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 첫 아이들 (5)
* * *
“응, 알겠어. 금방 갈 테니까 릴리아나한테 전해줘.”
네, 그럼 여왕님께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이시어.
뚝, 하고 연결이 끊어진 아티펙트를 다시 뒷주머니에 찔러넣었다.
“혹시...?”
그런 나를 보는 카루라와 사티.
카루라야 이미 알고 있는 거고, 사티도 사전에 이야기를 들은 거였다.
더욱이, 딱히 비밀로 할 일도 아니라서 말했다.
“태어났대.”
릴리아나가 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카루라와 사티에게 전해줬다.
6974호로부터 전해 받은 소식에 곧장 아내들을 불렀다.
다들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바빴지만, 저번 일로 따로 챙겨둔 아티펙트를 통해 소식을 전하자마자 금방 모두 모였다.
그리고, 6974호에게 전해 받은 소식을 모두에게도 알려줬다.
“...그래, 벌써 다 낳았다고?”
“응, 그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가... 오늘 아침에 다 끝났다더라.”
첫 출산이었던 릴리아나여서인지 이틀에 걸친 난산이었다는 모양인데 알려주질 않아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야... 내가 6974호에게 애가 태어나면 알려달라고 말하긴 했는데.
그걸 정말로 애가 태어나고서야 알려줄 건 또 뭔가 싶었다.
물론 막상 릴리아나가 아이를 낳는 중에 내가 들이닥쳐봤자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긴 한데.
몰랐다고는 해도, 릴리아나가 아이를 낳느라 고생하는 동안 사티의 뒷보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좀 많이 미안했다.
뭐, 어쨌든 간에...
릴리아나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잠깐 꿀벌 왕국에 다녀오겠다고 아내들에게 말했다.
이미 얘기를 해뒀던 일이라서 그런지 최근 들어서는 내가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아내들도 모두 순순히 허락해줬다.
기본적으로 릴리아나는, 내 아내...
그러니까 모두랑 같은 취급이기도 했기도 하고, 서로 이것저것 연락을 나누고 그랬던 것 같았으니까.
얼렁뚱땅 넘어간 편이긴 했지만, 릴리아나의 남편...
그러니까 꿀벌 왕국의 국서가 되는 것을 인정했을 당시에는 카르미나나 카루라는 만나지도 않았고, 당시에는 릴리스나 호아란이나 유스티티아 모두 내 양모였으니까 따지고 보면, 내 첫 아내이기도 한 것이 릴리아나였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도 돈을 받은 만큼 디스펜서로서 제대로 일하기로 한 거나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도 내 아이들이라고 인정했던 것이지, 아내니 뭐니 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모두를 아내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린 것에 가깝긴 했다.
아무튼간에 릴리아나도 내 아내인만큼, 아이를 낳은 릴리아나를 남편인 내가 찾아가는 것을 말리지는 못했다.
단지, 나 혼자서 꿀벌 왕국으로 가는 건 역시 거부당했다.
내가 어딜 나가기만 하면 사건에 휘둘리는, 재수가 오지게 없는 새끼란걸 아내들도 이젠 완전히 인정한 모양이었다.
릴리스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마주친 피나 빨아대는 모기년을 시작으로, 동물원 테러에 페도 해골... 거기에 이번 촉수 괴물이랑 찍은 촉수물까지.
이제와선 나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체질이라고 해야 할지, 운명이라고 할지를 느끼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세상이 억까라도 하듯이 지랄이 나는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순순히 그런 아내들의 말을 듣기로 했다.
덕분에, 최소한 한 명은 남아야 하는 정화의 일을 도맡기로 한 호아란이랑 아티펙트의 수리나 결계 등의 일로 남아있기로 한 유스티티아, 정화를 전담하느라 빠질 호아란 대신에 식사를 전담하게 된 카루라와 그런 카루라를 도울 사티를 제외하고서, 릴리스랑 카르미나가 둘이서 나를 따라오기로 했다.
릴리스는 스물둘 영웅 중에서도 일신의 무력으로는 자타공인 최강이고 카르미나는 고작 수만 명도 남지 않았던 망해버린 세상이었다고 해도 한 세상의 주신이자 현인신이었던 강자였다.
단순히 병문안하러 릴리아나를 보러 가는 것치고는 과잉 전력이었다.
그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릴리스랑 카르미나, 둘이서만 꿀벌 왕국을 초토화할 수 있을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하여튼, 그 둘이라면 저번의 촉수 씹새끼 같은 새끼가 서너 명이 튀어나와도 문제는 없을 거다.
그때도 부득이하게 유스티티아랑 떨어진 탓에 일이 벌어졌던 건데, 둘이서 같이 나를 따라오는 이상 그럴 일도 없을 테고.
아무튼, 그렇게 정해졌고...
“그럼,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남아있기로 한 아내들과 사티를 뒤로하고서 유스티티아가 열어준 꿀벌 왕국 직행으로 연결된 공간 전이문을 건넜다.
“음.”
“왜?”
“아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서.”
공간 전이문을 건넜는데도 어지럽거나 하지 않았다.
꽤 거리가 됐을 터라, ‘영웅’의 칭호를 받으러 세계 정부의 중앙으로 향했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어지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에 의아해하자 릴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 네가 이제 네 그릇이 이 정도로는 흔들릴 정도는 아니니까 그렇지.”
“그런 거야?”
“그래, 아직 많이 멀었지만... 너도 이제 방법만 배우면 공간 전이문도 직접 열 수 있을걸?”
아직 짧은 거리밖에는 못 하겠지만, 하고 말하는 릴리스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벌써 그 정도는 됐구나.
호기심에 공간 전이문이나, 공간 이동 관련의 주술에 대해 들었을 때 좌표라던지 술식이라던지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직접 전이문을 열고 닫는 건 꿈도 못 꿨고, 애당초 그럴 힘도 없었는데 적어도 지금은 힘만큼은 나 스스로 공간 전이문을 열 수 있을 정도가 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자지 마법은 그냥 본 것만으로도 이해했는데, 왜 다른 마법들은 그러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아예 별개의 마법으로 개조하기까지 한 걸 보면, 분명히 드래곤의 종족 능력인... 마법에 대한 적성도 내게 이어진 게 맞기는 한데.
“그보다, 저거나 빨리 어떻게든 하지 그래?”
“응, 뭐... 저건 내가 하지 말하고 해도 듣지 않더라고.”
릴리스가 말한 저거를 보며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갑옷 차림의 웨어허니비들이 레드 카펫을 좌우로 정렬한 채 창을 들고 있고, 그 주위로 메이드복 차림의 웨어허니비들이 잔뜩 도열해있는, 남이 보기엔 존나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그런 꿀벌 로드.
나는 퇴원할 때 이미 한 번 겪어봐서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릴리스는 처음이었지 아마.
스물둘의 영웅인 릴리스조차도 부담스럽게 느낄만한 웨어허니비들의 환대에 쓴웃음을 짓고 있자니 카르미나가 말했다.
“무얼, 아주 갸륵하지 않더냐! 전부 영웅을 환영하기에 이러는 것이니 영웅은 기뻐하는 것이 옳으니라!”
나르메르 왕국에서, ‘구국의 영웅’인 나에게 국가적으로 축제를 벌여가면서 대접했던 카르미나야 그런 웨어허니비들의 감성을 조금 이해한 모양인데.
나는 별로 이해가 안 갔으니까 그냥 그러려니하기로 했다.
아무튼, 메이드복 차림의 웨어허니비들 중에 섞여 있는, 이제는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웨어허니비들 가운데에서도 얼굴이 익숙해진 6974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환영은 이제 충분하니까 고개 들어.”
“네, 왕이시어.”
내 말에 스윽, 고개를 들어 올린 6974호.
그런 6974호가 치마 끝자락을 잡아올리며 재차 우리들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왕이시어, 그리고 릴리스님, 카르미나님도 저희 왕국에 방문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릴리아나는 좀 어때?”
릴리스의 말에 6974호가 답했다.
“무사히 아이들을 낳으시고 지금은 침실에서 휴식하며 왕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니 다행이었다.
나보다 먼저 릴리아나의 안부를 물은 릴리스라서, 그 대신에 나는 다른 걸 물어봤다.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장차 왕국의 번영을 위해, 맡은 역할을 다하는 웨어허니비들로 자라겠지요.”
오늘 아침에 태어났다니까, 이제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된 갓난애들한테 왕국의 번영이니 맡은 역할이니 하는 6974호의 말에 조금 얼떨떨했지만, 웨어허니비들이 원래 그런 종족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원래 이런 건 이해가 안 되더라도 그냥 그런 거라고 납득하는 편이 더 빨랐다.
웨어허니비에겐 저게 당연한 건데 인간인 내가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내 아이들이라고 한들, 결국은 웨어허니비인 아이들에게 ‘아버지’라는 걸로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도 그랬다.
릴리아나가 나를 따르고, 릴리아나의 종족 능력... 웨어허니비 여왕종의 능력을 나 역시 갖고 있는 이상, 웨어허니비들에게 ‘명령’할 수 있었지만, 그거 가지고 웨어허니비들을 통째로 주무르는 것도 그렇고.
종족의 차이나, 문화 차이는 이해해줘야지.
이해할 도리가 없는 쓰레기 같은 것이 아닌 이상은.
어쨌든.
“그럼 안내해줘.”
“네, 그럼 여왕님께 모시겠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는데, 우리를 호위하듯이 따르는 웨어허니비들의 보호를 받으며 곧장 릴리아나가 있는 궁전으로 향했다.
“여왕님, 왕께서 오셨습니다.”
똑똑, 하고 릴리아나가 쉬고 있다는 침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말하는 6974호의 말에 안쪽에서, 약간 힘이 없는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들어오도록 하세요.”
“네, 그럼...”
6974호의 눈짓에, 아마 6974호와 마찬가지로 릴리아나의 최측근들인, 여왕의 기사들로 보이는 웨어허니비들이 침실 문을 열어줬다.
“왕이시어...! 이렇게 본 여왕을 보러 와주셔서 정말로 황공하옵니다.”
살짝 초췌해 보이는 얼굴의 릴리아나가 나를 보고는 활짝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지친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듯 피로해 보였지만, 나를 보자마자 무척이나 기쁜 듯이 미소 짓는 릴리아나.
그런 릴리아나,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휘청거리는 것을 릴리아나의 곁에 있던 메이드복 차림의 웨어허니비들이 부축하는 것이 보였다.
“아직 많이 힘들 텐데, 그냥 누워있어.”
“죄송합니다. 왕이시어...”
“죄송하긴 뭘. 그보다, 아이들은?”
내 말에 후후, 하고 웃으면서 릴리아나가 말했다.
“모두 무사히 태어났답니다. 본 여왕에게 왕께서 내리신 아기씨로... 무척이나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났지요. 앞으로... 저희 왕국의 번영을 일으킬, 훌륭한 아이들이요.”
건강하다니 다행인데 이쪽도 6974호랑 비슷한 말을 하네.
기본적으로 웨어허니비같은 군체형의 종족은 개인보다는 군체, 집단을 중시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저기, 릴리아나. 그...”
왠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 그런 나를 보던 릴리아나가 이내 눈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아이들을 보고 싶으신 거군요... 6974호? 보모들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오도록 하세요.”
“네, 여왕님.”
그렇게 말한 6974호가 물러가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6974호와 한 무리의 웨어허니비들이 아이들을 안고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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