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늑대 (13)
콰지직!
내가 휘두른 꼬리들에 얻어맞은 보리스의 갈비뼈가 서넛대는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부욱!
그 직후에, 그런 내 꼬리를 붙잡아 뜯어내는 보리스가 내는 소리도 들렸고.
그런 보리스의 얼굴에 내가 주먹을 갈기고, 보리스의 주먹 역시 내 옆구리에 처박혔다.
빠직!
겹겹이 쌓인 비늘들이 깨지고, 움푹하게 파고들은 보리스의 주먹이 또 다시 내 내장을 씹창으로 만들고, 그 대신 내 주먹이 보리스의 이빨을 죄다 털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 와중에 내 팔목을 붙잡고 비틀어 쥐어짜는 보리스와 그러든 말든 보리스를 팔째로 들어올려서 내던지는 내가 있었다.
또 다시.
날아가면서 알뜰살뜰하게 죄다 발치된 이빨을 뱉어내는 보리스의 공격에 살갗이 죄다 찢겨지고, 내가 쏘아보낸 웨어허니비의 독침에 보리스의 복부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또 부딪히고, 한쪽은 불타고 한쪽은 살점이 도려져나가고, 한쪽은 턱이 돌아가고, 한쪽은 정강이뼈가 으깨졌다.
서로 치고 박을 때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가고, 뼈가 부러지고, 서로 이빨이 뽑히고, 짓뭉개졌다.
하지만 서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 정도야, 나도 그렇고 보리스도 그렇고 치명적인 것들은 아니었다.
웨어울프인 보리스나, 야매긴 해도 아무튼 웨어울프인 나나, 서로 목이 뜯겨나가고 심장이 터져나가고, 아예 몸이 통째로 가루가 되지는 않는 한, 어딘가가 조금 맛탱이가 가는 정도야 침 바르면 낫는 상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서로 사소한 상처는 개의치 않고, 서로가 서로를.
단순하고 무식하게 어느 한쪽이 먼저 힘을 다할지 시험하듯이 부숴갔다.
흡사 싸움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대포를 쏘아대는 공성전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어째서 웨어울프가 그토록 박해받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크흐흐...!”
그새 돋아난 이빨로 내 어깨를 물어뜯으면서... 쁘지직, 하고 파고든 내 손가락에 눈알이 터진 채로 웃고 있는 보리스를 보니까.
웨어울프들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던 누구라도 괴물이라고 여길만 했다.
아무리 창에 찔리고, 칼에 베여도, 그래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달려드는 웨어울프들은 같은 생물로는,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미 누가 승자고 누가 패배자인지는 정해진 지 오래였다.
빠가각!
팔꿈치로 그런 보리스의 얼굴을 다시 내리찍자, 그 와중에 곱게 안 떨어지고 내 가슴팍을 걷어차는 보리스.
뿌득, 하고 그런 보리스의 다리를 막은 내 팔이 부러지는 게 아니라 아주 뼈가 박살이 나서 살갗을 찢으면서 튀어나왔다. 더욱이 무슨 슬라임마냥 팔이 흐물거리는 상태가 되어버려서, 훌쩍 뛰어서 일단 뒤로 물러난 채로 헐떡거리는 보리스를 바라봤다.
아물아물...
나도 한쪽 팔이 박살나는 걸로도 모자라서, 가슴뼈도 죄다 부러졌지만 그 대신에 다른 팔로 한움큼 잡아 뜯어낸 어깻죽지와 내 손가락에 움푹 찔려서 터져나간 눈알이 재생되어가는 보리스가 보였다.
하지만, 느렸다.
이제까지 보여줬던 보리스의 재생 능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느린 속도였다.
단순히, 어깨와 눈알의 재생만이 아니었다.
한참 전에 호아의 여우불로 화끈하게 익혀서 미디엄 레어로 만들어준 곳도 아직도 채 낫지 않아 진물이 줄줄 흐르고, 그보다 전에 큼지막한 독침으로 찔러줬던 옆구리에선 내장이 삐질하고 모습을 드러낸 채였으니까.
스르륵...
그에 반해, 이쪽은 평소에도 열심히 칼슘을 챙겨 먹어서 그런지 보리스보단 훨씬 빠르게 재생되어가는 팔이 보였다.
물론, 정말로 평소에 자주 카루라의 모유를 쪽쪽 빨아대면서 챙긴 칼슘 덕에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도 더 강한...
진짜 웨어울프다운 재생력을 가진 보리스보다 내 쪽의 재생이 더 빨라진 이유는, 단순히 보리스의 상처가 재생하는 속도가 나보다 더 느려졌을 뿐이었다.
이미 처음의 한 방 말고도 내게 몇 번이나 더 독침을 박아 넣어진 보리스였다.
그때마다 독침을 뽑아내고, 순식간에 상처를 재생시켜가면서 멀쩡해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척에 불과했다.
상처를 메꾸고, 피가 멎어서 멀쩡해보이는 것은, 겉으로만 그럴 뿐이지 이미 몸에 들어간 독까지, 몸 구석구석까지 퍼졌을 독까지 해독됐을 리는 없었다.
웨어울프가 재생능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거랑 독에 내성이 강한 것은 별개였다.
나야 이번만큼은 정말로 워낙 챙겨 먹은 게 많아서 어지간한 독은 안 드는 몸이 됐지만, 보리스는 평소에 그런 걸 자주 챙겨 먹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눈에 띄게, 본래는 훨씬 우위에 있던 보리스의 재생 능력이... 현저하게 느려져서 야매 웨어울프에 불과한 나보다 못해진 보리스.
적지 않게, 계속해서 보리스의 체력을 갉아먹은 독이 끝내 나보다도 훨씬 우위에 있던 재생력을 지닌 보리스를 저 모양 저 꼴로 만들어버렸다.
평소에 내성작을 꾸준히 했는지와 아닌지의 차이였다.
아무튼...
스르륵, 스르르륵...
조금 전에 보리스의 손에 잡혀 뜯겨나갔던 꼬리들도 다시 돋아나서 등 뒤로 넘실거렸다.
뼈가 죄다 박살이 나버리고, 근육이 뭉개져서 물렁물렁해졌던 팔도, 이제 대충 주먹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됐고.
그런 나랑 달리, 이전의 상처조차도 제대로 메꾸지 못하는 보리스랑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이미 뻔했다.
그런데도, 아직 이빨을 드러낸 채 그르렁거리는 보리스를 보면 아직 항복할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아무리 나라도 저런 보리스에게 이제 됐으니까 항복하란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니, 항복하란 말을 하는 대신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마, 보리스라도 이 이상으로 시간을 끌면 슬슬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우리라.
그러니까, 이번으로 끝내고... 몸에 잔뜩 돌았을 독부터 제대로 치료받게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번 걸로 더 이상 보리스가 움직일 수도 없게 때려부술 작정으로 뽑아낸 독침이 손등을 뚫고 솟구쳐 나왔다.
“프흐...”
그런 나를 보며, 입술을 비집고 웃음인지 아니면 한숨 소리인지 모를 것을 내뱉은 보리스가 자세를 잡았다.
낮게 몸을 웅크리고, 두 팔도 땅에 짚은... 영락없는 짐승과도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수화한 상태라서 사실 두 다리로 서 있을 때보다는 이쪽이 더 어울리긴 했다.
이런 말을 하면 순식간에 뻐킹 레이시스트가 될 것 같긴 했지만.
솔직히, 크르르하고 가래 끓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더더욱 낮게 몸을 웅크리는 보리스는 아무리 봐도 거대한 늑대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걸로 끝내죠.”
대답은 없었다.
꽈직!
그저, 나랑 달리 시간을 오래 끌 수 없는 보리스가 먼저 땅을 박찼다.
웅크리면서 잔뜩 응축시켰던 다리 근육으로 폭발하듯 뿜어낸 힘으로 도약한 보리스에게, 순식간에 내 바로 앞까지 솟구쳐들어온 보리스에게 꼬리들을 휘둘러봤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존나 끄떡도 안했다.
물론, 나도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주 조금 더, 시간을 벌 생각뿐이었으니까.
고작해봐야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을.
키이이잉ㅡ!
어차피 마지막이 될 거라면 지금의 내가 날릴 수 있는 최대의 전력으로.
빠르게 회전하는 독침이, 더욱 크고 길게 솟구쳤다.
그리고...
“개, 씹... 존, 나 아프네.”
마지막이라고 전력을 다한 건 저쪽도 마찬가지였는지, 내리 찍힌 보리스의 발톱에 오른쪽 어깨가 깊이 썰려나간 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공격에 맞기 직전에 강도를 강화한 비늘들로 어깨를 감쌌는데도, 쇄골에 도중에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대로 내 심장째로 갈라버렸을 지도 모르는 공격이었다.
아무튼, 존나게 아팠다.
물론, 이번에도 나만 아프고 끝내진 않았다.
“누, 가... 하 소힌지, 프흐... 모르헤, 훈...”
어깨를 내주고서, 그 대신에 내가 찔러넣은 훅에 길다란 독침으로 옆구리를 관통당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턱까지 꿰여서, 코옆으로 독침의 끝이 튀어나온 보리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존나 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좋은 소리는 아니었을 것 같았다.
하긴, 저 상태로 좋은 소리가 나오면 성인군자지.
아무튼 이대로 독침을 회전시키던, 쏘아버리던, 이게 서로를 죽고 죽이는 싸움이었더라면 머리가 날아가버렸을 보리스였다.
아무리 웨어울프라도 머리통이 날아간 것까지 재생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물아물...
그리고, 이미 재생하면서... 내 어깻죽지에 박힌 보리스의 손톱을 단단히 고정하는 내 근육과 달리, 꼼짝도 못한 채 독침에 관통되어서 대롱대롱 들린 보리스.
둘 중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도 정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마 꼬챙이가 된 보리스가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더는 못 싸우는 거, 인정하시죠?”
하, 하고 턱과 함께 얼굴이 꿰여서 그런지 삐뚜름하게 웃은 보리스가 느릿하게 내 어깨를 찢어발긴 앞발을 떨어뜨렸다.
“...내가 져따.”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
보리스와 대결이 끝나고서, 이것저것 정신없이 웨어울프들이 움직였다.
나야 둘째치고 어지간히 씹창이 난 보리스가 얼마 안 가서 기절해버린 탓이었다.
물론, 이미 내가 챙겨온 엘릭서를 희석시켜서 먹이고 혹시 모르니 호아란의 해독부같은 것도 몸에 덕지덕지 붙여줬으니까 죽지는 않을 거였다.
아무튼...
그런 보리스가 깨어날 때까지 일단 기다리게 된 나는 방에 돌아와서 가볍게 몸을 점검했다.
“찾았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걸리적거리는 것이 느껴진 지점을 손가락으로 푸욱 쑤셔서 후벼냈다.
그리고 뽑아낸... 보리스의 이빨.
서로 존나 재생해대면서 싸우다 보니까 몸에 별의별 게 박힌 채로 재생해버려서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보리스도 아마 일어나면 아직 몸에 박혀있을지도 모르는 독침이나 내가 뱉은 이빨 조각따위를 뽑아내야 할 거다.
아무튼, 귀찮고 아프더라도 꼭 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대로 냅두면 백에 백은 몸에 박힌 이물질 때문에 염증이 나든 뭐가 나든 아무튼 지금보다 더 좆같아질 테니까.
그거 말고도 제대로 뼈가 붙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저번처럼 근육이고 뼈고 이상한 상태로 회복해버렸다면, 또 몸을 재조립해야 할지도 몰랐다.
다행히 아주 몸이 박살이 났다가 재생했던 저번 정도는 아니라 살짝 뒤틀린 부분이나 한번 뽀각했다가 다시 맞추면 될 것 같았다.
괜히 나중에 했다가 더 아플 테니까, 아직 머리에 열이 뻗쳐있을 때 후딱 끝내고자 뼈가 살짝 잘못 맞춰진 오른 다리를 붙잡고, 비틀었다.
뿌드득!
“...좀 너무 돌렸는데?”
반대 방향으로, 조금 전보다 더 비틀려버린 오른 다리.
다시 반대쪽으로 비틀면 나아지겠거니 하고서 제대로 다시 맞추려고 하던 중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건 나중에 다시 제대로 맞추던가, 아니면 집에 가서 아내들에게 맞춰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문 앞에서 멈춰선 인기척에,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을 열자 흠칫하는 에일레야를 내려다봤다.
“그... 어디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고 오라길래...”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 같은 일로 찾아온 건 아닌 모양이라 조금 아쉬웠지만, 생각해보니 어제 에일레야가 찾아왔었던 이유도 그렇고, 얼렁뚱땅 넘겨버린 일도 그렇고, 이야기할 게 꽤 많았다.
그것 말고도, 마침 딱 좋은 타이밍에 찾아온 에일레야였다.
“...보니까, 멀쩡해보이네. 그럼 그렇다고 전해둘 테니까ㅡ”
“아뇨, 딱히 멀쩡한 건 아니라서요. 이왕 온 거, 저 좀 도와주실래요? 누나.”
“도와달라니, 뭘...”
“일단 안으로 들어와 봐요.”
“자, 잠깐...”
꾸욱, 하고 에일레야의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