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늑대 (14)
우득!
내 발목을 붙잡고 비튼 에일레야와 함께 들려온 소리였다. 물론, 소리의 정체는 내 발목이 비틀리는 소리였다.
“아야야...”
“...엄살은.”
“아니, 엄살이 아니라 진짜로 아픈데.”
“우리 아버지한테 맞았던 건 안 아팠고?”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잖아요.”
“바보같긴...”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에일레야가 더듬더듬, 내 발목을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살펴보는 것을 내려다봤다.
내게 잡아끌려져서 방에 들어왔을 때는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치료하는 것 좀 도와달라는 말에 한숨을 푹 내쉬고서 도와주기 시작한 것치고는 무척이나 꼼꼼히 살펴주는 에일레야였다.
“여기는 아프지 않지?”
“네.”
“여기는?”
“그쪽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여기는?”
“살짝 아프...”
우ㅡ드득!
“...지 않게 됐어요.”
“그거 다행이네.”
확실히 종족이 종족이다보니 이런 부상같은 건 잘 아는 모양인지, 뼈도 잘 맞추고 어디 근육이 꼬이지 않았는지 마사지도 해주는 것이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응, 이제 문제없겠네. 이대로 두면 될 거야.”
“고마워요, 에일레야 누나.”
“...이런 건 어차피 카르미 언니가 더 잘했을 건데 뭘.”
뚱한 얼굴로 대답하는 에일레야를 보고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그것도, 지금은 상관없는 일 같은데요. 카르미... 는 여기 없고, 지금 절 도와준 건 누나잖아요?”
“...흥, 됐고. 이제 치료도 도와줬으니까 난 이제ㅡ”
“근데, 누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조금 전에 우리 아버지라고 한 거, 무슨 뜻이에요?”
“뭐? 읏?! 아, 아니, 그건... 그냥...!”
내 말에 얼굴을 붉히더니 허둥지둥하는 에일레야를 보고 피식 웃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사실 정말로 묻고 싶은 건 따로 있거든요.”
“......”
이거 한 대 쥐어팰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에일레야에 서둘러서 말했다.
“어제, 저 찾아왔던 이유가 뭐에요?”
“윽...”
나쁜 짓을 하다 걸린 것처럼 찔끔하는 에일레야가 작게 중얼거렸다.
“자고 있었던 거... 아니였어?”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방에서 나오니까 누나 냄새가 나서요.”
사실은 방에서 자고 있기는커녕, 집으로 돌아가서 한창 아내들과 의무방어전을 하고 있던 중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말해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을 것 같아서 대충 그렇게 말하자, 움찔한 에일레야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 냄새...?”
괜스레, 자기 몸을 흘깃 보는 에일레야를 보고서 덧붙여서 말했다.
“저, 누나 냄새 좋아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요.”
“시끄러워...”
내 말에 얼굴을 더더욱 붉히는 에일레야.
좋다니까 왜 부끄러워하는지 모르겠다.
뭐, 어쨌든.
그런 에일레야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어제는 왜 왔었어요?”
“그, 건...”
망설이듯, 우물쭈물하는 에일레야에게 내가 장난치듯 말했다.
“혹시 밤에 저 덮치러 온 건 아니죠?”
“그런 거 아니거든?!”
아쉽네.
그랬던 거라면 좋았을 텐데.
혹시나 했던 거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니였던 모양이라 내심 아쉬워하면서 물었다.
“그럼 뭔데요?”
“...그냥 도망치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왔었어.”
“도망요?”
“그래... 한조... 네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한테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한조 네가 초인이라고 해도, 십 년도 전부터 초인이었던 아버지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 그래서... 괜히 아버지랑 대결해서... 기껏 고생해서 얻은 땅을 잃을 바엔, 차라리 계약이고 뭐고 하기 전에 도망가버리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왔었어.”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았지만, 하고 쓴웃음을 짓는 에일레야.
근데 아닌게 아니라, 에일레야의 걱정대로긴 했다.
나도 괜히 기프트를 안 쓰기로 고집했더라면 에일레야가 걱정했던 대로 보리스한테 탈탈 털려서 져버리고 말았을 거다.
순전히 기프트 빨로, 온갖 종족 능력에 호아에 이것저것 죄다 써서 이긴 거였으니.
“...그리고, 물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물어보고 싶은 거요?”
“응. 대체...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보려고 했었어.”
꾸욱, 하고 내 허벅지를 만지는 에일레야의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가 전혀 안 됐으니까. 내가 말하기도 좀 우습지만... 내가 그 정도의 여자인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고작 나 같은 거 때문에 네가 손해보는 것이 싫었어. 넌... 정말로... 진짜로 나쁜 새끼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나쁜 새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던 에일레야가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전부 아무래도 좋아졌지만. 자, 그럼 이만 가볼...”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서, 몸을 돌려서 나가려하는 에일레야를 다시 붙잡았다. 아니, 붙잡기만 하지 않고서, 그대로 당겨서 끌어안았다.
“윽...?!”
그렇게 품에 쏙 끌어안은 에일레야의, 쫑긋거리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유, 물어본 거 아니에요? 그럼 대답은 들어야죠.”
“아, 알겠으니까, 이거 놓...”
“싫어요. 그리고, 누나가 어째서 저한테 그렇게까지 했냐고 물었죠. 그것도 싫어서에요.”
“그게... 무슨 뜻이야?”
그렇게 묻는 에일레야를 꾸욱, 하고 더욱 강하게 안았다.
후으, 하고 작게 한숨을 토하는 에일레야의 숨결이 내 두 팔에 닿는 것을 느끼면서 말했다.
“누나는, 저한테 아내가 여러 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
“대답은 안 들어도 알겠네. 화나는 건 꼬리 너무 부풀리진 말아요.”
뭐, 어쨌든.
“아무튼, 많이 싫었죠? 저도 똑같아요. 누나한테, 저 외의 남자가 생긴다고 생각하니까 엄청 싫었거든요.”
내 말에 울컥한 에일레야가 더욱 꼬리를 부풀렸다.
“그런 거ㅡ”
“알아요, 그래도 나중에는, 언젠가는, 그랬을 수도 있잖아요. 솔직히 제가 오지 않았으면 위험하기도 했잖아요?”
“그, 건...”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보리스에 의해 억지로 약혼했을 뻔했던 에일레야여서 그런지 입술을 우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게 싫어서 그랬어요.”
“...지는 아내만 일곱이면서, 나는... 지금도 아니고 나중에... 언젠가는 다른 남자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게 싫으니까 이런 짓을 했다고?”
“넹.”
싫었다.
무척이나.
내가 아닌 남자를 에일레야가 만나는 것이 싫었다.
내가 아닌 남자가 에일레야를 안는 것이 싫었다.
꾸욱, 자궁구를 내리누른 채로 꽉 안아주면 허덕이는 에일레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오직 나뿐이었으면 좋겠다.
에일레야가 낳을 아이가, 내 아이였으면 좋겠다.
내 곁에 에일레야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부터, 전부.
에일레야의 모든 것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제가 워낙 욕심쟁이라, 한 번 내 것이었던 건 계속 내 것이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렇게 말하고서, 여전히 단단히 에일레야의 허리를 팔로 감은 채 말했다.
“그러니, 누나가 어디로 도망치든, 몇 번을 거절하든, 절대로 저한테서 못 벗어나요. 누나 보지는 내 꺼니까.”
“...또라이 새끼.”
“자주 들어요.”
“미친, 변태 새끼!”
“그것도 자주 들어요.”
둘 다 릴리스가 자주 나보고 하는 말이었다.
“존나, 이기적인 새끼...”
“그건 처음 듣는데.”
하지만, 뭐.
들어도 이상할 건 없긴 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들을만해서 들었다.
그 뿐이었다.
“넌, 존나게... 진짜로... 정말로... 나쁜 새끼야...”
“맞아요. 그러니까 절대로 안 놓아줄 거예요.”
“내 인생, 씨발...”
한탄하듯, 그렇게 중얼거린 에일레야가 몸에 힘을 쭉 뺐다.
그렇게 축 늘어져 있던 에일레야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이것 좀 놔봐.”
“조금 전에 안 놓아준다고 했는데.”
“미친 새끼가, 종일 나만 붙잡고 있을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고, 어차피 놓아줘도 상관없겠다 싶어서 팔에 힘을 풀자 벌떡 몸을 일으킨 에일레야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에일레야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개새끼.”
그것도 종종 듣는 말이라고 대답하려던 내 뺨을 에일레야가 붙잡았다.
그리고, 잡아먹을 기세로 콰악하고 내 입술을 깨물었다.
입맞춤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잘근잘근 씹어서, 상당히 아팠다.
하지만, 그냥 냅뒀다.
냅두고, 그동안 휙휙 흔들리는 에일레야의 꼬리나 보고 있자니 이내 성에 찼는지, 내 입술을 깨물어대던 것을 멈추고서 떨어뜨린 에일레야가, 내 피가 잔뜩 묻은 입술을 엄지로 훔치며 말했다.
“...이런 키스는 해본 적 없지~?”
“이게 키스였어요?”
“몰라, 그딴 거.”
“그럼 왜...”
남의 입술을 그렇게 잘근잘근 씹었는지 묻자, 얼굴을 붉힌 에일레야가 말했다.
“나도 하나쯤은, 네 처음을 갖고 싶었으니까~?”
그렇다고 입술을 깨무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싶었지만, 에일레야가 그걸로 좋다면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그보다...
“그 말은?”
내 말에 한숨을 푹 내쉬고서 에일레야가 말했다.
“...계속한다고. 네 전용 보지.”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가 말해놓고 부끄러워졌는지 눈을 내리까는 에일레야.
그런 에일레야가 엄청나게 꼴렸지만, 저번에 이미 학습한 나였다.
그래서 말했다.
“에일레야 누나.”
“...뭔데?”
흘끔, 나를 보는 에일레야에게 물었다.
“그 전용 보지, 지금 써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