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다시 일상으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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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유스티티아에게 몰래 넘겨줄 정액을 따로 옮겨 담을 용기를 사고서 사티가 망해 버렸다는 국수집이 있던 곳으로 가 보자, 정말로 망했는지 국수집 대신에 돈가스집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그냥 나도 좀 먹어 볼 걸, 그런 생각하면서 대충 미리 몇 가지 더 시켜두고 얼마 안 있어서, 점심시간이 됐는지 찾아오는 사티를 볼 수 있었다.
“그, 나... 왔어, 오빠.”
“거기 앉아.”
“아, 응.”
꾸욱, 하고 내 앞자리에 앉는 사티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내 시선에 어깨를 움츠리던 사티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오빠.”
“연락처 좀 다시 달라고 하려고. 전에 쓰던 스마트폰이 망가져서 바꿨거든. 번호도 바꿨고.”
그래서 네 연락처도 날아갔었다고 그렇게 말하자 아, 하고 입을 벌리는 사티가 보였다.
“왜?”
그런 사티를 보고서 뭔가 싶어서 묻자, 고개를 휙휙 내저은 사티가 말했다.
“아, 아니... 전에... 오빠한테 연락해봤을 때, 안 받길래... 그래서 그랬었구나... 응... 다행이... 아...”
나한테 연락했었구나.
그보다, 얘 왜 이래.
갑자기 조금 표정이 좋아지는가 싶다가, 다시 도로 어두워지는 사티를 보고서 내가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내가 그렇게 묻자 화들짝 놀라서는 고개를 휙휙 내저은 사티가 말했다.
“으, 응? 아, 아냐... 으응...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뭐 때문인지 물어보려고 할 때, 사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그보다... 전에 내가 연락했던 이유 말인데...! 얼마 전에 월급 타서... 그래서...”
품을 뒤적거리더니, 웬 새하얀 봉투를 꺼내서 건네주는 사티.
“이건 뭔데.”
“오빠한테, 내가 빚진 거 있잖아...”
빚...?
아, 그거.
“자, 받아... 오빠.”
“어, 응.”
떠밀다시피 사티가 내게 내민 봉투를 엉겁결에 받았다. 그리고 봉투 안을 확인해 보니까, 진짜였다.
봉투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돈을 보고서, 사티를 바라보자 에헤헤 하고 웃으며 사티가 말했다.
“이걸로, 저번이랑 이번 거까지 합쳐서, 빚진 거는 다 갚았다? 무, 물론... 전에... 오빠 다리를 그렇게 했던 것도 나중에라도 갚을 테니까.”
“그건 됐어.”
그건 이미 퉁치고 끝냈던 거니까.
뭔가 어정쩡하게 끝나기도 했고, 덕분에 릴리스에게 빚도 잔뜩 생겨 버린데다가 호구라는 소리도 듣긴 했지만, 아무튼 퉁치고 끝내기로 한 거니까 퉁치기로 한 거였다.
그러니까 사티가 내게 갚아야 할 건 한 번만 하겠다고 해 놓고서, 보지로 내 자지를 놓아주지 않은 탓에 내게서 추가로 뽑아갔던 정액 값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 걸로 결국 다 갚은 거고.
“그보다, 이거... 이렇게 다 나한테 줘도 되겠어?”
“응, 얼마 전에 점장님이 정직원으로 채용해주셨거든... 그래서 월급도 조금 올랐어. 그리고 봐. 이거... 히히... 내 유니폼도 받았다? 사이즈가 조금... 크긴 한데. 아무튼... 그러니까 괜찮아.”
그렇다면 다행인데.
정직원으로 채용까지 됐다니, 잘 살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그런 거치고는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 사티.
유니폼을 받았다며 웃기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억지로 웃어 보인 것이 분명한 사티에게 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손님, 시키신 돈가스 나왔어요~”
미리 주문해 뒀던 음식이 완성됐다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잠깐, 기다려 봐. 가져올 테니까, 일단 먹으면서 마저 이야기하자.”
“내, 내 것도 시켰어? 그럼 나도ㅡ”
“이번에는 별로 안 시켰으니까 나 혼자 다녀와도 돼.”
저번처럼 잔뜩 시켜서, 괜히 사티의 배를 빵빵하게 만들었던 건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너무한 짓을 했다 싶어서 이번에는 간단하게 시켰다.
그래서 같이 가자는 사티를 도로 앉히고는 주문했던 음식을 받아왔다.
“자, 먹어.”
“고, 고마워. 잘 먹을게.”
꼬옥, 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쥐고서 돈가스를 썰기 시작하는 사티를 보고서, 나도 내 몫으로 나온 돈가스랑 같이 먹을 카루라가 싸준 도시락을 꺼냈다.
“어, 그건...?”
“내 도시락.”
“...그래?”
뭐지.
왜 한층 더 표정이 어두워진 거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카루라가 싸준 도시락이나 깠다.
그러자 아침에 카루라가 차려 줬던 것과 다른 것이 도시락 안에 잔뜩 있었다.
대충 아침 만들고 남은 재료로 싸준 게 아니라, 도시락을 아예 따로 싸준 거구나.
아침을 차리면서, 내 도시락도 따로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카루라를 생각하니까 엄청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당장 집에 돌아가서 카루라를 꼭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
근데, 그런 내 도시락을 본 사티의 표정이 어두워지다 못해서 아주 그냥 나락으로 갈 지경이 된 것이 보였다.
“...좀 나눠줄까?”
“으응, 아니... 괜찮아.”
딱히 카루라가 싸준 내 도시락 쪽이 맛있어 보여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뭐지...?
도통 알 수 없어서, 일단 말이라도 꺼냈다.
“그보다, 아까는 고생했네. 그런 일 자주 있어?”
“으응,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너무 자주잖아.
일주일에 세 번이라니, 이 동네 사람들 인성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가 싶었는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티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사티로스니까... 그 아저씨 말대로, 얼마 전에도 사티로스가 일하던 식당에서 위생 문제로 구금되는 일도 있었고... 그러니까, 이해해. 그 아저씨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
“야.”
“...응?”
꼬물, 꼬물하고 제 손으로 자기 손가락을 매만지며 그렇데 말하는 사티의 이마에 딱밤을 갈겼다.
빠악, 하고 제대로 들어간 내 딱밤.
“꺅...!”
덕분에 이마를 움켜쥐고서 울상이 된 사티를 보고서 내가 말했다.
“개소리하지마, 이해는 지랄. 네가 그런 거 아니잖아.”
그 손놈이 사티로스가 어쩌고 했던 게 일단 진짜로 있었던 일이긴 했더라도.
그건 그 변태 같은 사티로스년인지 놈인지가 저지른 일이지, 사티가 한 짓이 아니었다.
근데 그걸 이해할 수 있다니, 뭐니 개소리였다.
“하지만, 오빠... 나는 사티로스인걸?”
그게 뭐가 어쨌다고.
“네 말대로라면... 살인마가 인간이었다고, 나도 살인마인 거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하고 우물거리며 대답하는 사티.
“그렇지? 아니지. 그럼.”
대충 도시락에 담겨 있던 반찬 중 하나를 집어다가 사티의 입에 쑤셔 넣었다.
“웁...!”
“죽상 그만하고 그거나 먹어.”
오물오물...
내가 입에 쑤셔준 카루라가 해준 반찬을 먹은 사티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맛있다, 이거...”
“그치?”
카루라의 요리 솜씨는 내가 보장했다.
“응, 정말로... 정말로 맛있어서... 나는... 이런 거... 이런 거, 절대로 못 만들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사티의 눈에서 주르륵하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니.”
왜 갑자기 울어.
카루라의 요리 솜씨야 내가 보장하긴 해도, 울 정도의 수준이었나?
그야, 가끔 카루라나 호아란이 해주는 밥을 먹을 때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을 때가 있기는 한데.
“그, 그렇게 맛있었어? 울 정도로?”
“으응... 아니, 아니...”
그럼 왜 우는데...
펑펑, 쏟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도무지 멈추지 않는 듯,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계속 눈물을 흘리는 사티가 그런 나를 보다가, 에헤하고 웃었다.
멋쩍은 듯, 괴로운 듯, 그런 미소를 지으면서.
눈물로 잔뜩 젖어서, 일렁거리는 분홍빛 눈동자에 나를 비쳐 보이면서.
사티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났구나. 오빠.”
“어...”
덕분에, 그제야 깨달았다.
어째서 사티의 표정이 갑자기 좋지 않아졌던 건지, 그리고 내가 꺼낸 도시락을 보고서는 더더욱 좋지 않아졌었던 건지.
그제야, 뒤늦게.
“전에 그... 오빠랑 전화했던 에일레야라는 언니일까? 아니면 다른 언니...? 오빠는... 착하니까, 분명 좋은 사람이랑 만났겠지...? 요리도 잘하고... 응, 무척 좋은 사람일 거야... 나 같은 것보다는 훨씬 더... 그래도 반지는... 아마, 오빠가 산 거 같네... 별로 안 예뻐.”
“......”
내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고서.
그리고 아무리 봐도 남자 놈이 싸고 다닐 것 같게는 안 생긴, 카루라가 싸준 내 도시락을 보고서.
그래서 그런 거였다.
“...반지 별로 안 예뻐?”
대체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꺼낸 말은 최악이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서 꺼낼 말로는 정말로 최악 중의 최악.
눈치가 좆도 없어서, 그래서 항상 릴리스에게 제발 눈치 좀 챙기라는 말을 허구한날 들었는데 이번에도 좆도 못 챙긴 눈치로, 진짜 좆박은 소리를 꺼내버렸다.
그런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사티가 이내 후후, 하고 웃고는 말했다.
“응. 나라면... 좀 더, 크고... 예쁜 보석이 있는 반지로 해 달라고 했을 거야. 응, 나는... 나쁜 아이니까... 이런 반지는... 이런 반지로는 예쁘다고 할 수 없었을 거야. 이렇게 작고... 귀여운 반지 같은 거... 나는... 분명, 예쁘다고 해주지 못했겠지. 응... 그러니까, 오빠.”
스윽, 하고.
몸을 일으키고는 사티가 말했다.
“그 반지가 예쁘다고 해줬을 언니에게, 꼭 잘해 줘야 해. 오빠.”
언니가 아니라 언니들인데.
아니, 이게 아니라.
“잠깐만, 야. 사티.”
훌쩍, 하고 그대로 가버리는 사티를 붙잡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뻗은 손 위로 보이는 반지가 보였다.
사티가, 별로 예쁘지 않다고 했던 반지가 내 손가락에 끼워진 채 반짝반짝하고 빛나는 것이 보였다.
“......”
꾸욱, 하고 뻗었던 손을 쥐었다.
그 사이에, 이미 멀찌감찌 가버린 분홍 머리의 사티가 보였다.
“...밥이라도 다 먹고 가지.”
벌써 점심의 반은 써서 또 어디 가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을 텐데.
“호아.”
빼꼼, 내 주머니에서 얼굴을 내밀은 호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안 쫓아가.”
그리고 사티를 쫓아가지 않느냐고 묻는 호아의 말에 그렇게 대답해줬다.
기껏 내가 사준 밥을 반도 채 안 먹고서 가 버린 사티의 빈자리를 보다가, 카루라가 싸준 도시락을 집어서 먹어 봤다.
“맛있네.”
역시 카루라였다.
사티의 요리 솜씨야 먹어 본 적이 없었으니 나야 잘은 모르지만, 사티가 자기는 절대로 이런 걸 만들 수 없을 거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맛있었다.
꿀꺽, 하고.
마지막 남은 반찬까지, 남김없이 먹고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애당초, 구하려고 했던 사티의 연락처는 결국 못 구해 버렸지만.
그래도, 몸을 돌렸다.
“가자, 호아야.”
우리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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