올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하죠. 실례지만 한조, 아니 강한좆씨.”
“그냥 한조라고 부르시죠.”
자꾸 헷갈려서 고쳐말하니까 두 번씩 말하잖아.
나도 강한좆보다 그냥 이름이 낫고.
“그건 안됩니다. 디스펜서들의 예명의 존재 이유는 이미 들었으니까요. 제가 좀 더 신경 쓰는 쪽이 옳겠죠.”
그렇다면야 뭐...
“어쨌거나, 강한좆씨. 다들 이쪽으로 불러주시겠습니까? 저는 임시로 사용할 결계를 쳐두겠습니다.”
그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아무튼, 한유진의 말대로 육수를 뽑아재끼고 있는 디스펜서들을 불러서 모아오자 그새 영창을 마친 듯 한유진이 스테프를 휘둘렀다.
우웅, 하고 스테프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기... 아니, 마법사인 한유진이니 이경우에는 마나나 마력쪽으로 부르는 게 맞으려나.
하여튼간에, 퍼져나가면서 주변의 온도가 조금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 수분 공급도 제대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챙겨온 물이 없으시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아, 저 아무것도 없어서요.”
“그렇습니까... 네, 그럼.”
허리춤에 묶어둔 주머니같은 것을 열더니, 작은 주머니에 들어있을 리가 없어 보이는 물통을 여러 개 꺼내드는 한유진.
그 중 하나를 내게 내미는 한유진을 보고서 감사하다고 말하고선 물통을 받았다.
그나저나 저게 말로만 들었던 아공간 주머니인지 뭔지하는 그건가.
가장 값싼 것도 억 단위는 한다고 들었는데.
공무원 장난 아니게 돈 많이 버나 보다.
“...아, 이건 비품입니다. 아무래도 짐을 나르는 인력까지 사용하기엔 어려우니까요.”
내 시선이 향하고 있는 주머니를 보더니 그렇게 말하는 한유진.
많이 버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보다.
아무튼, 결계를 쳐서 조금은 덜하긴 했지만 여전히 무더운 더위에 푹푹 찌면서 기다리고 있자니, 하나둘 주위에서 열리는 공간 전이문을 통해서 넘어오는 디스펜서들이 보였다.
호호할배나, 할머니, 아니면 마법에 능한 것으로 알려진 몇몇 종족들의 인도를 받으며 모이기 시작하는 세계 곳곳의 지부에서 모인 최상위 디스펜서들.
아마도 저중에서 릴리스가 말하던, 차기 지부장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녀석들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 번 살펴봤는데 하나같이 동네에서 짱먹은 디스펜서들이다보니 여러모로 대단해보이는 인물들이 많아 보였다.
개중에는 이와중에 빤스만 처입고 있는 새끼도 있고.
개또라이새낀가 저거.
“근데 언제까지 기다려요?”
아무리 기다려도 더 이상 전이문이 열리는 기색도 없고, 푹푹 찌는 더위와 사막 한복판에 놓였다는 것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져가고 있을 때 나도 참다 못해서 옆에 있던 한유진에게 물어봤다.
그런 내 물음에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흘긋 내려다보던 한유진이 입을 열었다.
“...이상하군요. 원래대로라면 이미 마중이 왔어야 할 시간인데.”
한유진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는지 살짝 굳은 얼굴로 그렇게 대답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말했다.
“잠시 저는 다른 분들과 상의를 하고 올 테니 자리를 지켜...”
이윽고, 다른 곳에서 온 마법사들이랑 상의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한유진이 그렇게 말하려던 때였다.
우르르르르...
돌연, 땅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뭔...”
지진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윽고, 푸확하면서 존나 큰 지렁이가 저만치 떨어진 땅속에서 솟구쳐 나왔으니까.
“아니, 씨발.”
존나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존나게 큰 거대 지렁이의 등장에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데스웜이 어째서...!”
문제는 일단은 디스펜서들의 보호 차원에서 온, 내 옆에 있는 한유진도 존나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는 거다.
“이름 존나 험악하네요.”
죽음 지렁이 씨발거 개 무섭게 생긴 이름인데.
한유진만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모인 마법사들도 당황하는 걸 보니 저 데스웜인지 죽음 지렁인지하는게 겁나 강한 몬스터인가 보다.
“대형 재난급의 몬스터 데스웜입니다... 우선 피신, 아니 하지만 마나가 아직...”
대형급에, 재난급이면 도시 하나 정도는 반괴시킬만한 괴물 새끼 아닌가...?
사흉이라고 불리던 괴물 딱지들은 초대형에 재난급보다 한단계 위인 재해급이었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도시를 초토화하고 그 동네를 사람이라곤 살 수 없는 동네로 만들어버린 사흉급의 괴물보다 한단계씩만 낮은 괴물딱지라는 소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좆됐나본데.
“업화의 불꽃이여, 이곳에서 내 적을 불살라라! 화염구!”
푸학...!
한 마법사가 펼친 마법이, 릴리스는커녕 호아가 펼치는 여우불만도 못한 크기의 불꽃이 데스웜에게 박혔지만 그을림조차도 안 생겼다.
“이런 씨발 새끼들아, 안전하다매!”
“문 열어! 문 열라고 씹새야!”
“아, 아직 마나가 회복되질 않아서 무리일세.”
덕분에 그 광경을 직접 목도한 디스펜서들의 대부분이 대패닉!
그나마 믿을만한 구석이었던 마법사의 공격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걸 봐버렸으니까 저럴만도 했다.
그래도 진정해도 모자랄 판에 옆에 있는 마법사의 멱살이나 붙잡고 탈탈 털어재끼고 있는 디스펜서들을 보고서 이걸 어쩌면 좋나 싶었다.
“...호아?”
빼꼼, 내 주머니에서 얼굴을 내밀고서 그렇게 말하는 호아.
“안 돼, 참아.”
그런 호아의 머리를 꾹 눌러서 다시 주머니에 밀어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뭘 도륙을 내줄까야.
하지만 덕분에 안심했다.
호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는 상대인 듯 싶었으니까.
그럼 일단 지켜볼까.
아직 다들 패닉 상태기는 한데, 데스웜도 상당히 떨어져 있고 멀뚱히 있으니 그렇게까지 위험한 건 아니지 않나 싶었...
“꾸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ㅡ”
“아니넹.”
미친 존나 거대한 지렁이 새끼가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는데, 괴성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빠르게 이쪽을 향해 질주해왔다.
꿈틀꿈틀꿈틀...
육중한 몸을 출렁거리며 질주해오는 모습은 흡사 거대한 전함이 바다를 가로지르며 내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에 모래를 흩뿌리며 성대하게 모래 파도를 일으켜대는 것이 이게 내가 당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감탄하면서 지켜봤을 것 같은 장관이었고.
슈우웅ㅡ
그동안 준비라도 해두고 있었는지, 그런 데스웜을 향해 여러 마법들이 쏟아지면서 펑펑하고 터져대니까 진짜 장난 아니긴 했다.
뭐, 그런 마법들이 데스웜에게 유의미한 피해조차도 주지 못하고서 사그라드는 것도 보였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좆된 게 맞는 것 같았다.
나야 호아가 어떻게든 해주겠지만, 나 외의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어도 이상할 건 없어 보여서 냉큼 주머니 속 작은 호아를 꺼내서 집어던지려고 했을 때였다.
“휘익ㅡ”
바람 소리.
아니, 그거랑은 조금 다른, 날카로운 울림 소리.
“휘익ㅡ”
“휘이이익ㅡ”
“휘이이이익ㅡ”
그것이 넓게 퍼지듯, 사방에서 울렸다.
그리고, 이윽고 하늘에서 창들이, 아니 창처럼 거대한 화살들이 쏟아져 내렸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ㅡ!”
퍼퍼퍼퍽ㅡ!
온몸을 난자하듯이 데스웜을 덮친 거대한 화살들에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나뒹구는 데스웜.
하지만, 그 거대한 몸뚱이를 놀리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고통에 몸부림치며 난동을 부리다가, 온몸에 수십 발이 넘어 보이는 거대한 화살들에 꽂힌 와중에도 분노한 듯 머리를 들어 올리는 데스웜.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엑ㅡ!!”
이윽고 자기가 개빡쳤다는 걸 표현하듯 울부짖으면서 다시금 질주하려드는 것이 보였다.
“휘이이익ㅡ”
그리고, 또 그런 소리가 들렸다.
슈우우우우욱, 하고.
이번에는 정말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날개를 휘두르며 몸부림치는 데스웜의 위로 누군가가 내려온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푸화아아아악!
쿵, 하고 데스웜이 정수리로부터 녹색피를 내뿜으면서 고꾸라졌으니까.
휙, 휙하고.
그런 데스웜의 머리에서 뽑아든 창을 돌리면서 다시금 날아서 우리 앞으로 내려온 여자가 말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이 주변에 갑자기 마물들... 아니, 그대들은 몬스터라고 부른다고 했었지. 어쨌거나, 갑자기 마물들의 소요가 일어나 정리를 하느라 조금 늦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벌충할 테니 부디 용서해주길 바란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여자.
덕분에 커다란 젖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저...”
“이런, 또 실수했군. 소개가 늦었다. 나는 나르메르의 대전사 카루라라고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왜 그걸 나한테 말하냐고 말하려고 한 건데.
내 옆에 있는 한유진이라면 몰라도 나는 그냥 디스펜서지 딱히 이쪽의 대표도 뭣도 아닌데 내게 사과를 하지 않나 자기 소개를 하지 않나하는 카루라라는 양반을 보며 생각했다.
가슴 존나 크네 진짜.
아니, 이게 아니라.
대체 무슨 종족이지 싶었다.
등 뒤로 접혀진 날개나 무릎 밑의 다리를 보면 하피인 듯 싶어 보이는데, 멀쩡하게 달고 있는 팔과 손을 봐서는 하피는 아니었다.
그야 하피들은 팔과 손 대신에 날개를 달고 있는 종족들이었지 날개와 팔과 손을 같이 달고 다니는 종족이 아니었으니까.
애당초 대다수의 하피는 하늘을 날기 위해 몸의 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탓에 가슴이 작은 편이기도 하고.
아무튼 대체 카루라가 무슨 종족인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카루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건가. 어쩔 수 없군, 초대한 입장에서 제 시간에 늦는다는 무례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서 안전마저도 보장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파라오께서 명하신 바를 이행하지 못한 대전사인 나의 죄인 바,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
그렇게 말하더니, 대뜸 자기 팔을 내밀더니 창을 들고 있는 다른 쪽 손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서 기겁했다.
“아니, 개미친년아!”
사과를 안 받아준다고 지 팔을 자르려 드는 새끼가 어딨어, 씨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