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303화 (303/523)

〈 303화 〉 외전) 천마

* * *

꿈이군.

이것이 꿈이란 것을 알아차린 계기는 실로 간단했다.

“ㅡ언니”

아직 어린, 앳된 티가 나는 소녀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ㅡㅡ줘...”

제 손으로 목을 졸라 죽였던, 유일했던 혈육이 아직 살아서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하.”

헛웃음을 흘렸다.

꿈틀거리며, 몸을 버둥거리는 감촉이 양손으로부터 전해져왔다.

꿈이라.

“오랜만이구나, 네 얼굴을 보는 것도.”

그때 너는 그런 옷을 입고 있었던가.

그때, 너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세월에 흘러 흐릿해진 기억은 다른 기억이 덧대여져 살을 더했기에 지금 내려다보는 여동생의 얼굴은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너는 이렇게 생겼던가.

흐릿하게 남아있는 여동생의 얼굴에는, 언뜻 내 얼굴의 모습도 비쳐 보였다.

우리 둘은 서로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더랬지.

너는 애교가 많아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었고, 나 역시 그런 너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흡... 으극... 끅...”

버둥거림이 약해져 간다.

한편으론 더욱 거세져 갔다.

졸라 드는 목에, 힘이 빠져나가는 한편 더욱 강해져가는 생존 욕구는, 도리어 가냘픈 버둥거림에 독기를 품게 했다.

“그래그래. 그땐... 아직 너무 약했지.”

그래서 많은 상처가 났다.

버둥거리는 네가 내 손등을, 팔목을, 팔을 손톱으로 할퀴었기에 그랬다.

너무도 강하게 할퀴어서 제 손톱이 들려져 뽑혀나감에도 너는 그렇게 했다.

주르륵.

피가 흘렀다.

위로 들려져 피가 흐르는 네 손가락만이 아니라.

그렇게 들리기 전의 네 손톱이 내 살가죽을 갈랐기에 난 피였다.

흐르는 피가 내 팔을, 내 손에 목이 졸리는 네 얼굴을 적셔갔다.

“피를 흘려본 것도 오랜만이군.”

고작 손톱에 살가죽이 찢겨 피를 흘려본 것은... 오랜만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정말로.”

정말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잊지 않으려고 했던 네 얼굴조차 흐릿해져 갈 만큼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구나.”

네 손에 피를 흘린 이후로 얼마나 많은 밤이 지나갔는지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래 그때 이후로.

나는 고작 손톱 따위로는 상처를 입지 않게 되었으니.

당시에는 호신강기고 뭐고 쓸 수 없었고, 그저 여린 피부를 가진... 너와 마찬가지로 어리디 어린 여아였을 뿐인 나는 피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그러면서도 네 목을 계속 졸랐다.

“ㅡㅡ언니.”

“미안하다.”

나지막하게, 그렇게 사과했다.

꿈인 것을 알면서도 그러했다.

이미 이 아이가 죽어서 없음을 알면서도 그러했다.

고통으로 얼룩진 여동생의 얼굴에,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가 없었다.

프, 흐...

너는 숨을 뱉었다.

그때처럼.

마지막 숨이었다.

그리고 그때, 너는 내게 말했다.

“ㅡ죽어줘.”

그때, 너는 울면서 내게 그리 소원했었지.

나 역시, 그런 너를 울면서 목을 졸랐고.

한참을.

한참을 네가 죽기까지 계속해서.

오랫동안 그렇게 너를 죽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때, 한 번에 네 목을 부러뜨려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했다.”

뿌걱...!

아주 작게, 손가락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소녀는... 내 혈육의 모습을 한 꿈속의 소녀는 목이 부러졌다.

당시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지금은 할 수 있었다.

어찌하면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당시의 어리디 어린... 괴한들에게 납치되어온 뭣도 모르던 소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여동생과 함께 납치되었던 소녀는.

그 끝에서, 제 손으로 여동생을 죽였던 소녀는 이제 없었다.

"......"

몸을 일으켜 세웠다.

힘없이 허물어져 가는 여동생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림자들이 뛰쳐나와서, 내 앞에 엎드렸다.

그때처럼.

내가 내 손으로 목을 조른 혈육이 천천히 고통 속에서 죽어가다... 결국 죽었을 때와 똑같이.

“천마재림!”

“만마앙복!”

나와 너를 납치했던 이들이,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서 너를 죽이고 말았던 내 앞에 엎드렸다.

“오오. 마침내. 마침내...”

그들 중 하나가, 기듯이 내게 다가온 초로한 노인이 바닥을 더듬듯 손을 움직여 내 발을 집더니 이내 그런 내 발등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봤다.

노인은 눈이 없었다.

그 대신에 차오르는 고름만이, 비어 있는 눈두덩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노인에게서 났던 비릿한 썩은 내는, 가득 들어찬 고름으로 제 살을 썩히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모든 마의 주인이시여.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노인이 말했다.

“하늘의 마귀시여, 우리들의 소망을 들어주소서.”

노인과 함께 내 앞에 엎드렸던 이들이 말했다.

“천마시여.”

그들이 내게 소원했다.

그들이 내게 소원했다.

“바라건대. 우리들의 정점이 되소서.”

강하게.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되어달라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모든 마의 주인으로서.

무의 정점을 이루어...

“바라건대...”

마침내 자신들의 숙원을 이뤄달라고.

아직 어렸던 나에게 소원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그리고 제 손으로 그들 모두가 자결했다.

누군가는 제 손에 강기를 둘러 목을 잡아 뜯었고.

또 누군가는 칼로 단숨에 제 목젖을 따냈다.

또 누군가는 스스로 땅에 머리를 찧어 절명했다.

또 다시 피가 흘렀다.

“이건... 다시봐도 끔찍하군.”

광신과 증오.

저들의 삶을 지탱하던 것들은, 또 저들의 삶을 앗아갔다.

단지, 바로 조금 전에 제 손으로 제 혈육을 죽여버리고 만 소녀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서 그렇게 했다.

“무엇이 너희가 그토록 증오를 품게 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잘은 모르겠다.”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무척이나 적었다.

그들이 천마 신교라는 것을 믿고 있던 이들이었다는 것과, 또 그들이 탄압으로부터 도망친 도망자였다는 것, 또 그들이 나와 여동생을 포함한 많은 아이들을 납치한 이들이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한참을 나중에 가서야 알아본, 그들에 대한 것들은 너무 낡아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뒤였으니 도리가 없었다.

제 손으로 비어버린 두 눈두덩이에 손을 집어넣고 죽은 노인을 내려다봤다.

“흠.”

다만, 너희 모두가 그것에 모든 것을 내걸었을 만큼 증오했음만은 이해했다.

이것이, 단순한 동조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들에게 가엾음을 느끼고 마는 것은, 그들의 증오의 근원을 모르되, 그것들이 내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래.

나의 근원은 저들이었다.

나는 저들 모두였다.

오오오오오...

곡성이 들려왔다.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비명을 지르는 듯한 그런 소리가.

“시작했나.”

100명의 아직 어린... 때묻지 않은 소년 소녀들.

언젠가는 이름을 떨쳤을지도 모르는, 하나같이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아이들.

나를 포함한 모두는 저들에게 납치되어와서 어느 한 숲에서 서로를 죽고 죽였다.

죽이지 않으면 제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받아서, 자신에게 겨누어진 칼날에 겁에 질려서, 단지 살고 싶어서, 어미와 아비가 보고 싶어서, 죽고 싶지 않아서, 어른이 되고 싶어서, 사랑하는 이를 보고 싶어서.

저마다 다른 이유였다.

하지만 저마다 같은 이유였다.

살고자.

살아가고자.

서로가 서로 제 목숨을 이어가고자 죽고 죽였다.

그리고.

저 날에 나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여동생에게 배를 찔렸다.

함께, 어떻게든 이들에게서 살아남아서 함께 도망치자고 약속했던 여동생에게.

제 혈육에게 배를 찔렸다.

“음.”

확실히, 이 꿈속의 나도 그러했다.

울컥울컥...

작은 단검이 박혀있는 배에서부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썩 좋지 않은 위치였다.

“아팠었지.”

살이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것은 그보다 더 아팠다.

사랑하던 혈육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이 그보다 더 아팠다.

그래서.

나는 그런 여동생의 목을 졸랐다...

그런 이야기였다.

실로 불행한 이야기.

자매가 서로 뛰어난 무재를 지녔었기에 저들의 눈에 띄었고 서로를 살육하고 말아버린.

삼류 잡소설에도 이르지 못할 그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

내 발치 앞까지 기어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저들은 광신자들이었다.

동시에 복수자였고ㅡ

또 동시에 핍박받은 자들이었다.

내쫓기고 내쫓겨서, 증오만으로 살아 남아있던... 천마신교라는 얼토당토않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던, 살아남았기에 강했던 100명의 고수들도 이 날 모두 죽었다.

그리고.

"끔찍하군."

피들이 내게로 모여들었다.

그날 그때와 같이.

죽어간 아이들과 눈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고수들의 혈육이 녹아내려서, 그래서 핏물이 되어 내게 흘러오는 광경은 다시 보아도 끔찍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녹아내려, 핏물로 퍼져버린 여동생의... 백골만이 남아버린 여동생의 모습을 바라봤다.

비단 여동생만이 아니었다.

열흘에 걸쳐서 서로 죽고 죽인 아이들의 몸 역시,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녹아내려 핏물이 되어 내게로 오고 있었다.

또...

­숭앙받으소서.

­우리들의 소원을 이루소서.

­마귀여.

­만마의 지배자시여.

귀곡성 사이로, 죽어간 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어버린 백 명의 순수한 그릇과 증오만으로 한 가닥 실마리만을 맹신하며 목숨을 내놓았던 이들의 내공이 전부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지금 생각해도, 참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광경이었다.

이런 것이 가능하리라고, 저들은 어찌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걸까.

아니면...

이것만을 믿어야 할 만큼 모두가 증오스러웠던가.

뼈가 산산이 부러지고, 녹아서 흐물흐물해졌다가 다시 굳어 맞춰진다.

근육이 뒤틀리고, 하나하나 낱실처럼 흩어졌다가 뭉치고 다시 만들어진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한들, 아직 어린 여아였을 뿐인 내 몸에 가득하게 내공으로 들어찼다.

오직, 그들이 소원했던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 내 몸이 다시금 태어났다.

그래.

이 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인간을 고독으로 삼는 끔찍하고, 이뤄질 수도 없는 터무니없는 의식의 제물로 바쳐져서, 다른 모든 제물을 삼키고 한 번 죽어 다시 태어난 것이다.

여동생과 함께 나들이를 나가, 자그만 만두를 사서 먹는 것이 인생에 가장 행복한 것으로만 알고 있던 소녀는 그 날에 죽었다.

그 대신에.

살육과 광신으로 이루어진 핏물을 뒤집어쓴 마귀가 태어나버렸다.

“...지루하구나.”

흐릿해져가던 동생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기뻤지만, 그렇다고 계속 꿈을 꾸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녹아내렸다가, 핏물 속에서 다시 엉키고 설키며 생겨나는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을 움켜쥐었다.

주먹.

가장 처음.

그 날 태어난 마귀는 가장 처음에는 손을 그러쥐었다.

무의 정점이 되어달라는 소망으로 태어난 기신, 천마는 그렇기에 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를 태어나는 순간에 알게 됐었다.

주먹을 쥐는 순간에 그렇게 되어버렸다.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모든 주먹을 다루는 법들.

그것들을 모두 엮어서, 하나로 만들었다.

그렇게 태어났기에.

그렇게 태어나버렸기에.

그리고 모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러하듯.

마귀는 세상에 자신이 낳아졌음을 알렸다.

아기들의 그것처럼, 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천마신권[????]

응애[??]

하늘을 향해 내지른 주먹이 하늘을 부쉈다.

­천마시여. 정점이 되어 우리들의 복수를 이루소서.

“...깼군.”

오랜만에 꾼 꿈이었지만, 여전히 뒷맛이 좋지 못한 꿈이었다.

감상은 딱 그 정도였다.

몸을 일으켜서,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화르르륵!

손가락 끝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곰방대 끝에 밀어 넣었던 약초를 태워 연기를 피어올렸다.

스으읍, 그런 연기를 들이쉬었다.

“좋군.”

많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세월을 모두 겪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수많은 세월을 보내왔지만, 흐릿한 기억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의식을 온전하게 되찾았을 적에는... 내게 짊어져 있던 원망의 반을 이루었을 때였다.

­천마시여, 정점이 되어 우리들의 복수를 이루소서.

세상의 정점이 되어.

핍박당했던 이들을 핍박했던, 복수자들이 원하던 소망을 이루어준 뒤였다.

이미 많고 많은 피를 흘린 뒤였다.

그 뒤에는, 반쯤 자유로워졌다.

이미 들어준 소망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됐으니 의식도 온전하게 됐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한참을, 홀로 남은 세상에서 한참을 헤매었다.

그러다가, 어느 샌가 이런 세상에 흘러 들어오게 되어버렸다.

온갖 세상이 뒤섞인...

내가 살았던 세상과 마찬가지로, 멸망해버릴 예정이었던 세상들이 뒤섞여버린 이곳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만,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도 되는군.”

한 번 제 손으로 세상을 망하게 만들었던 내가, 이곳에서는 망해버릴 뻔한 세상을 구해버리고 만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은가.

물론, 이전의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한들.

세상 하나를 망친 장본인이 도리어 이곳에선 세상을 구한 구원자로 불리니 우스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삶이니 이런 경험도 있어서 나쁠건 없을 것 같았다.

더욱이 이 세상이 좋은 점이 하나는 있었다.

“후으우...”

거듭 들이쉬고 내뿜은 연기와 함께 시야가 흐릿해져 간다.

무의 정점이자 만들어졌다고는 한들, 제아무리 기신이라고 한들 신의 육신을 이뤄버린 자신의 몸에도 들기 시작하는 약효에 한숨을 내뱉었다.

불로영생.

만독불침.

천무지체.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한 몸이었다.

무의 정점이 되기 위해, 가장 완전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진 그런 몸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몸에도 들 정도의 지극할 정도의 극독을 피우고 있다는 소리였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이런 것으로 죽는 것도 아니니.

죽지도 못할 독에 취해 아주 살짝 몽롱해지는 나른한 감각을 즐길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전에 시켰던 일에 대한 것을 들을 때가 됐군.”

문득 들은 생각에, 생각이 난 김에 듣기로 했다.

“강아.”

­네, 스승님.

한참은 떨어진 곳에서 부터 들려오는 전음.

일단은, 내 첫 번째 수제자로 되어있는... 그렇기에 ‘천’이라는 성을 내려줬던 아이의 대답에 내가 말했다.

“네 사매를 불러 오거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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