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첫 아이들 (8)
* * *
“영웅이여, 왜 그러는가?”
“아니, 그냥 좀.”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카르미나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런 내 말에 그럼 어서 만져보거라 하는 카르미나의 재촉에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쁘아~”
내가 아버지인 걸 알아본 건지, 아니면 그냥 웃음이 헤픈 건지 나를 보며 빵싯거리며 웃는 아이의 모습에 멈칫했다.
“...정말로 만져도 되나? 우는 거 아니겠지?”
“무얼, 여와 릴리스의 품에 안겨도 울지 않지 않느냐. 다들 무척이나 얌전하느니라!”
그건 그런데.
“빠아!”
“거기에 보거라, 영웅이여. 이 아이도 그대가 만져줬으면 하는 것 같구나!”
“그런가?”
“영웅을 보며 이렇게 활짝 웃고 있지 않느냐?”
얘 그냥 잘 웃는 거 같은데.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해를 끼칠 일이 없다고 굳게 신뢰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마 웨어허니비들에게 있어서 여왕 다음으로 중요시 여겨지고 보호받는 아이들인 만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웨어허니비들에게 있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왕이 가장 중요시 여겨지듯이, 그 아이 자체도 엄청나게 중요시 여겨지는 법이었다.
보모의 품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릴리스나 카르미나에게 안겨져도 얌전히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러니, 어서 만져보거라. 영웅의, 그대의 아이들이지 않느냐?”
“...그래, 그렇지.”
카르미나의 재촉에 마지못해서 손을 뻗어서 아이의 뺨을 만져봤다.
“빠?”
정말로 말랑말랑하네.
따듯하기도 하고.
아이 특유의 조금은 뜨거운 체온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빠야~”
내가 내민 손으로 뺨을 쪼물락거려도 울거나 하지 않고 빵싯거리는 아이.
이렇게 경계심이 없어서야 이 모진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이 됐다.
이 아이가 2년도 안 돼서 무럭무럭 자라나서 보았을 세상이, 이 아이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내가 이런 걸 걱정하는 날이 다 오는구나.
아직도, 내가 아버지라는 실감은 가질 않았다.
그런데 얘가 내 아이라는 사실만큼은 실감은 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엄청나게 걱정됐다.
이런 세상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참 혼란스러운 세상이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것 같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었다.
예전에는 좆같아도, 어떻게든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여겼는데, 최근에 가서야 별의별 좆같은 새끼들이 뒤에서 암약하고 있는데, 꼬리도 잘 숨겨대서 좀처럼 잡히지도 않는, 그런 세상이란 것도 알았고.
혹시나 그런 일에 이 아이들이 휘말리거나 하지는 않을까 엄청나게 걱정됐다.
이게...
부성애인지 뭔지 하는 그건가.
“아...”
어쩐지 시야가 희뿌옇게 흐려졌다.
그리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 영웅이여?”
갑자기 질질 짜는 나를 보고서 당황한 카르미나의 얼굴이 보였다.
그런 카르미나를 보고서 어떻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멈춰보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아니, 넌 또 왜 갑자기 울고 난리야?”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조심스러워했던 주제에, 지금은 품에 꼭하고 아이를 안은 채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그러게.”
그런 릴리스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그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아이의 뺨을 적셨다.
“빠, 빠빠.”
역시 얘는 그냥 웃음이 헤픈 게 맞았다.
단지...
뚝, 뚝 얼굴 위로 떨어지는 내 눈물에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같이 꽉하고 움켜쥐고 있던 카르미나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는, 손을 뻗은 아이가, 내 뺨을 찰싹찰싹 때려오는 것이 보였다.
“빠야ㅡ”
찰싹찰싹, 그 정도로는 아버지인 내 뺨에 기스도 안 난다.
엄마인 릴리아나의 젖을 먹고 무럭무럭 큰 뒤에는 몰라도.
“......”
꼬옥, 하고.
품에 아이를 안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강해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는 거였다.
아내들과 나 사이의 아이들을 잔뜩 보기 위해서라도.
또... 그렇게 태어날 내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릴리스, 카르미나. 할 말이 있는데.”
아내들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던, 아니면 벌을 받게 되던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넌, 진짜... 후우...”
‘신성 조무사’에 대한 걸 들려주자 릴리스가 개때리고 싶네, 진짜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지어 보인 표정이 이 새낀 원래 이랬지하는 표정이어서 조금 상처받았다.
릴리스의, 나에 대한 애정이나 사랑은 몰라도 분명 신뢰도는 한층 내려간 것이 느껴졌다.
아직 애도 안 낳았는데 애 키우는 기분이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니 확실했다.
“근데 나 얼마 전까진 아들...”
“시끄러워.”
애 키우는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몇 달 전만해도 네 아들이 맞았다고 말하려다가 째릿하고 노려보는 릴리스를 보고서 입을 다물었다.
음...
오늘의 순서 정하기는 젖꼭지를 애무받는 와중에 누가 절정하지 않고 더 오래 버티나로 하기로 정했는데, 릴리스 때는 오랜만에 마망이라고 불러볼까 싶었다.
한 대 쥐어박힐 것은 분명하겠지만.
“그래서... 그 힘, ‘신성 조무사’라는 것은 지금은 쓰지 못하는 것이 맞느냐, 영웅이여?”
“응, 일단은.”
그때랑 같은 시도를 몇 번 했었지만, 아무리 같은 방법으로 해봐도 ‘신성 조무사’든 ‘신성’이든 되지 않았다.
그냥 힘만 쪽 빠지고 말았지.
그런 내 말에, ‘아, 저번의 그거 말인가...’ 하고 중얼거리는 카르미나가 보였다.
‘신성 조무사’를 시험해보려다가 힘이 쭉 빠져버리니까, 당연하게도 내 바디체커와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반지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내 상태를 체크할 수 있던 아내들한테 들켜서 내가 한 소리 들었던 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사티를 간호한답시고 처박혀 있던 내가 갑자기 힘이 쪽 빠져서ㅡ 그러니까 그날 최대 사정횟수가 절반이 넘게 줄어들어버리니까 들이닥쳤던 아내들이 떠올랐다.
그때도 릴리스가 대체 어따 싸지르고 왔냐고 화냈었지.
설마, 하고 잠들어 있던 사티의 속옷을 벗기려고 들었을 땐 존나 식겁했었다.
아무리 나라도 잠들어서 깨지도 못하고 있는 환자한테 박지는 않는다고 말해서 어떻게든 말릴 수 있었지만.
더욱이 증거라고 해야할까, 거의 곧바로 들이닥쳤던 아내들이었는데 전혀 그런 ‘냄새’가 풍기지 않았으니까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고.
아무튼, 내 말에 곰곰이 고민하던 카르미나가 입을 열었다.
“일단... 여가 알고 있는 ‘신성’을 생각해보면, 영웅이 사용했다던 그 ‘신성 조무사’인가 뭔가하는 것은 ‘신성’이 아닌 별개의 힘일 것이니라.”
“그래?”
“음, 자고로 신의 힘... ‘신성’이란 신앙에서 비롯되는 힘이니 말이다. 신앙을 받고, 공양을 받는 것을 통해서 그 힘을 키우고 다룰 수 있노라. 하지만 그것도 마땅히 그럴 그릇이 있는 뒤에나 그런 것이지, 그릇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아무리 신앙을 받더라도, 결코 ‘신성’을 다룰 수 없느니라. 설령 임시로 빌린 ‘신성’을 쓸 수 있다곤 해도, 담아낼 그릇이 없는 한 금방 흩어지고. 그러는 과정에서 필멸자의 육신을 쪼개고 부술 뿐이니.”
이미 한 번 그런 경험을 했지 않느냐는 카르미나의 말에 암무트의 ‘신성’을 빌려서 다뤘을 때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때 뒤질 뻔하긴 했었다.
딸리는 힘을 어떻게든 메꾸려고 과다복용한 폭주제 때문에 내 몸이 씹창난 것이 큰 이유기도 했지만, 내 몸으론 감당하기 힘든 ‘신성’ 때문에라도 그랬다.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신성 조무사’가 ‘신성’이라고 보긴 좀 달랐기도 하고, 전직 ‘현인신’이었던 전문가인 카르미나가 아니라고 하니까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릴리스가 말했다.
“꼭 그런 것도 아니야.”
“응?”
“굳이 신앙이란 걸 받아서만 신이 되고, 신성을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카르미나가 말한 그릇이란 개념이 내가 아는 그거랑 같은 거라면, 일단 그쪽은 동일하지만... 꼭 그 그릇이란 것이 신앙을 받아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걸 릴리스가 어떻게 아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튼 그렇다니까 물어봤다.
“그럼?”
“나처럼... 처음부터 신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 태어날 때부터 그릇이 존재하는 초월종 같은 것도 있다는 뜻이야.”
뎃?
아니, 잠깐만.
“...릴리스, 너 신이였어?”
“아니, 그건 아니야. 그게 싫어서, 이런 걸 달고 있는 거니까.”
릴리스가, 스스로의 힘을 봉인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장치 중 하나인 목의 초커를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아직 나는 딱히 '신'이라고 부를만한 존재는 아니야. 앞으로도 될 생각도 없고."
내가 ‘신성 조무사’를 숨기고 있던 것보다 더 커다란 릴리스의 커밍아웃에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카르미나는 역시 그랬구나하고 납득한 표정이었다.
“...카르미나? 너는 알고 있었어?”
설마 나만 몰랐던 건가 싶었는데, 카르미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노라. 릴리스는 여가 살면서 보아왔던 자 중에서 그 어떤 왕들과 영웅들보다도 강했으니. 그러니 내심 그러지 않을까 생각은 했도다.”
카르미나네 차원의 세상에서 왕들은, 나르메르 왕가와 비슷한 꼴이었다.
하나같이 신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존재들.
카르미나네 세상의 신들이 인간 박이었다기보다는, 그편이 신들에게 있어선 인간들을 좀 더 쉽게 부려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보는 편이 좋았다.
신의 핏줄을 이어받아서, 다른 인간들과 비교해서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고... 또 '신의 혈통'이란 것을 통해서 인간 세계에선 막대한 권력을 누리며 신들에게는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는 왕족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신들이 보기엔 아주 좋은 도구였을 테니까.
인간들에게는 절대적인 권력자인 반면, 신들에겐 써먹기 좋은 노예들.
그것이 카르미나의 세상에서의, 왕족들이었다.
비탄 어쩌고가 인신 공양을 통해서 힘을 불려 먹던 씹새끼였던 만큼, 안정적으로 공양을 제공할 수 있는, 또 괜히 지네끼리 다퉈서 기껏 잡아먹어야 할 먹이가 줄어드는 일도 줄일 수 있게 해주는 왕족들은 무척이나 쓸모가 많았을 거다.
그 체제로 수천 년이 넘도록 이어졌으니까, 신들의 계획은 확실히 성공적이기도 했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비탄 어쩌고가 그런 왕족들조차도 제물로 바치라며 강짜를 부리지만 않았어도, 아마 계속해서 그런 체제가 유지되지 않았을까.
카르미나는 그러라 치고 다른 왕족들이 일제히 신들에게 항거했던 이유는 당장 자기들 목숨도 위협받아서였을 테니까.
나르메르 왕국이 들고 일어섰던 이유 중 하나도, 카르미나의 아버지가... 카르미나를 공양으로 바치라는 신들의 말에 거역하면서였고.
아무튼, 왕들부터 그런 세상이다 보니까 알음알음 자연스레 그 밑으로도 ‘신’의 피가 섞이긴 했다.
과거, 딱히 비탄 어쩌고가 지배하는 신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ㅡ 반대로 비탄 어쩌고랑 신들이 다투던 시절도 있었던 모양이고.
그 시절에 생겨나버린, 피가 섞여버린 일족들도 많았다.
그래서, 카르미나의 세상에는 온갖 신들의 피가 섞인 반신들과 영웅들이 많았고.
결국 그 반신들과 영웅들의 손에 비탄 어쩌고의 목이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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