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땅 따먹기 (6)
* * *
어째서 사티가 저기에 있는 거지?
아니, 가만 따져 보면 크게 이상할 건 없긴 했다.
다들 사티로스 종족들뿐이고, 바로 방금 전의 사티로스가 여기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저 사티로스들이 사티의 지인이나 뭐 그런 것일 가능성도 있었고, 전혀 닮지는 않았지만 저들이 사티의 가족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도 에일레야에 이어서 사티까지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
근데 그렇게 얼 타고 있을 때 갑자기 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심지어, 이번에는 단순히 소란스러워진 것만이 아니라 머리 위로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지고 우우웅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얘네도 지금 왔나보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위를 보는 릴리스를 보고서 이번 소란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만큼 수많은 웨어허니비들이 우우웅, 하고 머리 위에서 열심히 날개를 펄럭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들이 이윽고 이쪽을 봤는지 그대로 하강했다.
“내, 내려온다...!”
“비켜!”
우르르, 하고 내려오는 웨어허니비들을 보고서, 기겁하면서 우리 주변에서 물러나는 사람들.
근데, 그럴 만도 했다.
하나 같이 전신에 갑옷을 두른 채로 땅으로 내려온 웨어허니비들이었으니까.
그 숫자도 장난이 아니고.
덕분에, 겉보기에는 사뿐히 내려온 웨어허니비들인데 거의 동시에 땅에 내려오자 쿠웅, 하고 주변이 진동할지경이었다.
철컹...
그리고 바로 내 앞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있던 웨어허니비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페이스 가드를 위로 올리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왕님의 왕이시어. 지금 막, 저를 포함한 여왕의 기사들 전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이네. 6974호.”
전에 봤던, 메이드복 차림이 아니라 마치 기사처럼 갑옷을 두르고 있는 6974호였다.
여왕의 기사인가 뭔가 하는 직책이었구나.
전 여왕때나, 지금의 릴리아나때나 6974호가 최측근이었던 이유가 아마 저 직책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 그보다 몇 명이나 온 거야.
릴리아나에게 이번 일에 대한 걸 말했을 때, 힘이 닿는 대로 도와 준다고는 했는데.
너무 힘썼지 않나...?
내가 대체 몇 명이나 온 건지 웨어허니비들을 세고 있을 때, 그럴 필요가 없게 6974호가 말했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왕국의 모든 군대가 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저희 여왕의 기사들, 320명 모두 집합했나이다.”
“아...”
320명이구나.
존나 많이도 와 줬다.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 건, 이제 거의 임박한 릴리아나의 출산 때문일 거고.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사실상 이번에 태어나는 아이들... 내 아이들이 웨어허니비들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라고 들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전 여왕이 이미 임신 중이었던 웨어허니비들과 이후에 세상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죽어 버린 전 여왕의 남편 대신에, 디스펜서들로부터 정액을 받아서 태어난 릴리아나를 포함한 공주 웨어허니비들이었다고 들었으니까.
사실상, 내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첫 아이들인 셈이었다.
아무튼, 그런 중요하다면 중요한 시기인 만큼,
와줘봤자 한 백 명쯤 와줄 거로 생각했는데, 그 세배나 와줘서 좀 당황스러웠다.
덕분에 어그로도 장난 아니고.
이쪽을 보면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고서 그리고 그사이에 먼저 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 사티를 보고서 한숨을 내쉰 내가 말했다.
“...일단, 기다렸던 사람들이 다 오긴 했으니까, 이제 우리도 안쪽으로 갈까.”
“그럼,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왕이시어. 기사들, 왕께서 가실 길을 열어라.”
아니.
“그럴 필요...”
없는데, 라고 말하기도 전에 6974호의 말에 일제히 몸을 일으킨 웨어허니비들이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주 효과적인 방법으로.
들고 있던 창을 앞을 막고 있는 인파들을 향해 겨누면서, 전진한다는 무지막지한 방식으로 순식간에 길을 열어 버리는 웨어허니비들이 보였다.
혼비백산하면서, 마구 도망치듯이 길을 비켜서는 사람들이나 신이 나서 그런 우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 마구 촬영해대는 방송관련쪽 사람들을 보고서, 이마를 짚었다.
웨어허니비들 덕분에, 정신적으로는 몰라도 육체적으론 무척이나 편하게 다른 참가자들이 모인 진짜 집합 장소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도 많아봤자 100명에서 200명 안팎이지만 우리만 혼자 웨어허니비들만 해도 300명이 넘는 인원이라 그런지 어그로가 장난이 아니었다.
에일레야의 클랜까지 합치면 거의 400명에 육박하는 인원들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연히 유리하지만 그만큼 필요한 경비가 어마무시해지는데, 300명을 넘어선 지금은 거의 군대나 다름없었으니까.
우리 다음으로 가장 많은 애들이, 천마의 제자들이었는데 우리가 걔네보다 거의 두 배는 더 많았다.
뭐, 단순히 숫자가 많다고 해서 끌린 어그로만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사람을, 창으로 밀어내가면서 길을 열고 들어왔으니까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아무튼, 그 탓에 장난 아니게 쏠리는 시선들.
특히, 귀찮은 건 사양이라고 웨어허니비들이 길을 열기 시작할 쯤에 나만 두고 안쪽으로 들어가 버린 릴리스 덕분에 그리고 호위라는 명목으로 내 옆에 붙어 있는 6974호를 포함한 다섯이나 되는 웨어허니비들 덕분에, 그사이에 있는 나한테 시선이 장난 아니게 쏠렸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 덕분에 사티로스 사이에 끼어 있는 사티도 나를 봤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멍하니 내 쪽을 보고 있다는 점 정도...?
그 외에는, 진짜 원하지도 않았던 관심들을 잔뜩 받고 있어서 피곤했다.
“왕이시어,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그런 나를 보고서, 6974호가 그렇게 물어왔다.
너희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기껏 릴리아나가 우릴 도와주라고 보내준 웨어허니비들에게 그러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아서 그냥 좀 피곤해서 그렇다고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6974호가 말했다.
“그럼, 의자를 대령해 올까요?”
“의자...?”
“네.”
대체 의자는 어디서 구해 오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 내 시선을 가져오라고 이해했는지 6974호가 말했다.
“8211호, 9145호. 왕께서 앉으실 의자가 되어라.”
척, 하고 6974호의 말에 바로 내 옆에 있던 웨어허니비들이 그대로 엎드리는 것이 보였다.
“앉으시면 됩니다. 왕이시어.”
“...필요 없으니까 일어나주라.”
“하지만 왕이시어. 안색이...”
너희 때문이라니까.
전에 꿀벌로드를 봤을 때부터 알기는 했지만, 타인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웨어허니비의 감성에, 타인의 시선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나는 속이 엄청나게 쓰렸다.
복종과 지배, 수직식의 조직으로 이루어진 곤충형의 웨어비스트들의 특징이라는데, 솔직히 평범한 인간인 나로서는 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어쩌나, 내가 이해해야지.
저들의 처지에서는, 나는 릴리아나의 반려이자, 자신들이 명령을 따르고 모셔야 할 사람이고 그 외의 모든 사람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구태여 시선을 신경을 써야 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일어나, 진짜 괜찮으니까.”
“...알겠습니다. 일어나도록, 8211호, 9145호.”
척, 하고 다시 몸을 일으킨 웨어허니비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 내 옆에서 창을 치켜든 채로 기립하는 것을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들이 웅성대는 것이 들려왔다.
하지만 다행히 금방 그런 시선은 다른 쪽으로 향해졌다.
아아, 큼... 아아아... 다들... 이렇게 모여주셔서...
쩌렁쩌렁, 주변에 울리는 목소리.
세계 정부측에서의 나온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덕분에 드디어 내 쪽으로 향하던 시선이 사라져서 안도했다.
이번의 대규모 정화 사업에 대한 안내하겠습니다. 우선...
대충, 세계정부 쪽에서 이번 일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것ㅡ 이미 사전에 남궁무휼한테 전부 들었던 이야기들을 흘려들었다.
어차피 땅의 정화가 제일 중요하고, 그 외에는 우리가 잡은 몬스터의 소재를 챙겨 와서 공적으로 환산하는 것, 또 참가자들끼리는 서로 경쟁은 하되 공격 등의 행위는 금지한다는 내용들 따위였고, 딱히 그새 새로운 규칙이라든지가 추가된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아무튼, 그 밖에도 대충 그 지역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종류라든지를 특히 위험한 몬스터가 출몰하거나, 오염도가 심한 지역등을 알려 준 세계정부측에서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그제야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지 말을 나누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나, 무작정 출발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6974호, 미안한데 저쪽에서 에일레야라는 사람 좀 불러서 여기로 와달라고 해 줄래? 그리고 너도 같이 오고.”
“네, 알겠습니다. 왕이시어.”
6974호에게, 우리랑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인 에일레야를 불러달라고 하고서 나도 아내들이 있는 이동식 거처 안으로 들어갔다.
“왔어?”
“응.”
도중에 안으로 들어가 버려서, 나 혼자 어그로를 받게 만들었던 릴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끄, 끄으...”
그리고 그런 릴리스의 앞에서 엎드려 있는 카르미나도 보였다.
다리 사이로 추욱 늘어진 꼬리를 보니까, 돌아온 릴리스랑 또 한판했다가 그사이에 개같이 털려 버린 모양이었다.
“여, 영웅이여... 어째서냐...! 어째서 여가 계속 지는 것이냐...! 여의 덱은 완벽했을 터인데...!”
“아니...”
나도 우리 집 안에서 저 게임을 존나 못 하는 축에 들긴 하는데, 그래도 카르미나 정도는 이기는 내가 보기엔 저 덱이 존나 무리인 덱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패 절반쯤은 날려 버리고, 나머지 절반도 마법이든 뭐든으로 채워야지 겨우 정상적인 덱이 되지 않을까.
최소한, 고레벨의 몬스터로만 꽉 채운 지금의 카르미나 덱보단 강해질 거다.
근데, 그렇게 내가 조언해주기도 전에 유스티티아가 카르미나에게 말했다.
“으응, 역시 몬스터들이 너무 약해서 그런 게 아닐까, 카르미나?”
“...확실히, 완벽했다고는 생각했지만 아직 여의 몬스터들은 부족하긴 했다. 고맙구나, 유스티티아! 돌아가면 좀 더 강한 몬스터를 잔뜩 넣어서... 더 완벽한 덱을 만들어야겠다!”
“응, 그래. 나도 기대하고 있을게.”
키득거리며, 그런 카르미나의 감사의 말을 받는 유스티티아가 보였다.
카르미나 좀 그만 놀리지.
집에 돌아가면 카드 팩 사게 필요한 돈 좀 달라고 또 졸라대겠네.
“...불렀어? 출발할 거면 그냥 하지, 어차피 우리야 따라가면 그만이니까. 그보다 얘네는 대체 뭐야? 웨어허비니들이 이렇게 잔뜩 몰려와...”
아무튼, 6974호가 불렀는지 안으로 들어오던 에일레야가 눈을 끔뻑거리며 우리를 보는 것이 보였다.
릴리스야 아까 봤겠지만 안에 있느라 못 봤던 호아란이나 유스티티아, 카르미나에 이어서 카루라까지 보게 된 에일레야가 그렇게 모두를 훑어보던가 싶더니 그대로 스턴을 먹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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