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외전) 나락 (1)
* * *
“대체 언제쯤이면 완성되는 건가요, 그거?”
『끌끌, 너무 보채지 말거라. 그런다고 이 아이들이 서둘러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니. 위대한 발명에는 시간이 든다는 말도 있지 않으냐...』
“흥... 위대는 무슨. 최소한 생긴 거라도 좀 잘 만들 수는 없나요? 하나같이 꾸물꾸물 기어다녀서... 끔찍할 정도로 기분 나쁜데. 냄새도 나고.”
발치에 기어 다니는 것을 툭, 하고 걷어차며 말하는 여자의 말에 꿈틀하고, 그렇게 차인 것을 들어올린 자가 말했다.
『흠, 심미안을 기르는 것이 좋겠군. 보거라, 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완전한 생물체다운 모습이지. 비록 완전한 것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이다. 곧 있으면... 곧 있으면 나의 비원이 이루어지리라...』
그 말에 하, 하고 백발의 여자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모든 생물을 완전한 존재로 만든다는 그 얼토당토않은 비원 말이죠. 그딴 게 될 거 같지는 않지만, 뭐, 됐어요. 이거 한 마리, 가져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요. 위쪽에서 슬슬 성과를 보이라고 하고 있거든요. 당신이 바랬던, 그 도플갱어들을 잡아다 준 것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는지 바라시는 모양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는 백발의 여자를 흘끔 바라본 그것이, 아직도 목에 가느다란 실선이 이어져 있는 여자를 보고서 말했다.
『끄끅... 아직 그 목에 상처가 다 낫지 않은 모양이구나. 여우에게 베였다지...? 뭐하면 내가 직접 꿰매줄 수도 있는데...? 음, 기왕이면 그 가느다란 팔도 좀 더 좋은 걸로 바꾸는 것이 좋겠군. 마침 좋은 것이 있다... 뭘, 그대와 나는 일련탁생과도 마찬가지인 몸... 시술의 비용은 너의 피를 조금 주는 걸로 만족해주지...』
“당신한테 내 몸을 맡길 바엔, 그냥 차라리 잘린 목을 떼고 다니는 게 낫거든요? 거기에, 그거 치워요. 누가 트롤 팔 같은 걸 달고 싶을 것 같나요? 아니, 대체 그런 건 대체 왜 줍고 다니는 거야. 그 기분 나쁜 해골 성애자 녀석이 죽어서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 했는데, 어떻게 여긴 시체나 줍고 다니는 정신병자들만 있담.”
휙, 하고 옆에 기어 다니던 것을 들고서 몸을 일으켜 세운 백발의 흡혈귀.
라우라가, 빙그르르하고 양산을 펼치며 말했다.
“아무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 그리고... 요즘 이 주변이 소란스러운데 혹시 걸리거나 하지는 말아요. 귀찮아지는 건 딱 질색이니까.”
『...걱정하지 말도록.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나의 영역이니... 설령, 스물둘의 영웅이 오더라도, 이 둥지를 들킬 일은 없...』
“네, 네. 그러시겠죠. 그럼...”
어둠에 스며들 듯, 사라져버린 라우라를 본 그자는 끅, 끅하고 웃다가ㅡ 콰앙하고 주먹을 내리찍었다.
“끄에엑! 끄에에에에에에엑!”
『오오오오...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아이야.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구나... 다치지는 않았느냐...?』
내리쳐진 주먹에 찍혀서, 꾸물꾸물렁하고 내장인지 아닌지 모를 것을 토하며 몸을 비틀어대는 것을 조심스레 들어올린 것이 꾸물꾸물 도망치려는 듯 기어가는 부정형의 생물을 붙잡고 살폈다.
『미안하다, 사과할 테니 부디 나를 용서해다오... 저 썩은 피비린내 나는 흡혈귀가 너희를 욕한 것의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를, 나의 위대한 걸작들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무지하고 어리석으며, 버러지같은 것들...! 오오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아름답구나... 벌써,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느냐... 과연, 내가 만들어낸 아이답구나... 너희야말로, 위대한 나의 걸작이로다...』
스윽, 스윽하고.
그것을 간지럽히듯이 만지던 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언젠가, 그 여자에게도 너희의 사랑스러움을 깊이 알 수 있게 하도록 하자꾸나. 무얼... 제 배로 너희들을 낳다 보면, 자연스레 너희를 사랑스러워 하지 않겠느냐... 자고로 생물이란, 그렇게 태어난 법이니...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어미를 사랑하는 법이지... 생명이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나가는 위대한 순리대로 말이다...』
자, 나에게 오거라, 아이들아.
그렇게 말하자, 이윽고 땅을 기어다니던 것들이 그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너희들을 낳아 기르다 보면, 너희에게 퍼부었던 악담이 얼마나 터무니없던 것인지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나중의 유희로 남기자꾸나... 아직 그 흡혈귀도, 그 흡혈귀를 부리는 녀석들도, 쓸모가 있음이니...』
꾸르륵, 꾸르르르륵.
기고, 기어서.
그것들이 한곳으로 흘러가듯이, 그자의 몸으로 향했다.
『우선... 오늘도 새로운 모체가 되어줄... 아이들을 찾아 보자... 저번의 그 암컷들은 몸이 약한 마녀들이라 그런지 금방 망가질 것 같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튼튼한 모체가 좋겠구나... 어디.,. 어떤 종족이 좋을꼬...』
또르르륵.
여러 눈들이 동시에 떠졌다.
저마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눈들이, 휙휙하고 어두컴컴한 암굴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바라보듯 바쁘게 움직였다.
이윽고.
모든 눈들이, 한곳을 향해 멈춰섰다.
『오오... 저 아이들이 좋겠구나... 사티로스라... 튼튼하고, 좋은 모체가 되어주겠군...』
“야, 너 너무 헐렁해진 거 아냐?”
“뭐래, 지가 존나 작은 거면서.”
“아니, 작긴 씨발. 안 작거든? 네가 저번에 미노타우로스랑 존나게 붙어먹어서 그런 거잖아 이거.”
“그래, 근데 그게 뭐? 결국 네가 미노타우로스보다 작은 거 맞잖아.”
“이런 씨발... 아, 저번에 본 그 누나 존나 꼴리게 생겼었는데...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이런 헐렁한 보지에 박아대야 하는 거지?”
“아, 꺼져 그럼! 나도 너 같이 투덜거리는 새끼랑 하기 싫으... 히윽!”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 누나는 여기에 없고, 넌 여기에 있잖아? 그러니까 보지나 제대로 조여.”
“읏♡ 응♡ 흐앗♡ 앗♡”
찰박, 찰박.
안쪽에서 들려오는, 서로 살을 섞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쩔 수가 없어서 텐트의 장막을 들추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내가 보급품을 가지러 가기 위해 잠시 떠났을 때부터 질펀하게 붙어먹고 있었던 모양인지 하나같이 온몸에 이런저런 체액으로 덕지덕지한 채로 엉겨 붙어서 뻗어있는 사티로스들이 보였다.
정액이고, 애액이고, 온몸에 전부 늘어붙어서, 허옇게 물들어서 이게 사티로스들인지 아니면 백탁색의 슬라임인지 모를 꼴을 하고 있는 녀석들을 보니까, 한숨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랄 것은, 냄새만큼은 체액에서 과일향이 나는 사티로스의 종족이 가진 특성 때문에 지독하지는 않다는 것 정도...
다만, 냄새만 그렇다는 거지 저게 정액이나 애액이란 것은 변함없어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바닥이 넘쳐흐르다시피 하는 것들을 밞지 않도록 조심히 걸어가서, 이미 뻗어있는 사티로스들 사이에서 아직도 서로 붙어먹고 있는 두 사티로스 남녀에게 말했다.
“...보급품 가져왔어.”
그제서야, 내가 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엉덩이를 붙잡고서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던 사티로스가 고개를 돌려서 이쪽을 봤다.
“오오, 사티. 왔구나. 아, 나 물 좀 주라. 목 말라서 뒤질 거 같았거든.”
굽이치는 기다란 염소의 그것을 닮은 뿔을 한, 호리호리한 몸매의 사내.
키 역시, 남녀의 신장이 별 차이가 없는 사티로스답게 자신과 별 다를 바 없이 작은... 하지만, 한창 다른 사티로스 여자, 시아에게 박아대고 있는 자지만큼은 사티로스답게 쓸데없이 커다란 녀석이 보였다.
전형적인 사티로스의 남성인, 지금은 잠시 적을 두게 된 이 파티의 리더인 게스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가져왔던 보급품에서 물을 꺼내다가 건네줬다.
“땡큐... 아, 너도 낄래? 뭐... 다들 뻗어서 상대는 나뿐이긴 한데.”
“됐어. 절대로 싫으니까 꺼져.”
“그래? 야야, 시아. 보지 제대로 조이라고 했잖아. 또 헐렁해졌네.”
짝, 하고 엉덩이를 내리치며 말하는 게스파의 말에, 한창 자지에 박히고 있던 시아가 흐끗, 하고 신음을 토하더니 말했다.
“이, 씨...! 나한테만 박지 말고 쟤 왔으니까 쟤랑도 해! 왜 나만 해야 하는데?”
“사티는 싫다잖아. 에우르랑 나루도 뻗었고. 아직 멀쩡한 건 너뿐이니까 별 수 없지. 나도 니 헐렁한 보지에 박기 싫다니까?”
“나도, 싫거... 흐읏!”
“뭐래, 보지 다시 존나 조이고 있으면서. 미노타우로스 자지에 존나 박혀서 헐렁해진 보지, 내 자지로 다시 교정시켜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아, 사티. 수고했고, 혹시 모르니까 주변의 경계도 봐주라. 보다시피 우리는... 쫌 바빠서.”
“...그래. 대신, 이번 것도 제대로 계산해줘.”
“응응, 약속한 대로 이번 일로 받기로 한 보수에서 네 몫은 확실히 떼어줄게.”
게스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어차피 서둘러서 나가고 싶었던 곳에서 빠져나오다시피 밖으로 나왔다.
“ㅡ진짜, 응♡ 왜 쟤한테만 아앗♡ 그렇게 잘 대해줘?”
“잘 대해주긴, 오히려 너한테 더 잘 대해주는 거지. 아니면, 네가 대신 보급품 받아오고, 경계도 서던가. 퍼질러서 손톱이나 정리하고 있다가 보지만 대주지 말고 나가서 좀비도 좀 잡고.”
“나, 나는 싸우는 쪽은 못하는 거 잘 알잖아...”
“그래, 알아. 종족이 사티로스기만 해서, 다들 떠받들어주는 대로 살뿐인 년인 거. 우리 모두 다 같이 고아였던 년놈들뿐인데, 그중에서도 넌 진짜 쓰레기지. 몸은 제법 좋긴 한데... 그마저도 험하게 굴려대서 헐렁헐렁해져버리고 말이야. 너, 진짜 내가 안 거둬줬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존나 뻔하다 진짜.”
“으, 읏...”
“그리고 너도 자질구레한 일은 전부 사티한테 시켜서 덕분에 편하잖아. 그리고 사티가, 너도 알다시피 힘은 꽤 쎄잖아. 덕분에 쉽게 쉽게 여기까지 왔으면서 왜 그래? 아무튼, 좀 지랄 그만하고 사이좋게 좀 지내라. 너 때문에 사티가 삔또 상해서 돌아간다고 하면 책임질 거야? 네가 사티가 하던 일 전부 할 수 있냐고.”
“씨잉... 그치만, 저년이 맨날 나 존나 더럽다는 듯이 쳐다본단 말이야. 지도 똑같은 사티로스면서ㅡ”
“니 보지에서 냄새나나 보지. 그러게 좀 씻고 다녀. 아무튼, 넌 솔직히 보지도 헐렁하고, 사티보다 약해서 쓸모없거든? 그러니까 네가 잘하는 거나 제대로 하면서 살라고. 응? 제대로 보지나 조여.”
“아, 알았으니까... 나, 나 버리면 안 돼? 응? 알았지, 게스파?”
마트에서 잘리고서, 훌쩍 떠나서 바다나 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중에 마주친 게스파 일당들.
나랑 달리, 헌터라는 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먹고살만하게 지냈던 것 같은, 같은 고아원 출신의 사티로스들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을 때는, 솔직히 별생각이 없었다.
딱히 고아원에서조차도 그리 친한 사이였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몇 안 되는 사티로스였기에 서로 얼굴이랑 이름만 아는 정도의 사이였다.
단지, 이번 일을 도와주면 돈을 준다고 해서 따라왔을 뿐이었으니까.
일자리도 잘려버려서, 더 이상 할 일도 없었고, 오빠에게 돈을 갚기 위해 조금 무리한 탓에 수중에 있던 돈들도 얼마 없던 차에 잘됐다는 심정으로 따라왔었던 곳에서...
잊으려고 했던, 오빠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오빠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티로스의 평판은 사티로스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음탕하고, 음란하고... 절제를 모른다.
지금도, 철퍽철퍽하고 한창 다시 살을 섞으며 섹스하기 시작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저 사티로스들과 같았다.
세간의 평판과 사티로스는 정말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아마, 나도 똑같이 보였겠지?’
나도 사티로스니까.
어쩌면...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휙휙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잊자.
잊어버리자.
애시당초, 나 같은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