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 외전) 나락 (2)
* * *
상냥하고, 착해빠진... 오빠랑 이미 더럽혀져 버린 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다리까지 부러뜨리고, 상처입혔던 자신을 용서해주고, 자기랑 같이 일자리를 구하는 자리에 나와줘서, 신뢰할 건더기라고는 없던 나의 보증인까지 해주었던... 진짜 호구같이, 착해빠진 오빠랑은...
나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해서... 오빠의 보증으로 겨우겨우 얻은 일자리마저 잘려버려서, 다시 민폐나 끼친 나에게는 더더욱.
그러니까 이참에, 나도 헌터나 되어볼까 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저 약해빠졌던 게스파 녀석도 잘만하고 있었으니까...
사티로스 종족 중에서도, 특히 특출나게 강한 편이었던 나라면, 어느 정도는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다.
어차피 헌터쪽에서도 사티로스의 평판은 그대로일 거니까, 아마 솔로로만 활동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일하던 것보단 어쩌면 더 많이 벌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이번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 임시로 게스파의 파티에 들기 위해서 헌터증도 발급받았으니까, 차근차근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ㅡ
“...후우. 다시는, 무슨...”
아무리 이런 나라도, 손님이라면 오빠도 받아주지 않을까하고.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마는 것을, 이런 나라도 손님으로라면 오빠를 다시 봐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다시 접어버렸다.
손님으로 다시 만나면... 그럼 뭐 어쩔라고?
한숨을 내쉬고서,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뒤로한 채로, 주변에 혹시나 좀비들이 있지 않나 경계를 돌러 가려고 했을 때였다.
프흡, 하고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등 뒤로부터 무언가가 데구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 에...? 꺄아아악?! 게, 게스끄윽?!”
곧이어서 들려온 시아의 비명에 다시 뒤로 돌아서 장막을 들췄다.
“무슨 일... 흣?!”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살아있던 게스파의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을.
그리고,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존재가 거기에 있었다.
조금의 기척도 없이.
그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검은 로브로 온몸을 가리고 있는 자가.
가만히 서 있는 채로.
조금 전의 비명의 주인인 시아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고서, 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리며 화염구를 소환하기 위해 영창을 읊으려던 입을, 무언가가 덮어왔다.
검고 끈적끈적한 그것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내 입을 틀어막아 왔다.
“크흡?!”
입을 막혀버린 나에게로 고개를 돌린 그것이 끅, 끅하고 웃더니 말했다.
『판단이 조금 느리구나. 비명이 들려왔다면, 도망을 쳤어야지... 아니면, 혹 이 자 중에서 네 연인이라도 있던 게냐? 끌끌.』
검고 끈적끈적하다고 여겼던 것은, 이제와서 보니까 그저 평범한 손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삐쩍 말라서, 비틀어진 그런 손이었지만.
조금 전의 보았던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생각하면서도, 이내 그 손에서 풀려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끄, 끄흡...”
오히려 더더욱 옥죄어오는 목에 더욱 숨이 막혀왔다.
‘무, 무슨 힘이...’
사티로스의 완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괴력으로 이름 높은 웨어울프에 비하면 미치지 못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할 뿐이었지 결코 약하다고 할 수 없을만큼은 됐다.
그런데...
이렇게 비쩍 말라서, 볼품없는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 끅...!”
퍽, 퍽하고.
발을 휘둘러서 걷어차 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디 보자... 더는 없는 모양이군. 그래도, 사티로스가 넷이라... 수확이 좋군 그래...』
넷이라니...?
죽어버린 게스파를 제외하더라도, 여기에 있는 사티로스만 몇 명이나ㅡ
있는데, 하고 생각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그제서야, 죽은 것이 게스파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으니까.
바로 조금 전까지, 며칠이고 섹스만 하다 지쳐서 나가떨어져 있었던 다른 사티로스들도 전부 목과 몸이 분리된 채로 죽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까.
유일하게 일어서 있느라, 바닥으로 나뒹굴어버린 게스파의 머리랑 다르게, 누워있던 그들의 머리는... 단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잘려져서 놓여있었던 것 뿐이었다.
꿀렁꿀렁...
몸통과 목 사이로 붉은 이음새처럼,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들의 목이 잘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깔끔하게 잘려진 머리들이 보였다.
살아남은 것은ㅡ
그렇게 목이 잘려서, 죽어버린 사티로스들 사이에서 잠들어있는 에우르와 나루... 그리고 바로 조금 전까지 목이 떨어져서 죽어버린 게스파랑 하고 있었던, 시아.
그리고... 나.
모두, 여자인 사티로스들뿐이었다.
『거기에 너는... 분홍 머리로군. 좋아. 아주 좋아, 분홍 머리의 사티로스는 안 그래도 희귀한 사티로스 중에서도 더욱 희귀한 개체인데 운이 좋구나...』
그 말에 떠올린 것은, 이종족 노예상들이었다.
모든 종족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세계 정부였지만, 그것이 마냥 받아들여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세상이 합쳐지기 전까지만 해도 저마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던 이들이다.
그들 중에는, 당연하게도 다른 이종족들을 노예로 부리는 문화가 있던 곳도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곳도 당연히 있었다.
당장, 자신만해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살아갔던 세상은, 사티로스가 귀족으로 군림하고, 다른 모든 종족들이 그런 사티로스에게 봉사하는 세상이었다.
지금의 사티로스들이, 그처럼 날뛰는 이유도 태반은, 그때의 시절을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저질러버린 사고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때는, 사티로스가 지나가다 꼴려서 누굴 덮치든 간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좋아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귀족계층인 사티로스에, 막 나가는 이들이었어도, 일단은 귀족이었다.
그들에게 ‘마음’에 들면, 노예나 다름없던 이들에게 있어서는 당장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세상이었다.
많은 사티로스들이 그때를 잊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버리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이종족들을 마음대로 노예로 부리던 이들이, 권력자들이...
그 당시에도 권력을 지녔기에, 지금도 권력을 누리고 있는 많은 이들이 알음알음, 그것을 찾는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당연히 노예라는 것 자체가, 평등을 부르짖는 세계 정부의 입장에선 불법이기에 잡히면 엄벌에 처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라지는 일 없이, 매달 한두 번씩은 그런 이야기가 뉴스로 나오고는 했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인 사티로스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인 사티로스들만 남긴 이유를.
너무 날뛰다 보니까 평판이 수직으로 하강하다 못해서 나락으로 가버렸지만, 사티로스의 특징은 모두가 미색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색정광이라는 이유로 때때로 비교되고는 하는, 서큐버스 종족에 견줄 만큼.
사티로스들이 서큐버스들과 달리 체구가 작은 편이라서, 외모로만 따졌을 때는 나름 매니악한 취향의 사람들에게서는 서큐버스들보다 오히려 고평가를 받는 모양이고...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그가 노예상같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범죄자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는 좋은 모체가 되겠어... 끌끌, 저번에 잡아온 마녀들도 그렇고, 이번의 사티로스들도 그렇고. 아주 좋구나. 진리조차 깨닫지 못하는, 그 무식하기만한 망할 것들에게 아주 조금은 감사해야겠어... 덕분에 구하기 힘든 희귀한 종족의 암컷들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암컷들을 잔뜩 구할 수 있었으니...』
모, 체...?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핥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자를 보고서, 온몸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그것은 당장 자신만해도, 수없이 느껴봤던... 성욕이나, 욕망에 미친 자의 시선이 아니었다.
자신을, ‘쓸모가 있는 물건’ 혹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도구’로 보는, 그런 시선이었다.
‘노예상이, 아니야.’
그런 것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 더 끔찍한 무언가였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입을 막고 있는 이 손을 뿌리치기 위해서 버둥거렸다.
“읍?! 흡?!”
『거기에 아주 기운차기까지. 건강해 보여서 좋구나. 너라면, 스물 정도는 낳아줄 수 있겠군. 허나 날뛰지 말거라. 그 몸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는 않으니까... 너는 내 아이들의 귀중한 모체가 될 것이니...』
모체라던지, 낳아줄 수 있다든지.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를ㅡ, 로브 밑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그 목소리가 산자의 것에게서 나오는 것처럼은, 도저히 들리지 않았기에 더더욱.
지금도, 입을 틀어막고 있는 이 삐쩍 말라서 가느다랗기만 한 손에서 대체 어떻게 이만한 힘이 나오는지도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팔로 내리치고, 잡아당겨도.
다리로 걷어차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 그럼 가자꾸나. 너희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나의 둥지로 내가 친히 데려다줄 테니까... 무얼... 너희도 금방 그곳이 마음에 들 것이다...』
스르르륵.
이미 기절해버렸는지, 얼굴을 붙들린 채 추욱 늘어져 있던 시아나, 자신의 몸 위에서 살을 섞었던 동료가, 연인이 죽어있는 것조차도 모른 채로 잠들어있는 에우르와 나루의 몸을 덮어오는, 꾸물렁꾸물렁 기어서 뒤덮어가는 검은 것들이 보였다.
슬라임처럼, 부정형으로 된 그것들이 꿀렁꿀렁하고.
하나같이, 전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한테서 뻗어 나오는 것들이.
『끌끌... 이 아이들도... 금방 좋아하게 될 테니, 안심하거라...』
그리고, 그렇게 그것들이 기어나오느라 펄럭이는 로브 밑으로, 볼 수 있었다.
검은 로브 밑으로 보이는ㅡ 이리저리 엉겨 붙은 수많은 조각들을.
조각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어지러울 만큼 조각조각 나뉘어진 살점들이 보였다.
마치, 이제까지 잡아 왔던 좀비들ㅡ
그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크기도, 종족도 다른 여러 존재들의 신체들이 엉기고 설켜서 붙어있고ㅡ 그 사이사이를 지금도 내 입을 틀어막고 있는 이 검은 것들로 이어져 있는 것을.
“우욱...”
데구르르, 하고.
그런 조각들 사이로 보이는, 이미 오래전에 썩어버린 듯한 눈알이 보였다.
이미 문드러지고, 고름이 가득 고여있음에도, 그것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포삭, 하고.
이내 그 썩어버린 눈알을 파먹으며 튀어나온 구더기와 함께, 그 시선이 사라져버렸지만.
시선은, 그것 말고도 잔뜩 있었다.
도르륵, 도르르륵.
그 주변으로 몇 개나 있는 눈알들이 다시금 몸속에서 넘쳐흐르듯이 튀어나왔으니까.
오히려, 그래서 더더욱 구역질이 올라왔다.
곯아 터져버린 눈알을, 손가락만 한 구더기가 파먹고 있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저자가, 도저히 살아있는 자라고는 느껴지지 않아서.
뽀득, 뽀드득하는 소리를 내며 썩어서 누렇게 변해버린 수정체를 흘려대는 눈알을 파먹는 구더기에, 역겨움을 참을 수가 없어서.
하지만, 토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꿀렁, 하고.
이내 자신의 몸에도 검은 것들이 덮쳐왔으니까.
꾸득, 꾸득하고 내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타고서, 내게로 기어오는 것들에 질겁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두려워 하지 말거라. 너를 죽일 생각은 없으니... 너는 다만... 내가 만들어낸... 위대한 비원을 이루기 위한 아이들을 낳을 모체가 될 뿐이다... 오히려, 영광스러운 나의 비원을 이룰 공로자가 될 수 있는 참으로 뜻깊은 기회지 않느냐...? 위대한 진화로 가는 길의... 나의 비원을 이룰,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니...』
얼굴이 뒤덮어가면서 어둠이 찾아왔다.
새까맣게.
새까맣게.
시야가 가려진다.
숨이 막혀서,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그렇게 침전해가는 의식 속에서.
‘오, 빠...’
마지막으로 떠오른 얼굴조차도 억지로 배를 눌려서 토해내지다시피 한, 숨과 함께 새까맣게 변해갔다.
‘수, 숨이...’
『지금은 아이들이 한창 잡아 온 마녀들을 상대하느라 바쁠 테니, 순서는 다음으로 미뤄지겠지만... 음, 금방일 테니 그리 섭섭해하지 말거라. 그 아이들이 원체 왕성해야지... 아마 하루 이틀 뒤면 네 차례가 오겠지... 그 동안은... 괜히 다치지 말고, 얌전하게 잠이나 자고 있으려무나...』
끝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게 되어버리고서, 어떻게든 풀어내기 위해 붙들어 잡고 있던 바싹 마른 팔에서 손이 떨구어졌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차일 걸 알았더라도, 고백이라도 해보는 거였는데.
‘바, 보 같아.’
마지막에서까지, 끝까지 미련을 못 버린 자신을 비웃으면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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