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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230화 (230/523)

〈 230화 〉 땅 따먹기 (2)

* * *

남궁무휼과 만나서 이야기를 마친 뒤에, 다시 한번 실을 끄집어내서 손에 쥐어봤다.

우웅...

실을 통해 타고 흐르는 기가 쭈욱 뻗쳐나갔다.

하지만, 이내 관뒀다.

기를 조금 흘려보낸 걸로도 대충 감이 왔기 때문이었다.

남궁무휼을 만나기 전, 한참 전에 시도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먼 곳까지 사티가 가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와서 사티를 쫓기에도 턱없이 시간이 모자랐다.

남궁무휼로부터 이것저것 잔뜩 듣느라 그새 저녁 무렵이 되어버렸으니까.

지금은 사티 걱정이 아니라, 통금 시간 전까지 집에 도착할 수 있을지나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우선, 집으로 돌아가는 거나 먼저 해야겠지.

사티는 그 뒤의 일이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사티를 찾으러 가자면 못할 건 없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화로 릴리스나 호아란, 유스티티아를 불러서 그 셋의 도움만 받더라도 사티가 어디에 있든 간에 훌쩍 찾아갈 수 있을 테니까.

방향도 알고 거리도 대충 가늠이 가니까 사티가 어디에 있든 간에 찾는 건 금방일 거다.

근데...

사티에 관한 일을 아내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라고?

그건 안됐다.

적어도, 그래선 안 된다는 것 쯤은 알았다.

이미 릴리스한테도 들었듯이 그건 진짜 너무한 일이니까.

“...사티 일은, 이쪽 일부터 끝내고 하자.”

지금 내가 우선해야 할 건 아내들이었지, 사티가 아니었으니까.

스르르르르...

다시 스며들듯이, 없어지는 실을 보며 몸을 돌렸다.

남궁무휼이랑 헤어진 뒤 그대로 곧장 집으로 오긴 했는데, 그래도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점심 무렵이 좀 지났을 때쯤에 돌아왔던 어제에 비하면 한참이나, 거의 통금 시간 직전에 집에 돌아오자 나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왔던 모양인지 팔짱을 낀 채로 현관문 앞에 있는 릴리스가 있었다.

평소랑 달리 릴리스만 마중하러 나온 것을 보고서 의아스러웠지만, 일단 사과부터 박기로 했다.

“미안, 좀 늦었어.”

릴리스에게 그렇게 말하자, 미간을 찌푸린 채 내 뒤를 보던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염소년은?”

“어... 없는데?”

내 말에 더더욱 인상을 찌푸리는 릴리스. 그런 릴리스가 내게 다가오더니 킁, 킁하고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더더욱 인상을 찌푸린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뭐야? 너 뭐 뿌리거나 그런 거 아니지? 왜 아무 냄새도 안 나?”

“안 뿌렸는데...”

“그 염소년이랑 만나고 온 것도 아니면 대체 왜 늦었는데.”

“아.”

덕분에 어째서 릴리스가 저러는지 알 수 있었다.

어제만 해도 금방 집에 돌아왔던 내가 저녁이 다 돼가도록 오질 않았으니까, 당연히 사티를 만나서 둘이 같이 있던 건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릴리스의 예상과 달리 사티의 얼굴은 커녕 남궁무휼의 그 사이에 한층 더 벗겨져 버린 머리나 보고 왔지만.

아무튼, 그런 릴리스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사티는 찾으려고 해봤는데 못 찾았고 도중에 남궁무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저번 관련으로 이야기나 잔뜩 듣고 왔다는 걸 말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다른 의미로 인상을 구기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런 릴리스의 표정을 보고서, 릴리스가 왜 저러는지 그제야 눈치챘다.

무슨 일이 있어서 늦어질 것 같으면 미리 연락하기로 했던 거, 또 까먹었네...

“너, 진짜.”

“미안, 정신이 없어 가지고...”

“...하아, 됐어. 일단 안으로 들어와.”

릴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안으로 들어가자 왠지 모르게 침실 쪽 문에서 빼꼼하고 얼굴만 내민 채 이쪽을 보고 있는 아내들이 보였다.

“뭐야, 다들 거기서 뭐해?”

왜 릴리스만 마중하러 나오고, 다들 거기서 저러고 있는지 의아스러워서 그렇게 묻자,

“릴리스가 들어가 있으라고 했노라!”

“본녀는 말렸지만, 도통 듣지 않더구나. 일단 한조 네가 그렇게 하기로 한다면, 들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확실히 해야 한다고... 근데, 보아하니 그때 그 아이는 오지 않은 모양이구나.”

“재미있을 것 같아서 구경하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잠이나 잘 걸 그랬어.”

“그, 나도 말려 보려고는 했지만...”

한마디 했을 뿐인데, 제각각 다른 말로 되돌려주는 아내들.

하지만 덕분에, 릴리스 말고 다른 아내들이 저기에 박혀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아무래도 내 귀가가 늦으니까 철석같이 내가 사티를 집으로 데려올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새로 들어온 사티에게 릴리스가 아내들의 대표로 뭔가 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마음이 약하고 동정심이 강한 호아란이나 카루라나 재미있어 보이면 뭐든지 오케이인 유스티티아, 그리고 하렘에 긍정적인 카르미나야 사티의 일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될 테니까, 릴리스만 직접 나서기로 한 거일 거다.

근데 정작 나는 사티 얼굴을 커녕 그냥 남궁무휼의 머리가 반질반질하고 빛나는 거나 보고 온 거고.

릴리스가 사티에게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관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로 혼자서만 대기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대충은 짐작이 갔다.

전에 릴리스에게 호되게 당해본 적이 있던 사티가 날 쫄래쫄래 쫓아서 집에 왔었더라면, 아마 아까의 릴리스를 보고서 기겁하지 않았을까?

기가 팍 죽었을 게 분명했다.

아니, 사티가 당했던 걸 생각해보면 문 열자마자 릴리스가 보이면 그대로 졸도해버렸을 지도...

“릴리스...”

“...남궁무휼이랑 만나고 왔다고 했지? 걔한테 들은 이야기나 말해. 너희도 이제 됐으니까 나오고.”

괜히 말을 돌리는 것이 뻔히 보이는 릴리스였지만, 그래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무휼로부터 땅 관련으로 뭔가 이야기를 잔뜩 듣기는 했는데, 하도 많아서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남궁무휼에게 들은 그대로 모두에게 똑같이 전해줬다.

며칠 뒤에 세계 정부의 주관으로 대대적인 정화 사업을 벌일 거라는 발표가 있을 예정이고, 여기에 방사능을 비롯한 그나마 정화하기가 쉬운 오염이나 퇴치가 비교적 쉬운 몬스터들이 많은 몇몇 지역들.

당장 반도 지역 위쪽에 해당하는 지역들을 포함한 몇몇 지역들을 정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단순히 세계 정부만의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의 참가도 선별적으로 검토하여 받아들일 예정이라던가.

아무튼, 남궁무휼의 말로는 거기에 내가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모양이었다.

세계 정부측에서, 개인이나 단체의 참가도 받는다는 모양이었지만 아무튼 선별한다는 모양이니까 원래는 어지간하면 뽑히기 더럽게 힘들 텐데 여기에 그냥 나는 무조건적으로 참여를 허가해준다는 것이 내게 주어지는 혜택이라는 모양이었고.

단순히 나만 가능한 건 아니고, 나 말고도 내가 보증하는 인원이라면 최대 열 명 혹은, 열 개의 집단까지도 가능하다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내 말을 듣고 있던 릴리스가 물었다.

“...그게 끝이야? 다른 건 더 없어?”

“그게 끝... 아, 맞다. 그거랑 세계 정부측에서 나한테는 특별히 헌터 클랜 하나를 고용해서 붙여준다고 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경비는 모두 그쪽에서 대주고.”

“걔네들 고용하는데 돈이 얼마나 된다고. 흐응, 그래... 그러시겠다. 겨우 그걸로 입 닦을 생각이라 이거지...”

어...

헌터들 꽤 몸값 많이 나가지 않나.

B랭크 수준의 헌터만해도 한 달에 억은 가볍게 버는 사람들인데, 세계 정부에서 대체 어떤 헌터 클랜을 고용해줄건지는 몰라도 클랜인 만큼 클랜의 최소 자격인 30인은 채우고 있을 테니까, 그 모두를 고용한다면 장난 아니게 돈이 깨질 거였다.

정화 사업이란 게 하루 이틀로 끝나지는 않을 거고.

근데, 릴리스에게는 남궁무휼이 내 쪽에 제시한 조건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하면, 한조야. 가장 중요한 땅의 경우에는 어찌한다고 하더냐?”

“아, 그거요. 일단 무사히 정화에 성공한 땅의 절반 정도를 공적에 따라서 나눈다고 하더라고요.”

공적은 땅을 정화한 넓이라든지, 그 지역에서 몬스터 따위를 소탕한 숫자나 등급에 따라서 주어진다고 했던가 그랬을 거다.

땅만이 아니라, 세계 정부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랑도 공적이랑 교환할 수 있게 해준다던가 그랬고.

“...그것뿐이더냐?”

“네? 네.”

내 말에 그 호아란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서 뭔가 싶었는데, 뿌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들이.”

다름 아닌 릴리스가 이를 가는 소리였다.

릴리스가 왜 저렇게 화가 났나 싶었는데, 콕콕하고 내 옆에 앉아있던 카르미나가 내 옆구리를 찔러왔다.

“왜? 카르미나.”

“영웅이여, 여는 아직 이곳의 사정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이번의 일은, 말하자면 나라의 주관으로 벌이는 개척이지 않느냐?”

그렇게 묻는 카르미나에 곰곰이 생각해봤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지. 근데 그게 왜?”

“흠, 그렇다면 확실히 과하구나. 나르메르 왕국에서는 이런 경우에 토지를 개척하고 개간하는 자에게 그 토지의 8할은 주었느니라. 더욱이, 여기에 10년이나 20년간의 세금도 면해주는 것이 보통이었지.”

“그래? 근데 8할은 너무 많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카르미나가 말했다.

“아니노라. 땅을 얻는 방법은 여럿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개척이겠지. 정복이라면, 절반이나 되는 땅을 정복자에게 나눠주는 것은 과할 만큼의 대가이지만, 개척의 경우는 아니노라. 부서지고, 불타버렸다고 한들 이미 사람이 살 수 있는 땅과 황무지를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힘드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이지 않겠느냐?”

“어, 그렇지?”

맨 땅을 개척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죄다 박살 났더라도, 뭔가 있던 곳이 더 낫지 않나 싶었다.

그것도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진짜 완전히 개박살이 나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 아닌 이상, 뭐라도 남아있는 쪽이 더 나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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