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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130화 (130/523)

〈 130화 〉 나르메르 왕국에서의 나날 (2)

* * *

다행히도 오해를 풀어서 피가 난자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아무튼, 카루라는 제대로 다른 쪽에 사과하고 나서도 내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내가 오해해서 그대를 곤란하게 만들었었군, 다시 한번 사과하마.”

나 조금 사과한다는 말이 무서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사과한답시고 지 팔을 자르려들던 미친년을 만나서 그런거지만.

또 사과 안 받아준다고 자기 팔을 자르려 들지도 모르는 카루라에게 냉큼 말했다.

“뭐, 괜찮아요. 그보다 왜 절 대표라고 생각하셨어요?”

여기 모인 사람들만 백 명이 훌쩍 넘는데 그중에서 나를 콕 집어서 찾아와서 사과한 사실은 아직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자,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던 카루라가 말했다.

“그야 그대가 그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누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리 중에서 가장 강한 자이니, 그대가 대표인 줄 알았다.”

뎃...?

가장 강한 자라니, 내가?

아니, 그보다 누멘은 또 뭐야.

“하지만, 아무래도 이쪽 세상에선 강한 자가 아니더라도 한 무리를 이끌 수 있는 모양이더군. 오해해서 미안하다. 언젠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

카루라에게 누멘은 또 뭐냐고 물어보려고 했을 때, 카루라의 뒤를 이어서 하늘에서 내려왔던, 아무래도 카루라랑 같은 종족인 듯 보였던 다른 여자들이 말했다.

“의식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대전사장님!”

“음, 금방 가겠다. 그럼 실례하지.”

내가 미처 묻기도 전에, 그렇게 말하고서 떠나가버린 카루라.

“그래서 누멘이 뭔데...”

아무래도 저쪽 세상에서의 기나, 마나... 아무튼 그런 것들을 총칭하던 이름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

근데 그렇다고 친다면, 내가 품고 있는 기가 여기에 모여있는 디스펜서들은 둘째치고서, 마법사들을 모두 통틀어서도 가장 많다는 소리가 됐으니까 좀 이상했다.

마법사 중에서 이미 다 늙어빠질 정도로, 그러니까 수십 년이 넘게 마법을 익힌 듯한 사람들도 잔뜩인데 저 사람들이랑 비교해서도 내가 가장 많은 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그야 워낙 퍼먹은 영약들이 많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호아의 안에 있는 드래곤 하트라던지, 내가 차고 있는 아티펙트때문인가 싶어도, 이것들은 호아란이나 유스티티아가 손봐서, 바깥으로 기운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해놓은 것들이니 그건 아닐 거고.

“뭐, 아무래도 좋나.”

그런 것보다는 마중하러 왔다고는 해도 사막 한복판에서 대체 무슨 수로 이 많은 수를 옮기나 싶었다.

카루라와 같은 종족인 듯, 날개가 달린 여자들이 수십 명이나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 여자들이 일일이 날라다 옮길 것도 아닐 테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곧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사막 한복판에서 옮겨댈지에 대한 의문이 풀릴 수 있었다.

의식인지 뭔지하는 곳으로 향했던 카루라가 창을 땅에 찍는 순간.

“꾸어어어어어어엉...”

정수리에 구멍이 난 탓인지, 머리에 난 바람구멍으로부터 소리가 새는 듯한 괴성을 지르면서 죽어나자빠져있던 데스웜이 몸을 일으켜 세웠으니까.

자신을 대전사라고 소개한데다가, 데스웜같은 몬스터를 창으로 찔러 죽이길래 전사나 기사같은 거로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갈 예정인 곳은 수천 명의 달인급의 네크로맨서들로 가득한 왕국이었다.

애당초 네크로맨서만 남아버린 왕국이란 소리였다.

즉, 카루라도 네크로맨서인 거였다.

창으로, 거대한 몬스터를 찔러죽일 정도로 강하지만 일단은 네크로맨서인거다.

“네크로맨서가 창질도 잘하면 사기 아닌가...?”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의 대처법으로 알려진 것이 영창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근접에서 압박하면서 공략하는 것인데, 카루라는 근접전을 벌이면 창으로 찔러죽이고 거리를 벌리면 네크로맨시로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올라운더란 소리였다.

아무리 봐도 개사기같은데.

물론, 카루라랑 싸울 것도 아닌데 이런걸 생각해봤자기는 한데.

일단 저쪽에서 사람들을 부르니까 움직이기나 하기로 했다.

“꾸어어엉...”

“잘 가네...”

눈 깜짝하는 사이에 뚝딱뚝딱하더니, 데스웜이 끌어당기는 거대한 사막배같은 것을 만들어서 거기에 우리들을 태운 카루라를 비롯한 나르메르 왕국의 전사들은, 그대로 주위를 경계하면서 우리들의 호위로 전환했다.

“휘익­”

“휘이익ㅡ”

바람 소리 사이사이로 들리는 울림소리들.

저게 대충 이상 없음, 알았다같은 의미로 쓰인다는 것도 듣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 걸린대요?”

멍하니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사막을 지켜보다가 지루해져서 옆에 있던 한유진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런 내 말에 한유진이 말했다.

“저들의 말로는 대략 30 아이테루... 그러니까, 대충 300km정도 떨어진 곳에 나르메르 왕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속도라면... 여섯 시간도 안 걸리겠군요.”

빠르긴 오지게 빠르긴 한데, 순식간에 만든 사막 배로 시속 50km가 넘는 속도로 사막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근데, 마법으로 휙하고 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내 말에 흘끔 나를 쳐다본 한유진이 말했다.

“이 일대에 마법을 차단하는 결계가 처져 있어서 그렇게 하기는 힘듭니다. 좀 전의 데스웜 때도... 결계만 없었더라면, 저희끼리도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었겠죠. 사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주였을 테지만요.”

그랬구나.

네크로맨서들인 카루라의 일행들이 어째서 네크로맨시나 마법을 써서 데스웜을 잡는게 아니라 거대한 쇠화살이랑 창으로 꼬챙이로 만들었나 싶었는데, 애당초 마법을 쓰기 어렵게하는 결계를 왕국 주변 수백키로로 펼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게 가능한가 싶으면서도, 그런 것이 가능했으니까 세계 정부에서도 손을 못쓰고 요구를 받아주는 쪽으로 타협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법사들은 이곳에서는 그냥 짐 덩어리가 되고, 마법이 아니라 무공이나 그 밖에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는 전사들을 투입한다고 해도 존나게 넓은 사막이란 지형을 뚫고서, 네크로맨서들이랑 쌈박질한다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일 테니.

아무튼 여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모양이라 고개를 끄덕이고선 냅다 자리에 누웠다.

“그럼 저 좀 잘 테니 도착하면 깨워줘요.”

“...여기서 잠을 자신다고요?”

데스웜이 존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데다가, 원체 뚝딱뚝딱 만들어서 그런지 덜컹거리는 것이 탑승감이 장난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못 잘 정도는 아니어서 이런 데서 잠이 오냐는 듯 나를 해괴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한유진에게 말했다.

“어디서든 잠을 잘 수 있는 몸이라서요.”

말을 듣지 않는다고 체벌이랍시고 좁아터진 옷장에 고아원장년이 가뒀을 때도 개꿀잠을 잤던 것이 나였다.

다소 흔들리긴 해도, 내게 이 정도면 존나 아늑한 잠자리나 다름없었다.

“그렇습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한유진.

그러든 말든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상한 사람이군요.”

잔다고 하더니, 정말로 순식간에 잠에 들어버린 강한조를 보며 한유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이상한 사람.”

첫 만남부터 그러했다.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테러에서 살아남은 걸로도 모자라서, 다른 사람들을 구출하는 데에도 힘쓴 것으로 알려져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사람의 담당자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앞의 남자는 다소 특이한 남자긴 했다.

테러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와중에, 유일하게 범행자들을 붙잡기까지 했던 반도 지역에서, 또한 그에 대한 단서를 알고 있을 거로 추정되는 목격자로 엄중한 보호와 감시를 받는 와중에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서 자기 요구를 말해왔던 사람이니까.

‘이거 침대가 별로 안 푹신한데 바꿔줘요.’

‘음식이 좀 그런데 바꿔줘요. 기왕이면 한식으로.’

‘아, 그냥 좀 해줘요. 그거 없으면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세계 정부의 공무원, 그것도 안보와 관련된 기관의 공무원이라는 것을 밝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순순히 협조하거나 혹은 꺼림칙해하며 멀리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그는 그 둘 모두에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꺼림칙해하지도 않고, 하지만 협조도 안 하는, 그런 와중에 자기가 원하는 건 다 해달라고 요청해오던 이상한 사람이었으니까.

처음에는, 그렇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수백에서 수천이 넘는 인명피해가 있었던 테러의 한복판에서 상처하나 없이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서, 그런 테러를 겪은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태연자약했었으니.

더군다나, 누가 보더라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당연한 의심이었다.

하지만 끝끝내 숨기고 있는 무언가는 밝힐 수 없었고, 해당 일에서 손을 떼라는 위쪽의 지시까지 내려왔다.

무언가가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느꼈지만, 지시가 내려진 이상 더 이상 시간을 끌며 붙잡아둘 수 없었고, 그렇게 헤어졌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에서 다시 보게 된 그는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때, 분명히 앞으로 나서려고 했었죠.”

모두가, 심지어 자신조차도 패닉에 빠졌을 때.

유일하게 냉정하게 주변을 살펴보고, 고민하던 것이 역력해 보였던 그는, 데스웜이 달려들기 시작하자 분명히 앞으로 나서려고 했었다.

조금의 마나조차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그가 나선다고 무언가가 바뀌는 것도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서 그랬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때마침 도착한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문제는 없어졌지만.

나르메르 왕국의 대표, 카루라라는 이름의 대전사가 그를 이쪽의 대표로 착각하고서, 직접 사과하기까지 했으니 분명 무언가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심지어 그녀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가 이 무리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고.

“...다시 살펴보더라도, 조금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지는데.”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자고 있는 그의 몸에 깃들어있는 마나를 살펴봤지만, 여전히 그는 아무런 마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육체를 고도로 단련한 전사인가 싶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잘 단련해놓은 듯한 근육질의 몸이긴 했지만, 태생부터 전사에 어울리는 몸을 타고나는 오크족들과 비교하자면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인간이 타고나는 골격과 근육의 질을 생각해보면, 아마 그의 순수한 완력은 그보다 체격이 작은 오크와 비교해도 모자랄 것이 분명했다.

어느 면으로 봐도, 가장 강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데.

“...일단 지켜보도록 할까요.”

위측에서 이 이상의 조사는 그만두라고 했기에 그만두기는 했었지만, 그에 대한 의심을 아예 내려놓았던 것은 아니었으니 이 기회에 개인적으로 그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조사라면, 위쪽에서도 뭐라할 명분은 없을 테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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