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서큐버스 오망성 (1)
* * *
“야, 빨리 일어나. 슬슬 나갈 준비해야 하니까.”
툭툭, 하고 나를 흔들며 말하는 릴리스. 덕분에 막 잠이 들었다가 도로 깨버린 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런 릴리스를 보다가 말했다.
“잠깐만... 나... 피곤해...”
장장 3일에 걸쳐서 벌이라는 명목으로 모두에게 잔뜩 빨린 끝에 겨우 용서받았는데, 용서받은 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바로 그 뒤에, 화해 섹스라면서 여느 때랑 같이 다시 시작한 의무방어전에 다시 쪽 빨렸으니까.
벌도 착정, 화해도 착정인 무시무시한 행태에 정말로 일주일 동안 자양강장제만 입에 달고서 마구 해댄 덕분에, 장난 아니게 피곤했다.
근데, 정작 그런 나랑 달리 요 일주일 동안 나를 쪽 빨아댄 덕분인지 무척이나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릴리스가 나를 보다가 말했다.
“그렇게 피곤해?”
“엉...”
“그럼 자, 이거.”
뭔데, 하고 봤더니 지난 일주일간 매일 같이 입에 물고 있던 그거였다.
“아직 한 병 남았으니까, 정 피곤하면 이거라도 빨던가.”
“...나 그거만 보면 속이 메슥거리는데.”
진짜로, 저 병만 봐도 PTSD가 올 것 같다.
“엄살 피우지 말고, 피곤하다며? 빨리 마셔.”
꾸욱, 하고 내 입에 들이미는 자양강장제에 어쩔 수 없이 또 쪽쪽 빨았다.
덕분에 몸은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오늘 새벽까지도 계속 이어졌던 착정으로 반도 회복되지 않았던 사정 횟수가 다시 차올랐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회복한 건 육체적인 피로지 정신적으론 여전히 엄청 피곤하긴 했지만.
“이제 됐지?”
“아직 피곤한데, 10분만 더 자면 안 될까?”
“또 혼나기 싫으면 당장 일어나.”
“넵.”
당장 일어났다.
“빨리 가서 씻고, 그거로 갈아입어.”
그런 내게 릴리스가 휙 하고 던져 준 옷을 받아보니, 웬 정장이었다.
“웬 정장이야?”
“평소에 입던 그 싸구려 옷, 이번에도 입으려고 그랬어? 너 오늘 약속도 잡혔잖아.”
그건, 그렇지.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하나, 릴리스랑 같이 지부장들인 서큐버스들을 보기로 한 오늘 세계정부측에서도 연락이 와서 보자고 했으니까.
아마 나르메르 왕국에서의 일로 이런저런 얘기를 듣지 않을까 싶었다.
이야기를 전해줬던 한유진의 말로는 최소한 훈장은 받을 거라고 했었던가.
어쨌든, 덕분에 오늘은 좀 바쁘긴 했다.
먼저 릴리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모인 지부장들과도 만나 봐야 하고, 그 뒤에는 세계정부 측의 인사를 보러 가야 했으니까.
“이거 비싸 보이는데, 얼마짜리야?”
“별로 안 하니까 신경 쓰지 마.”
별로 많이 할 것 같은데.
재봉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손에 닿는 감촉이 나 아주 비싼 옷이라고 자기주장을 해 오고 있는데.
흡사, 릴리스의 팬티같이 보들보들한 게,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감촉이었다.
그 하나에 수백만을 하던 릴리스의 팬티 수준에다가, 팬티가 아니라 정장이기까지 하니까 진짜 장난 아니게 비쌀 것 같았다.
보아하니, 이 정장도 릴리스의 팬티마냥 아라크네의 실로 만든 것 같고.
“...옷을 왜 그렇게 변태같이 만지작거려?”
“아니, 그냥.”
만지는 느낌이 팬티 감촉이랑 똑같길래 무심코 나도 모르게.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였으니까 릴리스가 준 정장으로 갈아입기로 하고 어영부영 몸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네가 늦게 일어나서 시간 별로 없거든? 빨리 움직여.”
“아야.”
찰싹, 하고 꼬리로 내 엉덩이를 때린 릴리스의 재촉에 엉덩이를 문지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서 샤워실로 향했다.
“흐응, 꾸미니까 그래도 좀 볼 만하네.”
샤워를 마치고서, 릴리스가 준 정장으로 갈아입고 또 릴리스가 갑자기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더니 처음으로 꺼낸 말이 저거였다.
“너무하네, 진짜.”
꾸미니까 좀 볼 만하다니, 그럼 그전에는 볼 만하지 않았다는 건가.
“왜, 삐졌어?”
“안 삐졌어.”
“삐진 것 같은데.”
“안 삐졌다니까.”
“안 삐졌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쿡쿡하고 내 뺨을 찌르는 릴리스가 보였다.
뭐가 재미있는지 내 뺨을 찔러대며 키득거리는 릴리스를 보니까 잘생기고 자시고가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나보다 잘생긴 놈들이야 세상에 수없이 많겠지만, 어차피 릴리스가 사랑하는 건 나였으니까.
더군다나.
“오오, 영웅의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머리를 올리니까 깔끔해서 보기 좋구나, 한조야.”
릴리스야 좀 볼 만하다고 한 정도지만, 카르미나나 호아란에게는 호평이었다.
저 둘이야 평소의 나도 멋지다고 했었던 만큼, 딱히 엄청나게 기뻤다. 기왕이면 릴리스도 저 둘처럼 멋지다고 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유스티티아랑 카루라는? 나 어때?”
“응? 글쎄... 나는 이런 쪽은 잘 모르니까, 다들 좋다고 하니까 좋은 거 아닐까?”
“미, 미안하다. 나도 평소의 그대나 지금의 그대나... 모두 좋아서 잘 모르겠다.”
머리 스타일이 바뀌는 거야 아무래도 좋은 유스티티아나 그냥 내가 다 좋다는 카루라도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내들은 잘 만난 것 같았다.
하긴 얼굴이야, 나를 사랑해주는 아내들한테만 잘 먹히면 그만이지.
그래도, 나도 대체 어떤지 궁금해서 릴리스에게 거울을 달라고 해봤다.
“응? 뭐, 한 번 보던가.”
그렇게 말하며 릴리스가 내민 거울을 바라봤다.
음.
릴리스에겐 미안 하지만 나도 꾸미기 전이나 지금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호아란의 말대로 좀 더 깔끔해 보이기는 한데.
“근데 이렇게까지 꾸밀 이유가 있어?”
결국 만나는 건 릴리스의 부하들인 서큐버스들 아니었나?
그 뒤에 세계정부의 인사랑도 만나야 하니까 신경 써 준 건가 싶었는데 릴리스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말 안 했었나? 이번에 볼 애들... 지부장들인 서큐버스 중에는 나를 키워준 녀석들도 있거든.”
“넹?”
키우다니. 누굴?
릴리스를?
내가 릴리스의 말에 멀뚱히 쳐다보자, 내 시선을 받은 릴리스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나도 너처럼 부모가 없었거든. 버려졌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없던 거였지만. 아무튼, 오늘 보는 녀석 중에서 대부분은 내가 아직 어릴 적부터 내 옆에서 보좌해줬던 녀석들이고, 그중에서는 나를 길러줬던 서큐버스들도 몇 명 있거든? 뭐, 보모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릴리스도 나처럼 고아였다고?
아니, 버려지거나 그런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다고 하는 거 보니까 서큐버스들은 원래 그런 건가?
아무튼, 결국 지금 내가 보러 가는 서큐버스들이 따지고 보면 릴리스의 부모 비슷한 존재들이란 거 아닌가?
당장 릴리스도 보모라고는 했지만, 부모가 없는 릴리스의 보모였다면 그게 부모랑 크게 다를 것도 없고.
뭐, 길러줬다고 다 부모인 건 아니긴 한데.
일단, 나도 따지고 보면 고아원장의 손에 길러진 거긴 하니까, 그렇다고 내가 고아원장을 부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처럼 사람마다 제각각 사정이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씻으라니, 정장으로 갈아입으라니 릴리스가 평소랑 달리 닦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릴리스는 오늘 보는 서큐버스들을 부모까지는 몰라도, 그녀들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틀림없었다.
오늘 보는 지부장들, 서큐버스들에게 내가 잘 보였으면 하니까 그랬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뭐, 좀 더 꾸미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더 꾸며봐야 별 티도 안 날 텐데? 본판이 그따구라서.”
아니.
내 얼굴이 뭐 어때서.
잘생기진 않았어도 그래도 이 정도면 평범하잖아.
그런 내 시선에 릴리스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걔네들은 외모 같은 건 별로 안 보거든.”
응...?
“그렇잖아? 서큐버스가 얼굴을 봐서 뭐 해? 우리에게 중요한 건 딱히 그런 게 아니거든. 굳이 따지는 게 있다면...”
스윽, 하고 나를, 정확히는 내 다리 사이를 보는 릴리스가 보였다.
정확히는, 주인이 피곤하든 말든 오늘도 열심히 아침발기 중인 내 자지를 보는 릴리스였지만.
“아, 이거?”
“응, 그거. 아무튼, 외모야 우리한텐 별 가치가 없다는 거지.”
그래서, 오히려 문제지만 하고 중얼거리던 릴리스가 내 목에 목걸이를 채웠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거 잘 차고 다녀.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 응.”
일단 차라고 해서 차긴 했는데.
정장에 쇠사슬로 된 목걸이를 차니까 뭔가 좀 많이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이거 개 목줄인데, 진짜.
“어쨌든, 이제 준비 끝났으니까 가자.”
그렇게 말하고서 손을 내미는 릴리스의 손을 맞잡았다.
“그럼, 다녀올게.”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릴리스랑 같이 온 곳은 내 직장이었던 이종간지원센터가 있는 빌딩이었다.
“여기 엄청 오랜만에 오는 것 같은데.”
아직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그동안 워낙 많은 일이 있었더니 장난 아니게 오랜만에 와보는 것 같았다.
“새삼스럽게 올려다보지 말고 빨리 따라오지?”
“응.”
릴리스를 따라서 그대로 곧장 릴리스의 집무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더니, 웬 소녀가 서류철을 바리바리 싸안고서 옮기고 있다가 우릴 보더니 화들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여, 여왕님...!”
“응, 뮤리. 오랜만이야. 일주일 동안 별일은 없었지?”
“네, 뭐... 평소랑 똑같았죠. 여왕님이 갑자기 일주일간 휴가를 내신 탓에 제가 독박으로 일했던 것만 빼면요.”
“그건 미안, 나중에 벌충할게. 그보다 다들 도착했어?”
“네, 방금 전에... 그보다... 그쪽은...?”
릴리스를 여왕님이라고 부르고 무척이나 어렵게 대하는 거 보니까, 저 여자도 서큐버스인가 보다.
서큐버스치고는 무척이나 얌전한 차림새긴 한데.
등 뒤로 보이는 꼬리나 몸매를 보니까, 서큐버스가 맞았다.
아무튼, 그 뮤리라는 여자가 나를 쳐다보는 것에 릴리스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쪽은, 내 남편인 한조.”
어...
그거 이제 밝혀도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뮤리가 보였다.
“처음 뵙겠어요, 저는 뮤리 베르페르라고 해요.”
이윽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하는 뮤리에 나도 인사해야 하나 싶었는데, 릴리스가 내게 말했다.
“소개할게. 얘가 뮤리, 너를 못 찾았으면 나 대신 지부장이나 시키려고 했던 애야.”
“아, 저 사람이...”
그런 릴리스의 말에, 새삼스러운 눈으로 뮤리를 바라봤다.
저 사람이 그 성장기가 끝나는데 1년 걸렸다는 서큐버스구나.
잠재력이 뛰어난 서큐버스일수록, 처음으로 정기를 흡수하게 된 이후로 시작되는 서큐버스의 성장기가 길어지는데 이제까지 서큐버스 중에서도 가장 오랜 성장기를 걸쳤다는 재능 충 서큐버스가...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서류철을 바리바리 들고 있는 것이 딱 봐도 모범생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서큐버스답게 무척이나 야하게 생기긴 했지만.
“원래 밝히는 애가 오히려 티를 안 내잖아. 쟤도 비슷한 거라고 보면 돼.”
“여왕님...?!”
대놓고 앞에서 밝히는 년이라는 소리를 들은 뮤리가 울상을 짓는 것이 보였다.
뭔가 좀 귀엽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촤륵하고 내 목걸이를 잡아당긴 릴리스가 말했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는 말지?”
왠지 뚱해 보이는 릴리스의 표정을 보고서 왜 이러는가 싶었다가 이내 깨달았다.
“혹시 질투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릴리스가 그런 내 옆구리를 꼬리로 푹, 찔렀다.
“끄으윽...”
“...그런 거 안 하거든?!”
하는 것 같은데.
근데 그렇게 말했다가 또 옆구리를 찔릴 거 같으니까 가만히 있기로 했다.
“여, 여왕님이 저렇게 부끄러워하시는 거 처음 봐...!”
그런 릴리스를 보고서, 뮤리가 경악하는 것도 보였다.
이게 부끄러워하는 거라고...?
두 번 부끄러워하면 누구 하나 죽겠는데.
아마도 그 누구 하나는 나인 것 같고.
꾸욱, 꾸욱하고 내 옆구리를 찔러대는 릴리스의 꼬리에 내가 말했다.
“아니, 이번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이번에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불합리한 옆구리 찌르기였다.
“...다들 모였다니까 빨리 들어가기나 하자.”
할 말 없으니까 자기 말만 쏙하고서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 릴리스에, 릴리스가 들어가면서 응징으로 때린 딱밤을 맞고 이마를 싸매며 주저앉은 뮤리를 바라봤다.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네, 뭐...”
내 말에 새빨갛게 부은 이마를 문지르며 어색하게 미소 짓는 뮤리를 안쓰럽게 쳐다보는데, 먼저 들어간 릴리스가 말했다.
“빨리 안 오고 거기서 뭐 해?”
“지금 갈게.”
옷 매무새를 고치면서, 나 역시 그런 릴리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