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시련, 그리고 (3)
* * *
“하악...!”
오연발에 이어서, 다시 오연발.
다 합쳐서 십 연발의 꿀벌 펀치를 처맞고 요단강을 건넌 해골 기사를 뒤이어서, 세 마리나 더 되는 해골 기사와 마주했다.
이미 앞서 상대해본 경험이 있어서, 냅다 들이박아서 몸에 ‘용 발톱’을 꽂아박고서 십연발로 박살을 내주긴 했는데.
하필 마지막 새끼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카루라를 향해 찔러넣은 단검을 막으려다가 내 옆구리가 대신 찔려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이 모양 이 꼴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하악대는 꼬라지인 지금 같은 꼴.
“그대여... 괜찮은가...?”
“괜찮, 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는 금방 나으니까요.”
안 괜찮았다.
검이 낡아빠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검에 뭐라도 발라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재생할 체력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것인지.
해골 기사의 단검에 찔려버린 옆구리 상처의 재생이 더딘 것이 느껴졌으니까.
어질어질한 거 보니까 체력이 다 닳은 게 아니라 검에 뭘 발라둔 것 같고.
만독불침은 아니더라도, 처먹은 영약들 덕분에 독에 대한 내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 내가 이러는 거 보니까 꽤나 강력한 독인게 분명했다.
근데 이런 와중에 어떻게 안 괜찮다고 말할까.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해야만 했다.
정말로 안 괜찮지만.
“딱, 따닥.”
“따다닥... 따다닥.”
“따닥.”
“딱...!”
연이은 세 해골 기사들을 상대하느라 시간을 쓰는 동안, 어떻게 돌파했던 것들이 무색할만큼, 여태껏 지나쳐온 해골들보다도 더 두껍게 다시 둘러싸이고 말았으니까.
심지어 아까랑 달리 체력이고 몸이고 그나마 멀쩡한 것도 아니고, 체력이고 몸이고 죄다 씹창나기 직전인 와중에 이랬다.
“따악...!”
“따다닥...!”
염병할 해골 기사도, 둘이나 더 끼어있고.
남은 꿀벌 펀치는, 대충 서른 발 정도.
아니, 옆구리에 난 상처를 무시하고 한계까지 쥐어 짜내면 오십 발 정도 가능할 것도 같고.
고작 그걸로, 적어도 꿀벌 펀치를 열 발은 처박아야 뒈지는 해골 기사 두기를 동시에, 그것도 그 외에 잡다한 해골 바가지들 수십 이상을 같이 상대하면서 뚫어야 한다라.
아마도 여기서 죽는다고, 그렇게밖에 여겨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품을 뒤적거리려다가 이내 지금 그딴 짓을 할 겨를이 없다는걸 깨닫고서, 품에 안겨 있는 카루라에게 부탁했다.
“저기, 미안한데 제 옷 안쪽에 있는 사탕 같은 것 좀 꺼내주시겠어요?”
“사, 탕...?”
대뜸 내가 말을 건네자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을 짓던 카루라가 이내 의혹어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빨리요.”
“아,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고서, 내 품을 뒤적거리는 카루라.
“딱, 따다닥!”
그리고, 그 잠깐 사이를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지 검을 뻗어 보내는 해골 기사의 이빨 딱딱 대는 소리와 함께, 해골 바가지들이 달려들었다.
“찾았다... 하지만, 이걸 대체 왜ㅡ”
“먹여줘요!”
“아, 알았다.”
손을 뻗어서, 카루라가 내 입 안으로 유스티티아가 만들어준, 사실상 이럴 때 쓰라고 준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 내가 가진 것중에서 엘릭서같은 걸 제외하곤, 그나마 써먹을 법한 물건인 폭주제를 넣어줬다.
그리고, 난 그걸 씹었다.
아작!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씹어서 삼키는 순간, 거칠게 맥동하는 심장...
아니.
내 자지.
“아이, 씨발.”
내 전용 기프트 폭주제라고 했으니까, 당연한 귀결이었지만 내 기프트가 발현한 부위인 자지가 존나 우뚝 솟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폭주하기 시작한 내 기프트가, 한계를 넘어선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잉...!
“딱, 따닥...?”
남은 발수는, 대충 오십 여발.
내가 쏠 수 있는 최대한도의 꿀벌 펀치.
그것을 오직, 한 발에 집중했다.
카각, 카가가각, 카가각...!
상정 외의 거대한 웨어허니비의 독침이 솟아 나오기 시작하자, ‘용 발톱’이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비틀리며, 뜯겨나가는 와중에 하나로 된 크고 아름다운 독침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필살.”
기껏 유스티티아가 만들어준 ‘용 발톱’의 한짝을 아작내가면서 회전하는 거대한 독침을 보며, 따다닥하고 해골 기사가 마구 뭐라고 외치는 것이 보였다.
내가 해골어를 전공하거나하지는 않아서 뭐라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막으라던가 죽이라던가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근데, 이미 늦었다.
“존나 큰 꿀벌 펀치.”
콰아아아아아!
내 팔에서 나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소리와 함께 발사된 웨어허니비가 그대로 눈앞에 있는 해골들을, 기사고 그냥 해골이고 뭐고 구분하지 않고 죄다 갈아버리면서 나아갔다.
“딱, 따다닥...”
“따아아아악ㅡ”
드르륵, 드르르륵하고.
존나게 회전하면서 나아가는 독침에 빨려들어가듯이 휘말려서 죄다 갈려버리는 해골들.
존나 속 시원한 광경이긴 한데, 그걸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발사된 독침의 반동으로 완전히 뒤로 꺾여나가서 아작이 나버린 팔을, 채 재생할 힘도 없이 겨우겨우 버티고 서있는 중이었으니까.
꿀렁꿀렁...
그 와중에, 내 옆구리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피가 도트뎀을 입히고 있는 와중이고.
“하, 흐... 후으읍... 카루라씨, 한 알 더.”
“하, 하지만.”
“빨리요.”
존나 앞에 뻥하고 길을 뚫어버리긴 했지만, 그마저도 금방 메꿔지고 말 거다.
애당초 앞만 뚫었지, 뒤쪽의 해골 바가지들은 여전히 있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나중에 어떻게 되던간에 당장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물론 지금 가장 좋은 건, 그야 엘릭서긴 한데.
이건...
날개 한 짝이 완전히 아작나버린 카루라한테 먹여야 하니까 쓰긴 그렇고.
소거법에 따라서, 내가 쓸만한... 남은 건 폭주제뿐이었다.
“...차라리, 차라리 이제부턴 내가 대신 싸우겠다.”
“......”
그렇게 말하는 카루라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헛소리 말고 달라는 거나 줘요.”
겉보기엔, 카루라는 날개 한짝만 날아갔을 뿐 존나 멀쩡해보이긴 한데.
사실 숨이 꼴딱 넘어가려고 하고 있는 나보다 카루라 쪽이 중상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 내 옆구리에 찔러넣어졌던 해골 기사의 단검과 비슷한 독... 혹은 저주의 일종이 아닐까 싶었으니까.
아무리 회복이 더디다고 해도, 피조차도 멎지 않고 계속해서 썩어들어가는 카루라의 날개가 그 증거였다.
엘릭서를 그녀에게 건네주려고 했던 것도, 그거 때문이고.
애당초, 엘릭서 하나로 어떻게 퉁칠 수 있는 상처이기를 바랄 뿐이지만.
“카루라씨, 아니, 카루라.”
“......”
으득, 하고 이를 갈면서 내 품에서 꺼낸 사탕을, 폭주제를 다시금 꺼내드는 카루라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까스로 입을 벌렸다.
아까처럼 존나 큰 꿀벌 펀치를 갈기는 건 무리다.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폭주제를 통해서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내면 냅다 뛰기 위해서 자세를 고쳐잡으며, 입안에 넣어진 폭주제를 씹으려고 했을 때였다.
『그대, 고귀한 영웅의 자질을 갖춘 자여! 나, 암무트가 그대에게 힘을 빌려주노라!』
이빨로 폭주제를 깨물기 전에, 그런 외침과 함께 거대한 짐승이, 피투성이가 된 짐승이 뛰쳐나와서 해골 바가지들을 짓밟는 것이 보였다.
“어...”
“암무트...! 살아있었는가...!”
힘을 빌려주겠다면서 나온 것은 좋은데.
뼈다귀 드래곤을 집어삼켰을 때랑 비교해서, 처음 봤을 때랑 비교해서도 무척이나 작아져 버린 암무트.
심지어, 온몸이 피투성이에 반신은 시꺼멓게 썩어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 암무트를 보자, 대체 누가 누굴 돕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없다, 이 세계의 영웅의 자질을 가진 자여. 내 힘을 빌리겠는가? 답하라!』
그리고 왜 갑자기 남을 영웅의 자질이니 뭐니하는 거고.
“뭐든 됐으니까 도와주기나 해봐요!”
근데,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도 숨이 꼴딱 넘어갈 지경이고, 암무트도 숨이 넘어가는 것 같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할지는 몰라도 힘을 빌려주겠다는데 그게 어딘가 싶었으니까.
『나, 죽음으로 심판하는 자, 암무트! 그대를 시험하노라! 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보아라, 영웅이 되고자 하는 자여! 그대, 나 암무트의 힘을 빌리고자 하거든 그대의 ‘죽음’을 극복하라!』
아니, 그게 갑자기 뭔 개소리ㅡ
그렇게 말하며 쩌억, 하고 벌어지는 암무트의 입.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런 암무트의 입 속이었다.
『오오, 이런 와중에도 그대들의 신민들을 걱정하는가. 실로 눈물 겨운 희생이로구나. 아름답도다, 나의 반려여!』
“여는 너 같은 대머리의 짝이 된 기억은 전혀 없다! 개소리 집어 치우거라!”
『끄흐흑, 흐흐흐하하하! ‘반쪽’이 날아가면서 더 이상 신성조차 끌어오지 못하는 주제에 여전히 당돌하구나. 어서 그대를 품고 싶구나. 그대의 살을 발라, 뼈를 드러내 만들어낼 나의 신부는 얼마나 아름다울지 기대되는구나!』
“망할, 망종이...!”
끄드드득, 팔과 다리에 묶인 쇠사슬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그런 물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것을 어찌 저런 자가 지니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처음에 이 세계에 넘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왔던 사령술사.
그때는, 힘을 다소 들이긴 했어도 크게 어렵지 않게 물리쳤던 사령술사였는데, 그 잠깐 사이에 대체 무엇을 했는지 이상한 것들을 잔뜩 끌고 온 지금은, 갑작스런 습격을 허용한 것도 모자라서 심지어 암무트조차도 눈앞의 사령술사가 부리는 골룡에 의해 심대한 타격을 입고 쓰러지고 말았다.
지금도...
아직, 가느다랗게 연결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암무트가 자신과 연결되어있는 존재이기에, 자신이 살아있음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오오, 아름답구나. 망령을 다루는 자이면서도 이렇게 티없이 깨끗한 영혼이라니. 탐나는 구나, 내 색으로 물들이고 싶구나. 그대여, 나의 영혼의 반려여. 그대의 영혼이 타락하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라도 가는가?』
신성을 봉하는 봉인구를 가져와서, 암무트의 격퇴로 타격을 입은 자신을 묶은 걸로도 모자라서,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물건으로 자신의 몸 속에 있는 파편을 끄집어내려드는 사령술사를 보며, 파라오는 이에 저항하고자 했다.
『끄흐흑, 흐하하하, 그래도, 정녕 그래도 괜찮겠는가? 그대가 붙들고 있는, 그대의 신민들의 목숨이, 그대가 내게 저항하고자 힘을 쓰는 순간 그 힘을 다할 것이거늘.』
“개자식...!”
『귀엽고, 사랑스러운 욕이로구다. 고귀한, 너무나도 순수한 이세계의 파라오여. 그대의 혓바닥이 내뱉는 욕설은, 설령 욕이라도 할지라도 달콤하고 사랑스럽도다.』
“대머리 새끼...!”
『...이건 대머리가 아니고, 하얀 백골인 것이다.』
“아무리 대머리가 부끄럽다고 해도, 살을 전부 발라내 뼈만 남기다니, 그 각오만큼은 칭찬해주마.”
『...좋다, 내 영혼의 짝이 될 영혼이니 가급적이면 아름다운 그대로 끄집어내고자 했거늘. 그렇게 나온다면야 어쩔 수 없구나.』
쿵, 하고 사령술사가 손에 쥐고 있는 수정구를 움켜쥐자, 몸 안에 깃든 파편이 요동치며 밖으로 끄집어내지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으, 흐으윽... 끄으으윽...!”
『...다소 망가지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울 테니. 자, 어서 나오거라. 나에게 그대의 혼을 보여다오.』
남은 힘을 다해서, 어떻게든 버텼다.
지금은 안됐다.
지금은...
지금 자기가 죽어버린다면, 갑작스러운 습격에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는 수백이 넘는 신민들이,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테니.
이렇게.
이런 식으로.
그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보기 위해서, 그 세월을 버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몰라도, 그 아이들은...
새롭게 넘어오게 된 이 세상에서, 가능하면 행복하게 살아서, 행복한 안식을 맞이하길 바랬다.
이런 건.
이런 걸 원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저항에 덧없을만큼.
쯔어어어억...!
『오, 오오오오, 오오오오...!』
육신과, 영혼의 연결이 약해짐을 느꼈다.
영혼이, 몸에서 벗어나서 끄집어내지는 것이 느껴졌다.
간신히 이어붙이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한계.
끄드득, 하고.
분리되어가는 영혼이, 쇠사슬에 얽힌 채로 끄집어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실로 아름다운 영혼...! 거기에, 이것이 ‘신의 파편’인가...! 과연, 이 또한 아름답구나...! 아아, 그래. 그대의 비어버린 그릇은 내가 다시 일으켜, 리치로 다루어줄테니 안심하라, 나의 영혼의 반려여. 그대들의 신민들도, 나의 사랑스러운 노예로 다시 일으켜줄 테니, 안심해도 좋다.』
“아, 안 돼...”
『나에게 오라, 그대의 새로운 주인에게로ㅡ』
손을 뻗어서, 내 영혼에 그 뼈만 남은, 추레하고 더럽기 짝이없는 손을 대려고 하는 사령술사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내서 저항하려고 했을 때였다.
투쾅!
굉음과 함께 날아가버린 손이, 그대로 분쇄되어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끄으으으으윽ㅡ?!』
손이 날아간 팔을 부여잡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사령술사.
그런 사령술사의 위로, 칠흑으로 물든 짐승이 내려왔다.
『씨발, 페도에 시체박이라니 존나 좆같은 새끼.』
그르릉하고 울음소리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몸을 일으킨 짐승.
“아, 암무트더냐...?”
『그 양반은 지금 뻗어있고, 아무튼 저 씹새끼가 뭔 짓 하진 않았죠?』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짐승.
아니, 짐승처럼 보이는 갑주를 온몸에 두른 사내를 보고서.
그런 사내의 두 눈에서 번쩍이는 푸른 기운을 보면서, 저 자가 누군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대는, 카루라의 짝...”
『아직 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 일단 그건 넘어가고. 약발 떨어지니까 일단 보충 좀 할게요.』
뒤적이면서, 꺼내든 무언가를 입에 처넣고 으적으적 씹은 사내가 말했다.
『그리고, 좀 지랄 날 것 같으니까 움직일 수 있으면 비켜있고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