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 땅 따먹기 (5)
* * *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도 방금 그 생각했는데.
아니, 방금 에일레야가 자기를 은빛 늑대단의 클랜장이라고 했었고 나도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남궁무휼이 내게 붙여준다고 했던 클랜이 은빛 어쩌고였으니까...
그러니까... 남궁무휼이 말했던 그 클랜이, 에일레야 누나의 클랜이었다고?
헌터 클랜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서 콕 집어서 나랑 인연이 있는 에일레야의 클랜일 확률이 대체 몇이나 될까.
근데, 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요 일주일간 에일레야에게 몇 번이나 더 문자를 보내기는 했었는데 죄다 씹혔었고.
그래서 에일레야가 진짜 단단히 화가 났구나하고 생각하던 차였으니까.
나중에 사티의 일을 해결하고 나서 에일레야를 찾아가서 사과할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
“......”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에일레야의 시선이, 내 옆에 앉아있는 릴리스에게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바짝 위로 솟구치는 에일레야의 꼬리가 보였다.
저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에일레야가 빡쳤다는 의미의 꼬리였다.
전에 호아란이 진짜로 화가 났을 때나, 장난삼아서 카르미나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한 입만 달라고 해놓고 반이나 먹어버렸다든가 했을 때 본 적이 있어서 아주 잘 알았다.
그게 한정판인 줄 난 몰랐지...
아무튼, 덕분에 잘 알고 있는 꼬리의 모양을 보고서 움찔했다.
더군다나, 꾸욱하고 에일레야가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
“하, 그래~ 그렇다 이거네~?”
그렇게 말한 에일레야가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ㅡ 이내 움켜쥐었던 주먹을 풀어버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에일레야. 은빛 늑대단의 클랜장이야.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돈 받은 만큼은 제대로 일할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미는 에일레야가 보였다.
“근데, 일 외의 일로는 딱히 얼굴 보지는 말자. 알았지? 고용주님.”
그대로 쥔 주먹으로, 내 얼굴에 죽빵이라도 날릴 줄 알았는데, 차라리 그게 나았을 것 같은 에일레야의 말에 한참을 그런 에일레야를 바라봤다.
“...강한조입니다.”
일단, 그런 에일레야의 손을 잡았다.
“......”
꽈아악, 하고.
그런 내 손을 존나 세게 움켜쥐는 에일레야.
입 밖으로 나오려는 신음을, 이를 악물어서 버텼다.
이윽고, 내 손을 뿌리치듯이 놓은 에일레야가 말했다.
“나랑 우리 클랜원들은 저쪽에서 따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말하러 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찾아오지는 말고.”
그리고, 그렇게 말한 에일레야가 그대로 몸을 돌려서 클랜원이 있다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에일레야가 향하는 곳을 보니까, 에일레야랑 비슷한 외모의 웨어울프들이 한가득한 것이 보였다.
전부 에일레야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녀들로 이루어진 클랜원들을 보고서, 예전에 에일레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뭐더라...
가족 비슷한 거랑 같이 하는 클랜이라고 했었던가...?
생긴 것도 그렇고, 다 웨어울프들인거보니까 혹시 진짜 가족들인가.
그게 아니면, 적어도 친인척 비슷한 사이인 것 같은데.
“아니, 누님. 고용주님한테 그게 무슨...”
“시끄러워, 이 새끼야. 너, 내가 시킨 일은 했어?”
“아, 아직인데요...”
“그럼 그거나 하러 가, 뺀질거리지 말고.”
빡, 하고 괜히 에일레야한테 말을 걸었다가 그대로 주먹으로 조용히 하세요를 당한 웨어울프가 깨갱하는 것도 보이니까, 적어도 진짜 가족같이 친한 사이들인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용히 하세요를 당한 웨어울프가 이내 내 시선을 봤는지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이고는 꼬리를 마구 신경질적으로 휘두르며 걸어가는 에일레야를 따라서, 누님 좀 같이 가요하고 따라가는 걸 보고 있자니, 내 옆에 있던 릴리스가 말했다.
“너, 손... 그거 괜찮아?”
“응, 뭐.”
시퍼래지긴 했는데, 괜찮았다.
진짜 제대로 꽉하고 쥐었는지, 에일레야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버린 내 손을 바라봤다.
뼈도 안 상했고,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살짝, 노발기 상태로 기프트를 발현시켜서 웨어울프의 능력을 활성화시켰다.
“...잘 되네.”
여전히, 그대로인 웨어울프의 능력으로 빠르게 제 색을 찾아가는 내 손이 보였다.
꾸욱, 꾸욱하고.
몇 번인가 손을 쥐었다펴는 사이에 말짱해진 내 손.
그리고, 일단은 고용주인 우리랑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모여서 흘끗흘끗 내 쪽을 쳐다보는 에일레야의 클랜원들과 아예 이쪽을 보지도 않는 에일레야가 보였다.
음.
아무리 봐도, 진짜 제대로 화가 난 것 같은데.
이걸 어째야 하지 싶었는데, 별안간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곧 그렇게 소란스러워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비, 비켜. 아, 좀 비키라니까!”
“여기서 뭘 어쩌라고?”
서로 몸을 부딪쳐가면서, 서둘러 자리를 비키는 사람들 사이로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걸어들어오는 한 무리의 인간들이 보였으니까.
다 같이 죄다 시꺼먼 도포를 입은 인간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서 걷고 있는 여자의 등 뒤에 커다랗게 수놓아진 ‘?’자를 보고서, 저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전에도, 저거랑 비슷한 걸 입고 다니던 녀석도 본 적 있었고.
“천마님의 제자들도 참가했구나... 아니, 당연한가...? 이런 일에 끼지 않을 리도 없으니까.”
내 예상이 맞았는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람들도 보였으니까.
그나저나 그 새끼 어디 있지?
혹시 참가하지 않은 건가?
천마의 수제자니 뭐니해서 당연히 앞줄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안보였다.
그러다가, 곧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앞줄이 아니라, 중간쯤에 낑겨있다시피 하긴 했지만.
심지어 전에 자랑스럽게 펄럭거리던, 가장 앞에서 걷는 여자와 같은 ‘?’자가 새겨져 있는 도포가 아니라 그냥 주변의 다른 녀석들이랑 똑같이 그냥 흑색의 도포만 입고 있었고.
“...뭘 그렇게 봐?”
“아니, 저번에 시비 걸린 적이 있던 새끼가 있어서...”
릴리스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자, 내 대답을 들은 릴리스가 정색을 하는 것이 보였다.
“너, 천마 녀석의 제자랑 시비 걸린 적 있었어?”
그러고 보니, 그때 있었던 일 말한 적이 없었구나.
생각보다 별로 대단한 녀석도 아니었고, 크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ㅡ 그딴 것보다는 그때 새로 배운 자지 마법이 더 중요했던지라 그냥 넘어갔던 것이 떠올랐다.
아무튼, 별 탈 없이 잘 끝난 이야기였는데, 릴리스가 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지 의아스러웠는데 곧,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내쉬는 릴리스를 볼 수 있었다.
“...직접 오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네.”
“누구? 천마?”
“그럼 누구겠냐, 이 멍청아.”
나한테 왜 그래...
물어볼 수도 있지.
잘은 모르겠지만,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된 릴리스를 보고서 릴리스는 또 뭐 때문에 이러나 싶었다.
동시에 이걸 또 어떻게 달래야 하나 싶었는데, 천마의 제자들이 지나가면서 좀 조용해졌다 싶었던 광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또 뭔데.”
그래서 다시 소란스러워진 곳을 보니까, 왜 그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방금 지나쳐 가버린 천마의 제자들보다 훨씬 충격적인 광경이었으니까.
“와, 저게 뭐야.”
저걸 옷이라고 입고 다니는 건가...?
그렇게 생각될 만큼 장난 아니게 노출도가 높은 차림새의 누님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
한 손에, 제각각 다르긴 했지만 비슷비슷한 스테프들을 들고 있는 걸 보니까 전부 마법사인가본데.
커다란 보주들이 끼어져있는 스테프들보다는, 그런 커다란 보주들보다 더 커다란 두 가슴을, 가린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차림으로 출렁거리며 걸어가는 누님들을 보니까 시선이 절로 향했다.
“너, 이 새끼...”
“아니, 어쩔 수 없잖아.”
거의 헐벗다시피한 누나들이, 그것도 가슴이 존나게 큰 누나들이 지나가는데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더니 돌아온 것은 내 옆구리를 비틀어대는 릴리스의 손가락이였다.
대체 근육만 있는 내 옆구리 살을 어떻게 집은 건지는 몰라도, 내 옆구리를 가차없이 비틀어버리는 릴리스의 손아귀에 비명이 입구멍에서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사람들 잔뜩 있는데, 여기서 그러면 존나 쪽팔릴 테니까.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아까 나 쳐다보던 새끼들한테 으르렁거린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아주 그냥...”
“끄으...”
“또 처맞기 싫으면 시선 똑바로 해.”
“넹...”
똑바로 했다.
그리고 물었다.
“근데, 그래서 아까 그 사람들은 뭔데?”
“상아탑의 마녀들, 몰라?”
모르는데...
그런 내 대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릴리스를 보니까, 꽤 유명한 사람들이었나보다.
그리고 몰랐던 건 나만 그랬나 보다.
“천마의 제자들에 상아탑의 마녀들까지 참가했구나...”
“와, 씨. 한쪽은 이 지역에서 가장 강한 무인들이고 한쪽은 가장 강한 마법사들인데, 그 둘이 동시에 참가했다고...”
“저 둘이 거의 다 해먹을 것 같은데...”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방금 그 누나들이 우리 동네에서 톱 클래스들인 마법사들이었나보다.
이름부터가 상아탑의 마녀들이니 뭐니 하는 거 보니까 여자로만 이루어진 조직인가...?
근데, 괜히 릴리스한테 물어봤다가 또 옆구리가 쥐어뜯길 것 같아서 궁금해도 참았다.
그리고, 웅성거림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 뒤에도 계속해서 유명한 사람들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우리 지역에서 유일한 S랭크의 헌터도 온 모양이고, 어딘가에서 이름 날리던 강자들이 죄다 등판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런 일인데, 어지간한 사람들도 죄다 신청서부터 찔러봤을 테고, 그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만 추려서 뽑았을 테니까 저런 사람들이 잔뜩 모인 거야 이해는 갔다.
덕분에 존나 신난 표정으로 열심히 카메라를 비쳐대는 방송 관련 쪽 사람들도 보였고.
그리고...
“비, 비켜! 비켜!”
“악! 어떤 새끼가 내 발 밟았...”
“지랄 말고, 빨리 비켜!”
갑자기 기겁하면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보여서 뭔 일인가 싶었는데, 그렇게 도망치듯이 물러나는 사람들의 사이로 지나가는... 하나같이 머리 위에 커다란 양 뿔을 달고 있는, 하지만 메리 누님과 같은 웨어 비스트, 양 수인이라든지는 아닌 한 무리의 남녀들이 보였다.
양 수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보기는 쉬웠다.
하반신이, 염소의 그것을 닮은 종족들이었으니까.
사티로스들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의미로 기겁한 이유를 덕분에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어머, 오빠. 몸 좋아 보이는데 나랑 좋은 거 할래? 내 보지, 엄청 잘 조여주는데♡”
“거기 누나, 나 어때? 응? 내 자지 존나 쩌는데. 한 번 찔릴 때마다, 아주 뿅갈걸?”
당장, 그 무리의 일원 중 보이는 몇몇이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유명한 사티로스다운 짓을 하는 것이 보였으니까.
“거기 형씨, 엉덩이 죽이는데!”
심지어, 딱히 성별도 안 따지는 것 같은 사티로스의 행태에 여태껏 지나가던 유명한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존나 압도적인 변태 종족의 출현에 여태까지의 소란이 싹 잊혀질 정도로 난리가 난 것을 보면서, 사티 외의 사티로스들은 처음 보는데 왜 평판이 그렇게 좆창이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 사티를 만났을 적에, 사티도 저러긴 했었지만.
아니, 저정도는 아니었나?
아무튼, 사티로스도 저러고 다니니까 평판이란 평판은 죄다 까먹고 다니지만, 그래도 종족 자체가 장난 아니게 강한 종족인 건 맞으니까 참가자 자격을 얻어서, 여기에 있는 거야 이상할 건 없어 보였다.
더욱이, 아까 그 누님들만은 못했지만 사티로스 여자들도 어지간한 차림새라서 괜히 또 보고 있다가 릴리스한테 혼날 까봐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가,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티로스들 사이에서 쭈굴하고 껴있는 분홍 머리의 사티로스가 있었으니까.
“...쟤는 왜 또 저기 있어?”
요 일주일간, 괜히 신경 썼다가는 못 참고서 찾아가 버릴 것 같아서 아예 잊은 채로 있었던 사티가 그런 사티로스 무리에 껴있는 걸 보고서 얼이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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