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외전) 이방인
* * *
‘당신의 능력은 분명 훌륭하지만, 이 세상에선 그러한 능력은 터부시됩니다. 당신에게는 너무한 일이겠지만, 이미 이 세상엔 그것과 비슷한 힘으로 한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아무쪼록 주의해주세요.’
일주일간의 적응 및 교육 기간이 끝나고서, 마지막까지 거듭 경고하듯이 그리 말했던 공무원ㅡ이 세상에서의 관리ㅡ의 말을 떠올리며 살짝 날개를 떨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아직도 살짝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두꺼운 이쪽 세상의 옷 덕분에 그럭저럭 버틸 만은 했다.
여전히 조금 갑갑하기는 했지만, 여기선 옷을 몇 겹이고 걸쳐 입는 데다가 심지어 옷 안에 옷을 입는 모양이니, 이쪽 세상에서 살아가기로 다짐한 만큼 이쪽 세상의 상식에 맞춰 몸가짐을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었다.
더군다나...
스윽, 시선을 돌리자 어제도 애써준 남편이 드르렁거리며 곤히 잠든 모습이 보였다.
옅은 연둣빛의 피부에 몸 곳곳에 자리 잡은 탄탄한 근육.
그야말로, 전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육체미에 입가에 흐르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첫눈에 반했다, 라고 말하는 것을 자신이 직접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지만, 눈앞에서 잠든 남편은 그야말로 그 말대로 첫눈에 나를 사로잡은 남자였다.
사랑.
걸음마를 떼기 한참 전부터, 이미 진작 남자들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살아왔던 만큼 오래된 파피루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감정은ㅡ 이 남자를 보는 순간부터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줬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공경해마지않던 파라오의 말씀도, 그때만큼은 귀에 닿지 않았다.
그저, 이 사람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때, 백 수십 년간 자신도 알지 못했던 취향이란 것을 알 수 있게 됐다.
종종, 대전사인 카루라에게 시선이 갔던 이유가ㅡ 전부 내가 근육을 좋아했기 때문이란 것을 그때 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파라오께서 ‘선포’하셨을 때, 나는 가타부타할 것 없이 당장 이 남자에게 달려갔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토큰을 모두 탈탈 털어서, 그에게 일주일 내내 안길 수 있었다.
처음은 무지무지 아팠다.
내가 반한 남자는 우리네 세상에는 없던 오크라는 이름의 종족이었고, 남자의 몸은 왕국에서도 파라오와 대전사인 카루라의 다음 정도로 나름 체격이 큰 편이었던 나도, 겨우 가슴팍에 올 정도로 컸으니까.
심지어, 그날 처음으로 보게 됐고 동시에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던 그의 남성기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팔뚝만 했다.
그런 것이 몸에 쑤셔박혔으니 아프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꾹 참고서, 그에게 안겼다.
파라오도 말했지만, 남자를 속박하기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ㅡ 아이를 가지려고 열심히 참았다.
둘째 날도, 아직 얼얼했지만 계속해서 안겼고.
셋째 날엔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 더욱 열심히 안겼고.
마지막 날쯤에는, 생애 처음으로 절정이란 것을 해보기도 했다.
아무튼 그 뒤에도... 계속 그에게 안기던 나날을 보내던 중에 갑작스런 습격이 시작됐다.
그 뒤에 이어진 이런저런 일에서 지금은 남편이 된 이 사람과 서로 구하고 돕고 하게 됐다.
파편이 쏟아졌을 때, 남편이 내 위에서 그런 파편들을 막아줬고.
늠름한 근육질의 전사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사실은 나보다도 훨씬 약한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계속해서 밀려드는 해골들로부터 남자를 지켰다.
아무튼, 그런 이런 저런 일 끝에.
그가 떠나가야 하는 날이 됐을 때에 그에게 부탁했다.
자신도 데려가달라고.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 사이에서의 결국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불안함을 담고서 부탁한 그것을, 그는 흔쾌히 수락해줬고, 결과는 이렇게 됐다.
혼인.
결혼.
사랑과 마찬가지로, 낡은 파피루스에서나 볼 법한 일을 하게 되어서 그는 내게 있어서 남편이 되었고, 나는 그에게 있어서 부인이 되었다.
“흐히...”
괜히 입가가 풀리려는 것을 억눌렀다.
어제도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서, 또 열심히 나를 사랑해주고서 지친 몸으로 자고 있는 남편에게 손을 뻗어서, 탄탄한 근육을 주물러보고 싶은 마음도 꾹 참았다.
그 대신에...
“쪽...”
아직 더, 꿈나라에 있길 바라며 남편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켰다.
부르르르.
이불 밖으로 빠져나오자, 찬 공기가 더욱 몸에 새겨졌지만, 덕분에 졸음이 훌쩍 가셨다.
“그럼...”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차리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그럼, 다녀오겠다.”
“네에, 부디 건강히 돌아오세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고작 출근하러 가는 것뿐이니 매번 그렇게 절을 하면서 배웅하지 않아도 된다.”
“가장이자 가주이며, 하나뿐인 제 남편이 몸소 출전하시는 것이니 이 정도는 당연한걸요.”
“...저번에 내가 잘못 말하긴 했지만, 그, 일하는 것이 전쟁 같다고 한 건 어디까지나 상투적인ㅡ”
“어찌됐건, 힘드시다는 거 아닌가요? 더욱이... 저 때문에 직장이란 것을 바꾸셨잖아요.”
“그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까, 역시 이쪽에선 이런 게 당연하지 않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보다 못한 예를 표하는 것도 내키지가 않았다.
나와 남편은, 서로 결혼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남편의 집에 들어온 형태였다.
즉, 이제 나는 남편의 가문에 속한 여자가 된 것이고 가족이 없는 남편은 남편의 가문의 가주이자 또 우리 집안의 가장이고, 동시에 현재로서는 이 가문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존재였다.
능력을 갖춘 자가.
노력하는 자가.
그만한 성과를 이루는 자가, 하물며 그 밑에서 양육되는 자에게 더욱 존경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먹고, 입으며, 또 잠을 잔 이 집까지.
그 모든 게 남편의 소출로부터 비롯된 것들인데, 그런 남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쪽 세상에서 살아가기로 다짐한 몸이었다.
이쪽 세상의 상식에, 지금의 내 행동이 맞지 않는 것이라면 고치는 것이 올바른 일인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배웅해드리면 될까요?”
“...그, 럼.”
우물쭈물, 뺨을 긁적이던 남편이 이내 쑥스러운 듯ㅡ남편은 부끄러워지면 송곳니가 다 드러나도록 입꼬리를 씰룩거렸다ㅡ 표정을 구깃구깃하며 말했다.
“이, 입맞춤은 어떤가?”
“입맞춤.”
ㅡ아직 아침이지만, 그래도 아침이었다.
태양이 떠오른 지도 한참이나 지났는데...
“...변태.”
“뭣...?! 아, 아니, 그. 그게 변태라니...”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남편을 보자 무언가 가슴이 간질간질거렸다.
아마, 이건 사랑스럽다고 하는 그런 감정이리라.
어쩜, 멋진 것도 그렇고 이토록 귀여운 걸까.
파라오께서도 좋은 남자를 얻으신 듯 했지만, 역시나 자신이 그 중에서도 제일의 남자를 고른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마음속 깊이 솟구치는 감정에, 태양이 떠오른지 오래인 것도 불구하고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개, 숙여줘요.”
“아...”
“당신은, 제가 입맞춰드리기엔 키가 너무 크잖아요.”
“아... 으, 응. 알겠다.”
푸욱, 하고 고개를 숙이라고 했더니 직각으로 허리를 기울이다시피한 남편이, 고개를 쳐든 채로 나를 바라봤다.
연두빛의 피부가 붉어지면 좀 더 짙은 녹빛을 띈다.
남편의 두 뺨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짙은 녹색이었다.
그 모습이 퍽이나 우스꽝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키득거리다가 두 손을 뻗어서, 그런 남편의 뺨을 붙잡았다.
나와 그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의 피부는 어떨까?
나를 닮아서, 태양의 은총을 받은 듯 옅은 갈색빛을 띄고 있을까?
아니면 그를 닮은, 부끄러워할 때마다 두 뺨이 짙은 녹색빛이 되어버리는 연두빛의 피부일까?
또 생김새는 어떨까...
딱딱하고, 두꺼운 어금니가 엄지에 스친다.
그대로 손가락을 움직여서, 그런 엄니 옆으로 쭉 뻗어진 흉터자국을 훑었다.
뺨에 난 길쭉한 상처의 흉터는, 처음에는 사투 끝에 얻은 훈장과도 같은 흉터인줄 알았건만, 사실은 예의를 지키지 않은 이와 다소간의 갈등 때문에 생겼다는, 조금 볼품없는 사연을 가진 그런 흉터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봐도 전사의 그것이라고 보기엔 조금 흠이 많이 있는 초롱초롱한 눈동자까지.
대체 우리의 아이가 어떤 생김새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를 닮게 태어난다면, 무척이나 사랑스러우리라.
그럴게,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남편이었다.
사랑스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런 남편의 이마에, 쪽하고 입술을 맞췄다.
“...오... 오, 오오오오...”
더듬더듬 이마를 만지는 남편을 보자,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그야, 좋아해주니 기쁘지만 저렇게 기뻐하니까 부끄러웠다.
“이, 이거면 되나요?”
입맞춤을 해달라고 해서, 이마에 입술을 맞췄지만, 혹시나 설마하니 밤에나 하던 그런 입맞춤을 말했던 거라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이 보였다.
“...충분, 하다. 그럼...”
허둥지둥, 구두라는 것을 신은 건지 구겨서 발을 걸친 건지 모르게 신는 남편이 말했다.
“다, 다녀오마. 카마.”
카마, 내 이름.
그 이름의 울림이, 남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나 행복한 것은, 내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네에... 그, 다녀오세요.”
두 뺨이 더더욱 짙게, 녹색으로 변해버린 남편이 그렇게 말하고서 밖에 나가는 것을 보고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으...”
아직 해가 떠오르는 중인 새벽도 아니고 이미 해가 떠있는 아침부터 남사스러운 짓을 해버렸다는 생각에 얼굴이 엄청 뜨거웠다.
“더, 더워...”
아직도 살짝 서늘했던 공기로도 열이 식혀지지 않아서 더위가 느껴질 만큼.
“이, 일하자...”
괜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으니.
우선, 어젯밤의 일로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이불과 침대의 시트란 것을 세탁해야 하고, 밤새 먼지가 내려앉았을 바닥도 닦아야 했다.
그거 말고도, 그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무척이나 많이 먹는 남편을 위해,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남편에게 차려줄 식재료를 사기 위해 장을 봐야하고, 또...
“확인, 도 해야지.”
물론, 대략적으로도 스스로의 몸의 상태가 어떤지 모를 정도의 경지는 아니었다.
비록 파라오와 그분을 모시는 사제들, 또 왕국의 제일의 전사이자 대전사였던 카루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나 역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전사였고, 누멘을 다루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혹시 모르니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 세상에는 누멘이 아닌 것으로도 그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 수도없이 많았으니.
“그럼...”
드르륵, 서랍을 열어서 그 안에서 잔뜩 사놓은 것을 하나 꺼내 들고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게도 그와의 아이는 아직도 들어서질 않았다.
혹시나, 오크라는 종족과 자신의 종족은 서로 아이가 생기지 않는 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살짝 몸이 떨려왔다.
만약 그렇다면...
“...동생을 맞이하는 것은, 싫은데.”
일반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는, 남편이 새로운 하렘의 일원을 들이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고 들었다.
이 세상의 법도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이 세상도 그렇다면...
그가, 다른 여자를 안아서 아이를 얻는다면...
...무척이나 싫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무슨 감정인지는 알고 있었다.
질투다.
그리고, 독점욕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ㅡ 그의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만약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한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그렇다고 그에게마저 아이를 갖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 걸까.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그는 젊었다.
나보다도 훨씬.
오크는 백년을 조금 못되게 살 수 있는 종족이었고, 그는 그런 오크의 수명으로도 무척이나 젊은 편이었다.
시간은 많았다.
그러니까, 아직 1년, 2년 정도는 더 두고볼 시간은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파라오께, 부탁드려야 할까.”
그분께서는 무슨 방법을 알고 있으시지 않을까.
지혜롭고, 현명하며, 나르메르 왕국의 그 무엇보다도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그 누구보다도 빼어나게 뛰어나신 분이시니까 설령 종족이 다르고, 이룬 경지가 다르더라도 아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실지도 몰랐다.
염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최후의 최후에는 그런 수단을
“응?”
장을 보러 가던 길에 보인 것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귀가 짧다.
꼬리라든지, 뿔 같은 것도 없었다.
피부색은, 자신과 비교해서 조금 연한 그런 색.
ㅡ인간.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종족을 차지하고 있다는 종족의 노인이 그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곤경을 겪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어째서 아무도ㅡ
“......”
그 노인에게 다가가지도, 아예 시선조차도 두지 않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의아하던 찰나에,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흐릿하게.
그 노인의 몸은, 그 너머를 비춰 보이고 있었다.
“...떠도는 혼이었나.”
방황하는 자.
미련이 남은 자.
혹은, 자신이 안식에 들 때임을, 그 사실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자.
어느 쪽이든 간에, 사자다.
이미 죽은, 망자의 혼백이었다.
“이쪽의 사제들은 대체 무엇을 하는지.”
죽은 자가 현세에떠도는 것을 두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가진 미련을 떨쳐내게하고, 마땅히 안식을 누려야할 곳으로 떠나게해야한다는 의무가 그들에게는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민했다.
‘당신의 능력은’
거듭해서 들었던 경고가 떠올랐다.
우리들, 나르메르 왕국에서 생존한 모두가 어릴 적부터 익히고, 또 깨우쳐온 것들.
이곳에서는 ‘사령술’이라고 불리는 것이, 이곳에서는 경원시되는 힘이라는 것을 들었다.
한때, 이 세상을 죽은 자로 채우려 들었다는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얼토당토않은 짓을 한 자들 덕에 그렇게 되었다고 들었다.
어쩌면, 저자는 그런 세상이기에 저렇게 떠도는 것일지도 몰랐다.
도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배워온 의무와, 새로운 세상에서의 삶 사이에서 갈등 끝에, 발걸음을 떼었다.
더 이상, 나르메르 왕국은 없다.
위대하신, 우리들의 파라오께서도 말씀하셨다.
너희의 삶을 살아라.
새로운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라고 말하였다.
그러니까, 자신은 자신과 남편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내가 평생을 배워온 이 힘이 이 세상에서 경원시 되며, 터부시된다면 평생을 감추고 살아야 함이 옳으리라.
그러니까, 그렇게 걸음을 뒤로하려고 할 때, 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나 없이 어떡하누... 대체 어떻게ㅡ”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그런 목소리.
조금 전까지, 남편과의 나 사이의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것을 고민하던 나로서는 도저히 못들은 척 걸음을 돌릴 수 없는 목소리에,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주변을 돌며 우는 망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여, 미련이 남아떠도는 자여. 그대의 고민을 내게 들려다오.”
오그락은 오늘도 열심히 일을 마치고서,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보금자리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헥, 헥, 헥...”
나를 올려다보면서, 열심히 헥헥대는 흰 강아지와 그 옆에서 넙죽 엎드린 채, 날개를 덜덜떨고 있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내를.
“...이 강아지는?”
“그... 똘똘이라고 해요.”
똘똘이.
벌써 이름부터 지어줬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객식구에 놀랐지만 이미 이름도 지어주었을만큼 정을 들인 듯한 강아지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손을 뻗었다.
녀석은 어릴 적에 흔히 보았던 사냥개들과 달리, 무척이나 쉽사리 몸을 내줬다.
아예 발라당 드러누운 채로 들려진 똘똘이를 안아들고서 말했다.
“...얌전하군, 똘똘이라. 귀여운 이름이군.”
“죄송해요...”
“죄송하다니, 대체 무엇이?”
“아무런 말도 없이 집안에 짐승을 들였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넙죽 엎드린 채로 마중을 한 것일까.
그럴 필요가 없는데.
사랑하는 아내가, 종종 외로워 보이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내는, 디멘션 크래쉬로 인해 이 세상으로 넘어온 이방인이었다.
물론, 그녀를 이방인이라고 부르기엔 당장 자신조차도 이 세상에 온지 1년을 좀 넘긴 수준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더욱이, 세상에 알릴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고향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고향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나ㅡ 고향에서 쫓겨나 그와 비슷한 처지였던 자신이었기에 그녀가 느끼는 슬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아니, 공감할 수 있다는 말도 옳지 않으리라.
쫓겨났다고 한들, 그렇다고해서 내 고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
자신이 느꼈던 것보다도 더한 슬픔을 느꼈으리라.
그런 그녀가, 외로운 표정을 짓는 것을 종종 보았으나, 그러나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분했다.
아이라도 생긴다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어 열심히 노력했지만.
하피와 인간, 그 둘을 섞어서 반으로 나눈 듯한 외모의 그녀와 내 종족인 오크는 서로 아이가 잘 생기지 않는 것인지 좀처럼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미안했는데...
“...키우고 싶으면, 키워도 좋소.”
그러니, 아내가 들여온 이 작은 짐승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걸로 아내가 조금은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면.
“ㅡ그, 하지만.”
“괜찮다니까. 그보다...”
똘똘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내려다주고서, 아직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엎드려있는 아내를 일으켜세워줬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남편이 돌아왔는데, 대체 언제쯤 인사를 해줄 것이오?”
“아... 그, 죄”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말고.”
“...네.”
고개를 푹 숙이는 아내를 보고서 껄껄 웃으면서 그녀를 안아 들었다.
“꺄?!”
“자, 이제 그만 기다리게 하고 어서 인사해주오.”
얼굴이 새빨개진 아내가, 부르르 날개를 떨다가 이내 조심스레 내 이마에 입술을 맞춰준 것이 기뻤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고서 말했다.
“내일은 주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말을 꺼내자, 그 의미를 이해한 아내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자, 잠깐만... 아직 해가ㅡ”
아내의 말에 창밖을 보자, 조금 일찍 와서 그런지 아직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음.”
그래서 그대로 창가로 다가가, 커텐을 쳐버렸다.
“이럼 되지 않소?”
“아니ㅡ”
당황한 얼굴로 뭐라 말하려던 아내의 입을 입으로 막았다.
“헥헥헥헥헥...”
그리고 슬쩍 그런 우리를 올려다보며 헥헥대는 똘똘이를 발로 스윽 밀어내며, 우리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과연, 아내가 데려온 아이라서 그런지 척하니 척이었다.
녀석은 슬쩍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줬으니까.
그런 똘똘이에게 사줄 사료는 뭘로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 눕히자 무척이나 얌전해져버린 아내의 옷을 벗겼다.
그로부터 이주일이 더 지났다.
똘똘이는 무척이나 얌전하고, 또 훌륭한 동반인이었다.
덩치가 더 크고, 성격이 좀 더 용맹한 편이었더라면 훌륭한 수렵견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어차피 이런 세상에선 수렵견이고 뭐고 필요 없는 일이고, 또 자신도 더 이상 전사가 아니었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보다, 오늘 아침도 무척이나 잔뜩 차려진 아침을 열심히 먹어치우고서, 이제는 눈치챈 아내가 좋아해 주는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있을 적이었다.
“꺄아아악!”
“무슨...?!”
갑작스레, 화장실 안에서 들려온 비명에 놀라 등 위에 올라탄 채로 헥헥대던 똘똘이도 잊고서 벌떡 일어나서 아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대체 무슨ㅡ”
아무리 그래도 아녀자가 들어간 화장실 문을 벌컥 열수도 없어서 그렇게 말하려던 차에, 먼저 문이 열렸다.
그리고, 미처 속옷도 올리지 못한 아내가 그런 내게 안겨왔다.
“무, 무무무무...”
“했어요...!”
“대체 뭐가...? 그보다 그, 속...”
속옷 좀 올리고서 말해보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어진 아내, 카마의 말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이가 생겼어요, 여보...!”
“뭐......?”
어쩌면, 아내인 카마의 종족과 내 종족인 오크 사이에선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하피랑도 비슷하고, 또 인간이랑도 비슷했다.
둘 모두 오크 사이에서도 아이가 태어나긴 했지만, 그녀의 종족은 하피랑도 인간이랑도 비슷하지만 그 두 종족이랑 같은 종족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면...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내가 들려온 소식에 나도 모르게 꽈악, 하고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서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말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서 씨이이익, 웃었다.
“정말로, 정말로 잘됐군!”
앞으로,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박봉인 지금의 직업으로 똘똘이의 사료 값말고도, 자식의 양육비도 벌어야한다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에 미쳤지만.
활짝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아내를 보니까 아무래도 좋아졌다.
“정말로, 잘 됐어!”
그러니 앞으로 일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은 지금 이대로의 기쁨을 만끽하기로 했다.
“뭐 보고 있어, 카르미나?”
“음, 여의 신민들에게 온 편지들이니라.”
더 이상 나르메르 왕국의 파라오도 아닌 카르미나였지만, 그녀는 아직 그녀들의 백성들이 존경하는 파라오였다.
우리 집의 카르미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대체 어떻게 그만한 존경을 받는지 살짝 의심스럽긴 했지만, 가끔 보여주는 카르미나의 진지한 모드를 생각하면 그럴만도 할 것 같았다.
뭐, 당장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위협에도 이렇다할 저항조차 못하고서 당하고 말았었던 카르미나였다.
그녀가 얼마나 그들을 생각하는지야 나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그들을 위해서 스스로의 전부를 희생할 작정이었던 카르미나였고.
아무튼 그런 카르미나에게는 종종 이렇게, 이미 이쪽에서 적응하고 있는 나르메르 왕국 사람들로부터 편지가 왔다.
세계 정부에서 편의를 봐주는 셈인데, 순순히 자치권을 포기하고, 국왕... 파라오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협조했던 카르미나에게 주어진 특혜 같은 거였다.
“그래서,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
“음! 여의 두 번째 대전사였던 카마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이니라!”
“두 번째?”
“당연하지 않느냐? 그야 물론 카루라가 여의 제일의 대전사이기는 했지만 제일이 있다면 제이, 제삼도 있는 법이지 않느냐.”
그건 그렇네.
일등이 있으면, 이등도 있고 삼등도 있는 거니까.
“카마라면, 어디보자...”
기억을 들춰보니까,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랑 같이 돌아왔던 디스펜서들 중에서, 덩치가 장난이 아니었던 떡대 오크의 옆에 있던 여자가 아마 카마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았다.
카루라랑 같은 종족인 여자였는데...
“...오크랑도 아이가 생기나 보구나.”
아니, 뭐.
내가 임신시켜버린 카루라도 있고 하니까, 인간과 유전적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걸로 알려진 오크, 애당초 인간과도 혼혈이 생기는 걸로도 유명한 오크니까 당연히 생기긴 할 거였다.
“뭐, 잘됐네.”
“음, 무척이나 잘된 일이로다. 그러니 고민되는구나...”
“고민이라니?”
“카마가 여를 보고서 자신의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건 진짜 큰일이네.
애 이름은 진짜 중요하지.
한조 같은 이름을 지어주면 두고두고 애한테 원망을 받을 거니까.
내가 그러고 있으니까 확실했다.
“음, 정했노라!”
그때,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렇게 말하는 카르미나를 보고서 내가 물었다.
“뭔데?”
“여의 영웅인 그대의 이름과 카마의 이름을 섞어서 한마는 어떠ㅡ”
“안 돼.”
그건 절대로 안 됐다.
"여는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거늘..."
그런 내 말에 두 귀를 추욱 늘어뜨리며 실망하는 카르미나가 보여서 조금 미안했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