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외전) 영웅의 탄생
* * *
죽음을 직감했다.
그저, 단순한 인간족으로는 닿을 길이 없는, 너무나도 차원이 다른 존재가 뿜어내는 ‘숨결’이.
수십 명의 고위 마법사들이 펼치는, 파괴 마법과 동등한 파괴력이 가진, 이미 죽었다고 해도 한때는 위대했던 ‘용’이 뿜어내는 숨결을 보았을 때.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그랬던 나랑 달리, 그는 움직였다.
와락, 하고 내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애미, 씨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황금빛의 갑옷으로 둘러싸이고 있는, 눈앞의 남자를.
촤르르륵, 하고 황금빛으로 감싸이는 남자를 보았을 때 무심코 생각했다.
마치.
마치 동화속에서나 나오는, 그러한 영웅같다고.
“씨발, 진짜.”
그러한 그가 내뱉는 말들은, 좋게 보더라도 영웅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꽈악, 하고.
양팔로 나를 끌어안는 남자의.
강한조... 그런 이름의, 이상하다고만 여겼던, 수상하다고만 여겼던 남자의.
드러난 두 눈에서 타오르는 듯이 이글거리는 생존 욕구만큼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강렬하게 빛나는 살고자 하는 ‘욕구’는.
“아.”
어쩐지, 멋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떴을 때는,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대신에.
“호아아.”
작은 여우.
아니, 여우 같은 꼬리와 귀를 가진 꼬마가 내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외형의, 하지만 검고, 한줄기 나있는 머리카락만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꼬마 여우 수인은 그런 나를 보더니, 호아호아하고 말을 건네왔다.
“...괜찮냐고 묻는 거니?”
“호아.”
맞았나 보다.
하지만, 이런 꼬마가 대체 어째서, 이런 곳에 혼자 남아 자기 옆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딱, 따닥!”
“따닥...!”
한무리의 해골 병사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위험...”
그런 해골 병사들을 보고서, 품속에 꼬옥 숨겨두고 있던 완드를 꺼내들며 마법을 영창하려고 했을 때였다.
“호아.”
쯧, 하고 혀를 차며 손가락을 튕기는 꼬마 여우 수인.
화르르륵...!
순식간에, 몰려들던 수십의 해골 병사들을 불살라 없애버리는 꼬마를 보고서,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주술이다.
마법과는 다른 쪽으로 특화되어있는, 다른 세상에서의 이능.
하지만, 그 위력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파괴 마법인 지옥불과도 동일한 수준이었다.
그런 것을...
영창도, 하다못해 주술을 다루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주구조차도 없이 그저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부리는 꼬마 수인을 보고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스무 살의 나이로, 다섯 개의 서클을 심장에 그리고 ‘천재’라고 불렸던 것이 자신인데도.
자기의 절반도 채 오지 않는 꼬마 아이가 그런 자기보다도 아득하게 위에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볼 수 있었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잿더미들.
설마 이것들이 전부, 해골 병사들이었던 것인가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호아.”
“이, 일어나라고 하는 거니?”
“호아.”
고개를 끄덕이는 꼬마 수인을 보고서, 일단 몸을 일으켜세웠다.
“호아아.”
“...손?”
다시 한 번의 끄덕임.
그런 꼬마의 손을 꼭 부여잡자,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꼬마.
그런 꼬마에게, 마치 보호받듯이 따라 걸었다.
아니, 실제로도 보호받았다.
“호아.”
“호아아.”
“호앗!”
때때로 마주치던 해골 병사들이나, 그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해골 기사따위를 전부 손짓만으로 불살라버리는 꼬마였으니까.
저만한 주술을 사용하고도 지친 기색이 없어보이는 꼬마를 보고서는, 이제와선 경이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여태껏 사용한 주술만해도, 마법과는 전혀 다른 체계이기에 어림짐작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렇다고해도 상당한 마나를 사용했을 것이 분명한데도.
드래곤 하트가 몸에 깃든 것도 아닐 텐데, 펑펑 쏟아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호아!”
한두마리 정도면, 그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냅다 뛰어가서 손톱으로 해골 병사나, 기사마저도 갈라버리니.
주술만이 아니라 체술로도, 혹은 무공쪽으로도 대단한 성취를 가진 꼬마가 분명했다.
“...혹시 설마.”
익숙한, 어디서 본 것 같은 생김새.
머리의 색은 대부분 검었지만, 그래도 그분과 같은,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황금빛의 머리카락.
“...설마, 혹시... 천호님의...”
자식이나, 혹은 숨겨진 제자 같은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천호, 호아란에게 자식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렇다고 제자를 들였다는 이야기도ㅡ
“...아니, 들어본 적이 있었네.”
금방 묻혀버리긴 했지만.
한때, 천호 호아란이 어느 거리에서 나타나, 대뜸 누군가에게 자신의 제자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는 뜬소문이 퍼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소문에서의 당사자는 분명 남성이었ㅡ
“......”
촤르륵, 하고.
황금빛의 갑옷으로.
마치, 여우를 닮은, 그런 모습의 갑옷으로 둘러싸이던 남자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설마...”
“호아!”
하지만, 그 설마하는 생각은 내 손을 잡아당기는 꼬마에 의해 끊길 수 밖에 없었다.
“호아아!”
그리고, 그런 꼬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이 보였다.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과 합류하고, 또 그곳에서 보호받고 있던 다른 세계 정부의 인사들과 디스펜서들을 만났을 때.
그들 중에서 그를 찾아봤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길게 잇기 힘들었다.
ㅡ쿠오오오오오오!
다시금 숨결을 토해내려는 본 드래곤과 그런 본 드래곤을 덮치는, 거대한 짐승.
그리고, 그런 본 드래곤을 한입에 삼키는가 싶더니, 터져나가며 추락하는 짐승들과, 쏟아지는 해골 병사들과 기사들을 처리하던 나르메르 왕국의 전사들이 보였으니까.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난, 연이은 커다란 사건에 입을 떡벌리고서.
차마, 끼어들 수도 없는 그런 일에 그저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을 때 그가 나타났다.
쾅...!
처음의, 황금빛으로 빛나는 갑주를 입은 채로, 하늘을 빠르게 달려 날아오르는 그의 모습이.
그리고.
추락하던, 한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을 끌어안고서,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아.”
저곳은.
안 그래도 해골 병사들과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는 곳인데.
그런 곳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그를 보고서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를 돕기 위해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럴 힘도 없을뿐더러.
“파라오의 신수가...!”
“자리를 지켜라! 파라오께서는 무사하시다!”
“망자들을 막아라!”
그럭저럭, 쏟아지던 해골 병사들과 기사들을 막아내던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도, 급박하게 변해버린 사태에 혼란스러웠는데.
하물며,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쏟아부어지기 시작하는 해골 병사들과 기사들을 뚫고서 그를 구하러가야한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조차도 없었다.
“...호아.”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꼬마가 이를 가는 것이 보였다.
“혹시.”
너라면, 하고 그런 꼬마에게 말하려고 했을 때.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꼬마가 꼭하고 내 손을 끌어쥐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놓았다.
“호아아.”
그리고,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을 도와서 쏟아지는 해골 병사들과 기사들을 향해, 불꽃을 피어올렸다.
고민 끝에, 자리를 지키기로 결심한 것처럼.
그러는 꼬마 수인에게 그를 도우러 가줄 수 있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그저.
“...무사하기를.”
그렇게 기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기원은 이루어졌다.
검게 물들어있는, 칠흑 같은 갑옷을 입은 채로.
상처투성이가 된 여자를 안고서 땅에 내려온 그가 보였으니까.
“부탁 좀 할게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여자를 나르메르 왕국 사람에게 맡기고서,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여자의 입에 물렸던 그는, 아직도 쏟아지고 있는 해골 병사와 기사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무언가를 쏘아댔다.
퍼퍼퍼펑, 순식간에 휩쓸려서 사라져버리는 해골 병사와 기사들.
압도적일만큼, 경악스러울만큼의 힘에 입이 다물리지 않았다.
정말로, 그...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그와 지금 보이는 그가 동일인인가 싶었다.
그런 그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그럼, 다녀올게요.”
그가 안고 돌아왔던 여자에게, 그가 건넸던 무언가로 상처가 아물었는지 안색이 조금은 좋아진 듯한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는 그가 보였다.
“약속이다.”
“네.”
무척이나, 따스한 목소리로 연인과의 정담을 나누듯 그렇게 말하는 그가 보였다.
“......”
뭐지, 이 기분은.
갑자기 욱신하고,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고 이내 그와 대화를 나누던 여자의 정체를 떠올렸을 때 더더욱 그랬다.
나르메르 왕국의 대전사.
카루라라고 했었던가.
처음 봤을 때도, 이렇게 예쁜 사람이 다있었구나 싶었던 그 사람이었으니까.
누가봐도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호아.”
옆에서 어째선지 한숨을 내쉬는 꼬마가 보였다.
갑자기 웬 한숨인가 싶었을 때.
쾅, 하고.
그가 다시금 날아올랐다.
그대로, 나르메르 왕국의 궁전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드는 그를 보고서 생각했다.
위기 속에서도 분연히 일어나, 투쟁하는 사람.
사람을 구하고,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위해 싸우는 사람.
그러한 자를, 부르는 말을 나는 알고 있었다.
“영웅...”
그가 떠나가고서, 정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식간에 사태가 종료되어버렸다.
하늘에 열린 문에서 쏟아지고 있던 해골 병사들과 기사들도 더 이상 소환되지 않았고.
산 자들을 공격해오던, 땅 밑에 이미 소환됐었던 해골 병사와 기사들도 이내 우수수 쓰러지기 시작했으니까.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었지만 이 모두가 그가 행한 일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그야, 그가 가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됐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나서도, 한참이 지나고서도 그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으니까.
갑작스런 습격이 종료되고서, 그 다음날인 오늘.
갑작스레 시작된 축제가 끝나고, 또 다시 축제를 열자고 선포하는 나르메르 왕국의 파라오.
아니, 그때 보았던 그 파라오가 정녕 맞는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파라오와 그가 같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그가 한 일이 맞았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
파라오가 외쳤다.
“여와 여의 나라를, 이 나르메르 왕국을, 그리고 그대들을 지켜낸 영웅을 위한 축제를.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그를 돌아보는 파라오.
그런 그녀가 그를 보는 눈빛에서 무언가ㅡ 또 가슴이 저릿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여와, 나르메르 왕국 제일의 전사인, 나의 귀여운 카루라의 짝을 위해 축제를 열어라!”
대대적으로, 공개적으로 그렇게 외치며 선포하는 파라오가 보였으니까.
당황해하는 그의 표정이 여기서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꾹, 하고 그런 그에게 안기는 파라오와, 카루라라는 여자를 이내 양팔로 끌어안아주는 그가 보였다.
“아...”
“...호아아.”
툭, 툭하고.
꼬마가 그런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위로해주는 거니?”
“호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꼬마.
“...위로한 게 아니라고?”
“호아.”
그런 내게 그렇다고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꼬마가 조금 얄미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