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시련, 그리고 (4)
* * *
암무트의 시험.
대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보여주는 시험에서 내가 본 ‘죽음’은 고독사였다.
유스티티아에게, 호아란에게, 그리고 릴리스에게마저 버림받아서, 쓸쓸히 홀로 죽어가는 죽음.
그것이 암무트가 내게 보여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었다.
고아원에서 나와서 혼자 산지도 수년이 훌쩍 지나버린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죽음이, 고독사라니.
하지만 덕분에 잘 알 수 있었다.
환상 속에서의 내가.
내가 본,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겪는 내가.
‘...이래서야 더 이상 쓸모가 없겠네.’
‘실망했느니라, 더 이상 너는 본녀의 자식이 아니니, 그런 줄 알거라.’
‘응, 너라면 좀 더 재미있는 걸 보여줄 줄 알았는데, 무리였나보네... 뭐, 됐나. 다른 걸 찾으면 그만이니까...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걸 찾을 수 있겠지.’
그녀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내가 느꼈던 고통은, 공포는, 그리고 두려움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 ‘고독사’인지 알 수 있게 해줬으니까.
병들어 죽어가는 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릴리스의 붉은 눈동자.
실망했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며 고개를 돌려서 떠나가는 호아란의 황금빛의 눈동자.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그저 그렇게 말하고서 떠나가는 유스티티아의 푸른 눈동자를 봤을 때.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이 바보야? 그러게 누가 그렇게 까불래?’
‘음, 본녀가 한조, 너의 마망이니라!’
‘역시 재밌는걸, 이렇게 된 건 상정외이긴 했지만, 오히려 잘 됐어. 그보다, 벌써 다 써버렸는데, 실험용으로 쓸 정액, 좀 더 줄래?’
그녀들이 평소, 내게 보내오던 눈빛이 얼마나 따듯했던 것인지.
내가 얼마나 그녀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는지 덕분에 아주 잘 알게 됐으니까.
그녀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그래~? 어울려~? 헤헤...’
‘두고 보라고, 오빠. 빚만 다 갚으면, 그땐 리벤지니까! 오빠가 나한테 주인님이라고 하게 해줄 거니까 잔뜩 기... 꺄흑!’
‘나의 왕이시어, 본 여왕을 잔뜩 귀여워해 주세요...’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무척이나 따듯한 눈빛을 보내오던 여자들이 더 있었던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릴리스와 호아란, 유스티티아만이 아니라, 그녀들조차도 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떠나갔을 때.
그때서야 알 수 있었으니까.
멍청해서.
겁에 질려서.
모른 척하고 있던 것들을.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거? 그것도 아니면...’
내 기프트에 발현된 능력들.
그 본래 주인들인 웨어울프, 에일레야와 사티로스인 사티, 그리고 웨어허니비인 릴리아나가 내게 보내오던 호의를, 내가 모른 척하고 있던 것을 너무 뼈저리게 알려줬으니까.
그녀들이 나를 떠나가는 환상을, 암무트의 시험으로 보게 된 환상을 보게 돼서야 알 수 있었다.
‘그대여.’
‘정신 차리거라.’
‘제발... 제발 부탁이다, 그대여.’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가장 사랑받아야 마땅할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주제에.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한 몸조차도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나 스스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주제에, 그런 내가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너, 나를 좋아하기는 했니?’
그래서 상처를 줘버렸다.
지금도 말할 수 있었다.
아마,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를 좋아해 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저 나도 남들과 똑같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아보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짓을 저질러봤던 것 뿐이니까.
그래서 상처를 줘버렸다.
정말 미안한 짓을 한 셈이었지만, 이제와서 사과하기에도 늦어버린 일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하지만.
‘이거 놓ㅡ’
떠나가는, 환상 속의 릴리스를 붙잡았다.
아직 지나가지 않은 일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창짓이나 하면서,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여자들을 돈만 주면 안고 다니는 신세긴 해도.
설령 그래서, 나를 사랑해주는 그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또 그녀에게 받는 사랑을 전부 돌려주지 못한다고 해도.
‘못 가요, 절대로.’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녀들이 나를 떠나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받은 사랑을 전부 보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녀들이 나를 두고 떠나가는 죽음을.
홀로, 그렇게 죽어가는 죽음을, 겪을 생각 같은 건 없어져 버렸다.
이기적이고, 욕심으로 가득한, 그런 억지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녀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거 놓으라고 내가 말ㅡ 으읍...!’
그러니, 떠나가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었다.
환상 주제에, 정말로 릴리스랑 똑같이.
갑작스런 내 행동에 벙찐 표정을 짓는 릴리스에게, 환상 속의 내가 말했다.
‘어머니, 내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릴리스만이 아니라.
나를 떠나가려던 환상 속의 호아란도, 유스티티아도, 에일레야도, 사티도, 릴리아나도...
그 모두를 붙잡은 환상 속의 내가 말했다.
그녀들이 나를 버릴 수 없도록.
가족이라는 것.
내가 고아라서, 그것이 언제든지 흩어지거나, 너무나도 쉽게 사라져버릴 그런 인연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뚜렷한 증거를 원했다.
‘내 아이를 낳아주세요.’
피를 섞고, 태어난 자식은 설령 가족이 아니게 되더라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은 일단은 아무리 지랄해도 부정할 수 없는 인연이니.
쩌저적, 환상이.
내 ‘죽음’의 형태가 일그러졌다.
홀로, 쓸쓸하게 죽어가던 나에서.
북적북적하게, 아이들로 잔뜩 둘러싸인 나로.
‘...이 개변태새끼가, 죽기 직전까지도 임신시키고 가는 게 어딨어?’
부푼 배를 끌어안고서 나를 내려다보는, 앙상하게 늙어 마른 내 손을 잡고서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를 보고서 환상 속의 내가 말했다.
‘그게 생길 줄은 몰랐는데. 나도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네요, 어머니.’
‘...애들 앞에서 언제까지 그딴 소리 할 거야?’
퉁명스레, 그렇게 말하며 더듬듯, 온기를 조금이라도 전하기 위해서라는 듯, 차갑게 식어가는 내 손을 만지며 말하는 릴리스에게 내가 말했다.
‘그래, 죽을 거면 차라리 이게 낫지. 혼자 쓸쓸히 죽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낫네.’
‘뭐, 잠깐 그게 무슨 개소ㅡ’
쩌적, 쩌저저적...
환상이 깨져나간다.
늙어서, 인간으로의 수명이 다해서 죽기 직전인 나를, 슬프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내 죽음의 슬픔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위안으로 삼았던 릴리스가 이게 노망이 났나, 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전부, 다 깨져서 흩어져간다.
『과연, 그런 식으로 그대의 ‘죽음’을 극복했는가. 어처구니가 없는 방법이었지만, 영웅은 자고로 호색한 법이니, 이 또한 좋다.』
눈을 뜨자, 비칠거리는 암무트와 내 손을 붙잡고 있는 카루라가 보였다.
“그대여, 정신이 좀 드는가?”
카루라.
내 아이를 가진 여자.
그리고...
“네, 고마워요. 걱정 끼친 것 같네요.”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
키이이잉ㅡ
몸속에서 솟아나는 활력이, 기나 마나, 그렇게 불리는 것과 다른 힘이 느껴졌다.
이게 대체 뭔가 싶었는데 그런 내게 암무트가 말했다.
『그대여, 이세계의 영웅이여. 나 죽음으로 심판하는 자, 암무트. 그대에게 나의 힘을 빌려주노라!』
그렇게 외치며, 내 몸속으로 스며들 듯이 사라져가는 암무트.
스스스, 하고 흩어지듯 사라지는 암무트가 말했다.
『영웅이여, 그대가 원하는 것을 이룰지어다! 그리고, 그런 그대에게 하나만 부탁하지. 부디... 나의 가엾은 주인을 도와다오.』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암무트의 힘과 함께,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덕분에 카루라가 어째서 그토록 그 꼬맹이 파라오를 따르는지도 알았다.
내가 카루라였어도 그랬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암무트의 말에 답했다.
“안 그래도 도와줄 생각이었어요.”
그 꼬맹이 파라오가 죽거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카루라가 무척이나 슬퍼할 테니까.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어도, 그래도 행복하게 해주리라고 다짐한 이상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었다.
『내 힘을 빌려줄 자로 그대를 선택한 것은, 내 선택 중에서 두 번째로 올바른 선택이었군. 가라, 영웅이여!』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잠들어버린 듯 더 이상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암무트였지만.
그에 반면, 그의 힘을 완전히 이어받은 내 몸은 장난 아니게 상태가 좋았다.
“우선, 여기 말고 더 안전한 곳으로 가죠.”
그렇게 말하며, 카루라를 안고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암무트의 시험을 받는 동안, 어떻게 안전한 곳으로 오기는 한 모양이었지만 그것도 지금뿐이지 계속해서 쏟아지는 해골들이 언제 여기까지 도달할지 모를 일이니, 아직 상태가 영 좋지 않은 카루라를 일단 안전한 곳에 두기로 했다.
“꽉 잡아요.”
“뭐ㅡ”
콰직!
땅을 짓밟으며 날아오르듯 뛰어오른다.
웨어울프의 종족 능력을 한계까지 발동했을 때보다도, 족히 수십 배에 달하는 높이를 뛰어오른 내 눈에 아직도 해골들과 싸우고 있는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씩, 조금씩 밀리고는 있지만 저기라면 한동안은 안전할 것이다.
촤악!
“그, 그대 등에 날개가ㅡ”
카루라의 종족.
아직도 대체 무슨 종족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아무튼 날개가 달린 종족.
그런 종족인 그녀를 안고,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와중에 그녀의 능력을 내가 사용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내 등 뒤로 펼쳐진 검은 날개를 보며 입을 벌리는 카루라를 보고서, 그대로 추락하듯이 날아갔다.
힘을 이해한다.
내 안에 깃들게 된, 암무트의 힘을.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이 힘에 대한 것을 이해했다.
이건, 신의 파편.
한 때, 신이었던 짐승이.
영락해버린 짐승이 지니고 있던, 신성의 파편.
기나, 마나도 아닌, 그 무엇도 가능한 전능한 힘의 일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이루어주는 힘.
쯔즈즈즈...
이미 망가져 버린 아티펙트 ‘용 발톱’이, 난자되고 잔뜩 베이고 구멍이 뚫려버린 ‘천호의 갑주’가 검게 물들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가장 강한 모습으로.
콰앙...!
“적...?!”
“아니, 카루라 대전사님이ㅡ”
갑자기 땅으로 내려온 나를 보며 소동이 일어났지만, 그런 그녀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그보다는 아직도 몰려들고 있는 해골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안고 있던 카루라를 내려주고는, 해골 바가지 새끼들을 향해, 검게 물든 ‘용 발톱’을 겨누었다.
“꿀벌 펀치.”
키이이이이잉ㅡ
“아무튼, 존나게 연사.”
“그럼, 다녀올게요.”
대충, 한동안은 해골 바가지들로부터 안전하게 만들어주고서 카루라에게 그렇게 말했다.
“...약속이다.”
“네.”
암무트와 연결되어있는 꼬맹이 파라오.
그리고 그런 암무트가 내 안에 깃든 지금, 꼬맹이 파라오가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금방 다녀올게요.”
콰앙, 다시금 땅을 박차며 날아올라서 꼬맹이 파라오가 있는 곳으로 날려고 했는데, 날개가 흩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 씨발.”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내 안에 깃든 신성.
아니, 그 파편.
일부라고는 해도,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그것을 다루기엔 내 힘이 너무나도 미약했다.
심지어, 암무트에게 힘을 받기 직전까지는 꼴딱꼴딱 숨이 넘어가고 있었던 만큼, 무너진 생명력의 균형을 신성이 알아서 채우는 것만으로도 힘의 대부분이 소모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래서야 얼마 가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이빨 다 썩겠네.”
한 움큼, 유스티티아가 준 폭주제를 씹어 삼켜서 내 힘을 끌어올렸다.
폭주를 시켜가면서라도, 억지로, 힘을 일으켜서 조금이라도 무너진 균형을 맞췄다.
그래봤자 임시방처에 불과했지만, 그잠깐이면 된다.
촤아악!
다시금 펼쳐진 날개를 휘둘러서, 꼬맹이 파라오가 있는 곳으로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ㅡ
『나에게 오라, 그대의 새로운 주인에게로ㅡ』
존나 변태같은 소리를 하면서, 사슬로 팔다리가 꽁꽁 묶여있는 꼬맹이 파라오의 가슴을 더듬으려고 하는, 존나 페도 새끼인 뼈다귀 새끼한테 ‘용 발톱’을 겨누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