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각성 (4)
* * *
존나게 뛰어다닌 끝에, 사티의 실이 다다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 아...”
씨발, 존나게 깊은 굴이었다.
깊기만 한 게 아니라, 바깥쪽이랑 달리 조금 커진 녀석들도 드글드글 튀어나와서 죄다 조지면서 오느라 존나 힘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찾을 수 있었다.
다치거나 하지 않고, 몸도 멀쩡한 채로 잠들어있는 사티를.
“후우...”
한숨을 내뱉으면서, 몸에 덕지덕지 묻은 검은 체액들을 대충 닦아내며 사티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다시 봐도, 딱히 어디 다친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다.
사티 옆에서 잠들어있는 다른 사티로스들도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꼬라지를 보아하니 그 촉수물 찍는 걸 좋아할 것 같은 변태새끼들에게 사티랑 같이 잡혀온 사티로스들인 모양이었다.
한유진이 말한, 죽은 사티로스들의 경우에는 그럼 전부 남자쪽이었나.
정황상 그런 것 같았다.
사티가 멀쩡하듯, 저 사티로스들도 전부 멀쩡해보였으니까.
다행히...
그 상아탑의 마녀들 누님처럼 험한 꼴을 보기 전이었나보다.
“사티.”
툭, 하고 그런 사티의 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죽은 듯이 잠들어있는 사티를 보다가,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런 사티의 목에 남아있는 자국이 보였다.
무언가로 강하게 목을 졸린 듯한, 그런 자국.
아마 아까 본 그 새끼를 봤을 때, 그 좆같은 촉수일 게 분명했다.
혹시 몰라서, 그런 사티의 옷을 살짝 벗겨봐서 안쪽을 살펴봤다.
몸 쪽에도, 강하게 졸린 듯한 자국이 있었지만 그 외의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기절인가.”
특별히 마법이나 주술 쪽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단순한 기절인 것 같았다.
사티랑 저 사티로스들을 전부 들쳐업고서 냅다 빠져나갈까 하다가, 호아란에게 전에 배운, 부상을 입거나 정신을 잃은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기운을 차리게 하는 술법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는 거였지?”
기를 쪼개서, 그대로 사티의 몸에 불어넣었다.
“으. 으으...”
반응이 있었다.
기를 사티에게 불어넣어서, 기운을 억지로 돌리게 하자 신음을 흘리는 사티를 보고서.
“사티, 사티.”
그대로 어깨를 잡고서, 살짝 흔들어보자 서서히 눈을 뜨는 사티가 보였다.
“...오, 쁘아...?”
쿨럭, 하고 기침을 하며 나를 부르는 사티.
목이 졸리면서, 조금 다친 듯, 새되고 가느린 목소리였지만...
“...그래, 나야.”
그래도, 크게 다치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일단, 몸 좀 추슬러봐.”
좀 더 기를 사티에게 불어넣어 주고서, 다른 사티로스도 상태를 확인했다.
다들 사티랑 마찬가지로 별 탈은 없어 보였다.
아니, 한 명만 빼곤 나머진 전부 사티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 보였다.
아예 저항할 새도 없이 당한 모양이었다.
쟤들한테도 기를 불어넣어서 깨울까 하다가, 그러기엔 기가 좀 모자라서 관뒀다.
그런 내게 사티가 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느냐는 듯한 얼굴로 물어왔다.
“오, 빠가 대체... 여긴... 윽... 어, 어떻게...?”
“어떻게긴. 너 찾으러 왔지.”
“나, 를...?”
왜, 하고 묻는 듯한 사티의 눈동자가 보였다.
연분홍빛의 눈동자에 담긴 오만 감정이 보였다.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꽈르르릉...!
유스티티아가 말한 대로, 차원 결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모양인지 동굴 자체가 울려대기 시작했으니까.
“읏...”
동굴이 흔들리자 휘청거리는 사티를 붙잡고서 말했다.
“...됐고, 일어설 수 있겠어?”
얘네는 그냥 내가 들쳐메기로 하고서 사티에게 묻자, 자신의 몸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까딱이는 사티가 보였다.
“그럼, 일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하니까.”
유스티티아가 여길 다 박살내기 전에 탈출해야 했다.
“어, 어... 윽...”
몸을 일으키려다가, 비틀거리는 사티를 보고서 손을 뻗어서, 그런 사티를 붙잡았다.
“고, 고마워... 오...”
그렇게 말하려던 사티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피해라, 주인이여!
안쪽 깊숙이서, 들려온 암무트의 목소리.
이제까지 삐져있느라, 나한테 말도 걸지 않았던 암무트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미처, 그 목소리에 반응해서 몸을 움직이려고 하기도 전에 퍼억, 하고 있는 힘껏 나를 밀쳐내는 사티가 보였다.
써걱, 하고 그런 나랑 사티의 사이로 촉수가 스쳐 지나갔다.
붉은.
새빨갛게, 붉은 피가 튀었다.
“아.”
촤악, 하고.
날아든 촉수에 크게 베여나간 내 목이 보였다.
단 한 번만으로, 바디 체커의 보호막이고 뭐고 죄다 찢어버리고, 심지어 천호의 갑주마저 찢어 발겨버린 촉수가, 내 목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내 목이 멀쩡히 붙어 있는 이유는, 순전히 목에 차고 다니던 사슬과 나를 밀쳐낸 사티 덕분이었다.
천호의 갑주마저 찢어발긴 촉수가, 사슬까지는 뚫지 못했던 탓에.
사티가 제때 나를 밀쳐낸 덕분에.
내 모가지가 저 촉수들에 찢겨져서 그대로 떨어져 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나를 밀쳐내다가, 그대로 촉수들에게 덮쳐져서 몇 번이나 땅에 나뒹굴은 끝에 널부러진 사티가 보였다.
그런 사티의 몸에서, 꿀렁꿀렁하고 피가 흘러나왔다.
피가.
사티에게 흘러나왔다.
사티가 누워있는 바닥으로, 핏자국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사...”
툭, 하고.
내 발치에, 부러진 사티의 뿔이 떨그럭하고 떨어졌다.
『노, 노오옴...! 너... 너라도... 너라도 죽이고 말겠다...! 분명... 망아의 용 공주에게 너는... 중요한 자이겠지... 끄흡... 내, 내가 죽기 전에... 너라도ㅡ!』
스르륵, 스르르륵하고.
몸을 일으키면서 외치는 놈이 보였다.
분명히 유스티티아에게 붙잡혀있던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건가 하는 생각보다도.
바닥에 쓰러진 사티가 눈에 들어왔다.
스륵, 스르르륵...
그런 사티와 이어진 실이... 점점 가느다랗게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번져나가는 핏물과 함께, 점점 더 가느다랗게ㅡ 금방이라도 끊겨버릴 것처럼 변해가는 실이.
“티...”
『죽어라...!』
“ㅡ나 여기에 강림하노라!”
“호아!”
나에게 다시 날아드는 촉수들을, 내게서 튀어나온 암무트와 호아가 막아서는 것이 보였다.
“주, 주인이여... 피, 피... 끄윽!”
“호아...!”
『나를 방해하지 말라 이 하찮은 것들아ㅡ! 감히... 감히...! 나의 비원을... 나의 비원을...!!』
꽈지지직, 하고 암무트가 촉수에 튕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호아 역시, 그런 암무트와 마찬가지로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튕겨 나가서, 펑하고 터져나가며 역소환되는 것이 보였다.
“주, 주인...!”
프슥, 하고 그대로 벽에 처박힌 암무트가 나를 부르다가ㅡ 꽈직, 하고 내리쳐진 촉수들에 의해, 호아랑 마찬가지로 역소환되는 것도 보였다.
나보다 더 강한 둘이, 저 촉수 괴물한테 채 몇초도 못버티고 쓰러진 거였다.
『죽어라아...!』
내게 날아드는 촉수들.
분명히 다 뒈져가고 있는 꼬라지의 녀석인데도, 순식간에 암무트와 호아를 역소환시켜버린 촉수들을, 내게 휘둘러오는 놈이.
여전히, 쓰러진 사티가 보였다.
“ㅍ... ㅣ... 끄흡...”
입술을 뻐끔대며, 나를 보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ㅡ 살점이 뒤섞인 피를 토하고는, 눈동자에 깃든 빛이 사그라드는 사티가.
촤아악, 하고.
촉수들이 나를 덮쳤다.
사티에게 한눈을 팔아서,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내가 피할 수 없는 속도로 나를 덮쳐온 촉수에.
쁘드득, 쁘드드득!
촉수들에게 뒤덮인 몸이, 찢겨나가며 육편이 날아간다.
그것도 모자라서, 마구 뒤흔드는 촉수들은 내 몸을 순식간에 뭉개버렸다.
『끄, 끄, 끄흐흐흐...!』
순식간에 웨어울프의 재생력으로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나를 보며 광소하는 놈이 보였다.
『나, 나를 우습게 본 대가다! 용 공주여... 끄, 끄흐... 끄흐흐...! 가, 감히... 감히 나를... 나를 우습게 본... 끄우엑...! 크, 끄, 끄그극... 와서... 처참하게 죽어버린 이것의 꼴을 보면... 끅, 너도 후회하겠지... 끄으으...』
검은 피를 토하며, 프직프직 터져나가는 촉수들까지.
딱 봐도 죽어가는 놈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내 머리만 멀쩡하게 냅두고 몸만 씹창낸 이유가, 유스티티아가 보기에 좀 더 좆 같으라고 그런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런 꼴의 나를 유스티티아가 보면 충격이 클 것 같기는 했다.
당사자인 내가 보기에도 존나 끔찍했으니까.
난잡하게 촉수들에 헤집어진 몸뚱아리가, 이리저리 찢기고 털려서 사방팔방으로 내장이고 뭐고 죄다 흩뿌린 상태였으니까.
이건, 글렀네.
거, 아무리 웨어울프라도 잘린 팔다리는 재생 못하지, 우리가 무슨 슬라임도 아니고 이미 잘린 게 재생이 될 리가 없잖수. 잘 잘렸으면... 어떻게 잘 붙이면 붙을지도 모르지만서두. 근데, 인간인 형씨가 왜 그런 걸 묻고 그러오? 혹시...? 거 우리가 무슨 잘못은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좀 봐주쇼, 고용주 형씨.
꽤나 친해졌던, 은빛 늑대단의 단원이자...
알고 보니까 은빛 늑대단 전원이 정말로 에일레야랑 가족 관계였던지라, 에일레야의 친동생이었던 이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난 웨어울프라도, 잘려나간 팔다리나 이미 터져 나가버린 신체들까진 어떻게 재생시키긴 힘들다고.
아마, 그러니까...
온몸이 촉수로 꿰뚫려서 난자되어서, 너덜너덜해져 버린 지금의 나는.
아무리 에일레야에게서 얻은, 웨어울프의 재생능력으로도 어떻게 회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근데 왜.
아직도 멀쩡할까.
툭, 하고.
뜯기고 찢겨서, 천호의 갑주에 겨우 달라 붙어있던 오른 팔마저도 결국 떨어져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데.
왜 아직도.
존나 멀쩡하게.
눈앞에 쓰러져있는 사티가 보이는 걸까.
정작, 촉수에 온몸이 개지랄나버린 나는 멀쩡한데.
저기 쓰러져있는 사티는 어째서.
죽어가고 있는 걸까.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
내가 병신같이 약해서, 이런 일을 조심하라는 릴리스의 말에, 그 지랄을 하면서 수행했었던 주제에, 그런 주제에 등 뒤로 날아오던 저 씹새끼의 촉수를 보지 못해서.
나를 밀쳐낸 사티가, 나 대신에 촉수에 덮쳐져서 저렇게 된 거였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약해서 그런 거였다.
머리가 새하얗게 될 뻔한 것을,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서 붙잡았다.
분노를, 식혔다.
도저히 식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식혔다.
지금 돌아버릴 순 없었다.
지금 돌아버리면 안됐다.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그래도 돌지 않고 어떻게든... 이성을 유지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사티는 살아있었다.
죽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그 사실로, 끊겨버릴려고 했던 이성을 붙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늦는다.
늦어버린다.
사티가 죽어버린다.
힘이, 필요했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저 씹새끼를 조질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지금 내가 가진 힘으로는 부족했다.
촉수가 내게 날아드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다 죽어가는 저 새끼가 휘두르는 촉수를 보고서도, 그걸 피할 수도 없었다.
나보다, 몇이나 위의 힘을 가진 새끼였다.
그런 저 새끼를 죽일 힘이 필요했다.
두근, 두근, 두근...
아직, 저 심장이 뛰고 있을 때ㅡ
지금 당장.
힘이 필요했다.
『무, 무슨... 쿨럭...! 대, 대체 어떻게...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냐...!』
촉수에 난자되어서 온몸이 죄다 찢겨져나간 주제에...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걸, 녀석이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 을, 쎄.”
나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알 바 아니었다.
“넌, 죽, 인다.”
죽여버린다.
"반, 드시... 죽인다."
사티가 죽기 전에, 죽인다.
내 몸을 꿰뚫고 있는 촉수를 ‘잡았다’.
이미 내 몸을 헤집고 지나간 촉수들에게 잘려 나가서 바닥에 널부러진 오른팔 대신에, 내 몸을 꿰뚫은 촉수에 너덜너덜해져버린 왼팔 대신에.
너덜너덜해진 몸에서 솟구친 꼬리들이, 휘어감기듯이 내 몸을 꿰뚫은 촉수들을 붙잡았다.
『이, 이건...?! 이, 이 노오옴...!』
검게, 넘실거리는 꼬리들에 휘어감긴 촉수들이 요동치며 그런 나를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으, 으오오오오....?!』
콰지지직...!
내 꼬리가 붙들어 잡고 있던 촉수가, 그런 꼬리에서 솟구친 독침들에 단단히 고정됐으니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죽인다고, 했잖아."
근데 어딜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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