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뿌리 내릴 장소 (5)
* * *
내가 그렇게 외치자 내 곁에 순식간에 모여든 요정들과 녹색 빛무리들.
한순간에 둘러싸이니까 살짝 부담스러웠다.
“저기, 술래잡기가 뭐야?”
“놀아줄 거야?”
“노는 거야?”
“놀아?”
“언니가 인간이 우리랑 놀아준대.”
근데 막상 모인 요정들도 그냥 모인 거지, 딱히 술래잡기가 뭔지 알아서 모이거나 그런 느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부르니까 모였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잔뜩 내 곁에 모인 요정들에게 일단 간단하게 술래잡기가 뭔지부터 이야기해줬다.
“숨어?”
“우리가 왜?”
“인간이 우릴 찾는대.”
“꼭꼭 숨어?”
“숨지 않으면 잡아간대!”
“잡아가?”
“무서워!”
대충 술래잡기의 룰을 알려주자 그렇게 속닥거리던 요정들. 그런 요정들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겠다!”
“하자!”
“술래잡기할래!”
“그럼, 인간.”
“ㅡ우릴, 찾아봐?”
그렇게 말한 요정들이, 이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니.”
뭔데.
아직 시작한다고 말도 안 했는데.
분명 눈앞에 있었는데 일말의 전조도 없이 스르륵, 녹아 사라져버리듯이 모습을 감춰버린 요정들을 보고서 당황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서, 보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사라져버렸으니까.
하지만, 곧 진정했다.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아니, 가능한 녀석들이 있다고는 해도 조금 전의 그 요정들 수준에서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 분명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게 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기를 눈에 두른다.
그러자, 흐릿하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뿌옇게, 무언가 보일 듯 말 듯이.
기의 일그러짐이 보였다.
하지만, 이미 ‘밖’이랑은 여러모로 다르게 흐르고 있는 기여서 그런지 이래도 명확하게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거론 살짝 부족한 느낌.
그러니 아리아드 덕분에 발딱 서 있는 자지와 그로 인해 발현 중인 기프트의 힘도 끌어올렸다.
카루라의 종족 능력.
본질 그 자체를 꿰뚫어 보는 신조의 피를 이은, 카루라가 가진 ‘천통안’을 발동시켰다.
...이것들 봐라.
그제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코앞에서 입을 꼭 틀어막고 멀뚱히 서 있는 세 요정의 모습이었다.
덕분에 어릴 적에 고아원의 동생들과 술래잡기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60초간 숨어있도록 숫자를 세고 나니까, 바로 내 등 뒤에 숨어있거나 했던 적이 종종 있었으니까.
근데 이 녀석들은 등 뒤에 숨는다는 것도 안 하고, 그저 순전히 자기들의 능력만 믿고서 대놓고 눈앞에 덩그러니 있었다.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숨죽인 채 그러고 있는 요정들을 보니까 살짝 꼴받았다.
“...어디로 숨었을까.”
그래서, 두리번거리면서 아무것도 모른 척 걸음을 옮기다가 그대로 눈앞에 있던 세 요정을 끌어안아서 붙잡았다.
“잡았다!”
“에?”
“잡혔어?”
“인간, 우리가 보여?”
“잘만 보인다 이것들아.”
일단 셋.
근데 아직 요정들은 잔뜩 남아있었다.
진짜로 잔뜩.
더군다나.
“우리가 보인대!”
“도망쳐어어!”
“요정들의 멸망이 도래했다아아!”
내가 자기들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이 건방진 세 요정과 달리 나무나 이런 저런 것들 뒤에서 숨어서, 빼꼼 머리만 내민 채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요정들이 쏙쏙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지 술래잡기지.
이 세 요정처럼 술래를 우습게 보면 안 되는 법이었다.
근데, 덕분에 더 귀찮아진 것 같은데.
쏙쏙 모습을 감춰버린 요정들을 나 혼자서 전부 잡아들이려면, 아리아드가 준 이틀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았다.
“음.”
해볼까.
“호아야, 그거 하자, 그거!”
“호아아ㅡ”
퐁, 하고 부름에 응해서 내 안에서 퐁하고 튀어나온 호아가, 그대로 폴짝 뛰어서 내 어깨에 목마를 타듯이 앉았다.
그리고.
스르르르르륵...
그런 호아의 꼬리들이 내 쪽으로 옮겨갔다.
호아가 가진, 다섯의 여우 꼬리들이 전부 내게로 옮겨져 왔다.
단순히 꼬리들만 내게 옮겨온 것이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혼자서 강체를 쓸 수 있는 수준이 된 나랑 달리, 호아는 혼자서라면 호아란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뛰어난 술사였다.
그런 호아의 술을, 이젠 나도 쓸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도.
“분신.”
펑펑펑펑펑...!
내 모습을 똑 닮은, 하지만 호아의 꼬리를 옮겨 받은 나랑 달리 그냥 천호의 갑주와 용발톱을 두르고 있을 뿐인 내 분신들이 여럿 튀어나왔다.
“쓰읍...”
고작 다섯의 분신을 만들었을 뿐인데, 그 다섯으로부터 공유되는 시야나 감각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부탁할게, 호아야.”
“호아!”
꽈악, 하고 손으로 내 눈을 감싸오는 호아.
덕분에 내 눈은 가려졌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분신들이 보는 시야들도, 내가 보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더군다나 호아의 보조로 어질어질하던 머리도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정작 나는 호아의 보조를 받아도, 분신들을 다루느라 꼼짝도 못하게 됐지만, 괜찮았다.
수적으로는 하나가 줄어드는 대신, 다섯이 더 늘어난 거니까.
“““““그럼, 가볼까.”””””
가볍게, 몸을 풀은 분신들이 일제히 땅을 박차고서 요정들이 도망친 곳을 향해 뛰었다.
“이거 놔~!”
“움직이지 마.”
“이렇게 끝날 순 없어...! 반드시 탈출하고 말 거야...!”
“그런 규칙 없거든.”
아니, 진짜 술래잡기에는 있는 룰이긴 했지만, 이번 거는 수백이 넘는 요정들과 나 혼자 술래로 하는 거다 보니까 땡쳐주면 도망칠 수 있게 해준다거나 하는 룰은 제외한 상태였다.
한 번만 붙잡으면 그걸로 끝이란 거였다.
그런데 승복하지 않고서 내 품에서 발버둥치는 요정을 보고서 할 수 없이 말했다.
“얌전히 있지 않으면 잡아먹어버린다?”
쩌억, 하고.
언동으로나보나 겉모습으로 보나 꼬꼬마인 요정이 보기엔 꽤 무섭게 생긴 천호의 갑주의 머리부분의 입을 쩍 벌리면서 그렇게 말하자,
“히이에에에엑!”
얌전해진 요정이 보였다.
조금 너무 겁을 준 것도 같긴 한데.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게 된 요정을 보고서 좋은게 좋은 거겠거니 하기로 했다.
아무튼, 또 붙잡은 요정을 안고서 도착한 곳.
가부좌를 틀은 채로, 호아를 목마를 태우고 있는 내 곁에 잔뜩 모여있는 요정들 사이로, 붙잡아온 요정을 내려줬다.
“구해주러 왔구나!”
“아니, 나도 잡혔어.”
“허접.”
“붙잡혀버리다니, 한심해.”
“나보다 너희가 먼저 붙잡혔잖아!”
“허어접~”
얘네들은 대체 어디서 저런 말들을 배운 걸까?
아무튼, 이어서 다른 분신들도 허리춤에 끼고 온 요정들을 척척 내려놓고, 수를 세어보니까 전부 붙잡은 것 같았다.
“...이제 끝인가?”
하루 꼬박 걸릴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존나 지쳤다.
여태껏 고생한 나를 칭찬하며, 분신들을 해제한 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꺄아아아!”
“움직인다아아!”
덕분에, 내 위에 올라타고 있던 호아가 부러웠던 건지 아니면 그냥 그러고 싶었던 건지, 어깨나 등이나, 이런저런 곳에 내 위에 올라타거나 앉아있던 있던 요정들이 떼구르르 굴러서 바닥에 떨어졌다.
살짝 놀랐지만, 그대로 굴러떨어진 요정들이 착, 착하고 착지하더니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6점.”
“7점.”
“2점.”
“다음에는 좀 더 예술적인 착지를 보여주세요.”
또 그것들을, 대체 무슨 기준인지는 몰라도 지들끼리 점수를 매기는 것도 보였다.
아무튼, 나만큼이나 고생해서 잔뜩 지친 호아를 도로 역소환한 뒤에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찾은 요정들을 전부 잡아오기는 했는데, 이게 전부인지 잘 모르겠다.
“다 있는 거 맞지?”
혹시나 해서, 요정들에게 그렇게 묻자 붙잡힌 뒤에도 자기네끼리 이런저런 놀이를 하면서 다른 요정들이 잡혀 오면 놀리는 것을 반복하던 요정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다 잡혔어~”
“술래잡기 재미있었어!”
“나중에 또 하자!”
“다음에는 안 잡힐 거야!”
“나도 술래 해보고 싶어!”
요정들도 만족한 모양이었다.
근데...
“...이건 왜 그대론데?”
여전히 내 팔목에 말려있는 나무줄기로 된 팔찌에 의아해하고 있었을 때였다.
스르르륵, 하고 그런 내 눈앞에 나무가 자라나더니, 이윽고 아리아드로 변했다.
“다들 재미있게 놀은 모양이네에?”
“응!”
“인간, 재미있었어!”
“술래잡기 좋아!”
“이번 요정배 재미있는 놀이 어워드 일등의 예감?”
“흙쌓기를 이기는 다크호스의 등장!”
아까 봤었던, 자기네끼리 흙 마구 쌓고 있던 거 놀이가 맞았구나.
그것도 요정들 사이에서 상당히 히트중인 놀이였던 모양이었다.
“그래, 다행인 거얼. 한조가 놀아줘서 다들 좋았던 모양이구나아.”
그런 아리아드에게 우르르 모여서 조잘거리는 요정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아리아드를 보고서 내가 물었다.
“저기, 아리아드.”
“으응?”
“이거, 아직도 안 풀리는데요?”
모든 요정이랑, 그런 요정들 곁에서 날아다니던 초록 빛 무리들... 아직 어린 정령들과 전부 놀아줬는데.
그래서 다들 만족한 것 같은데 여전히 팔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하는 팔찌를 보여주면서 그렇게 말하자, 아리아드가 흐으응하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저기이, 한조오?”
“네?”
“내가 누구게에?”
누구냐니, 그야 아리아드는 아리아드지.
세계수의 정령, 드리아데스인 아리아드...
“아.”
아리아드도 정령이었지.
“우후후후...♡”
그런 나를 보면서 웃는 아리아드가 보였다.
“잠깐만요, 아리아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많이 늦은 뒤였다.
촤르르륵, 하고.
내 발밑에서 솟구친 나무줄기들이 그대로 나를 묶어버렸으니까.
아, 이걸 또 당하네.
내 몸을 묶은 나무줄기를 풀려고 했는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존나 꿈쩍도 안 했다.
그동안 나도 장난 아니게 강해진 것 같은데, 이래도 안된다고?
뚜벅, 뚜벅하고 그런 내게 다가온 아리아드가 손을 뻗어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한조오, 우리 뭐하고 놀까아?”
스르륵, 하고 그런 내 앞으로 다가오는 꽃이 보였다.
새하얀 꽃이.
쩌어업♡
그 새하얀 꽃의 한가운데가 벌어지면서 나온 돌기로 가득한 내부나, 촉수를 보니까 이전에 당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리아드의 보지라고 생각하고서, 저기에다가 마구 사정했던 것이 떠올라버렸다.
나중에 아닌 걸 알고서 엄청나게 배신감을 느꼈었던 것도.
아니, 근데 갑자기 저건 또 왜 꺼낸 건가 싶었는데, 내게 아리아드가 말했다.
“또오 저번처러엄 여기에 뷰웃뷰웃하고 사정하면서 놀래애?”
아니, 그게 무슨 놀이야.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게 아니며언, 하고.
그런 내게 아리아드가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보지를 열어 보였다.
뚝, 뚝...♡
수액과는 다른 투명한 액체가 그런 아리아드의 보지에서 스물스물 흘러나와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느은 이쪽으로 놀까아...? 으응? 어때애, 한조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