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화 〉 땅 따먹기 (8)
* * *
뭐, 작금의 세상에서의 결혼이란 게 그따위라서 남들의 눈에 띄는, 상징적인 물건들이 더 중요시 여겨지게 된 경향이 없잖아 있기는 한데...
그래서, 나도 반지를 준비했던 거고.
그래도 반지 하나로 기분이 저렇게 휙휙 풀리는 건가 싶었다.
나는 잘 이해 안가는데...
전에,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보고서 멘탈이 터졌던 사티때의 일을 생각해보면...
음, 역시 잘 모르겠다.
“아니, 근데... 그 반지는 어떻게 한 거야, 유스티티아?”
유스티티아가 에일레야에게 건네줬던 반지, 아무리 봐도 내가 모두에게 나눠준 반지랑 똑같은 모델이라서, 대체 언제 그런 걸 준비해뒀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아아, 그거...? 간단한 연금 마법이야. 자, 이렇게 은 덩어리를 손에 쥐고서...”
꾸욱, 하고 손을 쥐었다 펴는 유스티티아의 손바닥에 반지가 생겨나는 것이 보였다.
“이러면, 금방 만들 수 있으니까. 정말로 간단하지? 세세한 모양이나 문양은 기억하고 있으니까, 문제없고. 보석쪽은, 한조가 줬던 반지 정도 크기의 다이아야 마법의 시료로 쓰려고 모아둔 것도 있거든.”
“...그게 간단하다고?”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일대에 주로 출몰하는 몬스터들이 좀비류가 대부분이라서 은이야 어느 정도 챙겨왔다고는 해도, 재료가 있다고 그걸로 후딱 반지 같은 걸 만들어내는 유스티티아가 굉장했다.
보니까 에일레야가 갑자기 기분이 상한 이유를 파악하고, 그 잠깐 사이에 몰래 반지를 만들어서 거기에 마법까지 걸어서 아티펙트화한 모양인데...
그게 가능하다고...?
근데 ‘천호의 갑주’나 ‘용 발톱’ 같은 것도 3일 만에 뚝딱 만들었던 유스티티아니까 별로 이상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위치 추적 마법이야, 그리 어려운 마법도 아니니까.
감지가 가능한 거리가 멀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드는 기가 많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걸 몇 분도 안 되는 사이에 만드는 건 역시 대단하긴 했지만.
뭐, 어쨌든.
“일단, 슬슬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갈 길도 멀고.”
우리처럼 곧장 안쪽 깊숙이까지 직진할 생각이나, 그럴 능력이 있는 녀석들은 딱히 없어보였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괜히 먼저 도착한 녀석들이 있어서 누가 먼저 왔니 마니로 갈등이 생기는 건 곤란했다.
“...네 마음대로 해.”
내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며,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본인도 조금 너무 과민 반응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살짝 두 뺨을 붉힌 채 그러는 걸 보니까 조금 귀여웠다.
아무튼, 릴리스도 좀 진정한 것 같고...
사실상 이번 일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한, 이동식 거점 아티펙트인 씽씽이 2호를 움직였다.
구르르릉...!
굉음을 일으키면서 거체를 들어 올리더니, 이내 움직이기 시작하는 씽씽이 2호.
최신 마도 공학 정수와 골렘 마법을 접목시키고, 여기에 과학까지 끼얹은... 사실상 이것저것이 섞여서 만들어진,\ 소형 이동식 요새라는 이름에 걸맞은 소리였다.
“쩔어.”
이거 사느라고 돈이 존나 깨지긴 했는데, 역시 그 돈을 주고서 사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릴리스가 사준 씽씽이랑 다르게, 씽씽이 2호는 일단 내 돈 주고 사서 그런지 더더욱.
여기에 들어간 기술이, 전에 봤던 메이드 로봇이라고 해야 할지, 골렘이라고 할지랑 비슷한 거라는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데.
둘 다 남자의 로망이라는 공통점은 있기는 하지만.
존나 꼴리게 생긴 메이드 골렘이나, 존나 멋진 이동형 요새나, 남자의 마음을 불타게 하는 무언가가 있긴 했다.
나중에 메이드 로봇쪽도 사고 싶은데, 그러면 아내들의 눈치가 존나 보일 테니까 못하겠지...?
뭐, 딱히 없어도 되긴 할 것 같았다.
사실 메이드 로봇도 로봇인데, 중요한 건 그쪽보다는 메이드 복 그 자체니까.
정 보고 싶으면, 아내들한테 메이드 복 입어달라고 조르지 뭐.
“가즈아!”
신나서, 열심히 씽씽이 2호의 구동핵에 손을 얹고 기를 불어넣었다.
신나서 씽씽이 2호에 마구 기를 불어넣으면서 달리긴 했는데, 과거에는 길이었을지는 몰라도 이미 죄다 무너지고 지랄이 난데다가, 방치된 지 2년...
사실 말이 2년이지, 이 땅이랑 합쳐진 차원의 세상에서까지 합치면 몇 년이나 방치돼있던 건지 모를 길을 따라 달리니까, 그리 멀리까지는 가지 못했다.
더욱이, 가는 동안 계속해서 마주치던 몬스터들...
한때, 과거에는 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나, 아니면 이 땅에서 살아갔을 다른 종족, 그것도 아니면 동물이나 식물 따위가 변형되어버린 몬스터들과 마주쳐서 그런지 진짜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체감상 30분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계속 마주친 것 같은데.
아직 초입이라 그런지, 에일레야의 은빛 늑대단들이나 웨어허니비들에게 쉽게 갈려 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좀비들이 길을 막을 때마다 자꾸 멈춰서서 그런지 결국 목적지까지 3분의 1도 채 못 가서 날이 홀딱 새버렸다.
“존나 힘드네, 이거.”
그리고, 나도 존나 지쳤다.
신나서 마구 기를 불어넣으면서 내가 조종하기는 했는데, 씽씽이 2호 이거, 장난 아니게 기를 많이 빨아먹었다.
체감상 천호의 갑주의 열 배는 더 많이 빨아먹는 것 같았다.
그걸, 한나절동안 계속 몰고 다니니까 진짜 힘들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쉬어가는 것이 좋겠구나, 한조야.”
“그러게요.”
목적지까지 하루 만에 도착하는 건 역시 욕심이었나보다.
아쉽지만, 호아란의 말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오늘은 이쯤에서 야영이나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도 씽씽이 2호의 구동핵으로부터 손을 떼고서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에일레야, 6974호. 오늘은 여기에서 쉴 테니까 다들 준비해요.”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 둘 다 상당한 수준의 강자라서 그런지 굳이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됐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야영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오늘은 여기서 쉰다니까, 다들 준비해!”
“넵, 누님! 야! 쉰대!”
“씽난다!”
익숙한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뚝딱뚝딱 텐트를 세우거나 하는 은빛 늑대단이나 웨어허니비들을 보고 있자니, 호아란이 말했다.
“그럼 우리는 식사를 준비하마.”
“부탁할게요.”
“음, 여... 아니, 나도 그럼 다친 자가 있는지 보고 오마!”
음식 쪽은 우리가 알아서 해주겠다고 한 만큼, 준비에 들어간 호아란이나 카루라.
그리고 웬일로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는 카르미나를 보고서, 나도 뭐 할 거 없나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이쪽으로 다가오는 에일레야가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그게, 불침번 관련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 우리야 한조, 너한테 고용된 입장이지만 웨어허니비... 쟤들은 듣자 하니까 그냥 널 도와주러 온 애들이라며? 그렇다고 A랭크 헌터들한테도 불침번을 세우라고 하는 건 그렇고. 일단 우리쪽에서 전담하는게 맞는 것 같아서.”
아, 그거.
확실히 중요한 문제긴 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방사능에 쩔은 좀비들을 수없이 쓰러뜨리고 왔던 만큼, 밤중에도 당연히 튀어나올 테니까.
근데, 괜찮았다.
“유스티?”
“응, 자... 여기.”
“이건...?”
유스티티아가 건네준 말뚝 같은 걸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에일레야를 보고서,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그걸 주변에 꽂으면 이 근처에서 보던 수준의 좀비들은 주변으로 오지 않을 거야. 뭐, 더 깊이 들어가면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주변에 있는 녀석들한테는 먹힐 거니까 안심해.”
“헤에...? 확실히 A랭크 마법사이기는 한가 보네. 이런 것도 다 만들고.”
글쎄...
못 만들 것 같은데.
에일레야는 저게 그냥 단순한 아티펙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저거 주술 쪽에 있는 사람을 물리는 술법의 몬스터 버전이고, 유스티티아가 따로 주술이랑 마법을 접목시켜서 만든 물건이니까.
마법만이 아니라, 주술쪽에도 조예가 있는 유스티티아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물건이었다.
주술사랑 마법사가 협력하면 모를까, 그럴 일은 서로 반쯤 앙숙에다가 대립하는 듯한 술사나 마법사들의 관계상 일어날 일이 없다시피한 일이고.
적어도, 혼자서 저런 걸 만들 수 있는 건 내가 알기로는 유스티티아뿐이었다.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최소한의 불침번은 서둘게. 이게 있으니까... 숫자는 좀 줄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에일레야에게 그쪽이 편하다면, 그러라고 했다.
아티펙트가 있으니까 안심하라고 해도 마냥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니까.
“참... 이것도 받아.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필요할 테니까.”
그거 말고도 유스티티아가 꺼내 준 깨끗하게 정화된 물이 나오는 아티펙트라든지, 불을 피우는 아티펙트 같이 야영에 있어서 쓸만한 아티펙트들도 한아름 안겨주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에일레야가 말했다.
“...확실히 마법사가 있는 쪽이 편하긴 하구나, 이런 것도 다 있고.,, 우리 중에는 마법의 마도 못 쓰는 애들뿐이라서, 전부 알아서 해결했어야 했는데.”
아니, 그것들도 그냥 죄다 유스티티아가 취미 삼아 만든 것들이니까, 일반적인 마법사들이랑 비교하면 안 되는데.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아티펙트를 그렇게 잔뜩 들고 다니지 않으니까.
기껏해야 자기가 들고 다니는, 스테프 정도의 아티펙트나 겨우 챙기고 다니는 마법사들이랑 비교하면 곤란했다.
나도 알고 있는 마법사라고는 한유진 정도나 나르메르 왕국에서 만났던 데스웜에게 파이어볼을 날려댔던 마법사들 정도뿐이니까 뭐라고 판단할 처지는 아닌데.
그래도, 유스티티아가 일반적인 마법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애당초 유스티티아는 마법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마법의 종주라고도 불리는 드래곤이고. 그마저도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이런저런 아티펙트나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던 드래곤이었으니까.
근데 우리도 마법사를 구해야 봐야하나하고 중얼거리는 에일레야에게 그런 마법사는 못 구할거니까 꿈 깨라고 하는 것도 뭐해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아무튼, 그 외에도 아까 미처 하지 못했던 앞으로 어떤 식으로 공략할 예정인지라던가, 야영시에 웨어허니비들이나 은빛 늑대단의 거처 위치 등에 대한 거나 이야기 하던 중에 호아란이랑 카루라가 요리를 마쳤다고 모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다시 얘기하고, 일단 밥이나 먹죠?”
“그래, 나도 배고프니까.”
“릴리... 랑, 유스티... 도 같이 가요.”
편한게 좋겠거니해서, 원래 이름을 조금 잘라서 짓다시피한 가명인데 오히려 더 불편하네.
아무튼,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릴리스랑 유스티티아도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니까 이미 호아란이 먼저 온 은빛 늑대단이나 웨어허니비들에게 음식들을 나눠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이거... 분명 통조림이었는데...?”
그리고, 호아란과 카루라가 힘을 합쳐서, 단순한 통조림에서 요리로 탈바꿈시킨 것들을 보고서 웅성대는 은빛 늑대단의 사람들이 보였다.
“...겉보기만 그럴 듯해 보이고, 그냥 통조림이겠지!”
“아니, 겉보기만이 아니라 냄새도 장난 아닌데?”
“요리는 냄새랑 모습이 아니라, 맛이 중요한 거야!”
그렇게 말하며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웨어울프 사내, 아까 에일레야한테 조용히 하세요를 당했던 남자가 보였다.
“......”
“뭐야, 왜 그래?”
그대로 멈춰섰던 웨어울프를 보고서 주변에서 그렇게 묻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일시정지했던 웨어울프가, 이내 접시에 얼굴을 박고서 열심히 핥아먹는 것이 보였다.
“이, 이 새끼 왜 이래?!”
“미쳤어?! 네가 웨어울프지 진짜 늑대인줄 알아?!”
뜯어말리는 주변 사람들도 무시한 채로, 그대로 호아란이 줬던 접시를 전부 비어버린 웨어울프가, 이내 꼬리를 추욱 늘어뜨렸다.
“뭐야... 내꺼 다 어디 갔어?”
“네 뱃속 이 머저리야!”
꽝, 하고 에일레야가 그런 웨어울프의 머리를 다시 내리치고는 말했다.
“쪽팔리게 이게 뭔 짓이야 대체?!”
“그치만, 누님... 여태 먹었던 것이 전부 쓰레기로 느껴질 만큼 맛있었는걸요...”
호아란이 요리를 잘하긴 해.
근데, 저 정도의 반응은 오버인 것 같은데.
“대체 어떻길래...?”
“저 새끼가 원래 오버하는 녀석이잖아.”
“그래도 저렇게 그릇에 얼굴 박고 처먹는 새끼까지는 아닌데...”
아무튼, 덕분에 웅성대던 웨어울프들도 자기가 받아온 음식들을 한숟가락씩 떠먹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결과는 아까의 모습 그대로 반복되는 거였다.
죄다, 접시에 얼굴을 박듯이 호아란이 해준 요리를 퍼먹기 시작했으니까.
“이, 이 새끼들이 미쳤나 진짜...?!”
순식간에 그릇을 비워버리다 못해서, 그릇의 바닥까지 핥짝이며 먹어대는 웨어울프들을 보고서 얼굴이 새빨개진 에일레야가 뭐라고 했지만, 존나 듣는 척도 안했다.
“너무 화내지 말거라. 다들 고생했으니 배가 고팠지 않겠느냐? 그보다, 에일레야... 그대도 들거라.”
그렇게 말하며, 에일레야에게도 요리를 나눠주는 호아란.
“읏...”
딱 봐도 엄청 맛있게 생긴데다가, 냄새도 장난 아니었다.
당장 인간인 나만 해도 침이 줄줄 새어 나오려고 했는데, 나보다 훨씬 후각이 예민한 에일레야야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휙휙휙휙...!
다른 은빛 늑대단이 다 깎아 먹은 평판을 조금이라도 지키고자 열심히 참아보려고는 하는데, 꼬리부터 존나게 흔들려대고 있었다.
“고, 고마워...”
그래도, 어떻게든 받아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에일레야를 보고서 호아란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의 인사는 됐으니 어서 들거라.”
“어, 응...”
호아란의 말에, 조심스레 숟가락을 입에 물었다가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계속해서 숟가락을 움직여가며 입으로 요리를 넘기는 에일레야.
그나마 다른 웨어울프들과는 달리, 최소한 숟가락을 쓰고는 있는데 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에일레야를, 이미 자기 몫으로 받은 것들을 다 먹어 치워놓고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은빛 늑대단의 시선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다 꺼져! 이건 내꺼니까!”
“아니, 누가 달랬어요? 누님. 그냥 보기만 한 건데.”
“너희 때문에 못 먹겠잖아...!”
“존나 잘 처먹고 계셨으면서.”
“존나? 존나라고 했냐 이 새끼야?”
티격태격하는 은빛 늑대단들을 보고서, 호아란이 후후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많이 했으니 더 먹고 싶으면 말하거라.”
“정말요, 누님?”
“저요, 저부터...!”
몰려드는 은빛 늑대단에게 다시 요리를 나눠주는 호아란을 보고서, 나도 순식간에 만들어진 줄을 서야 하나 했는데 내게 다가오는 카루라가 보였다.
“그대의 것은 여기 있다.”
“아, 고마워.”
카루라에게서 받은 내 몫의 요리.
근데...
“...왜 내꺼만 달라?”
통조림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기에 이것저것 잔뜩 들어간 수프인 저쪽 요리들과 달리 내 쪽은 뭔가...
뭔가, 이런 말을 하긴 그런데 음식보다는... 다른 뭔가였다.
당장 내 몫의 수프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이 뿌리 같은 거.
평소에도 자주 입에 물고 씹어먹는 백년 하수오 뿌리잖아.
아니, 그거 말고도 이것저것 들어간 거 보니까... 전에 먹었던 그거였다.
장장 일주일에 걸쳐서, 아내들에게 진짜 죽기 직전까지 쪽 빨렸을 때 호아란이 내게 해줬던 음식보다는 약탕에 가까웠던 그거.
“아... 그대여, 이것도 다 먹고 나서 먹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도...”
“어...”
심지어, 그때보다 하나 줄긴 했지만 내단도 있었다.
은빛 늑대단이나 웨어허니비들이 받은 물 대신에, 나만 아리아드의 수액이고.
이거... 완전....
“...저기, 호아란?”
내가 호아란을 부르자, 나 혼자만 다른 걸 만들어준 호아란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까, 그 씽씽이 2호라는 것을 움직이느라 고생하지 않았느냐? 그, 그러니까 기를 보충하라고...”
“아...”
집 밖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안 할 줄 알았는데.
호아란의 모습을 보니까, 그딴 거 없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안 할 수도 없었다.
릴리스의 성장기도 아직 안 끝났고, 내 정액이 없으면 비실비실해지는 유스티티아도 있었으니까.
“흑흑... 너무 맛있다...”
“저기, 화란 누님? 한 그릇만 더...”
“아아, 아직 많으니 얼마든지 더 들거라.”
마구 꼬리를 흔들어대며 몇 번이나 호아란이 해준 요리를 다시 받아서 먹는 웨어울프들이랑 달리나는 쓰디 쓴, 약뿌리가 둥둥 떠다니는 약탕으로 배를 채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