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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176화 (176/523)

〈 176화 〉 하렘을 만든다는 것 (3)

* * *

샤워를 마치고 나서 나왔는데도 아직 한창 요리 중인 것을 보고서, 얌전히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그나저나...

“음! 자고로 단 것은 지복의 맛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으니, 이 설탕이란 것을 잔뜩 넣으면 맛있어질 것이다!”

“잠깐, 파라오...! 아, 아앗...!”

“...어쩔 수 없구나, 이미 넣어버렸으니 양을 늘려서 간을 다시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좀... 많이 양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음, 이건 본녀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파라오, 여기부턴 제가 할 테니 잠시 빠져주십시오.”

“뭐...? 잠깐만, 카루라! 아직 여는...!”

“잠시 빠져주십시오.”

뭔가 살짝 불안해지는데.

자신만만하게 따라가길래 혹시 카르미나가 요리를 잘하는가 싶었는데, 아까부터 이런저런 소란 속에서 들려오는 카르미나의 목소리에 살짝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호아란이랑 카루라도 있으니까.”

그래도 그 둘이 있는데 설마 이상한 게 나올까?

지금도 어째 폭주하는 카르미나를 카루라가 어떻게 말리고 있고, 호아란이 수습하고 있는 모양이고.

다소 불안하기는 해도 어찌어찌 잘되리라고 믿기로 했는데.

“으음, 이걸 넣으면 식감이 좋아지려나...?”

“잠깐만, 유스티티아 그걸 왜 넣... 야!”

“걱정 마, 이거 먹을 수 있는 거니까.”

“이 미친년아! 먹을 수 있다고 그걸 처넣어?! 호아란, 이년 좀 말려봐!”

진짜 불안한데.

대체 유스티티아가 뭘 넣었길래 요리를 못하는 릴리스가 기겁하면서 저러는 거지.

유스티티아가 나한테 뭘 먹이려고 드는 거지...?

부엌쪽에 자꾸만 시선이 향하려는 것을 꾹 참았다.

왠지 봐버리면, 그래서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안될 것 같았다.

근데, 안 보려고 하고 싶어도 자꾸 야단법석이어서 참기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와라, 암무트.”

“나, 죽음으로 심판하는 자, 암무트가 부름에 응하노라! 나의 주인이여!”

내가 부르자 뿅, 튀어나온 암무트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냐앙?!”

그리고 마구 쓰다듬었다.

“냐아악! 뭐하는 짓인가 나의 주인이여! 아무리 영락했다고 한들 나는...”

뭐라고 말이 많은 암무트였지만, 계속 턱밑을 쓰다듬어주니까 얌전해졌다.

“냐앙... 나는... 죽음을... 냐아아앙... 심판하는 자... 암무트이거느을... 냐아앙...”

고로롱거리면서 얌전해진 암무트.

한때는, 나 정도는 한 입에 삼켜버릴 만큼 거대했고, 또 더 과거에는 더더욱 거대했던, 신이기도 했던 암무트가 이러니까 이제 와선 영락없이 그냥 고양이였다.

예전이야 온갖 짐승의 형태가 뒤섞인 괴물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작은 고양이처럼 생겨서 그런지 하는 짓도 고양이 같았다.

암무트의 털도 호아란만은 못했지만, 무척이나 보들보들한게 심신을 안정시키기엔 딱 좋았다.

아무튼, 그런 암무트를 마구 쓰다듬고 있으려니까 나도 도대체 뭐가 나올지 몰라서 불안했던 마음도 다소 진정됐다.

퐁하고.

계속 암무트의 턱을 긁어주고 있는데, 암무트가 생겨난 뒤로 암무트와 마찬가지로 굳이 인형의 형태가 아니라, 소환하는 식으로 부를 수 있게 된 호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부루퉁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응? 왜?”

그리고, 왜 그러냐고 묻는 내 팔을 찰싹 때리더니, 내게 얌전히 쓰다듬어지고 있던 암무트를 밀쳐내는 호아.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호아만도 못한 힘을 가진 암무트가 덕분에 떼구르르 굴러떨어졌다.

“아니, 뭔데. 왜 그래?”

갑자기 호아가 왜 이러는 건가 싶었는데, 휙하고 나를 본 호아가 입을 열었다.

“호아...!”

무척이나 억울하고, 무척이나 섭섭해하는 호아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아...

“미안.”

그래서, 그런 호아에게 사과하고는 안아다가, 내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호아보다 더 작은 암무트를, 호아의 무릎 위에 또 앉혔다.

“자, 이러면 되지?”

“...호아.”

아직 불만이구나.

“자, 미안해.”

그리고 호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줬다.

이번에는, 잊지 않고 암무트도 같이 쓰다듬어줬다.

“냐앙...”

“호아아...”

이쪽도 똑같이 안 대해주면 삐치는구나.

주의해야겠다.

아내들을 똑같이 평등하게 대해줘야 하는 것처럼 식신이나 소환수도 똑같이 대해줘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제대로 기억해두고선, 암무트랑 호아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꼬리를 만지고 있자니 드디어 요리가 끝난 건지 다들 커다랗게 늘여놓은 상에다가 뭔가 잔뜩 올린 채 들고 왔다.

“음...”

근데, 너무 많지 않나...?

상 위에 있는 요리들을 다시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너무 많지 않나 싶었다.

일단...

대체 그것들로 어떻게 이런 걸 만든 건가 싶을 만큼, 무척이나 맛있어 보이는 요리들은 호아란이 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호아란의 요리에 비하면 조금 부족했지만 그래도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은 카루라의 솜씨가 분명했다.

그 옆에 잔뜩 쌓아놓은 샌드위치는 분명 릴리스일 거고.

그때 이후로도 연습을 하고 있던 건지, 그때보다는 훨씬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였다.

근데...

“...으음.”

커다란, 정말이지 장난 아니게 커다란 저 빵인지 뭔지 모를 거랑, 아까부터 부글부글 끓어대고 있는 저건 뭘까.

대체 뭐로 만들었길래 보라색인 거지.

하지만, 곧 그 둘 중 하나는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있었다.

카르미나가 눈여겨보던 두 요리 중의 하나를, 커다랗고 커다란 빵을 들어 올리더니 말했으니까.

“이건 여가 만든 것이니라! 여의 영웅이여! 맛있게 먹거라!”

저걸 만든 게 카르미나라면.

저 보랏빛 괴상한 수프... 인지 아닌지 아무튼, 잘 모르겠는 건...

“...그럼, 이건 유스티티아가 만든 거야?”

“응.”

유스티티아가 만든 게 맞나 보다.

엄청 태연하게 그렇게 대답하는 유스티티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빨리 먹자.”

어찌 됐건, 일단 다들 열심히 만들어준 요리였다.

비록, 하나는 부담스러울 만큼 커다랗고, 또 하나는 음식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둘 다 나를 위해 해준 것들이니까 먹어야만 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반쯤은 내가 뿌린 업보의 결과물이기도 했고.

그런 내 말에 자리에 앉은 모두와 같이,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한 것 같지만 아무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선.”

먹기로 했는데.

다들 밥을 먹을 생각은 안 하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대체 왜 그러나 싶으면서도, 일단 밥이나 먹으려고 했다.

“......”

했는데...

슬쩍, 손을 뻗어서 숟가락을 집으려니까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호아란이나 카루라가 보였다. 그 대신, 카르미나나 릴리스가 기분이 조금 안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다시 숟가락을 내려놓자, 다시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은 릴리스랑 카르미나.

대신, 이번엔 호아란이랑 카루라가 그녀들과 반대로 실망한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진 이유야 뻔했다.

샌드위치를 만든 릴리스나 엄청 커다란 빵을 구운 카르미나는 숟가락으로 먹는 요리가 아니었다.

그에 반면, 해물탕인지 조림인지, 아무튼 그런 요리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을 만든 호아란이나 카루라의 경우엔 숟가락을 사용해서 먹는 음식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숟가락을 집거나 놓은 걸로 저렇게 반응한 거였다.

아...

먹는 순서도 중요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정말로 거기까지 신경 쓰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먼저 골라진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어쨌던 ‘차별’이 될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스티티아는 딱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싶지는 않구나.

부글부글, 끓고 있는 보랏빛 액체를, 유스티티아가 자기가 직접, 아마도 그녀가 한 말대로라면 이번이 처음으로 만들어본 요리인 보라색 맛이 날 것 같은 수프인지 뭔지를 슬쩍 내 쪽으로 밀어내고는 나를 빤히 바라봤으니까.

내가 왜 다 같이 요리해달라고 한 걸까.

이래서야 뭘 먼저 고를 수가 없잖아.

어느 하나를 먼저 먹게 되면, 남은 요리들을 해준 쪽들이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좀처럼 고를 수가 없었다.

조졌네...

이걸 어쩌지...?

그냥 신경 끄고 아무거나 냅다 먹어버리고 말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오...!”

손을 뻗어서, 커다란, 정말이지 커다란, 카르미나가 만든 빵을 집었다.

붕붕붕,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는 카르미나가 보였지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나머지들이 다소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니까.

“호아.”

“호아아...”

스윽, 하고 손가락을 까딱이는 호아.

그러자, 커다란 카르미나의 빵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호아가 계속 내가 시킨 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염동력을 사용해서 모두가 해준 요리들을, 그렇게 반으로 썰은 빵 위에 쌓았다.

쌓고, 또 쌓았다.

내 몫의, 호아란이 해준 요리도, 카루라가 해준 요리도, 릴리스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도, 전부 차곡차곡 쌓고서는 다시 남은 반쪽짜리 빵으로 덮었다.

“후우.”

그리고, 내가 유스티티아가 만든 정체불명의 보랏빛 수프를 그 위에 뿌렸다.

“...잘 먹겠습니다.”

완성된, 존나게 커다란 빅 사이즈의 샌드위치를, 그렇게 집어 들어다가 한 입 크게 베어서 먹었다.

입가에서 퍼지는, 엄청나게 달디 달아서, 이게 대체 뭔가 싶은 맛의 빵과 그런 빵의 미치도록 달달한 단맛에 침범당해버린 온갖 음식들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뭔가... 아주 복잡한 맛이었다.

이렇게 해놨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맛이 없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생긴 건 이상한데, 빅 샌드위치 겉에다가 잔뜩 뿌린 보랏빛 수프도 생각보다 먹을만하고.

근데 다 섞이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온갖 맛이 뒤섞여서 입안에서 펑펑 터져대고 있었다.

왜 하나같이 자기 주장이 이렇게 센 걸까...

그래도.

우적우적, 전부 씹어서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삼켰다.

꿀꺽, 목 너머로 넘긴 빅 샌드위치.

“...뭐해요? 다들 안 먹고.”

그런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모두에게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앗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두가 보였다.

시선만큼은, 여전히 빅 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 있기는 했지만.

엄청 복잡미묘한 얼굴로 나를 보는 릴리스나, 괜찮나하고 걱정스레 보는 호아란이나 카루라, 그리고 그냥 자기가 만든 빵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기쁜지 꼬리를 휙휙 흔드는 카르미나와 좋아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빤히 계속 쳐다보고 있는 유스티티아까지.

내가 다 먹기 전까지는 좀처럼 먹을 기색이 보이지 않아서, 마저 빅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그, 맛있느냐? 한조야?”

그런 내게 조심스레 묻는 호아란.

그런 호아란에 입 안에 밀어넣었던 빅 샌드위치를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먹을만해요.”

근데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요리는...

순번을 정해서 하는 걸로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은 빅 샌드위치를 마저 우적우적 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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