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331)화 (331/523)

하얀 늑대 (11)

물론, 이걸로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미 에일레야의 아버지가 뻐킹 종족주의란 건 알고 온 상태였다.

하물며 여기 와서 그 뻐킹 종족주의자가 된 이유가 이전 세상에서 뻐킹 레이시스트들한테 존나게 시달린 끝에, 나 이제 우리 종족 말곤 아무도 못 믿어 하게 된 양반이란걸 알게 됐으니 더더욱 설득은 무리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설득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생각해온 플랜 B였기에 상관없었다.

바뀌는 건 없다는 거다.

예정대로 플랜 A로 가면 되는 일이니까.

“그럼... 어쩔 수 없네요.”

플랜 A.

원래 계획했던 대로 하기 위해서 천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럼 그 대신에, 다른 제안을 하죠.”

어떻게 하면 에일레야를 데려올 수 있을지 많이 생각했고, 방법을 찾던 중에 웨어울프의 풍습 중 하나를 알게 됐다.

워낙 종족 자체가 타고난 전사라서 그런지, 웨어울프는 전통적으로 강한 자를 중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만큼, 무언가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경우에... 이를 결투로 해결하는 전통이 있었다.

본래는, 이걸로 에일레야의 약혼자인지 뭐시긴지를 줘패고 약혼자라는 걸 내가 하기로 하려고 했는데...

여기에 그 약혼자라는 작자는 없으니, 그 대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말했다.

“그냥 전부 제 밑으로 들어오는 건 어떠세요?”

그런 내 말에 눈썹을 꿈틀이는 에일레야의 아버지, 보리스가 말했다.

“...대체 어디서 그걸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리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웨어울프들을 위한 전통이지, 아무리 혼혈이라고 한들 인간의 피가 더욱 많이 섞인 그대에겐 그럴 자격이ㅡ”

“제가 혼혈이라고 말한 적 있어요?”

혼혈이고 자시고, 내가 살았던 세상은 인간밖에 없던 세상이었다.

어디까지나 순수 100% 인간이지, 내 핏줄에 다른 종족이 섞여 있을 리는 없었다.

물론, 갓 태어난 제 새끼를 한 겨울에 고아원 앞에 버리고 간 두 연놈의 핏줄인 만큼 내 조상 중에 개새끼가 섞여 있을 가능성은 없잖아 있긴 했다.

당장 그 두 연놈도 책임없는 쾌락을 즐긴 개새끼였을 거고.

그렇게 치면 나도 웨어울프랑 친척뻘이 되려나.

일단 늑대도 개잖아.

뭐, 농담이고...

까짓거.

잠깐만 인간 때려치우기로 했다.

스스슥...

부풀어 오르는 근육과 몸 위로 덮어가는 털들.

이윽고, 내 오른팔의 짐승의 그것처럼 바뀌었다.

이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할 테니까, 겸사겸사 내 머리 위로도 개 귀도 달아줬다.

그리고 말했다.

“...이거 되는 인간 보셨어요?”

많이 약해진 웨어울프 능력으론 힘을 꽤나 들여서도, 어디까지나 일부밖에는 못 했지만, 어쨌든 간에 팔 한짝을 늑대의 그것처럼 바꾼 것도 수화는 수화였다.

조금 전의 친절한 역사 수업을 들은 덕에 알 수 있게 된...

웨어울프의 혼혈은 이런 식으로 수화할 수 없다는 점을 미뤄볼 때, 내가 해낸 수화 자체가 내가 웨어울프임을 증명해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웨어울프인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기프트빨의 수화이긴 했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이지? 분명 조금 전까지는...”

보리스에게 있어서는, 영락없이 웨어울프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

제 눈에 보이는 웨어울프임을 증명하는 증거와, 내 몸에서 느껴지는 웨어울프로서의 기운을 보고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는 보리스를 보고서 내가 말했다.

“제가 좀 특이체질이라서요. 어쨌든... 일단 저도 웨어울프긴 하거든요.”

어디 보자 서큐버스에 구미호, 드래곤, 사티로스와 웨어허니비에 정확히는 구분 짓긴 어려운 신 쪽의 혈통 두 개, 거기에 정령이랑 인어까지.

웨어울프 말고도 좀 많이 섞여 있긴 했지만, 아무튼 웨어울프도 포함되긴 했다.

어디까지나 내 자지에 달린 기프트를 통해서, 종족의 능력만 빌려 쓰는 야매긴 해도.

아무튼 웨어울프였다.

계속 보여주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들킬지도 모르니까, 다시 해제한 수화와 함께 다시 맨들맨들해진 팔의 피부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어쨌든, 이제 저한테도 자격이 있다는 거 아셨죠. 자, 어떻게 하실래요?”

내가 웨어울프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한층 누그러진 얼굴로 보리스가 입을 열었다.

“...규칙은 알고 있나?”

“대충은요.”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우리의 전통에 따라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대가 우리 일족을 원한다고 했으니, 그대 역시 마땅히 그만한 대가를 보여라.”

“나 자신, 이라고 하면 조금 그렇겠죠?”

나는 나만 거는데 저쪽은 일족 전체를, 만 명이 넘는 은빛 갈기 일족을 전부 걸라고 하면 양심이 터진 소리긴 했다.

그래서인지, 장난치냐는 듯이 얼굴을 구긴 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다.”

“그럼, 거기에 제가 가진 권리... 제가 곧 있으면 소유할 땅들 전부를 걸게요.”

“...소유할 땅?”

“자세한 건 에일레야 누나한테 물어보시고요.”

스윽, 하고 그런 내 말에 에일레야를 보는 보리스.

멍하니 나를 보고 있던 에일레야가 그 시선에 흠칫했다.

“왜, 왜? 뭔데?”

“...저 말이 사실이냐, 에일레야?”

“...무슨 말?”

딴생각하고 있었나 보네.

멍청한 표정으로 얼떨떨하게 되묻는 에일레야에게 내가 말했다.

“아버님한테 저 곧 땅 부자된다는 거 좀 알려주실래요? 에일레야 누나.”

“......뭐,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그보다 누가 누구 아버님이야?”

“아무튼, 에일레야 누나도 그렇다잖아요.”

이미 도시 하나쯤은 거뜬히 세우고도 남을 땅을 보유할 예정인데다가, 지금도 세계수가 계속 뿌리를 뻗치며 자동 확장중이라서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넓은 땅을 소유할 수 있는 나였다.

“...땅이라.”

“탐나죠?”

듣자하니, 쫓겨 다니던 끝에 이런 곳에 정착한 듯한 은빛 갈기 일족이었다.

세상이 뒤바뀌고서, 이전의 세상처럼 더 이상 쫓겨 다닐 일은 사라졌다고 한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현 세계 정부의 방침상 다른 곳에 가서 살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더욱이, 웨어울프만의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야망을 가진 보리스인 만큼, 땅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탐나는 것이긴 할 거였다.

그만한 땅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자치권을 인정받을 때 가산점이라도 받을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웨어울프만을 위한 ‘땅’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게 느껴질 테니까.

“...아무래도 이쪽에서도 확인이 필요한 일이겠군. 그래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제가 잘 아는 사람이라도 소개해드릴까요?”

고민하던 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길래, 냉큼 남궁무휼에게 전화를 걸어서 건네줬다.

“오늘은 여기서 자면 될 거야.”

“고마워요, 이반.”

“뭘... 그보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형씨.”

“뭐가요?”

“저 꼰대가 대체 무슨 약을 먹었길래 저러는 거냐고. 누님은 뭘 잘못 먹었는지 아까부터 맛탱이가 가있고.”

별 건 하지 않았는데.

그냥 남궁무휼... 그러니까 스물둘 의원 중 하나가 나랑 내가 가질 땅에 대한걸 보증하고, 또 다음에 있을... 나는 땅이랑 나 자신을 걸고, 보리스는 일족 전체를 걸고서 하기로 한 결투에 보증인을 보내준다는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었다.

그 결과, 결투가 있을... 그리고 세계 정부 쪽에서 보내줄 보증인이 도착할 내일까지 정식으로 손님 대접을 받기로 되어서... 이렇게 방까지 받았다.

근데 그걸 설명하긴 좀 귀찮았다.

“에일레야 누나도 같이 들었으니까, 누나한테 물어봐요.”

그래서 냅다 에일레야한테 떠넘겼더니, 눈살을 찌푸린 이반이 말했다.

“아니, 누님이 말을 안 해주니까 온 거지. 말했잖아, 맛이 갔다니까?”

“그럼 그냥 기다려요. 어차피 내일이면 알 거니까.”

아무리 일족의 족장이라고 해도 자기 혼자서 일족 전체를 걸고 결투 같은걸 할 수 있을리도 없고, 내일이면 다들 알게 될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더 궁금하게 한다는 표정의 이반이 끙끙거리는 것을 보고서 말했다.

“그보다, 저 슬슬 피곤해서 좀 자려고 하는데 나가주실래요?”

“...아니, 벌써 잔다고? 아직 해도 안 졌는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좀 했거든요.”

그런 내 말에 아아... 하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반.

사실 고생 같은 건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여기 온 수단에 대해선 잘 모르는 이반인 만큼 고생하며 고향까지 돌아온 자신보다도 먼저 도착한 내가 개고생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알겠어, 아까 모른 척한 것도 있고 하니까 이만 실례하지.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고.”

“네, 고마워요.”

이반이 방에서 나가고서, 기척이 꽤 멀어졌을 즘에 풀썩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호아야.”

퐁, 하고 부르자 내 가슴팍 위로 소환된 호아가 풀썩, 하고 내 가슴팍을 깔아뭉갰다.

그래봤자 하나도 무겁진 않았지만.

“그럼 부탁 좀 할게.”

“...호아.”

잔뜩 싫은 기색의 호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부적을 꺼내서 자신의 머리에 찰싹하고 붙였다.

그러자...

“와, 씹.”

펑, 하고 내 모습으로 변한 호아를 보니까 존나 호러였다.

웬 근육덩어리가 내 가슴팍에 걸터앉고서 날 내려다보니까, 이게 나로 변신한 호아인걸 알면서도 몸에 소름이 다 돋았다.

“이, 일단 빨리 내려가 줄래?”

“호아.”

흥, 하고 코웃음을 치는 호아였지만 내 모습으로 그러진 말아줬으면 좋겠다.

저게 어디까지나 내 모습으로 변신한 호아인걸 알면서도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지니까.

아, 이래서 릴리스가 그렇게 날 쥐어팼구나.

아무튼...

이걸로 내가 없어져도 호아가 대신 있을 테니까 괜찮을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랑 영혼으로 연결되어있는 호아니까 언제든지 내게 연락할 수도 있었다.

“그럼,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줘.”

그렇게 말하고서, 톡톡하고 바디 체커를 살짝 건드려서 손상시켰다.

아내들과 오기 전에 미리 이야기해둔 대로, 아주 살짝 부순 바디 체커로부터 보내진 신호에 곧장 내 눈앞에 열리는 공간 전이문.

“몇 시간 걸릴 테니까,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한다.”

“...호아.”

변태 아빠라고 궁시렁거리는 호아를 뒤로하고서, 오늘치 의무방어전을 위해 공간 전이문을 건너갔다.

변태 같은 아빠가 엄마들과 열심히 동생을 만들러 떠난 사이에.

“호아아...”

대충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던 호아가 돌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쫑긋, 하고.

어차피 혼자 있는 터라 잠깐 도로 돌렸었던 여우 귀가 쫑긋거리다가, 이내 퐁하고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걸 어쩐다.

찾아온 사람이 사람이다 보니 난감했다.

일단 혹시 모르니 언제든지 아빠에게 연락하기 위해서, 연결을 강화시키자 한창 엄마들과 뒤엉키며 동생 만들기에 열중인 아빠에 대한 걸 알 수 있어서 더더욱 난감해졌다.

하필이면 마침 아빠의 상대가 호아란 엄마였고.

‘흐아앗...♡ 한조야앗...♡ 그렇게 젖을 잡아당기면서어... 팡팡하며언♡’

‘하면요?’

‘옷♡ 가, 가버리는 것이... 오옷♡ 멈추지 않게 되어버리느니라...♡’

‘그럼 더 열심히 잡아당겨야겠네요.’

‘그, 그런...♡ 흐우우웃♡’

아빠에게 가슴을 마구 잡아당겨지면서 허덕이고 있는 호아란 엄마의 모습이 보여서ㅡ 보면 안 될 것 같은 것을 본 기분에 황급히 연결을 다시 약하게 했다.

아빠와 연결되어있고, 또 평소에는 아빠의 몸속에 있는 만큼 이미 수도 없이 보게 됐던 광경이었지만, 솔직히 매번 봐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저 행위가 어떤 것인지는 이해는 하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애초부터 생물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모르는 것도 잔뜩이었으니까.

저게 저렇게나 기분 좋은 걸까.

호아란 엄마나, 다른 엄마들이 아빠와 동생을 만들기할 때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는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빠와 맺어진 많은 여자도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이, 인형이 아니라... 식신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살아있는 생명을 가진 존재였더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대체 얼마나 기분 좋길래 저러는 걸까 싶었다.

호아란 엄마나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보다 더 좋은 걸까?

똑똑, 그러는 사이에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한조...? 자, 자니~?”

밖에서 들려온, 엄마 후보... 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를 사람의 목소리에 어떻게 할지 잠깐 고민했다가, 이내 결정했다.

“...호아.”

몰라, 나중에 아빠가 알아서 하라지.

문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아마도 분명... 아빠를 찾아왔을 엄마 후보의 목소리를 냅다 못 들은 척하고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지금의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잠깐 자리를 비운 아빠를 대신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지 엄마 후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애당초, 아빠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아빠랑 나를 만들어준 호아란 엄마가 아니면, 내가 하는 말은 죄다 호아거리는 소리로만 들릴 뿐이라서 소통도 불가능했다.

“...자는 구나아.”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결국 힘없이 돌아가는 기척을 느끼며, 호아는 다시 밍기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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