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305화 (305/523)

〈 305화 〉 외전) 하피의 사정

* * *

익인족, 혹은 하피.

두 팔과 손가락 대신에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와 수백미터 상공에서도 자그마한 쥐가 굴에서 내민 머리를 볼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시력, 더욱이 그러한 사냥감을 단숨에 움켜쥐어, 뼈는 물론이거니와 강철마저 뭉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발톱을 가진 다리까지.

이러한 능력을 갖춘 하피는,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그래, 사냥꾼이었다.

머나먼 옛날에, 단순히 수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던 시절에는 대다수의 하늘을 날 수 없는 종족과 달리 하피가 가진 이점은 엄청났을 것이 분명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점은, 그야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하피가 그런 식으로 진화했을 거고.

하지만...

마법이 발달하고, 공학이 발달하며 지상을 걸어 다니는 종족과 창공을 지배하던 하피의 격차는 점점 더 줄어들어만 갔다.

안타깝게도, 하피라는 종족이 마법을 다룰 수 없는 종족인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하피가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종족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하피 역시도 마나를 다뤘다.

아니, 정확히는 무척이나 잘 다뤘다.

막 알에서 부화한 갓 난 하피조차도 자연스레, 자신의 몸에 마나를 둘러서 체온을 조절하거나 하는 것은 일도 아닌 일이었으니.

몸이 제법 자라서는 마나를 날개 깃에 둘러서 부양과 방향 전환, 가속 등에 활용하는 것이 하피였으니 말이다.

단지, 심장에 서클이라는 고리를 만들어야 하는 마법의 특징상, 하늘을 날기 위해 기낭이라는 장기가 따로 달린 하피로는 익히기 힘들었다.

하피가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 서클을 이루기 위해 마나로 고리를 만들어봤자 비행을 위해 기낭 가득 공기가 차오르게 된다면 그 압박에 의해 서클에 부담감이 가해지고 심하면 기껏 만들어낸 서클이 기낭에 뭉개져서 파괴되버릴 수도 있는... 그런 비운의 종족이었다.

그러니, 하피가 마법을 배우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냐, 아니면 마법이냐하는 극단적인 이택에서 대다수의 하피는 날개를 선택했다.

또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하피가 마법을 배워봤자 대성하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었다.

마법을 익히는 재능 중의 하나로는 머리가 좋아야 했다.

세상의 진리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의 재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마법은, 흉내다.

세상 만물이 본래 지닌 모습을, 마나로 그린 회로를 통해서 재현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이었다.

마법의 종주라고도 불리는 드래곤의 경우에는자연스레 그것을 다루며, 다른 종족이 그 흉내를 내기 위해서 회로를 짜내고 하는 동안에 단순히 말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고그것을 ‘언령’ 혹은 ‘용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지만 그 외의 종족들의 마법은 그렇게 편리한 물건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고 부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머리가 좋아야 했다.

하지만 하피의 머리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쪽에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이 좋을까.

애당초, 굳이 마법이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과 육체 그 자체만으로도 고대부터 타고난 사냥꾼이었던 하피였다.

마법의 등장으로 하피와 다른 종족간의 격차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줄어들었다는 의미였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하피는, 현재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에 ‘주종’으로 불리는 인간에 비교해서 육체 그 자체만으로 수배는 강한 종족이었다.

다리 하나로 인간 하나나 둘쯤은 그대로 집어 들고서, 날아오를 수 있을 정도의 신체 능력은 가뿐하게 지니고 있는 종족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한 마법은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피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육체의 스펙은 그 정도 수준의 마법은 그냥 몸으로 떼우면 그만인 탓에 마법에 관심이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니, 하피와 다른 종족들의 차이를 굳이 말하자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느냐 아니느냐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느냐 아니냐로 봐야할 것이다.

하피는 팔이 없다.

그 대신에 날개가 있었다.

하피는 손이 없다.

그 대신에, 날개 끝에 있으나마나한, 아주 간단한 동작만이 가능할 뿐인 자그만 손가락이 두 개에서 세 개 정도 달려있기는 했다.

즉, 하피는 다른 종족들에 비해서 무언가를, 도구를 다루는 것에 서툴렀다.

발톱으로 움켜쥔 막대기나 창 따위를 다루는 하피도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이며 그렇게 다룬다는 것도 거진 단순히 힘으로 휘두르거나 던질 뿐인 일에 그칠 뿐이었다.

다른 종족처럼 체계적으로 발달하는 ‘기술’을, 하피는 다룰 수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하피에게 있어선 큰 불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세상에서 하피의 위상은 과거만 못했다.

마법이 없어도, 딱히 도구를 다루지 못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 세상은 그렇지 못했다.

일단 먹이를 구하는 것도 문제가 많았다.

많은 종족에겐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하피에게는 불행하게도 하피의 주 사냥감이던 몬스터들의 대부분은 세계 정부에 의해 토벌되었다.

굳이 몬스터를 찾으려면 멀리까지 날아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안전이나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디멘션 크래쉬로 인해 이동 그 자체를 제한하는 세계 정부의 방침상 불가능했다.

아니, 애초에 몬스터를 잡으러 멀리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점부터가 넌센스였다.

애당초 그 멀리까지 나아가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들의 대부분은 세계 정부에서 ‘토벌’하지 못한 몬스터들이 대부분이었다.

제 아무리 하피가 강하다고 한들, 그런 것을 쉽게 잡을 수 있을 만큼 강대한 종족인 것은 아니었다.

또,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헌터나 그 밖에 몬스터 수렵 자격이 필요로 했다.

먹기 위해서 몬스터를 잡는다는, 과거의 사냥꾼스러운 이유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었던 만큼, 많은 수의 하피는 사냥꾼에서 배달부로 전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만이 하피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식.

즉, 번식에 의한 문제도 있었다.

하피는 난생이었다.

그리고, 여성밖에 없는 종족이기도 했다.

웨어허니비, 웨어엔트, 슬라임 등등...

몇몇 종족이 그렇듯이 하피 역시 타종족의 남자에게서 정액을 받아, 임신하고 번식하는종족이었다.

그리고, 타고난 사냥꾼인 하피는 과거에는 당연하게도 다른 종족의 남자를 ‘사냥’해서 자신의 둥지로 데려와 번식했다.

하피의 둥지는 대부분 상공 수천 미터는 되는 곳에 트는 편이라, 하피랑 달리 하늘을 날 수 없는 불운한 종족의 남성들은 그대로 살기 위해서 하피와 번식행위를 하고, 먹이를 받아먹는 처지가 되어야만 했다.

더더욱 불행하게도, 하피에겐 모성애는 있지만 딱히 사냥해 둥지로 데려온 남성을 ‘사랑’하는 종족은 아니란 거였다.

건강한 알을 낳고자, 강해 보이는 수컷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를 위한 취사선택일 뿐, 딱히 그런 수컷에게 애정을 품는 종족은 아니었다.

번식 후에 알을 낳고서도 잡아 온 남성이 하피가 보기에 쓸만하다면,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비록 여전히 둥지에 갇힌 채로, 하피가 만족할 때까지 번식을 해야만 하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살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예를 들어, 병에 걸렸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하는 이유로 번식 행위가 불가능하거나 시원찮아진다면, 가차 없이 자신의 둥지 밖으로 남자를 내쫓았다.

이미 언급했지만, 하피의 둥지는 대부분이 상공 수천 미터 높이에 위치하고는 했다.

또 하피가 남자를 내쫓을 때, 이를 감안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피의 발에 차여서 내쫓긴 남자들은 대부분은 수천 미터를 추락하며 공포에 떨다가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런 종족인 하피이지만.

작금의 세상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하피들은 모조리 몬스터로 치부되어 죽임당했을 것이다.

따라서...

“...뭐지, 이 뻐킹 레이시스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잡지의 표지를 확인해봤다.

‘하피에 대한 모든 것, 익인족 특집편’

그런 소제목이 적혀져 있는 잡지였다.

그런데 웬 걸.

내용을 보니까 하피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니라 하피 이 년들이 얼마나 좆같은지 알아보자 수준의, 그것도 대부분이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모를 찌라시들이 뒤섞인 것들이었다.

맞는 거라고는하피가 여성뿐인 종족이라는 것과 모성애가 강하다는 것 정도?

아, 그리고 마법을 다루기 좀 힘들어하는 편이라는 거랑 손이 없어서 도구를 잘 다루지 못하는 편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했다.

나머지는 한... 수만 년 전, 고대의 하피에 대한 내용이라고 한다면 그나마 납득할 법한 그런 이야기들뿐이었다.

공룡이라는 것들이 살고 있을 적에, 하피의 먼 조상으로 알려진 익룡인지 뭔지가 날아다닐 시절에는 아마 이 잡지에서 나온 대로 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뭐?

하피가 수천 미터 상공에 둥지를 튼다고?

당장 나만해도 얼마 전까지 5층짜리... 수천미터는커녕 십 미터가 조금 넘는 빌라에서, 그것도 집세가 싸다는 이유로 반지하에서 살고 있었다.

상공 수천 미터는커녕 마이너스인 지하에 처박혀 있는 셈이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그런 건가 싶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과거... 이런 세상에 오게 되기 전에도 하피들의 둥지가 수천미터 상공에 있다든지 하는 건 진짜 개소리였다.

대체 어떤 머저리가 집 한번 가는데 힘들어 뒤지게시리 수천 미터씩 날아서 찾아갈까?

하피도 나는 것보다 땅에 발을 짚고 다니는 것이 훨씬 편했다.

날개가 달렸다고 하늘이 더 편한 게 아니란 소리였다.

즉, 둥지도 높아 봐야 수백 미터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그리고, 남자를 납치해온 다음에 번식하고나서 알을 낳은 뒤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둥지 밖으로 내쫓아서 죽였다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야 뭐...

납치하는 것은 맞았다.

정확히는 납치하는 척이라고 해야 할까.

이전 세상에선...

일 년에 한번에서 두 번, 하피의 발정기가 찾아올 쯤이면 하피들의 서식지에 남자들이 모이곤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알을 낳기 위해 남자를 찾고 있는 하피에게 납치되기 위해서였다.

스스로 말하려니까 조금 그렇긴 했지만, 하피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무척이나 미형인 모양이라 그렇게 스스로 납치되기 위해 찾아오는 남자들의 대부분은 인간들이었다.

뭐, 미형이라고는 해도 새의 모습이 뒤섞인 하피랑 하려 드는 인간들은 모두 어디 좀 이상한 취향을 가진 인간들이라는 모양이었지만.

딱히 하피에게 있어서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정액을 제공해주러 오는 인간이, 같은 인간들에겐 변태 새박이, 총설배강? 박이 같은 소리를 듣는 변태라면 뭐 어떤가 하는 생각이 대부분일 거다.

아무튼 그렇게 하피랑 인간이랑 서로 볼일이 끝난 뒤에는, 하피는 정액을 제공한 상대에게 이제껏 모아왔던 보석이나 높은 곳에서나 구할 수 있는 소재들 중에서 하나를, 인간에게 골라 가질 수 있게 해준 뒤에 다시 무사히 납치했던 장소로 되돌려보내 줬다.

즉, 여기 적혀져 있는 둥지 밖으로 남자를 발로 차서 내쫓는다든지, 그래서 죽여버린다든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거였다.

그랬다간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밖에는 남지 않아버리는데, 미쳤다고 그러겠는가.

하피에겐 번식을 위해서라도 다른 종족의 남자가 필요로 하는데, 서로 죽이려드는 앙숙인 것보다는 사이가 좋은 편이 당연히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성애가 강하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성뿐인 종족, 그리고 알을 낳고 나서도 사냥을 위해 둥지를 비워야하는 종족이라서 그럴까.

다른 종족들이 그렇듯이, 남녀가 함께 아이를 기르거나 하는 종족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다른 종족들에 비해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고.

“아무튼, 미리 읽어봐서 다행이지.”

하피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길래 가게에 진열해둘까 했는데, 이래서야 손님들이 괜한 오해를 해버리고 말게 분명했다.

미리 보지 않았더라면, 잡지를 읽어본 손님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걸 보고서 대체 왜 저러나 싶었을 테니까.

“나중에 항의 전화라도 한 번 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온 잡지를 발톱으로 잡아서 부욱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자, 그럼 일할 준비나 해볼까.”

괜히 읽어본 타는 쓰레기 덕분에 나빠진 기분을 전환하고자, 흥얼거리면서 커피콩이 담겨있는 봉투를 들었다.

오늘도 잔뜩 벌려면, 잔뜩 커피콩을 볶아야만 했다.

“흥, 흥흐흥~ 흐흐응.”

흥얼거리면서, 커피콩을 로스팅한다.

아, 그래.

잡지에 적혀져 있던... 하피는 도구를 잘 다룰 수 없다는 것도 틀린 이야기였다.

물론, 팔과 손이... 손가락이 없다는 건 맞았지만.

그래서 조금 불편한 건 사실이었지만.

어지간한 도구는 발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광경을 밖에서 손님이 보기라도 한다면 괜한 소리가 나올 수도 있으니 비밀이었지만.

띠리리링~

“응?”

한참을 그렇게 가게를 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울린 벨소리에, 발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폰 케이스에서 스마트폰을 날개깃으로 꺼내서 집어 들었다.

비록 발만큼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지만, 이 정도는 하피도 날개깃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쪽은 발로 집었다간 쪼개질 수도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으음...”

터치는 솔직히 잘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벨소리가 몇 번이 더 울린 뒤에야 겨우 받아든 전화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어머머머. 우리 딸~ 무슨 일이에요?”

­엄마 보고 싶어서요!

“엄마도 우리 딸 엄청 보고 싶었는데!”

갑작스레 걸린 딸의 전화였지만, 발로 열심히 커피콩을 볶으면서 한참을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ㅡ 갑자기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다.

“딸?”

뭔가 싶었는데, 딸이 아닌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얼굴 좀 떨어뜨려 봐.

목소리에 순간 움찔했다가, 이내 떠올린 사실에 얼굴을 떨어뜨리자 음성 통화에서 영상통화로 변경된 것이 보였다.

그리고, 화면에 비친 얼굴에 길게 상처가 난 남자가 무릎에 안겨있던 딸에게 말했다.

­자, 우리 딸. 엄마 얼굴 이제 나오네요.

­와! 아빠 고마워!

­응, 그러니까 아빠는 좀 더 자도 될까...?

­안 돼! 어제 오늘은나랑 놀아주기로 했잖아!

전화하다 말고 졸린 표정의 남성... 아직 영 익숙지 않은, 남편이란 존재의 멱살을 발로 잡고 짤랑대는 딸의 모습이 화면에 비쳐 보였다.

“어, 음... 딸? 아빠가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안 돼! 아빠가 나랑 약속했단 말이야!

잡지에서 나오는 말 중에서 틀리지 않은 것 중 하나는, 하피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존재가 딱히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있었다.

딸이 알에서 부화하고서 얼마 안 있어서일까, 딸을 낳기 위한 정액을 제공해줬던 남자가... 디스펜서가 찾아왔었다.

하피는, 모성애가 강하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딸에게 접근했던 남자를, 나는 순전히 아이를 납치하러 온 사람으로만 여겨서 공격했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그와, 인간에 비한다면 강한 종족인 하피인 나.

덕분에, 남자는 얼굴에 깊은 상처가 나고 말았다.

동시에, 나 역시 범죄자가 되어 딸을 홀로 두고 감옥에 갇힐 판이었고.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변호해줬다.

워낙에 사건 사고가 많은 세상이고, 당사자인 본인이 괜찮다는데 처벌하기도 뭐하다고 여겨졌는지, 덕분에 나는 아이를 두고서 감옥에 간다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꼴로 지금, 이렇게 말을 하는 건 뭐하지만, 첫눈에 반했습니다. 부디 저랑 결혼해주세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왔던 것이었던 사내는 그런 나에게 고백했다.

수술을 받고서도, 흉이 잔뜩 남아버린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스윽, 하고 목에 걸려져 있는 목걸이...

하피인 내게는 손가락이 없어서, 그 대신에 반지가 걸려져 있는 목걸이를 내려다봤다가, 다시 딸을 보고는 말했다.

“딸, 엄마 말 안 듣고 자꾸 아빠 괴롭히고 그러면 이따가 엄마한테 혼나요?”

­히이잉...

울쌍이 된 딸의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약해졌지만, 자신과 결혼을 하고서... 잘만 하고 있던 디스펜서 일도 때려치우고 새벽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남편이 좀 더 쉴 수 있게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대신, 엄마가 일 끝나고서 딸이 좋아하는 거 잔뜩 사올테니까? 응? 알겠지.”

­네엥...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딸과,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을 보고서 나 역시 살짝 고개를 끄덕이려다가ㅡ 문득 떠오른 것에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보?”

­으응...?

무슨 일 있느냐는 표정을 짓는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요즘, 배가 조금 무거워졌는데...”

­......

“이따가, 부탁해도 될까?”

­응? 엄마, 아빠랑 무슨 얘기해?

아직 잘 모르는 눈치인 딸에게 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으응, 우리 딸. 여동생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

­동생?! 아빠, 나 동생 생기는 거야?!

­아니... 생긴다고 해야할까, 이미 있기는 하다고 해야할까.

그런 말을 하면서 스마트폰 너머로 나를 보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아무튼, 오늘은 금방 끝내고 집에 돌아갈 테니까 그런 줄 알아요.”

­잠깐만, 여보... 나 오늘은 진짜 피곤...

­아빠! 나 남동생! 나 남동생 갖고 싶어!

­...미안한데, 딸. 딸 동생은 무조건 여동생이야.

­?! 왜! 난 남동생이 갖고 싶은데!!

­그건 아빠랑 엄마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그냥받아 들이렴. 내 동생은 여동생이라고.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딸과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잘 볶아진 커피콩에서 나는 달콤하고 씁쓰레한 향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여보. 나 이제 일해야 하니까 전화 끊을게? 딸? 엄마가 집에 와서 아빠한테 물어볼 거니까 아빠 그만 괴롭히고 말 잘 듣고.

사랑하는 딸도 그렇고, 사랑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이젠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린 남편을 위해서...

고생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영 시원찮은 남편의 수입을 대신하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서 가게 문을 열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