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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144화 (144/523)

〈 144화 〉 영웅 호색 (1)

* * *

풀썩, 힘을 잃고 쓰러지는 영웅이 보였다.

여의 신민들을 구하고, 여조차도 구한 이가.

카루라의 짝으로 지어주고 했던 이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끄윽...!”

그런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팔과 다리에 묶인 사슬이 이를 방해했다.

신성을 사용했다.

아마도, 암무트에게 빌린 신성을.

그렇다면, 저 자는 암무트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 분명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해진 와중에, 암무트가 마지막으로 힘을 빌려주고자 선택한 영웅.

그런 자가, 이런 곳에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아무나... 아무나 거기 없는가!”

망할 망종이 쳐들어오면서 쓰러뜨려 버린 여의 신민들, 다행히 숨이 붙어있었지만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는 이는 없었다.

“아무나...!”

그래도 외쳤다.

이대로 가다간, 저 자가 죽어버린다.

아무리 영락해버렸을지언정, 아무리 반쪽 짜리에 불과할지언정 신성은 한낱 필멸자가 사용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힘이다.

고작 희석되고 희석되었을 ‘눈’ 하나로도 힘에 겨워하던 저 자라면, 이미 그릇이 갈기갈기 찢겼을 터.

시간이 얼마 없었다.

“아무나...!”

뚜두둑, 무리하게 당긴 팔이, 사슬에 끌려 어깨를 뽑았지만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누구라도 부르기 위해 외치고 있을 때였다.

“파라오...! 그는, 그는 어디에ㅡ”

“카루라...!”

그때 들어온 것은, 날개 한쪽이 완전히 타들어간 카루라였다.

저 아이가 얼마나 괴로웠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제 아비와 어미에게 물려받은 자신의 날개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랬던 아이가, 골룡이 터져나가며 뿌린 저주에 맞고 추락했을 때는 얼마나 놀랐 던가.

그 순간의 방심이, 이런 사슬에 묶이게 된 처지가 되어버리게 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보다 우선해서 외쳤다.

“카루라! 저 자를, 영웅을 이리로...!”

“...아, 아아...!”

외침에, 그제서야 엎어져서 쓰러져있는, 피투성이로 웅크려있는 것이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신음을 내뱉는 카루라가 보였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서...!”

“네, 네, 파라오...!”

조심스레, 영웅을 안아 들고서 오는 카루라.

그 자신도, 아직 고통을 느끼는 와중인지 비틀거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카루라는 자신보다 자신이 흔들리는 것에 신음하는 그를 더욱 걱정할 뿐이었다.

“파, 파라오. 그는... 그는 괜찮습니까?”

여의 앞에 영웅을 내려놓으며 묻는 카루라였지만, 그런 물음에 답하기보다는 먼저 손을 뻗어서 영웅의 가슴 위로 얹었다.

두, 근.

두, 근...

아직은,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점점 더 약해지고 있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영웅의 몸속 깊이 퍼트린 여의 누멘을 통해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짐작대로, 신성에 그릇이 전부 찢겨나간 상태였다.

찢기고, 깨진 그릇 사이로 생명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가 가진 회복술, 그 무엇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그래.

회복술로라면.

“카루라...! 여의 팔과 다리를 잘라라!”

“네? 네?”

“어서...! 시간이 없다!”

여의 일갈에 움찔한 카루라가, 이내 질끈 눈을 감고서 수도를 들어 올렸다.

“파라오의 명을 따릅니다...!”

써걱, 하고 대전사에 이른 카루라와 일절의 저항조차 하지 않는 여. 덕분에, 여의 신체는 손쉽게 잘려나가 버렸다.

시큰거리며, 신체의 일부가 끊겨나간 통증이 몰려왔지만 덕분에, 이것으로 여의 신성을 묶고 있던 사슬의 주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여를, 여를 영웅의 위로 올려주거라!”

팔다리를 수복할 힘조차 아껴야하는 지금, 카루라에게 여의 몸을 옮길 것을 부탁했다.

“네, 파라오...!”

그런 여를 들어, 영웅의 위로 올려주는 카루라.

“미리 사과하마, 카루라.”

“...네?”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이 여를 보는 카루라였지만, 그런 카루라의 시선에 답하지 않고, 아직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영웅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비릿하다.

‘첫 입맞춤은, 달콤하다고 들었거늘.’

하지만, 여의 입맞춤은 비릿한 피의 향기만 날 뿐이었다.

죽음의 향기.

너무나도 익숙한, 너무나도 익숙한 향기가.

‘죽게 두지 않을 것이다. 영웅이여, 그대는 이곳에서 죽을 수 없다.’

부지런한 여의 신민들이, 사태가 진정되자 빠르게 부상자들을 찾아 치료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그 아이들의 생명을 붙들어 잡기 위한 신성을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 거둬들였다.

‘암무트여. 들리는가.’

입술을 통해서 불어넣은 여의 신성으로, 영웅의 몸속에서 깃든 채 잠들어버린 암무트를 깨웠다.

‘듣고 있노라, 나의 주인이여.’

‘다행이구나, 아직 살아 있었구나.’

‘나는 그대에게 속한 몸, 그대가 죽거나, 또 내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한 불멸함이라.’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런 그대에게 미안한 부탁을 해야겠다.’

‘말하라, 나의 주인.’

수백 년.

천상에서, 홀로 소멸을 받아들인 채 종말을 기다리고 있던 신의 짐승을 거둔 지도 벌써 수백 년인가.

처음은 좋지 않았던 인연으로, 적이라는 인연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둘도 없을 영혼의 짝인 그에게, 마지막으로 명했다.

‘이 자를 살려라. 부족한 신성은, 여가 보충하겠다.’

‘나의 주인이여.’

암무트가, 그런 여의 명령에 답했다.

‘보충은 필요 없노라. 나, 죽음으로 심판하는 자, 암무트. 기꺼이, 나의 주인을 지켜낸다는 약속을 지킨 영웅을 위해 나를 바치리라.’

녹아내린다.

“아, 아아...”

그리고, 아물기 시작한다.

저주로 아물지 않는 상처가, 암무트의 신성으로 아물어간다.

완전히, 녹아내리듯이.

암무트가 자신을, 그 자신의 신성을 바쳐 영웅의 몸을 되살리고 있었다.

‘암무트여. 암무트여.’

‘...말하라, 나의 주인이어. 내가 아직 듣고 있노라.’

한차례 늦게 돌아온 암무트의 대답에, 여가 말했다.

‘...고맙구나.’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그대의 종으로서, 그대의 명령에 따르는 것 뿐인데 어찌 고맙다고 하는가.’

‘여는, 그대를 친구라고 여겼다.’

‘ㅡㅡㅡㅡㅡㅡ’

낮게, 그르렁거리는 암무트의 사념이 느껴졌다.

이윽고, 암무트가 말했다.

‘나 또한, 그러했노라고 답하마. 나의 주인이여.’

그리고, 침묵했다.

“쿨럭...!”

입 밖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완전히, 영웅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진 암무트가.

여와 연결되어있던 암무트가, 침묵한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암무트가, 마지막 남은 신성을 쥐어 짜내서 영웅을 고비에서 넘기게 했지만 아직도 중상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는 여의 몫이었다.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신성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여에게 남은 것을 전부 부어넣는 한이 있더라도.

설령, 그것으로 자신에게도 마지막이 올지라도.

‘살거라, 영웅이여.’

드높은 곳으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여긴... 어디야.”

페도 해골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기로 가면 나오려나 싶어서 계단을 오르려고 했을 때였다.

“그곳으로 가면 안된다.”

뒤에서,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웬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뭔데.”

“나, 죽음으로 심판하는 자, 암무트. 그대를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왔노라.”

암무트라고.

이게?

이 고양이가?

아니, 그보다 돌아간다니 대체 어디로ㅡ

“아...”

뒤늦게 내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페도 해골 새끼에게 막타를 꽂으려다가 힘이 다하고, 그걸 꼬맹이 파라오가 막타를 빼앗는 것으로 마무리했던 기억을.

그리고 나도, 그 뒤에 정신을 잃고 엎어졌던 것이 떠올랐다.

“돌아가라, 영웅이여.”

“설마, 저 위가 사후 세계인지 뭔지하는 그건가?”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하겠군. 허나, 그대에겐 아직 이른 곳이다. 그리고, 그대가 겪어야 할 것도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자기를 암무트라고 주장한 고양이가 폴짝하고 나보다 먼저 계단 위를 올랐다.

“아니. 나보고 가지 말라며, 넌 왜 가는데.”

“마땅한 대가이노라. 받아오는 것이 있다면, 주어야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 그대를 되돌려보내기 위해서, 나는 나를 바쳤노라.”

아니.

그게 뭔 개소리...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 나를 고양이가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곧, 길이 열리리라. 그곳을 통해 돌아가라. 그리고, 나의 주인을... 부탁하마, 영웅이여.”

야옹,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계단 위로 폴짝, 폴짝 오르려는 암무트.

잘은 모르겠지만.

저게 나 대신해서 바치니 뭐니 하는 게 영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폴짝하고 다시 뛰어서 계단 위로 오르려는 암무트의 꼬리를 붙잡았다.

“뭣...”

“뭔 대가야, 씨발거.”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그리고, 내가 그렇게 암무트를 끌어당겨서 안았을 때였다.

계단에서, 시꺼먼 촉수들이 뻗어져 올라왔다.

“애미, 씨발?”

이건 또 뭐야.

“바치기로 한 것을 바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일인지 정녕 몰랐는가!”

그러니까, 암무트가 저 계단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방해했다고 이러는 거라고.

“난 몰랐지!”

“어리석은... 어서 놓아라!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근데 그건 또 싫어!”

뭔지 모르겠지만, 싫은 건 싫은 거였다.

그래서 버둥거리는 암무트를, 쪼만한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암무트를 꽉 끌어안았다.

“아, 안 된다...!”

그러자, 계단에서 뻗어 나온 촉수들이 그런 나랑 암무트를 덮치려고 했다.

그리고.

촉수들이, 나랑 암무트를 상대로 촉수물을 찍으려고 할 때였다.

『그 대가, 내가 바치마.』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먹고 꺼져라.』

휙, 하고 계단에서 뻗어 나온 촉수 사이로 무언가가 던져졌다.

꾸물꾸물, 하고.

그 말대로 받은 그 무언가에 만족한 듯이 다시금 계단 밑으로 스며 들어가는 촉수들.

“뭔데.”

다행히 촉수물을 찍거나 하지 않았지만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었는데, 정작 나랑 달리 암무트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그대는...”

『이걸로 두 번째구나. 그리고 넌 이게 처음이고. 뭐, 어차피 이야기할 시간은 나중에라도 많이 생길 것 같으니, 우선 너희들 모두 돌아가기나 해라.』

쩌억, 하고 내 뒤로 열려진 문.

“...이건 또 뭔데.”

존나 수상쩍은 일의 연속인데, 돌아가라면서 뭔지도 모를 것이 열어준 문을 넘어가기엔 내가 너무 의심이 많았다.

『귀찮게 하긴.』

그러니까, 그런 나를 휙하고 밀어버렸다.

“아이, 씹.”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나중에 후회하기 싫으면.』

뭔 후회?

그렇게 묻고 싶었는데, 그러기도 전에 문을 통과해버린 나와 암무트.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또 보다니.

그건 또 뭔 소린데.

그리고, 의식이 다시 날아갔다.

여의 신성을 모조리 부어넣기 직전에, 영웅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느껴졌다.

“다, 행이구나.”

하지만, 이걸로 1년인가.

여에게 남아버린 신성의 양을 생각해봤을 때, 이제 고작 1년이면 힘을 다할 것이리라.

하지만...

“약속은, 지킬 수 있겠...”

1년이면, 카루라의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겠다며 안심하려고 했을 때였다.

“끄으으윽...!”

몸을 비틀며 날뛰는 영웅.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다가, 곧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몸이 회복되어가는 것과 동시에, 솟아오르기 시작했던 영웅의 양물.

생명을 가진 자라면, 당연한 현상이기에 이에 부끄럽거나 하지는 않았고, 또한 의식이 없는 자의 양물이 여의 엉덩이를 찌르는 걸 대체 어떻게 탓하는가 싶기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무시했었지만.

바로, 그 양물에서 영웅의 생명력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는데, 이윽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약발 떨어지니까 보충 좀 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입에 넣었던 영웅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으니까.

몸이 회복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몸만 회복됐을 뿐.

그 무언가의 효과가 남아서, 지나치게 넘쳐나는 힘이 생명력과 함께, 영웅의 몸을 비집고 뛰쳐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이래서야, 겨우 메꿔낸 그릇도, 빠져나가는 생명력과 함께 다시 깨지고 말아버린다.

“바보 같은...”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

심지어 이건 몸의 문제가 아니라, 몸에 너무 과하게 기운이 넘쳐나서 생긴 거라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굳이 있다면...

그렇게 빠져나가는 생명력과 힘을 가둬서, 다시 되돌리는 것 뿐.

그리고 그 방법은...

“...카루라.”

“파, 파라오? 그는 이제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졌다. 하지만... 정말로 미안하구나.”

“네?”

영웅이 괜찮아졌는데, 대체 왜 사과를 하느냐고 묻는 듯한 카루라의 시선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서, 잘려나간 양팔과 다리를 재생시켰다.

즈즈즈...

잘려나간 사실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팔과 다리.

신성을 사용한, 회복보다는 복구에 가까운 재생.

이걸로, 다시 얼마 남지 않은 신성의 반을 써버려서, 더 이상 카루라와의 약속을 지킬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덕분에 몸을 온전히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영웅의 몸은 고쳤다, 허나 그 영웅의 생명이 지금, 여기로부터 빠져나가고 있다.”

“네, 네? 네...?”

여의 고개를 끄덕이고서 대답했던 카루라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더욱 깊이 갸우뚱하는 것이 보였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 카루라.

하지만, 여 또한 그런 심정이니 그런 카루라를 이해했다.

“...카루라 너는 이미 뱃속에 아이가 들어서 있으니, 무리이겠지. 저만한 힘을 받아낸다면, 카루라 너 자신은 몰라도 아이의 생명이 위험할 테니... 그렇다고 다른 이를 불러오기엔 시간이 없다. 그러니...”

꿀꺽, 하고.

침을 삼키며 여의 몸통의 절반에 이르는 영웅의 양물 위로 조심스레 몸을 올렸다.

“...파라오시여?”

그런 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카루라에게, 여는 난생 처음으로 겪게 될 조금 뒤의 일에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레 물었다.

“하나만, 하나만 묻겠노라... 카루라. 처음은... 그, 아프더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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