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328)화 (328/523)

하얀 늑대 (8)

항상, 나보다 존나 센 새끼들을 상대만 해와서.

평소에 하던 아내들과의 대련조차도 아내들이 나보다 훨씬 강하면 강했지, 약한 경우는 없는지라 애당초 힘을 조절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탓에 약하게 때리는 건 아무래도 잘할 자신이 없었다.

덕분에 웨어울프라는 종족빨로 애매하게 강하고 튼튼한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난감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초인’이고, 저쪽은 종족빨의 풍선 근육들이었다.

저들이 약하다는 건 아닌데.

지금에 와서 비비기엔 좀 애매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당장 신체 능력만큼은 나보다도 윗줄이었던 에일레야의 삼촌도 강기를 두른 팔꿈치에 얼굴이 뭉개지고, 살짝 기를 두른 주먹질에 턱주가리가 돌아가서 꼼짝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강기...

초인이 아닌 자와 초인인 자의 차이는 그만큼 컸다.

단순히 초인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신체 능력을 지녔다고 한들, 이쪽은 한 발 한 발이 고정으로 박히는 죽창이지만 저쪽의 공격은 어디까지나 깡 물리 딜인 거라고 보면 됐다.

설령, 이제껏 쏟아지던 힘 자랑 좋아하는 웨어울프들을 상대하느라 좀 많이 지치긴 했어도, 여기서 어떻게 될 정도는 아니었다.

체력이야 적당히 레벨 드레인으로 빨면 그만이기도 하고.

다만 그래서야 엄청 오래 걸릴 게 분명했다.

‘분신? 아니면... 아티펙트 쪽은 아직 성능 테스트가 안 됐는데... 호아도... 안 될 테고.’

분신으로 이쪽도 숫자를 늘릴까 했지만, 그럼 신나서 떼거리로 덤벼들 것 같고, 천호의 갑주는 결국 방어구라서 덜 아프게 처맞는 거 외엔 별 쓸데가 없는 데다가 용 발톱은 괜히 꺼냈다가 잘못하면 사람을 반으로 썰어버릴 것 같아서 못 써먹었다.

그렇다고 호아를 꺼내서 늑대 통구이로 만들 수도 없었다.

결국, 직접 하나하나 주먹으로 줘패는 것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힘을 줄여서, 적당히 당분간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만 두드려 팰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불현 듯, 기억이 떠올랐다.

-시련을 내리는 자여! 나, 여기에 용맹을 증명하기 위해 이곳에 왔나니, 나를 시험하라!

‘나’를 쳐다보며 그렇게 외치는, 우락부락한 누가 봐도 대단해 보이는 근육질의 남자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좋다, 마땅히 이곳에 온 용사여.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나를 찾아온 자여. 나, 시련을 내리는 자가 그대를 시험하노라!

그리고 그런 남자를 보며 무척이나 기꺼운 목소리로 말하는 ‘나’에 대한 기억도.

아니, 아니었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었다.

나는 저런 근육빵빵한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조금 전에 본, 에일레야 누나의 삼촌 아저씨의 벌크업한 모습조차도 우스워 보일 정도로 커다란 덩치의 저 남자는, 내 기억에 없는 사람이었다.

애당초, 내 목소리는 저렇게 여리지도 않고, 전사에게 활짝 펼쳐 보이는 양손은 저렇게 가늘거나 한 적이 없었다.

거기에 새하얗고, 여리여리한 손가락...

안타깝게도, 내 손가락은 내 기억을 아주 먼 옛날까지 들춰봐도 저렇게 여려 본 적이 없었다.

그걸 제외하고도 나 스스로가 시련을 내리는 자니 뭐니 한 적도 없었고.

그래.

내가 아니라 암무트의 기억이였다.

‘죽음으로 심판하는 자’, 암무트가...

‘시련을 내리는 자’였을 때의 기억.

그것들이, 전부 내 기억처럼만 느껴졌지만.

내 기억이 아닌 기억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기억.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기억.

하지만, 한없이 내 것같이 느껴지는 기억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남자는 ‘시련을 내리는 자’의 시련을 받았다.

홀몸으로, 수없이 쏟아지는 굶주린 짐승들에게 에워싸여졌다.

그리고...

근육빵빵한 그 남자는, 기어코 암무트가 내린 시련을 극복해냈다.

-그대여, 내게 그 용맹을 증명한 자여. 그대는 내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구나. 그대는 그럴 자격이 있을진저, 나 시련을 내리는 자가 그대를 축복하노라!

그리고, 끝내 그런 남자에게 축복을 내리던 암무트의 기억을 떠올리고서ㅡ 이게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강신.”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침 딱 지금 같은 상황에서 써먹기 좋은 기억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어디까지나 관찰자였던 암무트의 기억이였기에, 흘러들어온 기억 속에서, 암무트가 보았던 남자가 뭘 어떻게 해서 그런 짓을 한 건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괜찮았다.

머리 쓰는 일은 몰라도 몸을 쓰는 법은 제법 잘 익히는 편이었다.

더욱이, 흉내를 내는 것도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쓰으으으읍.”

기억 속의 근육빵빵한 남자가 했던 그대로, 가슴 가득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내뱉었다.

“파아ㅡㅡㅡㅡㅡㅡㅡㅡ!!!!!!”

쩌렁쩌렁하고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가, 기를 가득 담아서 퍼트린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다른 건 몰라도, 기만큼은 존나게 많은 나였다.

경지에 오르기 전에도 기만큼은 이미 초인의 영역에 든 카루라보다 많았고, 경지에 올라서 초인의 영역에 이른 지금은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전보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었을 리는 없었다.

즉, 기를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제대로 다루는 법은 어설프더라도 기만 왕창 때려 박는 건 같은 급의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었다.

그런 기를, 한번에 10분의 1정도를 가득 실고서 내뱉은 목소리는, 그 목소리만으로도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콰직!

콰지직!

쩌어어억...!

주변에 있던 건물들에 금이 가고, 창문들이 깨져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서, 내 주변에 있던 웨어울프들이 단순히 내뱉은 목소리만으로도 휘청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수 배, 수화를 마치면 거기서 다시 수 배가 더 강해지는 웨어울프들이 휘청거릴만한 충격을 가진 ‘목소리’였지만, 진짜는 그게 그만큼의 충격을 가질 정도의 ‘소리’라는 것에 있었다.

더욱이, 웨어울프는 오감이 무척이나 예민했다.

심지어 지금처럼 수화를 거친 웨어울프들은 특히나 그랬다.

수배에 다시 수배로 뻥튀기된 신체 능력엔, 당연하게도 그 오감이 포함되어있으니까.

평소보다 눈도, 코도, 그리고 귀도 더 좋아지게 되니까.

그런 웨어울프들의 무리 사이에서, 기를 가득 실어서ㅡ 목소리만으로 공기를 찢어발기고, 건물에 금이 갈 정도로 내뱉은 커다란 고성은...

내게 누가 먼저 달려들지 서로 다투던 에일레야의 친인척들이 주저앉게 하는데 충분했다.

“무, 무슨 목소리가...”

주르륵...

심지어 내 바로 근처에 있던 몇몇은 코랑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바로 앞에서 내 목소리를 들은 웨어울프는 두 눈에서도 핏물이 흘러내렸다.

“크헥. 켁...”

물론, 나도 멀쩡하진 않았다.

목이 완전히 씹창이 났다.

목에서 비릿하게 올라오는 피 냄새가, 방금의 고성으로 내 목이 존나게 조져졌음을 아주 잘 알려줬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아직 멀쩡히 잘만 써지는 웨어울프로서의 재생 능력이 빠르게 목에 난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목 하나로 수십이 넘는 웨어울프들을 제압한 건 싸게 먹힌 셈이었다.

일일이 상대했다가는 몇 시간은 붙잡혀 있었을 테고.

“아무튼, 저 이만 가볼거니까 얌전히들 계세요.”

아직 쇠를 긁어대는 목소리긴 했지만, 멍한 얼굴로 주저앉은 에일레야네 친인척들에게 그렇게 말하고서, 나를 패싱해버리고 가버린 에일레야의 냄새를 쫓아서 걸음을 옮겼다.

-그자는 무척이나 목소리가 커다란 자였노라.

“그래, 그렇더라.”

나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도 기억했다.

암무트가 그를 기억하듯이, 나 역시 이제 그를 기억했다.

“진짜 컸지.”

목소리가 큰 거 하나만으로, 암무트가 내린 시련을... 굶주려서 달려들던 짐승들을 죄다 귀를 터트리고, 심장을 멎게 해서 죽인 작자니까 당연했다.

고함을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제 덩치보다 커다란 생물들을 죽일 정도로 목소리 하나는 존나 큰 사람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암무트의 시련을 통과한, 그래서 결국 영웅이라고 불렸던 이였을 거다.

그 정도는 해야지 영웅 소리를 듣지.

나는 그 정도는 못 했지만.

애당초 그랬더라면, 조금 전의 내가 지른 고함으로 대량 살상이 벌어졌을 거다.

언뜻 본, 암무트가 그를 보고 기억하고 있었던... 기억만으로는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인 상황이었다.

내 기억이... 단순히 그러한 영웅을 지켜보았던 암무트의 기억이었기에, 내가 한 것이 단순히 그를 흉내냈을 뿐이었기에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무튼, 확실히 쓸모가 있던 기억이었다.

한 번 해보니까 다음엔 어떻게 하면 목이 맛탱이가 안 가고 쓸 수 있을지 좀 알 것 같고, 더욱이 전에 얻었던 인어의 종족 능력인... 매혹을 비롯한 다양한 효과를 가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한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거기에... 타종족에게는 효과가 약하긴 해도, 정신 제압 능력을 가진 웨어허니비의 여왕의 능력을 쓴다면...

뭐, 어쨌던 할 수 있는 재주가 늘었다는 건 좋은 거였다.

그래서 말했다.

“고마워, 암무트.”

-.......

먼저 말을 걸더니, 그새 또 조용해져 버린 암무트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에일레야나 찾기로 했다.

이미 한참 전에 가버린 에일레야였지만, 심지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죄다 피가 섞인 친척들이라 그런지 비슷비슷한 냄새가 나는 터라 냄새로도 찾기 힘든 에일레야였지만 나한테 그건 아무런 문제도 되질 않았다.

여전히 연결되어있는, 나랑 에일레야 사이에 있는 실을 따라가면 그만이었으니까.

근데 막상 그렇게 찾아온 곳을 보니까 굳이 안 그랬어도 될 것 같았다.

“진짜, 누나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나 보네.”

말이 일족이지, 은빛 갈기족의 웨어울프의 숫자만 만 단위를 훌쩍 넘는다는 거야 이미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 사실상 그런 일족의 족장은 단순히 족장이라고 부르기엔 좀 많이 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궁전이네 아주.”

그야 진짜로 여왕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인, 세계 정부로부터 공인된 자치권을 지닌 ‘여왕님’인 릴리아나나, 한때 나르메르 왕국의 파라오였던 카르미나의 황금으로 가득한 궁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마 전까지 소시민이었던,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궁전처럼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하긴.

뭐...

에일레야네 가정환경을 생각해보면 이만큼 집을 크게 지어야 어떻게 살법하긴 했다.

딸린 자식들 한 명마다 방 하나씩만 준다고 쳐도...

“나도 이래야 하긴 하네.”

앞으로 애가 얼마나 태어날지 모를 일이니 가능하면 크게 크게, 방도 잔뜩 있는 집이 필요했다.

대부분은 엄마 따라서 지낼 릴리아나네 딸들도 놀러 오면 자고 갈 수 있게도 해야 하고...

나 역시 이거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을 존나 큰 집을 지어야 하니까, 이왕 온 거 선례를 참고삼아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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