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늑대 (7)
에일레야의 본가로 가는 건 좋았는데,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우선 한참을 밑으로 내려간 다음에 다시 중앙으로 가고, 거기서 이것저것 절차를 밟아야지만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에일레야네랑은 다르게 그냥 유스티티아가 열어준 공간 전이문으로 훌쩍 넘어가면 그만인 나랑 도착하는 속도가 한참이나 차이가 난다는 거였다.
그래서 웬걸.
에일레야 누나네에 왔을 적에는 아직 에일레야 누나는 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한 웨어울프한테 웬 외부인이냐면서 시비가 걸렸는데...
결과적으로, 이 난장판이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머리카락 색도 그렇고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딱 봐도 에일레야랑 관련이 있게 생겨 보이는 사람이 시비를 걸어온다고 해서 무작정 때려눕힐 수도 없으니, 그냥 제압하는 선에서 끝냈는데...
그렇게 제압한 게 문제였다.
웨어울프에게 유명한 능력은 재생 능력과 괴력이었다.
근데 웬 인간이 뚜들겨 팼으면 모를까, 아예 힘으로 웨어울프인 자신들을 제압하니까, 다른 웨어울프가 웃통을 까고 덤벼들었다.
그래서 또 제압하면, 또 한 명이 이번엔 자기라고 덤벼들었다.
이게 수십 번이 반복되니까, 아무리 아내들의 논스톱 착정을 사흘을 넘도록 버티던 내 체력이라고 해도 존나 뒤질 것 같이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아리아드의 수액이 있어서 버텼던거지,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으니 당연히 힘들만은 했다.
아무튼, 쓰러뜨리고 쓰러뜨리고, 또 쓰러뜨려도 끝날 기미는커녕 어느샌가 주변에 웨어울프들이 드글드글 깔린 채 구경까지 하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할 수 없이 에일레야의 이름까지 꺼내 봤는데, 그건 됐으니까 한번 붙어보자고 덤벼드는 통에 진짜 죽을 맛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드디어 도착한 에일레야를 보니까 엄청나게 반가웠다.
저쪽은 내가 왜 여기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일단 그건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이 꼬라지 좀 어떻게 해달라고 말했는데.
“...지인?”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일레야가 보였다.
“오, 오오... 에일레야, 오랜만이구나.”
“네, 이고르 삼촌. 건강해 보이시네요.”
“아니, 나도 늙었는지 이 모양 이 꼴이라 말이지... 그래서, 저놈이 하는 말이 정말이냐?”
마지막으로 쓰러뜨렸던 사람이 에일레야의 삼촌이었나보다.
머리카락 색 빼고는 하나도 안 닮았는데.
에일레야는 호리호리하고 잘 빠진 몸매의 누님이었는데 저 아저씨는 근육이 터질 것 같은 아저씨였으니까.
아무리 봐도 같은 핏줄로는 안 보였다.
다른 웨어울프들을 보면 저 아저씨가 돌연변이인 근육덩어리인 모양인 것 같았지만.
아무튼, 그래도 에일레야도 왔고, 당장 앞서 기다리고 있던 웨어울프들을 물리고 덤벼들었던 저 사람이 에일레야의 삼촌이라니 어떻게 잘 해결되겠거니 싶었다.
그랬는데.
슬쩍, 나를 보는 에일레야.
살짝 좁혀진 에일레야의 미간이 보였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뇨, 글쎄요. 모르는 사람인데요?”
그리고, 곧이어서 그런 에일레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내 예감이 맞았다는 걸 증명했다.
“어, 잠깐. 누나?”
“흥. 가자, 이반.”
아니, 잠깐만.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화가 난 건 이해하는데 아예 모른 척하는 건,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그러는 건 좀 아니지.
근데 미처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런 나를 두고서 성큼성큼 가버리는 에일레야가 보였다.
“이, 이반?”
“아, 음... 뭐... 고생해, 형씨. 아직 누님이 화가 안 풀려서... 나중에 적당히 나와서 꺼내줄 테니까.”
딱히 믿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걸어본 이반까지도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렇게 말하고는 에일레야를 따라 가버렸다.
순식간에 나를 패싱하고 가버린 둘을 보고서 버려진 개새끼처럼 떠나간 둘의 뒤꽁무니를 쳐다보고 있는데.
“음, 그렇다는데. 외부인? 혹시라도 정말로 에일레야랑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니 조금... 신경은 써줬지만 이제 손대중할 필요는 없겠지?”
씨익, 하고 웃으면서 몸을 일으킨 에일레야의 삼촌이 툭툭 먼지를 털면서 그렇게 말했다.
“잠깐만...”
우득, 뿌드득...
눈앞에, 안 그래도 근육이 빵빵했던 에일레야의 삼촌의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두 배는커녕, 세배는 넘게 벌크업된 근육에 입고 있던 옷들이 투둑, 투두둑하고 단말마를 내지르며 죄다 찢겨 발겨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눈에 몹쓸 것이 비추는 일은 없었다.
미처 찢겨진 옷들 사이로 덜렁거리는 걸 보기 전에 에일레야의 삼촌 몸에서 털이 자라나고, 그렇게 잔뜩 부풀어 오른 근육을 덮어갔으니까.
이윽고,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두 다리로 서있는 거대한 늑대였다.
웨어울프.
늑대인간.
그 이름 그대로, 두 다리로 걷는 늑대가 된 자가, 원래 덩치도 덩치라서 그런지 어제 본 에일레야의 완전수화랑 비교해서도 덩치가 두 배는 커다란 늑대가 이를 드러냈다.
“자, 다시 한번 붙어보실까! 이번에는 아까처럼은 되지 않을 테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아마도 웃는 거겠지만, 딱히 웃는 걸로는 들리지 않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에일레야의 삼촌이 그렇게 말했다.
“애미.”
좆.
“크하하하ㅡ!”
꽈앙!
“흡...!”
땅을 박차고서 달려드는 에일레야의 삼촌에게 들이박히니까, 대비를 했는데도 꽤나 충격이 컸다.
안 그래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수 배에 달하는 완력을 지닌 웨어울프였다.
근데, 지금처럼 완전히 수화를 거친 상태의 웨어울프는 그것보다도 더 강했다.
그걸 그대로 들이박아 버리니까, 흡사 덤프트럭에 들이치인 듯한 기분이었다.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거의 트럭에 준한 충격량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은 했다.
솔직히, 릴리스의 반쯤 진심을 담은 펀치가 옆구리에 박혔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란 거였다.
상대가 기어코 수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이 상태의 웨어울프를 맨몸으로는 제압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았다.
나도 해본 적이 있어서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뇌수를 타고 마구 투쟁심이 샘솟고, 기분이 마구 들뜨는 고양감과 함께 몸에서 힘이 마구 솟구친다.
실상은, 정말로 힘이 솟구친다기보단 그런 기분이 드는 거였지만.
그게 많이 문제였다.
거기에 웨어울프로서 타고난 재생능력과 타고난 괴력이 더해지면 어지간한 데미지로는 씨알도 안 먹히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마니까.
뇌에서 뿜뿜해대는 뇌내마약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데다가, 어차피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되니까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해대는 광전사가 순식간에 만들어져버린다.
거기에, 이 아저씨...
에일레야보다도 좀 더 강했다.
기프트를 쓰지 않았다고는 해도, 내가 힘에서 밀려서 주르르륵 뒤로 밀려나고 있을 정도였다.
느껴지는 기운을 봐서는, 초인까진 아닌 모양이었지만 신체 능력 정도는 어지간한 초인보다는 나은 수준이었다.
이쪽은 아직 기프트에, 기로 한 번 더 강화하고 그걸로도 모자라면 이것저것 더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했다.
나도 단련해서, 이제 기프트고 뭐고 없이도... 수화하지 않은 에일레야 정도는 힘으로도 이길 정도는 되는데 이게 맥없이 밀려버린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 능력만으로는 이미 초인 이상이란 소리였다.
역시 이 정도는 해야 괴력의 종족이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가장 편한 건 에일레야에게 그랬듯이 레벨 드레인으로 힘을 쪽 빨아들이고 제압하는 것이 편하겠는데...
한참 쌩쌩한 게 수십 초는 더 걸리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제법인데! 이 친구! 그럼 이건 어때?!”
꽈악, 하고 두 팔로 내 허리를 감싸는 에일레야네 아저씨.
까칠까칠하고, 온몸에 난... 호아란이나 카르미나랑은, 하다 못해서 에일레야랑도 전혀 다른 뻣뻣한 털이 느껴졌다.
“와, 씹.”
순간 소름이 돋아서, 나도 모르게 그런 아저씨의 얼굴을 팔꿈치로 찍어버렸다.
뿌드득, 하고 수화를 거치면서 길쭉해진 주둥이가 내 팔꿈치에 찍혀서 납작해지는 아저씨.
수화와 함께, 몸 자체의 내구성도 한참이나 강해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맥없이 얼굴이 무너져버린 건, 나도 모르게 팔꿈치에 두른 강기 때문이었다.
도중에 정신 차리고 기를 거두긴 했지만, 이미 무너진 아저씨의 코뼈가 다시 멀쩡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내가 찍어버린 팔꿈치에 뭉개진 아저씨의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보고서, 좆됐다는 생각이 치밀었지만.
이미 저질러버려 놓고 이제와서 이래봤자 좀 많이 늦은 감이 있어 보였다.
이제 나한테 남은 건 하나였다.
웨어울프의 재생 능력을 믿는 거였다.
“죄송해요, 아저씨. 근데, 저 진짜 에일레야 누나 지인 맞거든요?”
내가 그 누나 보지 주인이라니까?
아직 에일레야 누나 허벅지에 내 이름이 떡하니 적혀져 있을 텐데, 이걸 까서 보여줄 수도 없고 진짜.
“아무튼, 그러니까 좀 주무세요.”
이미 유혈사태가 난 이상, 확실하게 제압하기로 마음먹고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아저씨의 턱을 후려갈겼다.
뽀각, 하는 소리와 함께 턱이 옆으로 돌아간 아저씨가 휘청거리더니 이내 쿵, 하고 배를 까뒤집고 쓰러졌다.
“크, 끅.... 끄...”
그 상태로 움찔움찔, 몸을 일으키려는 것이 웨어울프가 아니라 좀비 같았다.
그렇지만 일어나진 못했다.
웨어울프가 재생 능력이 좋은 건 맞는데.
그거랑 별개로 뇌가 직접 흔들리면 좆망하는 건 생명체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덩치가 크던, 힘이 아무리 세던, 턱주가리가 돌아가면 꼼짝도 못하지.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어릴 적에도 자주 애용하던 방법이었다.
나 역시, 어릴 적부터 타고난 덩치랑 힘이 있었지만 그래봤자 꼬맹이였고,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일일이 전부 힘으로만 밀어붙였다가는 진작 존나 깨져서 좆됐을 몸이었던 만큼,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줘팰 수 있는지는 도가 튼 몸이었다.
항상 좆같은 괴물딱지들만 만나서 그렇지, 인간형이라면 나도 한 싸움했다.
“오... 오오오...!”
“저거, 진짜 제법인데!”
“오빠, 나랑도 한 판 해볼래?!”
문제가 있다면, 배를 까뒤집고 쓰러진 에일레야 누나의 삼촌이 움찔대면서 바닥에서 버르적거리는 걸 보고서도 이놈의 개새끼들이 신이 나서 웃통을 벗어 던지면서 벌크업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더욱이, 남자고 여자고 할 거 없이 그대로 수화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이 꼴을 보고도 저런다고...?
“씨발.”
왜 이렇게 전투 민족이지.
에일레야는 이러지... 않지는 않았네.
전투에 들어가면 에일레야도 한 성깔하긴 했다.
사용하던 단검이 부러지자, 웃으면서 좀비들의 대가리를 몸이랑 직접 맨 손으로 잡아찢으면서 분리시키던 에일레야였으니까.
체력 소모가 심하니까 주로 두 개의 단검을 사용하는 쌍검술을 사용하는 에일레야였지만, 전투력 자체는 수화한 에일레야가 그냥 육신 그 자체의 힘으로 죄다 찢어발기고 도륙하는 편이 훨씬 강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까 존나 살벌한 누나였다.
이게 유전인지, 아니면 웨어울프의 종특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꼬라지를 보니까 유전이든 웨어울프의 종특이든 아무래도 좋은 것 같았다.
아무튼.
“진짜... 이걸 어쩌지.”
아주 신나서 덤벼드는 에일레야 누나의 친인척으로 추정되는 웨어울프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힘 조절하는 거, 아직 잘하지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