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망아의 용 공주는 사랑을 모른다 (3)
* * *
“...이건, 계산 외인데.”
설마하니 릴리스에 이어서, 호아란마저도 이틀 내리 침실에서 나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릴리스야 서큐버스니 그럴 수 있다 치고서, 호아란은 진짜 예상외였다.
그야 물론, 여우 요괴라든지 여우의 성질을 타고난 웨어비스트들이야 성욕이 강한 건 나름 알려져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호아란은 적어도 수백 년 이상을 스스로 절제하며, 그동안 수도 없이 발정기를 겪어오면서도 순결을 지켰을 정도로 자제력이 강한 존재인데.
서서히 말라붙기 시작하는 마력에, 이건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끄으...”
열리지 않았던 침실 문을 열고서 한조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안에서 나온 사람이 한조라고 몰라봤었지만.
...강해졌네.
릴리스에 이어서, 호아란까지 안은 한조는 분명히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기운 자체가 월등하게 늘어나버렸으니까.
근데.
“......”
평범한 인간이라면 오랜 세월을 거쳐서 수련해야만 가까스로 거머쥘 만큼의 힘을, 단 며칠 새에 얻어 버린 한조는 그렇게 늘어나 버린 힘과 달리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아니, 그나마 저만큼 강해졌기에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느낌으로, 간당간당하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저래서야 아무리 나라도 지금의 한조에게 정액을 달라고 말하는 건 미안해질 정도로 피곤해 보이는 한조가, 그런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유스티티아, 남은 그거... 있어요?”
“...남은 그거?”
대체, 뭘.
그렇게 물으려고 했을 때, 한조가 후읍하고 숨을 들이켜고는 내뱉더니 말했다.
“폭주제요. 남은 거 있죠?”
그거라면, 있는데.
아니, 설마...
“...그거, 몸에 상당히 무리가 갈 텐데...? 이미 써봐서 알...”
“그건 됐으니까 있으면 빨리 줘.”
움찔, 하고.
평소 존댓말을 해 오던 한조가 그렇게 말했을 때는 살짝 놀라서, 그런 한조를 바라보다가ㅡ 이내 아공간을 열어서 몇 알 남지 않은 폭주제를... 한조 전용으로 만든 기프트 폭주제를 꺼냈다.
“이거밖에 남지 않았...”
휙, 손에 들고 있던 폭주제들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는 한조가 보였다.
한꺼번에 그걸 다 먹는다고?
놀라서, 그런 한조를 바라봤는데.
“후으으으읍...”
스으으으으으...
분명히 폭주 했어야 할 한조의 기운들이, 그대로 얌전하게 한조의 안에서 맴도는 것이 보였다.
폭주제로 인해 뛰쳐나와야 할 기운을 도로 흡수해서, 그대로 꾹 뭉쳐서, 자그마한 구슬처럼 만들어 안에 가두는 한조를 보고서 눈을 깜빡거렸다.
서큐버스의 레벨 드레인과 또 다른 것...
아마도, 구미호... 호아란이 가지고 있는 종족 능력.
꼬리와 여우 구슬, 체외의 또 다른 마나 기관을 만들어내는 종족 능력이 분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드래곤들이 지닌 드래곤 하트와 달리, 살아가면서 쌓아온 힘을 외부에 담아서 보관하는 능력을 지닌 것이 일반적인 구미호... 그렇게 불리는 요괴의 종족 능력이었으니까.
하나하나의 꼬리나 여우 구슬이야 드래곤이 태어나면서, 날때부터 가지고 있는 드래곤 하트에 미치진 못했지만.
호아란은 아홉이나 되는 꼬리와 아홉의 여우 구슬을 지닌 구미호이자, 천호였다.
그 모든 꼬리와 여우 구슬을 합치면, 자신과 견줄 만한 수준의 마나를 다루는, 대주술사인 호아란.
그런 호아란의 능력을 흡수한 것이 분명한 한조는, 그 능력으로 폭주제로 인해 폭주했어야 할 기운을 임시로 여우 구슬로 만들어서 담은 모양이었다.
“이제, 유스티티아 차례지.”
꾹, 하고 그런 내 팔목을 잡고서 그대로 한조에게 잡아끌렸다.
그렇게 한조에게 끌려서 들어온 침실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직 미처 옷도 입지 못해서 나신으로 있는 호아란이었다.
그런 호아란이, 스르륵하고 이불로 나신을 가리며 나와 한조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한조에게 말했다.
“처음치고는 잘했지만, 한조야. 여우 구슬은 그렇게 다루는 것이 아니니라.”
“그래요?”
“지금은 단순히 기운을 뭉쳐 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더냐? 그래서야 여느 영물이나 지닌 내단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뿐이니라. 여우 요괴의 여우 구슬은 좀 더, 뭉쳐 있다기보다는 모여서 같이 흐른다는 느낌으로...”
“...이렇게요?”
호아란의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한조의 안에서 뭉쳐 있던 기운이 그대로 쑤욱하고 내려가더니...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니라. 잘하는구나. 그런데... 굳이 그곳에 기운을 모으는 이유가 있느냐...?”
“...아니, 그냥 하니까 이렇게 되던데요.”
꼬리처럼 튀어나와 있어서 그런가, 하고 말하는 한조의 말에 쓴웃음을 지어 보이던 호아란이 이내 몸을 일으켰다.
“그럼 본녀는 이만 나가보마.”
“죄송해요, 호아란.”
“음, 아니니라. 이미 각오한 바이니... 그리고 한조 네가 지금부터 신경 써야 할 것은 본녀가 아니지 않느냐? ”
그대로, 한조의 뺨에 입술을 맞추고는 꼬리들을 살랑거리던 호아란이 말했다.
“본녀보다는, 지금은 유스티티아만 봐주거라.”
“...넹.”
“잘 대답했느니라.”
고개를 끄덕이는 한조를 보고는 그렇게 말하고는 침실 밖으로 나가는 호아란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끼익하고 문이 닫히더니.
호아란이 밖에서부터 문에 대고 주술을 사용했는지 굳게 닫혀 버렸다.
호아란이...
원래 저런 성격이었던가...?
무언가, 평소 호아란이었다면 하지도 않았을 법한 것을 보고서 살짝 놀라고 있을 때, 꾸욱하고 내 손을 잡아 오는 한조가 보였다.
“그럼, 유스티티아.”
“응...?”
고개를 돌리자, 한조가 나를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유스티티아는... 릴리스나 호아란처럼, 정말로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러고는 그렇게 말해 왔다.
움찔, 한순간이었지만.
아주 한순간이었지만 그런 내 말에 어깨를 움츠리는 유스티티아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고개를 끄덕인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이해해,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내가 한 짓이 썩, 그렇게 좋은 짓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알고는 있었구나.
자기 목숨을 가지고 ‘책임져’를 시전한 게 얼마나 곤혹스러운 짓인지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전혀 그런 티를 안 내서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내가 말한 것은 딱히 그거 때문이었던 게 아니라, 잡고 있던 유스티티아의 손을 더더욱 꽉 하고 붙잡고서 말했다.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고.”
딱히 그 일 때문에 유스티티아에 대한, 내 감정이 이게 정말 사랑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그때의 일이야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있고.
이미 지나가버린 일로 계속해서 뭐라고 하기도 그랬다.
단지, 내가 유스티티아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모르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유스티티아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기 때문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선을 그어두고서, 그렇게 행동했던 유스티티아였고 나도 그런 유스티티아에게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애당초 그럴 시간이 서로 없기도 했지만.
거의 온종일 잠이나 자고 있던 유스티티아와 반대로 일만 하느라 바빴던 나.
대화라거나, 뭐라거나 유스티티아와 딱히 한 기억이 없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는, 딱 그런 느낌의 교류면 충분하다고 여겼고.
근데.
“이제부턴, 알아보려고.”
릴리스나 호아란처럼, 확실하게 내가 유스티티아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몰랐다.
그 둘과 달리, 유스티티아를 본다고 어딘가 꾸우욱하고 와닿는 무언가는 없었으니까.
아주 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 둘과 비교하면 확실히 유스티티아쪽이 못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유스티티아를 남에게 준다는 생각하면, 유스티티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유스티티아가 내가 아닌 사람을 사랑해서, 그래서 내 곁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그건 진짜 참기 힘들 만큼 화났다.
릴리스나 호아란이 그렇게 된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화가 나는 만큼.
그것만큼은 똑같이 화가 났다.
“그러니, 그럴 일 안 나게 하려고.”
그대로 유스티티아를 안아서, 침대에 던지듯이 눕혔다.
읏, 하고 짧게 신음하며 그대로 던져져서 침대에 눕혀진 유스티티아.
그리고 그런 유스티티아의 위에 올라탔다.
“그래도, 되지? 유스티티아.”
어차피 허락을 받으려고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니지만.
내 밑에 깔려서, 그런 나를 올려다보는 유스티티아에게 그렇게 물어봤다.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니 말이 너무 심하지 않아...?”
“거짓말은 되도록 안 하려고 결심했거든. 적어도, 모두한테는.”
괜히 뭘 숨기고 있다가, 본의 아니게 그녀들에게 상처를 줄 바엔.
차라리 전부 솔직하게 오픈해서, 그때그때 처맞고 마는 게 싼 편이라고 생각했다.
“흐응... 그럼 나도...”
그런 나를 바라보던 유스티티아가 스윽, 하고 손을 뻗어서 내 얼굴을 더듬었다.
“조금은, 솔직해지는 편이 좋으려나...?”
더듬더듬,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그렇게.
내 얼굴을 만져오던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응... 역시 아무런 생각도 안 들어...”
“...아무런 생각도 안 들다니, 뭐가?”
“그야, 많이들 이야기하잖아...?”
책이라든지, 영화라든지, 그 밖에 여러 가지를 읽고,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는... 모두가 말하는 ‘사랑’이라든지, ‘사랑’ 이야기라든지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고, 그 얼굴을 만져본다던가... 체온을 느껴본다던거 말이야... 하지만, 한조 너한테 똑같이 해 봐도... 아무렇지도 않아.”
봐, 하고.
꾸욱, 하고 내 손을 가져다가, 자기 가슴 위로 올리는 유스티티아가 보였다.
두근, 두근하고.
그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뛰는 심장도. 평소랑 마찬가지인 체온도.
덕분에 전부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유스티티아가, 그런 자기 가슴 위로 손을 올리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런저런, 알고 있는지식을,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랑’이, ‘사랑’이 정말로 그거라면.
“...한조, 너는 날 사랑하는지 아닌지 잘 모른다고 했었지...”
나도 똑같아, 하고.
“널 봐도, 딱히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지 않아. 널 봐도, 딱히 얼굴이 붉어지고... 체온이 뜨거워지거나 하지도 않아. 너랑 말할 때도, 긴장되어서 말이 잘 나오지 않거나 하지도 않고, 너랑 같이 있는 것이 행복해서, 무심코 웃음이 나오거나 하지도 않아.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이건 사랑은 아닐 거야...”
다른 한 손으로, 여전히 내 얼굴을 더듬어오며 그렇게 말하는 유스티티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로 잘 모른다는 거네.”
“...그러네, 그런 걸 수도.”
물끄러미, 그렇게 대답하고서 나를 올려다보는 유스티티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것만 같았다.
푸르게 빛나고 있는 유스티티아의 눈동자는, 그 눈동자에 오롯이 나만을 담아서 비쳐오는 유스티티아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것 정도만큼은.
“저기... 한조.”
그런 유스티티아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손을 뻗어서, 다시 내 뺨을 더듬으며.
“네가 알려줄래...? 나한테, 사랑이란 게 뭔지.”
그렇게 말하는 유스티티아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너도, 알려주라. 내가 널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대로 그런 유스티티아와 짧게 입술을 맞췄다.
츄웃, 하고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서.
입술을 떨어뜨리며 여전히 내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유스티티아에게 물었다.
“어때?”
“...음, 글쎄. 역시 별 느낌은 없는데...”
그런 내 물음에, 조금 전까지 내 입술이 닿았던 자기 입술을 만져 보며 그렇게 대답하는 유스티티아.
나도 입술 좀 맞췄다고 갑자기 유스티티아가 얼굴을 뿅 붉히면서 부끄러워한다든지하는 반응을 기대했던 건 아니라서 딱히 실망은 하지 않았다.
...사실 거짓말이었다.
이쪽은 겨우 입술 좀 맞춘 걸로 심장이 막 뛰어대고 있는데, 정작 유스티티아는 존나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걸 보니 살짝 꼴 받긴 했다.
근데, 나도 지금 내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는 것이 유스티티아정도의 미녀랑 입술을 맞췄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유스티티아를 사랑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폭주제의 약빨을 받아서인지, 자지 쪽은 존나 아플 정도로 발기 중이긴 한데.
이건, 그냥 성욕이고.
그러니까.
“...한 번 더 실험해볼래?”
그런 내 말에,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유스티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또다시 유스티티아와 입술을 맞췄다.
이번에는 좀 더 길게.
“츄웃...”
아주, 조금 더 깊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