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천마의 제자 (4)
* * *
꼬우면 지도 유스티티아가 만든 아티펙트 차던가.
“이이...! 하지만, 이미 그 갑옷에 대한 걸 알았으니 네 놈의 수에 다시는 당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말한 녀석이 다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천무검, 여우 베기...!”
촤아악!
그러면서 녀석이 휘두르는 검에 내 쪽으로 날아드는 푸른 검기들이 보였다.
텅, 텅하고.
그런 검기들이 내 천호의 갑주에 튕겨 나가긴 했지만.
“여우 베기...! 여우 베기...! 여우 베기...!”
근데 이 새끼 거리를 벌리면서 계속 그 지랄을 했다.
그보다...
“씨발 너 그거 이름 개 좆같으니까 하지 마라.”
용 비늘 베기에 여우 베기라니 씨발놈이 진짜.
“노옴...!! 스승께서 만들어주신 검술에 감히...! 여우 베기...!”
씨발놈이 아니라, 씨발년이었나?
호아란이랑 유스티티아와 천마가 사이가 안 좋기라도 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딱히 둘에게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촐싹대는 새끼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하...! 힘은 제법 쓰지만, 느리구나! 그런 속도로 스승께서 만들어주신 유영보를 사용하는 나를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근데 안 닿는다.
“개빠르네...”
이리저리 촐싹대면서 여우 베기를 외쳐대며 검을 휘두르는 녀석을 잡으려고 뛰어다니는데, 녀석이 나보다 더 빨랐다.
저게 경공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잡힐 듯 말 듯 하다가 겨우 붙잡는가 싶으면 휙하고 사라지더니 어느샌가 다시 거리를 벌려서 여우 베기라는 개같은 이름의 검기나 날려 대는 게 오락실에서 멀리서 얍삽이만 써대던 새끼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럴 때는 그냥 째려보면서 게임 좆같이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는데, 저 새끼는 그렇게 말해봤자 들어 처먹을 리도 없고.
하필이면 연무장도 더럽게 넓어서 뛰어다닐 곳도 많으니까 여러모로 귀찮았다.
“그 갑옷, 내 검을 막을 정도니 평범한 아티펙트는 아닐 터...! 그만큼 내공의 소모가 클테니... 아티펙트가 풀린 뒤에는 각오해라...! 여우 베기...!”
아니, 별로 소모는 안 큰데.
소모가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유스티티아가 만들어준 ‘천호의 갑주’나 ‘용 발톱’이나 지금으로선 거의 하루종일 입고 있어도 문제 없을 정도고.
오히려 여우 베기라고 좆같은 이름을 외쳐대면서 검을 휘두르는 녀석의 검기에 소모되는 기가 더 많아서 내 쪽보다 먼저 닳아 없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버텨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날아오는 것들이야 ‘천호의 갑주’에 막히면서 대부분의 힘이 흘려지는 탓에 주먹으로 가볍게 두들겨대는 충격밖에는 없어서 아무렇지도 않고.
근데 일방적으로 처맞기만 하니까 좆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녀석이 너무 허접해서 안 써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랑 달리 제대로 무공을 배운 녀석이라 그런지 발은 더럽게 빠르니까.
지금보다 더 빨라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런 일이 있을 줄도 몰랐고, 평소처럼 챙겨 가려다가 릴리스한테 걸려서 한 소리 들은 덕분에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갑자기 멈춰서다니 포기했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내게 빌어라!”
저 씹새가 제발 개소리 좀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운을 끌어올려서, 자지로 흘려보냈다.
요령은... 아리아드나 지금은 릴리스를 상대할 때나 사용하는, 평소의 두 배는 더 되는 자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내 몸의 혈액을 기를 통해서 자지로 몰아넣자, 서서히 발기하기 시작하는 자지가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됐다.”
천호의 갑주 밑으로 발기한 내 자지와 함께, 기프트가 발현하는 것도.
아내들의 팬티도 없이, 나 혼자서 강제로 세우는 거라 제대로 된 풀발기가 아니라, 반쯤 발현된 기프트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기프트가 반만 발현되어서 더 좋았다.
덕분에, 굳이 힘 조절을 할 필요까진 없을 테니까.
뿌득, 뿌드드득...!
끌어올리는 기프트의 힘, 웨어울프의 종족 특성으로 인해 부푸는 근육에 맞춰 천호의 갑주가 들썩거린다.
잔뜩 근육이 부풀은 내 체형에 맞춰서, 다시 몸에 달라붙듯이 착용되는 천호의 갑주.
그리고, 조금 전의 몇 배 가까이 상승하기 시작하는 힘을 느껴졌다.
웨어울프와 함께 발현된 '천통안'을 통해서, 완력만큼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서너 배는 더 상승한 신체능력을 통해서, 발을 열심히 움직여대면서 촐싹거리는 녀석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럼...”
땅을 걷어차듯이, 뛰었다.
콰아앙ㅡ!
“무, 슨...?!”
달려드는 나를 보고 기겁한 녀석이 뒤로 펄쩍 뛰어서 또 도망치기 전에, 손을 뻗어서 녀석의 멱살을 붙잡았다.
“커흑...!”
“느려, 병신아.”
“이, 이거 놓아라... 이, 비겁한ㅡ”
“그래.”
놓아달라니까 놓아줘야지.
“네가 놓아달라고 해서 놓아주는 거니까, 죽지 마라?”
“무슨 헛ㅡ”
냅다 녀석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지지지직!
“끄흐억...!”
쩌저적, 바닥을 가르며 냅다 꽂힌 녀석이 튕겨져 올라오는 것을, 다시 발로 찍어서 바닥에 내리 꽂았다.
“크흑!”
그리고, 푸헉, 하고 입 밖으로 토혈하는 놈의 위로 올라갔다.
어디까지나 대련이니까.
제대로 맞으면 해골 기사도 몸뚱이가 날아가는 꿀벌 펀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
꿀벌 펀치가 아니더라도 ‘용 발톱’으로도 처맞으면 골로 갈 것 같으니까 ‘용 발톱’ 역시 해제했다.
“내가.”
그 대신에, 드러난 맨주먹을 녀석의 주둥이에 냅다 갈겼다.
“크학!”
콰직, 하고 내리꽂은 내 주먹에 녀석의 이빨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지금이라도 닥치면.”
“자, 자까... 자까마...”
다시 내리꽂은 이빨에, 조금 전의 주먹으로 남아있던 세 개 남은 이빨 중 두 개가 다시 날아갔다.
“이빨 남겨준다고 했지, 이 씨발놈아.”
하나 남은 이빨이 덜렁거리는 녀석이 보였다.
“그, 그마...”
빠진 이빨 때문에 발음이 줄줄 새는 녀석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길래 아까 닥쳤어야지.”
약속은 중요하지.
이 새끼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사람이 좋게 말할 때 말 좀 들어, 이 씨발아.”
그리고 내리꽂았다.
녀석의 얼굴에서 주먹을 떨어뜨리자, 덜렁덜렁 겨우 달려있던 마지막 하나 남은 이빨이 툭하고 빠지는 것이 보였다.
“발치 치료 끝.”
약속했던 대로, 이빨을 전부 털어주긴 했는데.
꿈틀꿈틀...
개구리처럼 널브러진 채, 두 눈을 뒤집고 기절해버린 천무니 뭐니하는 놈팽이를 내려다봤다.
좀...
심했나?
머리에 열이 뻗쳐서 냅다 줘패기는 했는데 이 새끼 천마의 제자라매.
나중에 내 제자를 건드렸다고 찾아와서 이 새끼처럼 탈탈 털리는 거 아닐까...?
그러면 좀 많이 곤란했다.
애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고, 그랬다가 스물둘의 영웅끼리 박터지게 싸우는 일이라도 생기면 진짜 장난 아니게 일이 커질 테니까.
근데...
“아니, 씨발 이 새끼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
개념이 조금이라도 대가리에 찬 새끼라면 이거 가지고 제 스승한테 달려가서 누구한테 처맞았다고 징징거리지는 않을 거다.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한 대련이었고, 정정당당하게 이 새끼가 처발렸을 뿐이니까.
물론, 개념이 조금이라도 탑재되어있었다면 생판 모르는 남한테 시비걸 일도 없었을 테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지가 먼저 시비 걸어놓고 처맞았으면서 지 애미애비한테 고자질하지 않았던 새끼들을 본 적이 없기는 했다.
어쩌지, 살짝 불안한데.
이 새끼야 한 번 붙어보니까 아무래도 좋아졌지만, 이 새끼 뒤에 있는 천마는 쫌...
근데 지금 이런 걸 걱정할 거였으면 애당초 처음부터 이러질 말았어야 했다.
뭐,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고민해봤자 딱히 좋은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니여서 그대로 녀석의 목덜미를 붙잡고서 질질 끌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강한조님.”
“아...”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이 남아있었지.
남궁무휼... 인간족을 대표하는 세 의원 중 한 명인 사람이.
지금 눈을 허옇게 뒤집고 기절해버린 이 새끼보다, 이 사람이 훨씬 강하고...
아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기프트가 활성화중인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조의 혈통을 이어받은 카루라로부터 이어받은 종족 능력, 천통안을 통해서 남궁무휼이 갈무리하고 있던 기운이 전부 훤히 보였으니까.
카루라 이상의 기운.
단순히 영약을 퍼먹고서 뻥튀기한 기운이 아니라, 온전히 전부 다루고, 갈무리해서 ‘천통안’이 없이는 그저 평범한 대머리 중년 아저씨로밖에는 안 보이는 남궁무휼은 당연하다는 듯이 초인의 반열에 든 사람이었다.
이름부터 그럴 것 같긴 했는데, 이 사람도 아마 무림인이겠지.
배꼽 밑과 심장, 그리고 맨들맨들한 정수리까지.
세 곳으로 나뉜 기운은, 얕은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제대로 판단하긴 힘들었지만 대충 무림인들이 초절정이라고 불리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허허, 너무 그렇게 보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제 머리를 보시는 것 같지는 않으시군요.”
“아, 죄송해요.”
“아뇨, 아닙니다. 그보다, 손대중을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흘끗, 하고 내게 질질 끌려온 천무를 보고서 그렇게 말한 남궁무휼을 보고서 입맛을 다셨다.
“딱히 손대중하지는 않았는데요...”
개빡쳐서 존나게 후려팼으면 몰라.
“아뇨... 좀 전의 그 아티펙트... 그걸 거두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한조님도 전력으로 하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본 드래곤을 사역하던 사령 술사를 쓰러뜨린 한조님이라면...”
아니, 나 그때 그거 이제 못하는데.
뭐, 그걸 굳이 말해줄 필요까지는 못 느껴서 그냥 고개나 끄덕이고서 말했다.
“그보다, 이거 치료 돼요?”
이빨이 다 날아간 천무를 들어다가 보여줬다.
치료가 됐으면 좋겠다.
혹시, 깽값이라도 물어달라고 하면 물어줄 돈이 없으니까.
임플란트, 비싼데...
“허허, 치아 정도는 괜찮습니다. 저희 사제분들은 우수하시니까요... 다들 부탁드립니다.”
“네, 남궁무휼 의원님.”
고개를 끄덕인 사제들 몇몇이 나와서 손을 내밀길래, 들고 있던 천무를 건네주자 땅에 눕힌 천무를 치료하기 시작하는 사제들이 보였다.
내가 손수 발치해준 이빨들도 그새 주워왔는지 천무의 텅 비어버린 잇몸에 이빨을 심듯이 하면서 치료하는 모습을 보다가 남궁무휼에게 물었다.
“다들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네요? 많이 힘든가요, 저거?”
“힘이야 들겠지요. 하지만 딱히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저분들은 이쪽으로 넘어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들이라...”
넘어온지 얼마 안 된 거랑 뭔 상관인가 싶었는데, 나를 보며 손짓하는 남궁무휼이 보였다.
그런 남궁무휼에게 입고 있던 ‘천호의 갑주’도 마저 해제하고서 다가가자, 내 귀에 소곤거리듯 남궁무휼이 말했다.
“사제분들은 대부분, 그 세상에서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바치는 신앙을 대가로 신성력을 다루던 이들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들이 믿었던 신은 없지요. 아니... 신이란 것 자체가 없지요. 헌데, 그런데도 신성력을 여전히 사용할 수 있으니 저들로서는 자신들이 다루는 힘이 무엇인지 고민될 만도 하겠지요.”
“아...”
그쪽?
신성력이란 것이 결국 마나나 기, 내공이라고 불리며 가공되어서 다루어지는 힘의 일종이란 것이 밝혀진 것도 여기서도 최근의 일이니까.
사제들이 이쪽으로 넘어온지 얼마 안 됐다고 하니까, 여러모로 고민할 만도 하긴 했다.
애당초 이전 세상에서부터 신 같은 건 믿지 않았던 나로서는 딱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그나저나... 내가 알기로는 남궁무휼이 말하는 것처럼 신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당장 암무트도 예전엔 신이었던 존재고, 카르미나도 어거지로 이어받은 거긴 했지만, 일단 자신의 살아가던 세상의 주신격의 자리를 차지하고 신성을 갖춘 존재였는데.
대체 왜 이쪽으로 넘어온 신들은 하나도 없는 거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궁무휼이 말했다.
“그에 반면, 나르메르 왕국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적응이 빠르더군요. 문화가 다르다보니 역시 다소간의 문제가 있지만, 사실 그거야 다들 겪는 일이니까요. 오히려 그만한 실력자분들이 세계정부에 그 정도의 문제에 그칠 뿐, 협조적이니 저희로서는 다행인 일입니다.”
“아... 잘들 지내요?”
“네, 벌써 스무 쌍이 넘는 분들이 혼인도 하셨고... 모두들 적응이 빠르신 편입니다. 더군다나, 하나같이 ‘그쪽’으로 뛰어난 것도 물론이거나와 다들 강하기도 하시니 자리를 잡는 것도 수월한 모양이더군요.”
빛속성의 사령 술사라는 특이한 집단이지만, 그래도 사령 술사라서 그런지 ‘그쪽’이라고 말하는 남궁무휼.
하긴, 지금도 열심히 이빨을 심고 있는 사제들 앞에서 사령 술사 얘기하는 건 조금 그렇긴 하겠다.
그보다 다들 잘 지내는구나.
카르미나한테 전해주면 좋아할 소식인데 그건.
근데 저 스무 쌍이 벌써 결혼했니 어쩌고 하는 거, 대부분은 내가 돌아올 적에 나르메르 왕국 사람들한테 제대로 물려버렸던 그 디스펜서들 같은데.
나도 카르미나와 카루라한테 물려버리긴 했어서 그들에게 뭐라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만.
일하러 출장 나갔다가 뒈질 뻔하질 않나, 졸지에 존나 강한 마누라가 생겨버린 디스펜서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난 행복하니까 그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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