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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151화 (151/523)

〈 151화 〉 외전) 파라오, 카르미나 나르메르 (1)

* * *

생명을 바쳐라.

그리고 기원하라.

나에게 신앙을 보내어, 나를 보다 창대하게 하라.

내가 너희의 죽음일진저, 너희는 나를 두려워하라.

아흔아홉의 짐승의 주인.

죽음의 주인.

나, ‘비탄을 노래하는 죽음의 짐승’을 찬송하라!

파라오로 태어난 우리는 대대로 ‘비탄을 노래하는 죽음의 짐승’의 노예였다.

모든 신민들의 주인이자 파라오.

그리고, 영원한 신의 노예.

그것이, 우리 왕가...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의 본질이었다.

정해진 운명.

타고나는 운명.

신은, 우리를 먹이로 삼는 죽음의 주인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너희는 내가 먹기 위해 만들었고, 죽고, 영혼을 바쳐 나의 양식이 되는 것이, 오직 그것만이 기쁨이노라고 노래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여야만 했다.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모든 신민을 먹이로 삼겠다는 신의 말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을, 신은, ‘비탄을 노래하는 죽음의 짐승’의 힘은, 분명히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그에 반면, 순순히 제물을 바치면 그러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았다.

‘비탄을 노래하는 죽음의 짐승’이 원하는 생명은 일 년에 고작 수백.

수천만의 신민들의 목숨을 구하는데 드는 값으로 고작 수백의 목숨이란 것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싼 것이라고, 내 아버지는... 역대 모든 파라오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랬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주인, 내 칭송을 받으시는 자, ‘비탄을 노래하는 죽음의 짐승’께서 원하시니, 다음 공물은 십만의 생명을 바치라. 그리고, 다음 공물은 백만의 생명을 바치라. 또한... 그대, 노예들의 왕이여, 그대의 핏줄 또한 다음 공물에 바쳐라.』

어느 날 갑자기, 이제껏 바쳐왔던 제물의 양이 기하급수적을 늘었을 때.

그렇게, 십만의 신민이 갑작스레 목숨을 거둬져서 죽음에 이르게 되고, 그 다음의 제물로 백만의 신민을 더 바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아직 어렸던 내가 그 제물 중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을 때.

아버지의 안색을 파리하게 질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때서야 아버지는 깨달았다.

아니, 깨달은 것이 아니라...

모른 척하고 있던 것을, 모른 척하려던 것을.

자신의 차례가 와서야, 그제서야 실감했을 뿐이리라.

그 어떠한 말로 포장한다고 한들, 아무리 칭송하고 자비를 바란다고 한들.

저 위에, 찬란한 천상에서 거하는 신은, 우리를 그저 울타리에서 기르는, 그저 곧 먹을 식량 그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같은 일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다.

사바세계의 모든 왕국에서.

이 세상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왕들이 일어섰다.

신들의 노예였던 자들이 일어섰다.

그것이 자신들의 백성들의 죽음에 분개하였든, 아니면 자신에게 내려온 죽음을 느껴서이든 간에.

사바세계의 백 스물다섯의 왕국이 일제히 세상의 주인에게 반역했다.

많은 왕이 죽었다.

용기 있는 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

만민의 숭앙을 받는 자.

현명한 자.

수많은 영웅이 죽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돌격을 감행한 자.

신이 부리는 짐승의 아가리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칼을 박아넣은 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가며 끊임없이 마법을 사용한 자.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영웅들이 쓰러져갔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조차 죽인 자들이 계속해서 죽어갔다.

오직.

신을 향해 검을 들어올린 자들이 무수하게 죽어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죽음을 지배하는 신을, 죽음을 거부한 영웅들이 다시금 죽어갔다.

일어서고, 죽고.

일어서서, 다시 죽어가며.

왕들은, 영웅들은 계속해서 신을 향해 나아갔다.

십 년, 이십 년, 시간이 흐르도록 신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었다.

나르메르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사령 술사이자 가장 위대했던, 가장 먼저 신에게 반역의 깃발을 들어올렸던 파라오는, 가장 치열했던 전투에서 결국 스스로를 바쳐, 영웅들을 일으켜 세우고 신의 마지막 짐승을 죽였다.

그렇기에,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관을 썼다.

많은 왕이 그러했듯이.

죽음을 거부한 채로, 계속해서 종군하기로 맹세한 왕들이, 영웅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왕관을 쓰고서, 한 명의 왕으로, 파라오로서 신에게 향했다.

“일어서라!”

죽어 나간, 무수한 왕들과 영웅들을 일으켜 세우며.

“죽음을 거부한 자들이여! 사바세계의 왕들이여! 영웅들이여! 일어서라!”

죽은 왕들과, 죽은 영웅들은 새롭게 왕관을 쓴 왕과 영웅들과 함께 신을 향해 진군했다.

황금빛으로 찬란한 갑옷을 걸치고.

맹세와 신념.

기원을 담아 신을 죽이리라는 맹세가 새겨진 무구를 손에 움켜쥐고서.

나아가고, 나아갔다.

십 년.

또 십 년.

죽으면 죽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은 강해졌다.

결코 지치지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웅들과 왕들이 검과 창을 치켜들고, 가장 치열한 전장으로 몸을 던졌으니 당연했다.

더 이상 우리에게서, 죽음을 앗아가지 못하게 된 ‘비탄을 노래하는 죽음의 짐승’은 그런 우리들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해져만 갔다.

제물이 끊긴 채, 우리에게 공양받던 생명을 먹지 못한 신은 굶주려 약해져만 갔다.

그리고 또 십 년.

마침내.

『어리석은 필멸자들아,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어떠한 것인지 결코 알지 못하리라! 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너희는 모르리라! 돌아가라! 그리고 제물을 바쳐라! 그리한다면, 이번의 일은 용서해주마!』

마침내 천상에 도달한 우리들에게, ‘비탄을 노래하는 죽음의 짐승’은 그렇게 말했다.

모든 왕들과 영웅들은, 그런 신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신을 참살했다.

우리의 세상의 신을.

사바세계의 수많은 왕들과 영웅들이 죽어가면서, 기어코 죽여버렸다.

『너희를 저주하리라! 저주받으라! 어리석은 필멸자들아! 너희는 결코 모를 것이다! 신을 죽인 다는 것은, 세계를 죽인다는 것, 너희 스스로가 불러온 파멸을, 너희 스스로의 종말을 걸으며 지켜보라!』

그것이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우리를 저주하는 신의 목을 자르고 사지를 찢었다.

그리고 그런 ‘비탄을 노래하는 죽음의 짐승’의 시체를, 제각각의 왕들이 나눠 가졌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로.

영원한 동맹의 맹세로서.

우리는, 우리가 죽인 신의 일부를 삼켰다.

그렇게 마침내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우리들에게 찾아온 것은, 종말이었다.

“파라오시어...”

옥좌에 앉아, 나를 부르며 애원하는 자를 내려다봤다.

“파라오시어... 부디... 부디, 이 아이를 살려주소서. 이 아이는... 이 아이는, 이 나라의 마지막 남아이옵니다.”

“......”

모든 남자가 죽어갔다.

신조차 죽인 영웅들도, 남자라면 결코 죽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장 뛰어난 영웅이었던, 왕국 제일의 전사조차도 그의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얼마 가지 못해서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으니.

신의 저주는, 마지막 발악으로 이 세상에 뿌리내린 저주는 지나치도록 악독한 것이었다.

죽어버린 신의 이름대로.

온 세상을 비탄에 빠지게 만드는 저주.

그 저주는, 끝내 왕국의 마지막 남자아이마저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으드득, 이를 갈면서.

여에게 아이를 되살려달라고 말하는, 여의 신민이자 한 아이의 어미에게 말했다.

“...무리이다. 설령 되살린다고 한들, 이미 생명을 잃은 자는 결코 씨앗을 뿌리지 못하니, 소용없는 일이다.”

“아아...”

여의 신민은, 죽어버린 자신의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오열하며 돌아갔다.

그런 그녀에게, 여는 아무런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한 그 아이를 살리고자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끝내, 저주가 앗아가 버린 아이의 시체를 품고, 울며 돌아가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 아이의 어미인 그녀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다음 날의 새벽이었다.

그녀는 영웅이었다.

무수히 스러져간, 신을 참살한 영웅 중에서 살아서 신의 죽음을 목격할 만큼 위대한 영웅 중의 하나였던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가 남긴 마지막 혈육의 죽음을 보고서 스스로의 창자를 뽑아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녀의 아이는, 스스로의 창자로 목을 매달은 그녀의 발치 밑에서 잠든 듯이 그렇게 누워있었다.

재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상이 죽어갔다.

신이 죽었기 때문일까, 모든 대지가 말라가고 강과 바다가 썩어들어갔다.

이미 모든 남자가 죽어, 종말만을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닥쳐온 재앙은, 하루하루 산 자들은 좀먹어갔다.

죽어버린 대지에서, 넘어온 수많은 유민들을 받아들이고, 망국에서 살고자 넘어온 이들을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좁아져 가는 대지를 어떻게든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나 아무런 소용도 없이, 그저 죽어간 자들의 장례를 치르는 나날.

마침내 이 세상에, 오직 나르메르 왕국을 제외한 모든 왕국이 무너졌을 때.

여는 뒤늦게나마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어차피 멸망할 세상이라면, 차라리 그동안의 안식을 위해 나 자신을 바치겠다.”

이미 예정된 종말은 결코 피해 갈 수 없지만, 세상이 죽어가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신이 없기에, 그렇기에 세상이 죽어가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신을 만들면 그만이니.

“그러하니 여를 도와다오. 왕들이여, 영웅들이여.”

안식을 취하고 있던 영웅들을 다시금 일으켜 세워, 천상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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