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시련, 그리고 (1)
* * *
살았나?
살았다.
내 얘기가 아니라 내가 안고 있는 한유진의 얘기였다.
“으, 으...”
휘날리는 파편들과 함께, 충격으로 날아갔지만 나야 이미 입고 있었던 ‘천호의 갑주’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뼈다귀 드래곤이 내뿜었던 숨결을 직격으로 맞는 거면 몰라도, ‘천호의 갑주’가 단순히 튀어버린 파편에 뚫릴 정도의 아티펙트는 아니었으니까.
파편 말고도 충격에 이리저리 튕기긴 했지만, 그마저도 ‘천호의 갑주’의 뛰어난 충격 흡수 능력으로 멀쩡했다.
다만, 나는 몰라도, 이리저리 같이 나뒹굴었던 한유진은 신음성만 흘릴 뿐 좀처럼 눈을 뜨질 못하고 있었다.
숨도 제대로 쉬고 있고, 어디 다친 곳도 없어보이니 단순한 기절이겠지만.
“후우...”
그래도 다행인가.
무너진 건물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버린 파편에 쑥대밭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주변을 보면 이게 어딘가 싶었으니까.
『끄학하학하학하하학학ㅡ! 여전히, 여전히, 여전히여전히여전히 아름다운 빛이구나, 나의 반쪽이여, 내 영혼의 반려여, 내 사랑스러운 영혼이여, 그대 여전히 아름답도다ㅡ!』
그리고, 평화로웠던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장본인.
아니, 그 장본인의 목소리가 여전히 쩌렁쩌렁하고 울려 퍼졌다.
광소.
그렇게밖에는 들리지 않는 웃음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치듯이 계속 울렸다.
『그대여, 이번에야말로 그대에게 내 청혼을 받게 하고 말리라, 내뿜어라, 나의 사랑스러운 드라가니아스. 이리로 오라! 나의 귀여운 노예들아! 나에게,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빛을 숭앙하는 망자들의 여왕을 데리고 오라!』
쿠오오오오오오오ㅡ
다시 한번, 뼈다귀 드래곤의 입가로 마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런 뼈다귀 드래곤 위로 열린 거대한 문을 통해서, 무수한 해골들이 쏟아부어지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
그것도, 드래곤의 사체를 일으켜세워 부려먹는 걸로도 모자라서, 족히 수만이 넘어 보이는 해골들을 부리는, 초월적으로 강력한 네크로맨서.
상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광경에 입이 다물리지가 않았다.
근데.
『여가 두려워 얼굴조차도 비추지 않는 겁쟁이같은 자의 청혼을 받아줄 성 싶으냐! 일어서라, 영웅들아! 왕들아! 여의 신민들을 지켜라ㅡ!』
목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빛. 그리고, 이쪽에서도 수많은 군세가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저쪽이 초월적으로 강력한 네크로맨서였지만, 이쪽의... 꼬맹이 파라오도 수천이 넘는 달인급의 네크로맨서로 이루어진 나르메르 왕국의 지배자이자, 파라오였다.
하늘에서 쏟아 부어지는 뼈다귀들과 비교하면 숫자가 부족했지만, 하나같이 훤칠한 무장을 갖춘 군세들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파라오를 도와라ㅡ!”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과 함께 번쩍번쩍하고 그렇게 일어선, 영웅이니 왕이니하는 말처럼 하나같이 뛰어나 보이는 무장을 갖춘 군세들 곁으로 조금 빈약하긴 해도, 나름 무장들을 갖춘 군세들이 더해지는 것이 보였다.
잊고 있었는데, 나르메르 왕국의 전원이 달인급의 네크로맨서였지...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가 이쪽이 숫자가 조금 부족했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뼈다귀들은 밑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화살을 쏘아재끼는 군세들의 공격에 죄다 개박살이 나면서 뼛가루가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문제는, 저딴 뼈다귀가 아니라서 그렇지.
“전사들이여, 파라오를 지켜라ㅡ!”
카루라.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군세를 일으킨 것에 더불어서, 본인도 창과 검을 휘두르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해골들을 박살내고 있는 카루라가 보였다.
촤아악, 하고 그런 카루라를 따라, 날개가 있는 자들이 쏟아지는 해골들을 향해 창과 검을 휘두르며, 화살을 쏘아 재끼면서 떨구는 것도.
그중에서 몇몇은, 마나를 모으고 있는 뼈다귀 드래곤을 향해 데스웜에게도 쏘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창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화살들을 쏘아대고 있었지만, 죄다 소용없어보였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아니, 위험한 거 맞다.
군세들과 군세들의 격돌은 백중세지만, 가장 중요한 뼈다귀 드래곤의 숨결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은 없어 보였으니까.
근데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내가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내려오지도 못하고 하늘에서 분쇄당하고 있는 해골들은커녕 어떻게 저런 싸움에 끼어들 깜냥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기껏해야 자기 보호 수준에 불과한 내가 저기에 끼어들 방법이...
“...아이, 씨발.”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할 수 없어서 품에서 꺼낸 호아에게 명령했다.
“호아, 한유진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줘.”
“호아?”
나는 어쩌냐고 묻는 호아에게, 한유진을 냉큼 안전해보이는 곳에 보내두고 오라고 명령하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호아가 한유진을 안고서 순보를 이용해서 빠르게 이곳에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이걸로, 내 보험 하나가 없어진 셈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뒈지는걸 두고 보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이런 내가 무슨 도움이라도 될까 싶었지만 한창 싸움이 격해지고 있는 곳으로 향해 달려갔다.
“...옘병.”
재수없게 튀어버린 파편에 뒈져버린 디스펜서나, 달인급에 이른 네크로맨서 같은 강자라도 뼈다귀라고는 해도, 드래곤이 내뿜는 갑작스런 숨결에 맞아 죽어버린 듯한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이 보였다.
“씨발, 진짜...”
다른 디스펜서들은 몰라도, 죽어버린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달인급에 이르렀던 네크로맨서... 강자들인데.
그런 사람들도 저렇게 쉽게 죽어나자빠져버린 와중에 내가 진짜 가서 뭔 도움이 되기라도 하는 걸까.
애당초, 저 뼈다귀 드래곤이 곧 있음 내뿜은 숨결은 또 어쩌려고.
근데, 그래도 멈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뼈다귀 드래곤의 숨결이 완성된 것이 먼저였다.
『어디 이것도 막아보아라, 그대가 아끼는 자들의 죽음을, 막아보아라, 나의 사랑스러운 그대여!』
광기에 찬 외침과 함께, 뼈다귀 드래곤이 다시 한 번 숨결을 내뱉었다.
“안 돼.”
가장 격화되고 있는 전장을 향해 뿜어지는 뼈다귀 드래곤의 숨결.
그곳에 있는, 날개를 펄럭이며 창을 휘두르고 있는 카루라가 보였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왜 도망치지 않는 건가.
쏘아지는 숨결을 보고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카루라를 보며 그렇게 묻고 싶었다.
“안 돼, 씨발!”
꼬맹이 파라오는 대체 뭘 하는 거야.
아까처럼 빛으로 된 뭔지를 쏘지 않고.
존나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내가 할 말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내 바람을 들었을까.
허공에서 꼬맹이 파라오의 외침이 들려왔다.
『암무트여! 물어라!』
콰아아앙!
거대한 짐승이, 땅을 박차며 날아들 듯이 뿜어지는 뼈다귀 드래곤의 숨결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원래도 저렇게 거대했던가 싶을만큼, 거대해진 짐승이, 꼬맹이 파라오가 부리던 괴물이 숨결을 삼키며, 그대로 뛰어올라서 뼈다귀 드래곤을 물어뜯는 것이 보였다.
콰드드득!
개가 뼈다귀를 어금니로 아작내는 것처럼, 뼈만 남았다고는 해도 드래곤이었던 것을 한입에 부수어 삼키는 거대한 괴물.
『과연, 영락해버린 신의 짐승이로다...! 나의 사랑스러운 드라가니아스를 한 입에 부수어 삼켜버리다니...! 여전히 탐나는구나! 살을 발라내 나의 사랑스러운 드라가니아스를 대신하리라! 터져라! 드라가니아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그런 외침과 함께 머리째로 암무트에게 씹혀서 반절이 박살나버렸던 뼈다귀 드래곤이 뼈만 남은 양 손으로 암무트를 붙잡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터졌다.
푸콰아아아앙ㅡ!
거대한 폭발과 함께, 반신이 날아가버린 거대한 짐승이 추락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터져나간 뼈다귀 드래곤의 파편들이 사방팔방으로 내리쏟아지는 것도.
“아아아아악ㅡ!”
퍼퍼퍼퍽, 쏟아지는, 뼛조각들에 쓰러지는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그들보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쏟아지던 뼈다귀들을 처리하던, 카루라를 비롯한 날개 달린 자들이었다.
“씨발, 존나...!”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온몸의 힘을 두 다리에 모았다.
한계까지 강화된 웨어울프의 종족 특성.
신체 능력을 다시 한 번 다리에만 집중해서 뛰어올랐다.
콰직!
단번에 수 미터를 도약했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콰직, 콰직, 콰지직!
그러니까, 무너진 건물이고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뼈다귀 드래곤의 뼛조각이고 뭐고 죄다 밟아서 뛰어올랐다.
그리고, 터져나간 뼈다귀 드래곤의 뼛조각에 날개가 찢겨 추락하고 있던 카루라를 받아안아 들었다.
“후읍...!”
“그, 그대가 어째서ㅡ”
두 눈을 제외하곤, ‘천호의 갑주’로 둘둘 둘러싸여있는데도 날 알아본 듯 카루라가 그렇게 말했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몰라요, 씨발. 지금 그런 거 물을 때에요?”
어떻게 씨발, 존나 여기까지 올라온 건 좋은데 난 날개가 안 달렸다.
수십 미터를 어떻게 뛰어오른 건지도 모르겠는데 이대로는 그냥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옘병, 그걸로 뒤지진 않겠지만.”
문제는 난리가 나버린 덕분에 생긴 빈틈 사이로, 나랑 같이 쏟아부어 지고 있는 뼈다귀들을 봤을 때 내가 땅에 발을 붙일 때쯤이면 저 뼈다귀들이랑 사이좋게 놀게 생겼다는 것 정도.
“에라이, 씨발 몰라. 카루라씨 저 꽉 붙잡아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내 몸을 꽉 끌어안는 카루라를 한 손으로 안아들고서 그대로 추락했다.
콰지지직!
“씨이이이이이이이이발...!”
찌르르르르, 다리가 존나게 저릿저릿했다.
사실상 고층 빌딩에서 그대로 두 다리로만 착지한 거나 다름없는데도 다리가 개박살나기는커녕 조금 저릿한걸로 만게 어딘가 싶긴 한데.
“딱, 따딱, 따따닥...!”
그런 나랑 거의 비슷하게 땅으로 내려온 뼈다귀.
나랑 달리 다리가 개박살이 났는데도 순식간에 달라 붙어가면서 복구중인 뼈다귀가 내게 빠르게 기어오면서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지랄하네, 진짜 좆같은 뼈다귀새끼가.”
촤르르륵, 철컥!
두 팔을 감싸오는 아티펙트.
‘용 발톱’과 함께 푸슈슛, 하고 ‘용 발톱’ 위로 웨어허니비의 독침이 튀어나왔다.
“다시 뒤져, 씹새야!”
퉁, 퉁퉁퉁, 퉁!
“따, 따악...!”
퍼퍼퍼퍼퍼펑...!
한 손에서 나온 다섯 독침이 거의 동시에 쏘아지자 퍼퍼퍽하고 독침에 처맞은 뼈다귀가 가루가 되어버렸다.
“...세긴 세네, 진짜.”
뼈다귀를 개박살내놓은 걸로도 모자라서, 땅 깊숙이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며 처박힌 독침 다섯 개를 보니까 쏘는 데에 집중했다는 유스티티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래서야 양손에 작은 대포를 다섯 발씩 달고 다니는 셈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뼈다귀를 개박살낸 꼬라지를 보아하니, 방금처럼 다섯발 전부를 쓰는게 아니라 한발씩만 제대로 맞추면 박살내버릴 수도 있을 것 같고.
하지만, 지금은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긴 했다.
“괜찮아요? 카루라씨.”
“나는... 나는 괜찮다. 그보다, 그보다 파라오께서...”
한쪽 날개가 반절이 넘게 찢어진 주제에 파라오를 걱정하는 카루라를 보고서 울컥하고 무언가가 치밀어오르려고 했지만 지금 카루라에게 뭐라고 할 때도 아니긴 했다.
먼저 떨어진 뼈다귀를 뒤이어서 땅으로 떨어지는 해골들이, 잔뜩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쓰으읍.”
철컹, 하고.
이미 쏘았던 오른쪽 ‘용 발톱’의 다섯 독침을 다시 보충했다.
원래는 한 발에, 사정 한 번 한 정도의 체력이 소모되는 꿀벌 펀치지만, ‘용 발톱’의 도움이라면 그게 다섯 발로 늘어난다.
무려 다섯 배의 효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해골들에게 죄다 쏘아대면 아무리 오늘은 아직 한 번도 떡치거나 하질 않아서 온전히 체력을 보존하고 있다고 해도, 4, 500발 정도 쏘면 한계였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꿀벌 펀치만 쓰고 있는 와중에서 그렇다는 거지.
내 몸에 두르고 있는 ‘천호의 갑주’나 ‘용 발톱’ 역시 기를 사용하는 아티펙트고, 지금 내 신체를 강화 중인 웨어울프의 종족 능력 역시 체력을 소모한다.
전부 감안하면, 쏠 수 있는 웨어허니비의 독침은 앞으로 1, 200발 내외.
지금 내 주위에 있는 해골 새끼들에게 한 발씩만 쏴줘도 턱없이 모자라다.
그러니.
“딱딱딱딱...!!”
어떻게든 돌파하기 위해서, 마침 가야할 길을 가로막은 채 몸을 일으키는 해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냥 펀치다, 이 씨발 해골 바가지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