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몰루 (1)
“이렇게 금방 다시 모일 줄은 몰랐네만.”
“그것도 같은 주제... 아니 같은 사람 때문에 모인 것은 세계 정부의 수립 이후 처음이지 않나요?”
“고작 2년이 채 안 됐으니 말이지.”
최초이긴 하나, 이제 세워진 지 겨우 2년을 채워가는 세계 정부의 입장이니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말처럼 농담 삼아, 그 최초를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기엔 많이 그랬다.
그야 그들도 이미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궁무휼. 그대가 이번에 보내온 보고서에 대한 것이 사실인가?”
리자드맨들의 대표이자, 의원 중 하나인 사우르 라이가그의 말에 오늘도 역시나 땀을 뻘뻘 흘리던 남궁무휼이 대답했다.
“맹세컨대, 사실입니다.”
“음.”
쉬르륵, 하고 혀를 놀리던 사우르의 잇새로 침음이 새어 나왔다.
그들이 받은 보고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호아란님의 제자인 강한조라는 인간이 이번에도 거하게 사고를 쳤다.
아니, 사고를 쳤다고 하기엔 좀 그럴지도 몰랐다.
오히려 공적을 세웠다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다만 그 공적이 생각보다 좀 많이 컸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제껏 추적하지 못했던 녀석들의 단서가 그런 곳에 있었을 줄이야.”
세계 정부에서 지정한,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존재들.
세계 정부에서 인정한, 사람인 종족이었지만 몬스터와 같이 취급되는 현상수배범들은 하나같이 악독한 범죄자들이었다.
다만, 단순히 그것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는 그리 큰 공적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세상이다보니 세계 정부를 따르지 않고, 그래서 현상수배범이 된 자들도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경우가 있는 것이었다.
이번 경우처럼... 세계 정부의 추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자들의 경우는 또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옳았을 테니.
특히,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자살 공격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인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취급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않나요? 이제껏 찾을 수 없었으니, 말하자면 저희가 찾을 수 없었던 곳에 있었다는 것이니까요.”
같은 의원 중 하나인 타이 후의 말에 사우르 라이가그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허나, 아무리 그곳이 우리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라고 한들, 우리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 않나? 이제껏 찾을 수 없었던 것이 갑자기 출몰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군.”
그 말은, 비록 온전히 범죄자들을 추적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부은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개인이 세계 정부보다 더한 일을 해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쉽사리 믿긴 힘들이었다.
“천호께서 개입하신 일이지 않겠나?”
다른 의원 중 하나, 오크들을 대표하는 의원이자, 군주인 바다르의 말이었다.
“그랬지. 그분이라면야...”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어지간한 일로는 개입하지 않으시던 분이, 이번 일에는 개입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저런 여지를 남기고 있는 다른 스물둘의 영웅과 달리 그분께서는 이제껏 정말로 조용히 지내시던 분이었는데.
그랬던 분이 직접 이 일에 개입하신 것이라면, 그런 이유가 있으리라.
그리고, 이제 그것을 알아보면 되는 일이었다.
고개를 까딱이며, 다시 한번 쉬르르륵 혀를 놀린 사우르 라이가그는 다시 눈앞에 있는, 자신과는 달리 땀을 흘려대고 있는 남궁무휼에게 시선을 옮겼다.
“일전에 있었던 테러... 그때의 괴물들과 이번에 찾아낸 괴생물체 사이의 유사성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사실인가?”
“맞습니다. 다만... 아주 똑같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그 이유도 증명됐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듯 서투르게 장치를 작동시킨 남궁무휼과 의원들의 사이... 원탁의 중앙에 환영이 떠올랐다.
그건 거대한, 점액질과 살점들이 뒤엉켜있는 듯한 괴물과 그 괴물 안에서 발견됐던 엘프들, 그리고 작달막한 슬라임처럼 생긴 생물체였다.
“일전에 저 괴생물체를 뒤집어쓴 채로 테러를 감행했던 이들, 세간에는 극단적 자연주의자로 알려진 ‘세계수 지킴이’들... 그들이 뒤집어서 썼던 저 괴생물체에게서 발견된 유전자와 이번에 발견된 것... ‘호문쿨루스’라고 명명한 새로운 개체 사이에서의 유전자가 87% 정도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애매하군.”
87%라는 것은 분명 높은 수치이긴 하나 그렇게 따지자면 눈앞에 있는 남궁무휼이란 자와 동물원에 있는 고릴라나 원숭이 역시 같은 종족이라고 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오히려 그쪽이 더 가까울 테고.
하지만, 남궁무휼의 말이 이어졌다.
“네, 확실히 애매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훔쳐서 달아났던 도플갱어의 유전자가 더해지면 유사성이 98%까지 올라가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뻔했다.
저번의 일을 벌인 자들과 저 호문쿨루스란 생물을 만들어낸 자 사이에 틀림없이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일전에 구출된 ‘상아탑의 마녀’들의 몸에서 추출한 것... ‘호문쿨루스’입니다.”
그것은, 앞서 보여준 거대한 괴물과 자그마한 도플갱어 둘이 합쳐진 듯한 모양새를 하는 기이한 생물체였다.
“각종 실험의 결과, 호문쿨루스는 거의 모든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는 가공할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진공 상태에서도 48시간 이상 살아남으며, 이마저도 그 이후부턴 가사 상태가 된 채로 1년 이상 버틸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온과 저온, 다습과 건조, 모든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생존했으며 그 밖에도 생명에 위협이 될 상황에선 가사 상태가 되어서 이가 해소될 때까지 견뎌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말과 함께, 꿈틀거리는 호문쿨루스가 불에 타오르는 등의 실험이 가해지는 환영이 비쳐 보였다.
“따라서... 호문쿨루스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 외에는 자연적으로 죽이기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생명체란 거죠. 더욱이, 그 물리적인 조치 역시 가공할만한 재생 능력으로 인해 어지간한 것으론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
“문제는, 바로 번식 속도입니다.”
“번식 속도라.”
“네, 보다시피 호문쿨루스는... 도플갱어와 합성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도플갱어의 일부 특성을 습득했습니다. 추후에 어째서 저들이 도플갱어와 같은 생물을 훔쳐가져갔는지 알기 위한 조사 중에 알 수 있게 된 도플갱어의 종족 특성... 도플갱어가 외형을 따라하는... 그 과정에서 유전자 단위로 해당 생물체와 일치하는 특성을 말이죠.”
환영이 다시 한번 바뀌더니, 꿈틀거리는 호문쿨루스가, 그를 가둔 공간에 들어온 쥐에게 덤벼드는 것이 보였다.
먹이로 하기 위한 사냥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호문쿨루스에게 덮쳐졌던 쥐.
그 쥐의 배가 가속한 환영 속에서 빠르게 부풀어 오르다가, 터져나가면서 이후 기존 개체보다 훨씬 작지만, 분명 같은 개체들이 태어났으니까.
“이후 쥐에서 비롯된 해당 개체를 말소했지만, 그전에 얻은 결과상으론 쥐를 통해 새로이 태어난 개체와 원본의 개체인 호문쿨루스와 모두 같은 개체인 것으로 증명됐습니다. 애초부터, 해당 개체를 추출한 것이... ‘상아탑의 마녀’들의 체내인 것으로 봤을 때, 이들은 종족을 불문하고 모든 생명체와 교합, 번식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성성을 가진 의원들의 입에서 장탄식과 함께 혐오 가득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개중에는 당장 실험을 위해 남겨진 개체 역시 없애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반응이었기에, 남궁무휼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네, 이걸 없애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또 다른 특성 때문에 당장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특성이라니?”
다시 환영이 바뀌고, 이번에는 자꾸만 어딘가로 향하기 위해 꾸물거리는 모습이 비쳤다.
“저건... 뭔가요?”
“아무런 자극을 가하지 않을 경우... 그러니까, 평상시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한없이, 그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쥐나, 토끼 등을 이용해서 얻어낸 개체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뇨, 정확히는 그것들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근처에 있는 제 아비에게 향하려고 들었으니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거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것들은, 본능적으로 하나가 되려고 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개체는, 더욱 큰 개체에게로 향하는 성질을.
그리고, 그렇게 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상상하기도 끔찍했다.
저 끔찍한 것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한 행동을 하는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쥐에게 실험하여 새롭게 태어난 호문쿨루스와 기존의 호문쿨루스를 합사하는 실험은 진행하지 않았지만, 만약에 이 성질을 가진 것이 정말이라면.”
“이미 밖에 이것들이 더 있다는 소리로군.”
“네, 저희들이 사로잡은 것들 말고도... 아뇨, 발견해낸 특성이 정말로 그런거라면, 저희들이 발견해낸 이것들보다 더욱 커다란 호문쿨루스가 여전히... 이것들은 만들어낸 존재, 혹은 그에게 협력하고 있는 자들에게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것으로 그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을 테고.”
바다르의 말에 남궁무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만일의 대비를 위하여, 해당 호문쿨루스를 외부로 반출, 추적에 이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방향만은 알 수 있는 법이죠.”
이윽고, 촤르르르륵하고.
수많은 이들의 명단들이 나타났다.
모두 여성이고, 또 실종된 자들의 명단이었다.
“헌터, 탐험가, 그 밖에 여러... 해당 방향으로 존재하는 모든 거주 지역에서의 실종자들의 명단입니다. 이제까지는 단순한 실종...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와 마주치고서, 이에 희생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호문쿨루스를 만들어낸 자들에게 납치되어... 이것들을 낳는 모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게 됐습니다. 쥐의 경우에는 한 번에 한 마리... 그마저도 모체보다 크게 성장하는 호문쿨루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모체는 죽게 됩니다만, 일정 수준의 크기라면 한 번 이상을, 그리고... 아마 그보다 더 커다란... 인간의 기준으로는 최소 열 번 정도는 버텨낼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욱이, 경지가 높은 자일수록... 모체에서 태어난 개체는 더욱 강하게 태어나버린다는 남궁무휼의 말에, 환영 속에서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해 꿈틀거리며 나아가려고 하는 호문쿨루스를 바라봤다.
“...그들이... 이걸로 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이지?”
“어떤 짓을 하려고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것들이... 전 세계에서 퍼져버린다면 아주 끔찍한 일이 될 것 같은데요.”
저들에게 얼마나 많은 호문쿨루스들이 모여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막중한 사태긴 했다.
그러므로, 의원들의 시선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자, 같은 의원 중 하나가 어깨를 떨었다.
그를 보며, 사우르 라이가그가 입을 열었다.
“선택하라.”
“...어쩔 수 없군요. 부디, 그들이 어머니의 품에 다시 안길 수 있기를.”
질끈 눈을 감으며, 스물둘의 의원 중... 엘프들을 대표하는 의원이자, 엘프 중의 엘프.
하이엘프라 불리는 귀네비아가 그렇게 말했다.
이제껏, 사로잡힌 이들.
세계 곳곳의 희귀 동물원에 테러를 감행했던 ‘엘프’를 비호하고 두둔하던 자의 말이 떨어지자, 남궁무휼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미 사로잡혔던 엘프들에게 정보 추출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정보 추출 작업.
말 그대로 머리를 가르고, 그 안에서 꺼낸 뇌를 마법과 과학, 주술... 세계 정부에 집약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걸려있는 금제고 뭐고 전부 무시한 채로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이 짓을 당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당초 살아 돌아갈 육체마저, 영을 다루기 위해 혼과 백의 끈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육체 자체를 이미 파기한 이후에나 진행되는 작업이었다.
육체를 소각하고, 뇌만... 그마저도 온갖 전극이 꽂히고 약물에 절여진 고깃덩이만이 남아버리는 것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면 몰라도, 아마 여러 세상이 합쳐진 이런 세상에서도 그것을 살아있다고 부르는 존재는 없으리라.
그리고, 이제 그와 같은 결정이 내려진 이상...
이제껏 엘프들의 대표인 귀네비아의 반대로 어디까지나 인도적인 회유와 심문만이 이어졌던 것은 끝났다.
이제 그들은 죽어서라도 그들이 알고 있던 정보를 뱉어내야 할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돌리지, 그렇다면 강한조란 자가 이것들을 발견한 것은, 호아란님의 조치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저번 일... 강한조님이 맞닥뜨렸던 당시부터 추적하시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강한조란 인간에 대한 것을 알게 됐을 때 이미 보고 받았던 바였다.
그가 처음으로 두각을 드러냈을 당시가, 그 테러 사건이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이것들의 발견자가 강한조가 아니라 호아란님이실 수도 있겠군.”
이런 것을 만들어낸 자, 혹은 그를 후원하며 또 세계 정부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것을 가만히 숨겨만 두고 있었을 일도 없었고, 애당초 저것들이 발견된 것은... 이미 많은 피해자들이 생긴 이후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자가 이미 그곳에 있었던 것이리라.
이미 대강 알고 있는 강한조란 자가 아무리 불세출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그가 직접 이 일을 해결한 자라고 믿기엔 힘들었다.
그렇다면... 이번일을 굳이 강한조란 인간이 한 일로 공을 돌린 것은, 여전히 직접적으로 개입은 꺼리시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궁무휼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