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202화 (202/523)

〈 202화 〉 천마의 제자 (2)

* * *

한유진이 말한 곳으로 들어가자, 뭔가 엄청나게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있었다.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쪽이... 강한조씨, 맞습니까?”

“네... 그쪽은?”

“이거 참, 실례했군요. 저는 부족하게나마 인간 대표로... 세 의석 중 하나를 맡은 남궁무휼이라고 합니다.”

이름 장난 아니게 멋지네.

겉모습은 그냥 곰탱이 같이 생긴, 더군다나 머리도 다 빠져가는 아저씨인데.

...잠깐만, 세 의석 중 하나라고?

스물둘 영웅들을 기리고자, 세계정부의 최고 권력자들인 스물둘 의원 중의 하나?

“이거 참, 너무 그렇게 봐주시지는 말아주십시오. 요새 힘든 일이 많아서...”

맨들맨들해져가는 머리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그렇게 말하는 남궁무휼을 보니까, 딱히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들었지만.

“아,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저도 가끔 거울을 보면 신기해서 한참 보고는 하니까요. 사람 머리털이 일년도 안돼서 이렇게 다 빠질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허허.”

이 사람이... 스물둘 의석의 의원 중, 인간족을 대표하는 셋뿐인 사람 중 하나라는게 믿기지가 않았다.

엄청 착하네, 사람.

“그보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넵.”

스물둘의 영웅이 죄다 은퇴하거나 뒤로 물러난 탓에, 아무튼 세계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이들은 스물둘의 의원들이었다.

즉, 따지고 보면 이 사람이 릴리스보다 훨씬 위에 있는 사람이란 거였다.

그야 스물둘의 영웅들이 가진 영향력이라면, 그딴 건 아무 상관도 없이 의원 자리를 갈아치우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내가 아는 릴리스나 호아란, 유스티티아가 그럴 일은 전혀 없고.

아무튼, 권력자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었으니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혹시 모르잖아 나중에 뭐,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한유진 양도 고생하셨습니다. 잠시 앉아서 쉬어주세요. 금방 차를 타오겠습니다. 마침 좋은 찻잎을 받은 것이 있어서...”

“아, 아뇨 남궁무휼 의원님 차라면 제가...”

“괜찮으니 어서 앉으세요.”

진짜 착하네.

한참 자기보다 밑의 사람인 한유진한테도 저러는 게 쉽진 않을 텐데 콧소리까지 흥얼거리면서 차를 타는 남궁무휼을 보니까 딱히 꾸민 모습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자, 받으세요. 강한조님, 한유진씨.”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남궁무휼씨가 준 차를 마셔보니까 호아란보단 조금 못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잘 탄 차였다.

좋은 찻잎이라고 한 게 거짓말은 아닌 듯, 차향도 진짜 좋고.

아무튼, 홀짝거리면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온다던 사람이 오질 않았다.

“이거 참... 많이 늦는군요. 제가 연락을 해볼테니...”

손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남궁무휼에게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도포를 펄럭거리며 들어오는 놈이 보였다.

저 새낀 뭐지...?

“아, 왔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무씨.”

“흠. 조금 늦었다.”

진짜 저 새낀 뭐지.

늦어 놓고 남궁무휼씨의 말에 그렇게 고개를 까딱이며 제가 갑인 양 하대하는 새끼를 쳐다봤다.

딱 봐도 존나 어려 보이는 새끼인데.

이제 막 스물이 됐을까 말까한 새끼가 겉보기만 해도 지보다 두 배는, 머리까지 까져서 잘하면 세 배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궁무휼씨한테 찍찍 반말로 그러질 않나, 들어올 때 쾅소리를 내질 않나, 무엇보다도 존나게 늦은 새끼가 저렇게 당당하니까 좀 기분이 그래서 쳐다보자, 그 새끼도 나를 쳐다봤다.

“저자가 그자인가?”

“네, 천무씨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영웅’의 칭호를 받으실 강한조님입니다.”

영웅...

진짜, 나 영웅 되는구나.

세계정부에서 내주는 가장 최고의 칭호이자 훈장도 ‘영웅’이었다.

스물둘의 영웅은 그 칭호 그 자체로 아예 별개라서, 같은 ‘영웅’이라고 해도 같은 영웅이 아니지만.

따지자 보면 한 몇 끗발은 밑에 있는 칭호였지만, 어쨌든 영웅이란 칭호를 받는 건 하나같이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만이 가능했다.

혼자서 어떤 마을에 쳐들어왔던 대형 재난급의 몬스터를 해치운 S랭크의 헌터도 아마 영웅 칭호를 받았던가?

아무튼, 그 정도의 업적은 있어야지 받을 수 있는 것이 영웅급의 칭호였고, 거기에 딸려있는 연금도 상당한 수준인 걸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불로소득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흠... 저 자가, 나랑 동급이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천무인지 뭐시기하는 새끼.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군. 내공은 제법 있어 보이지만. 허점투성이지 않는가?”

이 새끼 왜 시비지...?

근데, 딱 봐도 존나 세보이는 새끼긴 해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온몸에서 흐르는 기운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존나 가냘파 보이는 외모의... 솔직히 말해서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이 곱상하게 생긴 미청년인데 느껴지는 기운은 카루라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었으니까.

카루라가 나르메르 왕국의 대전사이자, 수명의 한계를 벗어난 초인인 걸 생각하면 이 새끼도 그런 카루라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강자인 셈이었다.

어디까지나 느껴지는 기운만 그렇다는 거지, 정말로 카루라 정도의 강자인지는 긴가민가하긴한데...

외모도... 그 환골탈태니 뭐니하는 것 때문에 어려 보이는 걸 수도 있고.

무림인이라고 부르는, 무공을 배운 쪽의 인간 중에는 가끔 그런 경우가 있었으니까 겉보기보단 나이가 많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입 닫고서 냉큼 남궁무휼에게 받을 거나 받고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듣자 하니 내 스승이신 천마님의 동료셨던 호아란님의 제자라고 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런 자로는 안 보이는군, 혹... 호아란님이 천마님보다 훨씬 약하기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겠...”

“뒤질래, 이 씨발놈아?”

개새끼가, 선 넘네.

“씨발놈? 지금 나보고, 씨발놈이라고 한 건가?”

“그래, 이 씨발놈아.”

“하... 내게 그런 말을 한 자는, 이십 평생 아무도 없었거늘...”

아니, 이 씨발놈 겉모습이랑 나이랑 똑같았네.

게다가 나보다 어린 새끼였다.

근데 무슨 말투는 팔십은 처먹은 새끼처럼 그러냐.

“그 무례, 한쪽 팔로 갚아라.”

그렇게 말한 씨발놈이, 도포를 펄럭거리는 것이 보였다.

오싹...!

등골을 타고 오르는 소름에 옆에 있던 한유진을 끌어안고서 자리를 박차고서 떼구르르 구르고 봤는데, 조금 전까지 나랑 한유진이 앉아있던 의자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오호, 제법 하는구나. 내 검을 피하는 자는, 동문 중에서도 셋뿐이거늘.”

“이, 씨발놈이...?”

나는 둘째치고, 저 씹새가?

“또, 내게 씨발놈이라고 했군. 양쪽 팔을 가져가마.”

스윽, 내게 검을 겨누는 씨발놈을 보고서 자세를 잡았다.

“한유진씨는 뒤로 좀 물러나요.”

“아, 앗... 네...!”

릴리스한테 사고 안 치겠다고 한지 아직 몇 시간도 안 지났는데 이 지랄이 난 건 좀 그랬지만, 그래도 저 새끼가 먼저 시비를 건 것도 모자라서 호아란을 얕잡아봤으니까, 릴리스라면 존나 후려패라고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 씹새야. 처맞을 준비 해라.”

기를 끌어올려서, 천호의 갑주와 용 발톱을 발현시키려고 했을 때였다.

“두 분 다, 그쯤 하시죠. 이러다가 제 집무실이 전부 박살이 나고 맙니다...”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그렇게 말한 남궁무휼이 나랑 씨발놈 사이로 나타났다.

“어...”

분명 조금 전까지는 저쪽에 있었는데, 두 눈 뜨고 있었는데 나랑 씨발놈 사이로 나오는 남궁무휼씨를 보지도 못했다.

“흐음...”

저 씹새도 놀란 표정을 짓는 것 보니까 저 새끼도 몰랐나보다.

아니, 그러면 나나 저 새끼보다 남궁무휼씨가 더 세다는 거잖아.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눈으로 확인한 이상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하여튼간에 남궁무휼씨가 나보다 훨씬 강해서 기운 자체를 숨길 수 있는 수준의 강자라는 소리였다.

과연 스물둘의 의원 중 하나구나 싶기도 하고, 저 씹새는 대체 왜 깝친건지 싶었다.

저 새끼도 남궁무휼씨가 저렇게 강한지 전혀 몰랐으니까 깝친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남궁무휼. 저자가 먼저 내게 시비를 걸었다.”

“지랄하고 있네. 미친 새끼신가.”

누가 누구보고 먼저 시비 걸었대.

성질 나오게 하네 진짜.

“...어쩔 수 없군요. 정 그러시다면, 대련으로 합시다.”

뭔 대련?

“흠... 어쩔 수 없군. 나를 모욕했으니, 그건 즉, 나의 스승이신 천마를 모욕한 것. 이 일을 천마의 제자인 자로서 두고 볼 수는 없었거늘.”

“아니, 진짜 저 씨발놈이.”

뭔 지 모욕한게 천마를 모욕한 거야.

개지랄하는 거 존나 패고 싶다.

“...한조님도 노기를 거두시지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따로 약속을 잡는 건데... 제가 실수했군요...”

근데, 존나 피곤해 보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남궁무휼씨를 보고서 참기로 했다.

“아... 머리가... 또 빠져...”

그런 남궁무휼씨를 보고서, 한유진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까 정말이었다.

이번 일로, 불쌍한 남궁무휼씨의 머리카락이 또 몇가닥 빠져서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으니까.

“...이러다가 제명에 진짜 못 살겠군요. 선배님들이 일 년마다 바뀌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무튼... 곧 두 분이 대련할 장소를 마련할 테니 그동안은 참아주시길...”

“...흠, 알겠다.”

스르릉, 하고 검을 거두는 씹새를 보고서 나도 일단 자세를 풀었다.

그리고 손수건에도 달라붙은,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남궁무휼씨에게 일단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제가... 조금이라도 쉬려는 꾀를 부려 두 분을 같이 모시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니...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런데도 오히려 사람 착한 미소를 띄우면서 저러는 남궁무휼씨를 보니까 죄책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빡쳤다.

저 씹새에게 호아란에게 지껄인 개소리랑 남궁무휼씨의 머리카락에 대한 사죄를 받아내야겠다.

그런다고 남궁무휼씨의 빠진 머리카락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네, 감사합니다. 강한조님, 천무님. 지금 연무장이 준비되었다니까 그쪽으로 가시죠.”

* *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