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하렘을 만든다는 것 (2)
* * *
아무튼, 그런 나에게 안겨져서 다시 꼬리를 휙휙 흔들어오는 카르미나를 꾸욱, 하고 안아줬다.
“음, 이쪽은 좋아해 주니 다행이구나!”
그런 나를 보고는 베시시 웃으면서 마주 안아주는 카르미나.
“그동안 안아주지 못한 몫까지, 잔뜩 여를 안아주거라 여의 영웅이여!”
그리고는 마구 내 가슴에 얼굴을 문질러대는 카르미나를, 그녀가 바라는 대로 더욱 강하게 끌어안아 줬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폴짝하고 내 허리에 다리를 감은 채로 안겨있던 카르미나가 다시 내려가더니 말했다.
“음, 이제 됐다! 여는 이제 충분하다!”
“그래?”
“충분히 만끽했노라!”
그럼.
“자, 이제 릴리스도.”
“뭐? 잠... 읏...!”
왜 나 때랑은 반응이 다른 건데, 하고 옆에서 투덜거리던 릴리스의 팔을 잡아다가 그대로 끌어당겨서 안아줬다.
“읏...”
카르미나처럼 격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귀 끝이 새빨갛게 물들인 채 얌전히 안겨져서, 살랑살랑 천천히 흔들리는 릴리스의 꼬리를 보니까 무척이나 기뻐하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진짜... 이럴거면 처음부터 그러던가.”
입으로는 엄청 투덜거리고 있긴 했지만.
꽈악, 하고.
그런 릴리스를 카르미나와 똑같이, 한참을 안아주고는 떨어졌다.
그리고 말했다.
“호아란도 이리와요. 카루라도.”
아직 내가 나르메르 왕국에서 지내고 있었을 때였다.
릴리스나 호아란, 그리고 유스티티아에 대한 것을 카르미나에게 고백했었을 때, 그래서 어쩌면 카르미나나 카루라말고도, 내 여자가 잔뜩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때, 오히려 카르미나가 놀라서 내게 여태껏 한 명도 아내가 없었는지 물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내게 카르미나가 내게 해준 조언은 한때 나르메르 왕국에서 아내들이나 남편들을 대할 때의 방법이었다.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
뛰어난 영웅일수록 남녀를 불문하고, 더 많은 아내와 남편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나르메르 왕국에서, 그런 영웅들이 아내나 남편들을 대할 때의 자세에 대한 것들을, 카르미나가 내게 알려줬다.
남자고 여자고 하렘이라는 게 당연하게 존재하는 문화를 갖고 있던 나르메르 왕국에서도 치정 다툼은 흔한 일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람에게 더욱 사랑받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새로 남편이 들인 아내를, 남편이 더욱 귀여워해 줘서 질투하는 경우는 귀여운 편이고, 나르메르 왕국에서 치정 다툼으로 인해서 사람이 죽거나 하는 일도 잦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이에 대한 대처법도 있었다.
대처법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한데.
아무튼, 그런 전통? 문화? 아무튼 그런 게 있었다.
나르메르 왕국에선... 그러니까 예전에, 아직 남자가 있었을 적에는.
아내들을 여럿 둔 남자가 한 아내를 안아줬다면, 다른 아내들도 반드시 안아줘야 했다.
입맞춤이고, 선물이고, 밤일도 뭐고, 전부 평등하게 대해야 했다.
뭐 하나 부족함 없이, 뭐 하나 차별 없이 그래야만 했다.
평등하게 대우하고, 평등하게 사랑해야만 했다.
그것이 여러 아내나 남편을 둔 영웅이 당연하게 지켜야할 의무라고, 카르미나는 그렇게 말해줬고, 나도 납득했다.
그러니까, 카르미나를 잔뜩 안아준 만큼 릴리스도, 호아란도, 카루라도 잔뜩 안아줘야 했다.
그녀들에게 사랑받아서, 내가 무척이나 행복한 만큼.
적어도 그녀들도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조금이라도 내가 받는 행복을 돌려주고자 한다면 그래야만 했다.
“이, 이건 조금 부끄럽구나...”
내게 불려서 다가온 호아란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앞에서 카르미나나 릴리스에게도 그러는 걸 봤으니까 내가 왜 이러는지 짐작이 가는지, 부끄러워하는 호아란.
근데 정작 꼬리들은 살랑살랑 기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호아란에게 내가 말했다.
“부끄러워할 거 뭐 있어요. 남편이 아내 좀 안아주겠다는데.”
“아, 아내... 읏...”
꼬옥, 하고 아내라는 말에 두 뺨을 붉히는 호아란을 안아줬다.
그런 내 눈에 화악, 하고 부풀어 올랐다가 이내 아까보다 더욱 빠르게 흔들거리는 호아란의 꼬리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호아란의 꼬리들을 붙잡고서 마구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충동을, 어떻게든 참았다.
여기서 그러면, 또 릴리스나 카르미나, 꼬리가 없는 카루라의 경우에는 날개를, 처음부터 다시 쓰다듬어야할 판이었으니까.
살랑살랑, 이래도 안 쓰다듬어줄거냐고 무척이나 폭신폭신해보이는 호아란의 꼬리들이 유혹해와도 꾹 참았다.
그렇게 어떻게든 참아내면서 한참을 호아란을 안아주고서, 이어서 카루라도 꼬옥하고 임신 중인 만큼 강하지는 않게, 그래도 제대로 자기만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게, 꼬옥 안아주고 있을 때 부스스한 머리로 침실에서 나오는 유스티티아가 보였다.
“...한조? 거기서 뭐해...?”
“마침 잘됐네, 유스티티아도 이리와.”
유스티티아는 자고 있으니까 나중에 안아주려고 했는데 잘됐다.
“뭔데...?”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내가 부르자 다가온 유스티티아를, 카루라를 잔뜩 안아주고서 나서 끌어안았다.
“응...? 갑자기 뭐야...?”
“그런 게 있어.”
“...응, 뭐... 잘 모르겠지만.”
꾸욱, 하고.
유스티티아가 내 허리를 팔로 감아왔다.
“나도 이러면 되는 거지...?”
“응.”
눈치가 빠른 유스티티아에게 잘했다는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가 아차 싶었다.
당장 유스티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을 본 카르미나부터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카르미나만이 아니라 릴리스도, 호아란도, 카루라도 그런 나를 보고 있었다.
굳이 말로는 안 했어도, 대충 내가 하는 짓을 보고서 뭔지 눈치챘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들을 보고서, 유스티티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평등...
개빡세네...
가정 내의, 그것도 열 명이 채 안 되는 숫자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게 이렇게 빡센데, 세계 정부가 얼마나 골머리를 앓고 있을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모두를, 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어도, 그래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맹세했으니까.
이런 걸로, 그녀들이 괜히 슬퍼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힘내야지.
유스티티아에게서 다시 떨어진 나는 릴리스를 시작으로 다시 전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렇게 전부 똑같이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하고 나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아무튼, 그제야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장 보고 왔다면서요? 뭘 사 온 거예요?”
그런 내 말에 호아란이 아차하는 얼굴로 말했다.
“이런, 까먹고 있었구나. 신선할 때 요리했어야 했는데...”
요리라고?
“조금만 기다려 보거라, 본녀가 금방 요리해올 터이니.”
그렇게 말하며, 장바구니에서 호아란이 꺼내 드는 것들을 보고서 뭘 사왔길래요 하고 물어 보려던 입을 도로 꾹 다물었다.
뭔가, 하나 같이 괴상하게 생긴 것들이, 아주 잔뜩 장바구니에서 나오고 있었다.
몇 몇은 아직 살아있는지 마구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건... 자라, 비슷한 뭔가 같고 저건 장어... 비슷한 뭔가 같은데.
하여간에 하나같이 겁나 커서 저게 어떻게 장바구니에 들어있었나 싶은 것 뿐이었다.
심지어 크기만이 아니라, 생긴 것도 범상찮았다.
말이 자라 비슷한 뭔가랑 장어 비슷한 뭔가지.
내가 아는 자라나 장어는 뿔이 나 있거나, 다리 같은 게 달리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요리를 해준다고요?”
그걸로?
“아, 이것들은 요리하지 않을 것이니라.”
아, 역시.
아무리 좋게 봐줘도 먹는 거로는 안 보였는데, 정말로 먹는 음식이 아니었던 모양이라 안도해 하고 있을 때 호아란이 내게 말했다.
“이 두 마리는 내단이 있으니, 요리해서 먹는 것보다는 배를 갈라서 내단을 끄집어내는 것이 더 좋으니 말이다. 자고로 내단은 생으로 복용하는 것이 가장 좋으니 본녀가 따로 챙겨 놓으마.”
“......”
마침 좋은 것들이 있더구나, 하고 말하는 호아란의 말에 살짝 머리가 어지러웠다.
뭔 동네 마트가 내단 같은 걸, 아니 그냥 내단도 아니고 내단을 품은 영물을 산 채로 팔지?
만드라고라같은 양식이 가능한 최하급 영약이야 그렇다고 치고, 내단이 생겨난 영물은 최소 중급 영약일 텐데.
동네 마트에서 팔만한 물건인가 그거...?
아니, 마트에서 팔았다고 쳐도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
호아란도 세계 정부로부터 엄청 빵빵하게 연금을 타고 있는 부자였지 참.
본인이 재물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아니 오히려 그래서 영약 한두 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도 남을 재력이 통장에 잔뜩 쌓여있을 게 분명했다.
사실 매물이 없어서 그렇지 물건만 있다면 한두 개가 아니라 중급 영약 정도는 상자 째로 사고도 남을 돈이 있는 것이 호아란이었다.
호아란만이 아니라, 연금만이 아니라 따로 디스펜서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릴리스나 요새 일하는 걸 본적이 없긴 한데, 마법공학 어쩌고하는 기관에서 일하며 버는 돈이 있는 유스티티아도 엄청난 부자고...
더는 파라오가 아니게 된 카르미나나 대전사가 아니게 된 카루라도, 챙겨온 이런저런 것들이 잔뜩 있기도 했다.
금값이라든지 보석값이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당장 둘이 즐겨차고 다니는 장신구 한 두 개만 팔아도 장난 아니게 부자가 될 거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 한조야.”
“아뇨, 아무것도.”
살짝 주눅들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제 나도 부자였다.
현금이 없어서 그렇지, 내가 가지고 있는 페도 해골이 쓰던 지팡이만 팔아도 순식간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당장은 현금이 없어서 그렇지.
물론, 내가 페도 지팡이를 팔아서 돈이 잔뜩 생긴다고 해도 셋의 통장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아무튼, 이제 나도 예전의 빈털터리 빚쟁이가 아니었다.
아니, 아직 릴리스한테 돈 다 안 갚았으니까 여전히 빚쟁이긴 하지만.
어쨌든.
“저 둘이야 내단이라고치고, 나머지는요?”
저 둘이 유난히 범상찮게 생긴 거지 나머지들도 엄청난 것들인데.
“아, 이것들은... 그, 한조 네가 요 며칠 사이에 기가 많이 쇠했을 것이지 않느냐? 모두 기를 보양하는데 좋은 식자재들이니라.”
“...보양.”
저게 전부, 그러니까.
아니, 내단을 꺼내오려고 사 온 저 두 마리를 포함해서 전부 그러니까.
“...호아란?”
“그,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니라 전부 몸에도 좋은 것이니까, 그러니까... 아주, 그런 의미로 사온 것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그렇게 말하는 호아란.
덕분에 아무런 설득력도 없어 보였다.
그런 호아란을 내가 빤히 쳐다보자 내 시선에 더더욱 얼굴을 붉힌 호아란이 치마 끝자락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저, 정말이니라!”
정말이었으면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까진 없지 않았을까...
뭐, 그래도.
“네, 믿어요.”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호아란이 그런 의미에서 저, 보기만 해도 입맛이 싹 가시는 것들은 잔뜩 사 온 거라도, 그게 싫다는 것도 아니고.
어찌 됐건 나를 위해서 그런 건데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그것 때문에 사 온 거라고 해도, 그거야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니까 호아란의 탓이 아니었다.
오히려 호아란이 만족할 만큼 열심히 하지 못한 내가 더 미안해야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한조야...”
쫑긋, 쫑긋.
기쁜 듯이 움직여대는 호아란의 두 귀가 보였다.
이내, 그런 호아란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본녀에게만 맡기고 기다리고 있거라, 금방 끝날테니까.”
“아, 저도, 아니... 나도 돕겠다.”
“음, 그럼 카루라는 재료 손질을 좀 부탁하마.”
“여도 도와주마! 여도 여의 영웅에게 해주고 싶은 요리가 있으니!”
“카르미나도...? 그럼...”
아무튼, 호아란과 카루라, 그리고 카르미나까지 부엌으로 향했다.
장도 같이 보고, 요리도 같이 하는 걸 보니 내가 침실에서 처박혀있는 동안 사이가 좋아진게 맞나보다.
그나저나 호아란이나 카루라야 음식을 잘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카르미나도 그랬던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 보니 숨은 실력자려나.
그나저나...
“...뭘 봐?”
“...왜?”
셋이랑 달리, 여전히 내 옆에 남아있는 릴리스랑 유스티티아를 보다가 말했다.
“둘은 그냥 있게?”
“...나는 샌드위치밖에 못 한다니까? 그마저도 아주 이상하게 만들지만.”
흥, 하고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아.
아직 삐져 있었어?
“...그래도 난 릴리스, 네가 해준 샌드위치가 또 먹고 싶은데?”
“......”
빤히, 나를 쳐다보던 릴리스가 말했다.
“...또 이상하다고 할 거잖아?”
“안 해.”
전처럼 몰랐으면 모를까, 알면서도 미쳤다고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러면 뭐... 네가 그렇게 먹고 싶다면야 못 해줄 것도 없지.”
기분이 좀 풀린 모양인지 그렇게 말하고선, 호아란에게 식빵 남은 거 있냐며 물으면서 부엌으로 향하는 릴리스를 보다가, 여전히 가만히 멀뚱멀뚱 있는 유스티티아를 봤다.
그런 내 시선에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요리란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리고, 한조도 알고 있지만, 난 뭐가 맛있는지도 잘 모르고.”
“기왕이니까 유스티티아도 가서 만들어주라.”
“...응, 뭐... 한조 네가 원한다면야.”
기대는 하지 마, 하고.
유스티티아도 결국 부엌 대열에 합류했다.
이걸로 좀 더 사이가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뭐든 같이 하는 게 있으면 사이가 좋아지는 법이니까.
카르미나 말로는 나르메르 왕국에서도 부인들이나 남편들끼리 서로 친목을 도모하라고 이것저것 같이 뭘 하게 하거나 했다고도 들어서 나도 한번 해봤다.
그럼 나는 다들 요리하는 동안 원래 가장 처음 계획했던 샤워나 하기로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