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뿌리 내릴 장소 (3)
* * *
씽씽이를 타고서 씽씽 달린 끝에 도착한 드리아데스 식물원.
전에 와봤을 때도 그랬듯이 텅텅 비어있는 주차장에 대충 아무렇게나 씽씽이를 대고서 식물원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분위기가 원래 이랬던가?”
전에도 한 번 와봤던 드리아데스 식물원인데 그때 왔던 곳이랑 지금이랑 같은 곳인지 의아스러웠다.
딱히 식물원의 모습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전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온통 초록으로 무성한 식물원이었으니까.
단지, 내가 느끼기에 한참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곧 드리아데스 식물원의 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변한 건 드리아데스 식물원이 아니라 내 쪽이었다.
처음 왔었을 때는, 그때까지는 전혀 느끼지도 못했던 이질감.
그때는 그저 나무들이 참 많구나하고 여겼었던 드리아데스 식물원의 본질을, 이제야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것뿐임을 알게 됐다.
세상에서 동 떨어져나온 듯한, 마치 이곳만 별개의 세상인 것처럼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성장하면서 그만큼 기감이 발달한 탓이리라.
그래서, 이제 와서지만 여기가 얼마나 괴상한 장소인지 알 수 있었다.
모든 기의 흐름이 한 곳으로 흐르고, 또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본래, 기라는 것은, 마나라는 것은 온갖 것에 깃들어있는 것이었다.
아예 없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러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근데, 여기서는 달랐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맥동하면서, 피를 빨아들이고 내뱉듯이.
안쪽으로 기를 빨아들였다가, 다시 내보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억지로 순환하는 기가, 이곳을 이질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별개의 세상.
별개의 법칙이 흐르는 것과 같은, 그런 기분이 들게 하고 있었다.
아마, 그리고 그건 기분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럴 것이리라.
‘함부로 아리아드랑 계약이라든지, 약속이라든지는 하지 마.’
릴리스가 내게 주의하라며 이야기 해줬던 것이 떠올랐다.
‘거긴 아리아드의 영역이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로 언약을 맺는 건 일도 아니니까.’
영역.
드리아데스, 세계수의 정령인 아리아드의 영토.
“괜히 쫄리네.”
아마... 그 중심지에는 저번에도 봤었던, 아리아드의 본체이자 여기 있는 모든 세계수들 중에서도 가장 커다랬던 나무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여간에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야 거대한 생물의 뱃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으니까. 정작 보이는 것은 온통 나무뿐이라 그런지 더더욱 괴리감이 심했다.
느껴지는 기운이 사이하거나, 사악했었더라면 몸서리치면서 빤스런을 쳤을 것 같이 뭔가 좀 그런 기분이긴 했다.
이곳에서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여기의 주인과는 싸우면 안될 것 같다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필패의 예감에 의한 거부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어차피 아리아드랑 싸울 생각인 것도 아니지만, 하여간에 그랬다.
하지만, 단지 그런 기분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것 때문에 신경이 무척 쓰였다.
이질감이라든지, 괴리감이야 뭐,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런 기분이 들 뿐이지, 그것이 꺼림칙한 느낌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이런 것도 있구나 싶은, 신기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거랑 달리, 이 ‘시선’만큼은 좀 그랬다.
그때는 단지 나무들이 많구나, 단순히 그렇게만 여겼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전부 나를 보고 있었다.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이라곤 전부 나무들뿐이었으니까.
근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바로 그 나무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나무가 전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살짝 쫄렸다.
딱히 악감정이 느껴지기보단, 오히려 환영하고 반기는 느낌이긴 한데 그래서 더욱 장난 아니게 부담스러웠다.
마치 거대한 생물의 몸속을 걸어 다니면서, 그 와중에 그 생물의 위장 속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눈을 통해서 지켜봐지면서 환영받는, 그런 기분이었다.
“인간?”
“인간이다.”
“누구?”
“손님?”
“손님이 온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그러면?”
“그러면 누구?”
하여간에, 아리아드를 찾아서 그런 나무들 사이로 얼마나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을까 전에도 봤던 녹색 머리의 꼬꼬마들.
요정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네들끼리 무슨 놀이를 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흙을 잔뜩 쌓아두고 있던 요정들이 나를 발견하자 전처럼 빤히 이쪽을 쳐다보며 속닥속닥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요정들을 보게 되니까 오히려 안도가 되는 건 왜일까.
전에는 저 요정들만 봐도 쩔쩔매긴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안심된다는 게 신기했다.
근데 어쩔 수 없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정작 온갖 곳에서 시선을 받는 듯한 감각이 이어지다가 그나마 사람다운 형태를 한 요정들이 빤히 쳐다보니까 되려 안심이 됐다고 해야 하나.
“불청객?”
“불청객이야?”
“불청객은 나빠.”
“나빠?”
“나쁘면 혼나야 해.”
근데 요정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아니, 나 저번에도 왔었...”
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촤르르륵, 뻗어져 나오는 나무줄기들을 보고서 기겁해서 뒤로 펄쩍 뛰었는데, 뒤에도 요정들이 있었다.
“인간, 빠르네.”
“묶지 못했어.”
“그러면?”
“묶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하는 거였지?”
“그러면 가시야.”
요정들의 주위로 보이는 초록빛의 무언가들이 물결친다.
그리고.
“아니, 씹.”
푸슈슈슈슈슉...!
수도 없이 많은, 가시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밤송이의 가시보다 서너 배는 더 길쭉한, 가시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길고 뾰족한 가시들이 마구잡이로 내게 쏘아져 왔다.
어쩔 수 없었다.
주술에 익숙해지고자, 이제는 호아가 없이도 혼자서도 쓸 수 있는 강체를 몸에 써서 두르고 있었지만, 지금의 내 몸, 기프트가 발현중이지 않은 지금은 기껏해봐야 평범한 인간에 비해 조금 더 튼튼하고 재빠른 수준이었다.
거기에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수준의 강체로 두어배정도 더 나아졌다고 해도, 기껏해봐야 평범에서 조금 나아진 수준이란 거다.
바로 코앞에서 쏟아지는 저 가시들을 피하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몸으로 맞으면 좆될 것이란 것쯤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촤아악!
유스티티아가 어제 다시 고쳐서 준 천호의 갑주를 뒤집어썼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검게 물들어진 천호의 갑주가 온몸을 감싸자, 자신감이 샘솟았다.
자신감의 이유야, 별거 없었다.
티티티팅, 하고.
요정들이 내게 쏟아붓는 가시들이 천호의 갑주에 가로막혀서 튕겨 나가는 것들이 보였다.
내가 할 일은 시야를 위해서라도 가리지 못하는 눈 부위에만 가시가 날아오지 않도록 잘만 막으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조금의 가시도 안 박혀 들어가는 튼튼한 천호의 갑주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거 외에는.
촤르르륵!
“읏차.”
가시들과 함께 내게 달려들던 나무줄기도 붙잡고 잡아 뜯으니까 손쉽게 뜯겨나갔다.
딱히 대단한 공격은 아니었구나.
갑작스럽게 공격받기도 하고, 숫자가 워낙 많아서 쫄았는데, 나무줄기들도 별 거 없고, 가시들을 맞을 때 몸으로 전해지는 충격은 해골 바가지들한테 처맞았을 때랑 비교도 안 될 만큼 약했다.
그냥 장난 수준이었나.
요정들은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니까...
하나같이 그 스케일이 인간의 기준으론 장난의 범주를 벗어나서 그렇지.
이 정도면 요정들의 기준으론 장난 축에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 근데...”
릴리스가 요정들의 장난에 어울려주지 말라고 했었는데.
딱히 어울려주려고 어울려준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곧, 릴리스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빤히 나를 바라보던 요정들이 또 지들끼리 속닥거렸다.
“신기해.”
“인간, 변신했어?”
“변신해서 가시들을 막았어.”
“그럼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냐?”
“인간이 아니면, 괜찮댔어.”
“괜찮아?”
“괜찮아.”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더 강하게.”
더 강하게, 그렇게 노래하듯 연호하던 요정들이 손을 꾹 맞잡는 것이 보였다.
둘, 셋, 넷, 저마다 제각각 손을 맞잡는 요정들. 그중에서는 혼자만 남아서 손을 잡을 요정이 없자 시무룩하게 자기 혼자서 손을 맞잡은 요정도 보였다.
근데 뭔가 어벙하기도 해서 귀여운 그런 요정들의 행동과 별개로, 그 뒤에 나타난 것은 별로 귀엽지 않았다.
“아.”
요정들의 주위로 초록빛들이 모인다. 모여서, 이윽고 거대한 주먹이 나타났다.
아니, 주먹들이 나타났다.
촤르르륵, 하고 나무줄기들이 얽히고설켜서 잔뜩 뭉쳐져 버린, 거대한 질량 덩어리들이 아주 잔뜩.
저건 좀.
아파 보이는데.
“아니, 나 불청객 아니라니까. 저번에도 왔었...”
“이것도 받아봐, 변신하는 인간!”
내 말을 자르며, 꺄르륵거리며 그렇게 외치는 요정들.
잔뜩 신이 난 듯 몇몇은 나를 보고 힘내라면서 응원하기까지 하는 요정들을 보니까.
“딱밤 마렵네.”
존나게 꿀밤이 마려웠다.
어쩔까 하다가, 이내 주먹을 움켜쥐었다.
요정들에게 딱밤을 날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촤르륵...
그런 내 주먹 위로 감싸며 생겨나는 용 발톱.
천호의 갑주와 마찬가지로 검게 물든 용 발톱이 주먹 위로 둘러싸였다.
그래도, 진짜 싸울 생각인 것도 아니니 웨어허니비의 송곳까지는 꺼내지 않아서, 용 발톱이라기보단 그저 뭉퉁하고 커다란 건틀렛처럼 보였지만.
“또 변신했어.”
“재밌어!”
“대단해!”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보자!”
요정들이 웃으면서 손들을 휘젓자 주먹들이 휘둘러져 왔다.
진짜, 딱밤 마렵다.
아무튼, 내게 휘둘러져 오려는 거대한 나무줄기로 된 주먹을 맞받아치려고 할 때였다.
“그마안.”
우웅,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요정들과 나, 모두 멈춰 섰다.
“그 이상으은 장난으로 넘어갈 수 없으니까아, 그만 두려엄?”
목소리와 함께, 내 발밑에서 나무가 솟아올랐다.
촤아아악, 하고 내 다리를 시작으로, 온몸을 휘감으면서 자라나는 나무가.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나무가 이윽고 내가 잘 알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오랜만이네에, 한조야아?”
아리아드.
세계수의 정령의 모습으로.
“우후후... 생각보다 일찍 다시 보게 됐는 거얼.”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딱딱한 나무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아리아드의 살결로 바뀌어서, 내 몸을 감싸 안고 있으니까 기분이 엄청 이상했다.
무엇보다도.
“그나저나아... 전에는 귀여웠지만, 이젠... 아주 멋져졌는 데에, 우리 한조오♡”
전에 봤을 때보다도 훨씬 커져 버린 것 같은 젖탱이를, 그때는 그나마 나뭇잎으로 가리기라도 했는데도 지금은 그냥 그대로 드러나서, 커다란 젖탱이 위로, 가슴만큼이나 커다란 젖꼭지가 전부 보이니까 장난 아니게 꼴렸다.
아무튼, 그런 아리아드의 등장에 요정들이 호다닥 튀어서 나무 뒤에 숨거나 손으로 자기 눈만 가리거나 하면서 얌전해진 것을 보고는, 일단 움켜쥐었던 주먹을 피며 말했다.
“오랜만에 보네요. 아리아드.”
나보다도 훨씬 키가 커다란 아리아드가 그런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짓다가 이내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응? 이상하다아... 주변에 릴리스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 거얼, 혹시 혼자 온 거니이?”
“아, 네.”
“어머... 그래애...?”
그런 내 말에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아리아드.
“오늘은 혼자서 왔구나아, 우리 한조오...♡”
꾸욱, 하고 커다란 젖탱이를 내게 들이밀어오는 아리아드가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푸욱, 하고 얼굴이 젖탱이에 감싸여버렸다.
그런 아리아드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저기, 아리아드? 일단 좀 떨어져 주실래요?”
“으응? 혹시 싫은 거니이?”
싫은 건 아닌데.
오히려 말랑말랑, 포동포동한 아리아드의 젖가슴 사이에 얼굴이 파묻혀서 무척이나 좋았다. 게다가 아리아드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기도 좋았고.
그래서, 너무 좋아서 문제였다.
정절이라고는 모르는 내 자지가, 덕분에 존나 껄떡거리면서 그런 아리아드의... 나뭇잎이고 뭐고 없이 알몸인 아리아드의 보지를 마구 찔러대고 있었으니까.
나를 앞에서 꽉 끌어안은 아리아드의 키가 나보다 크기도 하고, 내 자지가 길어서 그런지 딱 귀두에 닿는 위치가 아리아드의 보지여서 어쩔 수 없었다.
톡, 톡하고 그런 아리아드의 보지에, 바지 밑으로 잔뜩 발기한 내 자지가 찔러대고 있으니까.
이게 내 의지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란 것도 알지만, 아리아드의 젖탱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발기해서 그러고 있으려니까 양심에 엄청 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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