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329)화 (329/523)

하얀 늑대 (9)

“오는 것이 많이 늦었구나, 에일레야.”

“그러는 아버지도 아프면서 멀쩡해 보이네요?”

“그야, 그렇게 말하면 네가 올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말에 꿈틀, 하고 눈썹을 치켜들자 그런 나를 보고 큭큭거리며 웃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네 약혼자가 정해졌다.”

“그딴 거, 전 할 생각 없으니까 약혼자인지 뭔지하는 새끼한테 꺼지라고 전해주세요. 자주 하시는 거잖아요? 멋대로 약혼하고, 또 멋대로 파혼하고.”

“네가 거부할 수 있는 약혼이 아니다.”

“내 약혼인데 왜 내가 거부를 못 해요?”

“그야, 이미 정해진 일이니. 전과 달리... 이번만큼은 네 말대로 멋대로 파혼하기도 힘든 약혼이고 말이다. 그러니, 에일레야. 네가 내 딸이라면 받아들이거라.”

이런 씨발.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다.

이 양반은, 1년이 지나도 어째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1년만에 바뀔 위인이었더라면 동생들을 죄다 끌고서 집을 나가거나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뭐, 아버지가 아프지도 않고 팔팔하다는 건 알았으니까 됐어요. 그럼 저흰 가볼게요.”

그렇게 말하고서 몸을 돌리려고 했을 때, 오싹하고 등골을 타고서 소름이 올라왔다.

“말하지 않았느냐, 내 딸아.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네 어리광을 들어줄 수는 없겠구나.”

1년간, 네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주었으니.

“이젠, 네가 타고난 의무를 받아들이거라.”

그르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근육이... 그 근육 위로 털이 덮여가며 변해가는 아버지가 보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웨어울프의 수화와는 달랐다.

짐승의 그것의 형상을 닮아가고, 또 그 짐승과 같은 힘을 갖게 되는 수화랑 달리, 아버지가 변한 모습은 어디까지나 일부만이었다.

완전 수화의 전 단계... 신체의 일부를 짐승의 그것으로 바꾸는 부분 수화였다.

당연하게도, 완전 수화랑은 달리 신체 능력의 강화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전단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고작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족의 족장이자, 또 일족에서 유일하게 경지를 넘어선... 제일의 전사이기도 한 아버지가 보이는 압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마음만 먹었으면, 집을 뛰쳐나왔던 자신이야 언제든지 다시 끌고 데리고 왔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정말로 1년간 나를 내버려 둔 것은 아버지 나름대로의 배려였을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면...

어차피 변하지 않는 현실을 알려주기 위해 내버려 뒀던 걸지도 몰랐고.

그럼 뭐?

그깟 1년을 내버려 뒀다고 감사해하면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소리일까.

“...타고나긴 지랄.”

배려고 지랄이고,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했던 간에 결국 뛰쳐나간 자신들을 붙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거기에 생판 얼굴도 모르는 새끼랑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싶진 않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얼굴도 알고, 살도 섞어본 누군가의 첩실로 들어가고 말지.

순혈의 웨어울프를 늘리기 위해 제 자식들조차도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아버지가, 인간의 여자로... 하다못해 정실도 아니고 첩실로 들어간다고 하면 발작할게 분명하고, 그걸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차라리 그것이 낫다는 거지, 정말로 그럴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후우우, 심호흡을 하고서 말했다.

아직도 손이 떨렸지만, 꾸욱 참고서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정 그렇게 막고 싶으면 제 다리라도 부러뜨려서 끌고 가시지 그래요, 아버지?”

“어릴 적에는 말을 잘 듣는 참 착한 아이였는데 말이지...”

그야, 그때는 부모가 하는 말이 전부 옳은 걸로만 알던 어릴 적이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모의 말만을 제일로 여기던 아이라고 하더라도, 일 년에 서너 번씩 약혼자란 작자가 변하고 그러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머리 어딘가가 구멍이 난 병신년이란 소리였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래, 뭐.

내 약혼자야 그렇다 칠 수 있었다.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을 차기 족장인 만큼, 결혼이란 것을 아무나와 할 수 없다는 것쯤이야 납득할만한 이유였으니.

경우에 따라서, 그 약혼자라는 것이 몇 번이고 바뀌고 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그러면 자신으로 끝냈어야 했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이반 그 녀석도 짝을 찾아줘야 하겠군. 혹시 모르는 일이니 미리 아이를 낳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마침 이웃에 있는 작은 일족의 여식이 나이가 찼으니...’

나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그 거창하고 허무맹랑한 병신같은 계획에 동생들까지 끌어들이려고 했을 때는,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은 때려치우기로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물어보마, 정말로 내 말을 듣지 않을 셈이냐?”

“보청기 하나 사드릴까요? 요즘 좋은 거 많던데.”

“크큭, 미안하지만... 아직 내 귀가 네 귀보다는 더 잘 들을 거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수화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상대로 버텨봤자 몇 분도 채 못 버티겠지만.

그래도, 소란이 생기면 이반 그 눈치 없는 새끼라도 알아차리고 도우러 와줄 것이 분명했다.

그 새끼가 껴봤자 별 도움이야 안 되겠지만.

“그럼, 1년 동안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나 확인해볼까.”

“저도 아버지가 얼마나 늙었는지 확인해드릴게요.”

히쭉, 웃은 아버지가 그런 내게 달려들었다.

빠르다.

지나치게 빨라서, 미처 눈으로 보기 전에, 본능이, 몸이 먼저 움직여서 그런 아버지의 공격을 반응했다.

하지만, 완전 수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눈으로도 좇지 못한 아버지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내 몸은 너무나도 느렸다.

질끈, 이를 악물고서 곧 있을 충격에 대비했을 때였다.

콰직!

벽을 뚫고 나온 무언가에 내게 달려들던 아버지가 그대로 튕겨져서 뒤로 나가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

이윽고, 아버지를 날려버린 그 무언가가 누군가의 다리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의 주인도 곧 알 수 있었다.

“에일레야 누나, 괜찮아요?”

“......”

넌 또 왜 여기 있는데.

한조가 사실은 초인에 이른 강자라는 걸 얼마 전에 본 강기 덕분에 알고 있었다.

대체 그만한 힘을 지닌 한조가 어째서 디스펜서같은 것을 하고 있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바로 눈앞에서 본 강기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이 초인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초인이라고 해도...

그 많은 수의 웨어울프들을 뚫고 오는 건 힘든 일이었다.

모두가 피를 이은... 가족같은 존재들인만큼, 그들이 얼마나 전투광들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한조가 초인인 것을 알아도, 좋다고 덤벼들었을 친척들을 떠올렸다.

죽이는 거라면 몰라도, 죽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제압만 하려면 몇 시간은 족히 걸렸을 텐데...

그런데, 그 몇시간동안은 붙잡혀 있어야할 한조가 어째서 대뜸 벽을 발로 부수며 들이닥친 것인지, 그런 한조의 다리가  어떻게 아버지를 날려버린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적어도 한조가 아버지를 날려버린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 새끼가 누나 약혼자인가 뭔가하는 그 새끼예요?”

“아니, 그...”

일단, 아빤데...

아니, 일단이 아니라 아빠가 맞았다.

아버지 노릇은 별로 안 해줬지만.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아버지를 보고서 내 약혼자인지 아닌지를 물어보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전에.

“...실력이 제법이구나, 그대는 누구지?”

쿵, 하고 다시 일으킨 아버지가 그렇게 물었다.

그런 아버지의 꼴은, 난생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콧가에 번진 붉은 것... 그리고 맡아지는 혈향이... 눈앞의 아버지가 한조한테 걷어 차여서 코피를 흘렸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진작에 상처가 나아버린 모양이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버지가... 다쳤다고?

내가 한참 어릴 적에도 이미 초인의 경지에 올라 있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습이었다고 해도 한조의 발에 걷어차여서 피까지 흘렸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고나서 든 생각은 조금 다른 거였다.

...한조의 말을 듣자하니 분명 아버지를 내 약혼자라고 오해해서 공격한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 공격을 받은 것이 아버지가 피를 흘렸다는 거였다. 그 말은... 어지간한 웨어울프라도 조금 전의 한조의 발차기에 맞았더라면 머리가 터져나갔어도 이상할 것 없는 공격이었다는 거였다.

일반적인 웨어울프를 넘어선, 그래서 부분 수화한 지금도 그런 웨어울프들보다도 훨씬 튼튼한 아버지가 코피를 흘렸을 정도니, 적어도 방금 전의 공격을 맞은 것이 이반 정도의 수준이었더라면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머리가 날아갔을 거다.

그걸...

그걸 아무런 고민도 없이 갈기고 봤다고.

아무리 아버지를 내 약혼자라고 착각했다고 해도.

...미친 새낀가?

아니, 대놓고 나한테 지 아내가 일곱에 첩이 하나고 나보고 첩실로 들어오실? 하고 처묻던 새끼니까 미친 새끼가 맞긴 한데.

생각해보니까 진짜 미친 새끼가 맞았다.

그리고, 그 미친 새끼가 아버지의 말에 히쭉 웃는 것이 보였다.

“누구냐고?”

뭔가, 불안하다.

뭐가 불안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곧 불안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옆에 있던 한조는 단순히 미친 새끼가 아니었다.

“이 누나 보지 주인.”

스윽,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렇게 말하는 한조를 볼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이 새끼는 미친 개또라이 새끼였다.

저택 안에 들어오니까 볼 수 있었던 이반이 아주 친절하게 알려줘서, 에일레야가 있다는 방으로 가보니까 분명 에일레야가 있는 방에 에일레야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문제는, 에일레야랑 웬놈이 단 둘이 있는 건 둘째치고 방 안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가 않다는 거였다.

금방이라도 한바탕할 것 같은 기세여서, 이걸 어쩌나 생각했을 때 갑자기 에일레야한테 달려드는 기운에 나도 모르게 벽째로 발로 걷어차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엔 좀 많이 늦어서 급한 김에 걷어찬거였는데, 그 덕에 에일레야에게 덤벼들던 웬... 상체 탈의한 변태 새끼를 걷어찰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 거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급하기도 하고 해서 나도 모르게 힘 조절 같은 건 하나도 못하고서 걷어차고 봤는데 상대가 멀쩡하게 일어났다는 것 정도.

느껴지는 기운도 상당한 거 보니까, 적어도 내 하수는 아니었다.

그 결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밀실이나 마찬가지인 방 안에 있던 에일레야와 상체 탈의한 변태남.

거기에 그런 에일레야에게 덤벼들었던 변태남을 생각하면...

분명 저 새끼가 에일레야의 약혼자인지 뭔지하는 새끼였다.

분명 싫다는 에일레야를 억지로 어떻게 하려다가 싸움이 났던 것이 아닐까.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몸을 일으켜 세운 녀석이 말했다.

“...실력이 제법이구나, 그대는 누구지?”

한대 처맞아서 그런지 조금 예의가 바르게 나보고 누구냐고 묻는 댕댕이 새끼한테, 뭐라고 말할지 잠깐 생각했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어차피 파토내러온 약혼이었다.

약혼을 파토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약혼자에게 흠결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 최고였다.

안타깝게도, 지금 에일레야는 수화 중이기도 하고 입고 있는 것도 바지라서 밑을 까서 보여줄 수 없었으니, 그 대신에  옆에서 얼타고 있는 에일레야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이 누나 보지 주인.”

눈앞의 변태 새끼가 약혼자든 뭐든 상관없이, 이미 에일레야는 내 여자였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는데.

“호오...?”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보는 댕댕이와 내 옆에서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있는 에일레야가 보였다.

완전수화한 에일레야라서, 송곳니가 잔뜩인 입을 그렇게 벌리니까 좀 무서웠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눈에 빛이 돌아온 에일레야가 내게 외쳤다.

“이, 이, 이 미친 새끼야아아악ㅡ!!!”

뭔데.

왜 그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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