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몰루 (2)
“그럴지도,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번 환영이 바뀌었다.
그 환영이 보이는 자는, 사우르 라이가그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는 자였다.
강한조.
천호, 호아란님의 제자인 것으로 알려진 인간 남성.
하지만, 비춘 환영 속에서의 그의 모습은 인간이라고 보기엔 많이 어려웠다.
웨어울프, 그것도 상당한 수준...
초인에 이른 수준의 능력을 보이고 있는 웨어울프를 상대로 여러 꼬리들, 그 끝의 창처럼 날카로운 것을 달고 있는 꼬리들을 휘두르고 몸 곳곳에서 꼬리 끝에 달린 것과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며, 웨어울프의 손톱에 찢기고 터져나간 몸이 그 자리에서 재생하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 인간이라 보기엔 아주 어려웠으니.
“주술... 인가?”
본인 스스로도 부끄러움 없이 자칭할 수 있는 뛰어난 전사이기는 하나, 주술사에 대한 지식은 적은 사우르 라이가그이기에 바로 옆에 앉아있던 대술사이자, 고블린들의 대표인 고르가부르를 쳐다보자 그가 끌끌 웃더니 입을 열었다.
“몇몇 주술은 보이는구먼, 강체와 신속, 그리고 저건 호아란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던 여우 불이군... 아주 잘 쓰는구먼. 숙달이 잘 되어있어. 하지만 나머지는... 잘 모르겠군. 내가 천호와 같이 삼라만상의 모든 술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 어쩔 도리가 없지. 하지만, 저 꼬리는... 아마 천호님의 주술이 아닌가 싶은데.”
그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꼬리의 형태가 구미호... 여우 요괴의 그것을 닮기는 했었다.
그들의 꼬리에는 저런 침 같은 것이 나있지는 않았지만, 애당초 강한조란 자는 인간이었고 꼬리가 나있을 일도 없었다.
저 꼬리들 자체가 주술이라면...
구미호이신 호아란님이 그를 위해 만들어낸 주술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강한조란 자가 강기까지 사용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주술사로만 알려진 강한조였다.
호아란님의 제자인 만큼,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거기에 강기까지 사용한다고?
그가 일전에 보았던,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강한조란 자에 대한 신상을 떠올렸다.
제 12042968지구 출신의 인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강한조란 자는 그걸로도 설명이 충분한 자였다.
수많은 세상이 합쳐진 작금의 시대에서도, 어느 세상의 출신인지는 명확히 파악하고 노력하고 있었다.
사용하는 언어, 기억하고 있는 역사, 환경,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요소들을 파악하고, 그 자의 출신 지구를 구분 짓는다.
그렇게 파악한 것만으로도 이미 만 단위를 훌쩍 넘는 수의 세상이 합쳐졌다는 결론이 나왔고, 강한조란 자는 그중에서도 12042968지구 출신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 12042968지구는 수많은 세상 중에서도 보기 드문 특징을 지닌 세상이었다.
대부분의 세상에서 존재한 ‘힘’.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생물이 생물의 한계를 벗어난 힘을, 초상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마나의 존재가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12042968지구만의 특징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특히 12042968지구 출신의 인간이란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마나가 없거나 적었기에 특출나게 과학이나 사회 제도적으로 발달했던 다른 지구들과 달리 12042968지구는 그마저도 아니었다.
발달한 과학도, 사회제도도 지극히 평균, 혹은 그 이하였다.
그나마 유일하게 다른 세상과 다른 점은... 마찬가지로 흔치 않게 인간밖에는 살지 않았던 세상이란 점과 참 어쩌고하는 이름의 자그맣고 어디 쓸데라곤 하나 없는 초록색의 기묘한 생물체가 살았던 세상이란 정도인데.
단일종족의 세상이야 간혹가다가 보이는 경우이고, 그 생물체마저도 맛마저도 없어서 식용으로도 사용 불가 판정을 받았고, 제 몸보다 훨씬 작은 곤충에게도 사냥당하는 너무 한심한 생물이었기에 특별한 것도 없었다.
당연히 12042968지구 출신의 인간들의 대부분은 세계 정부로서도 크게 중점을 두지 않는 관리 대상이었다.
톡 까놓고 말해서, 강한조란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간 중에서도 특히 무능한 것으로 확정이 난 존재 중의 하나였다는 거다.
그의 등록 번호마저 22000940318라는 터무니없이 후순위의 번호인 것도, 그가 세계 정부로서 모든 이들에게 행해진 검사 결과로서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란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지구의 출신이라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자가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타고난 세상이 너무나 달랐을 뿐이지, 마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와 같은 자들이 그런 세상에서도 태어나지 않는 법은 아니었다.
세계 정부에서 시행한 검사가 완벽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파악하지 못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도 물론 있었다.
강한조도 아마 그런 유형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빠르지 않나.
2년 만에...
아니 실질적으론 그보다 더 짧은 시간만에 대술사조차 그 끝을 파악하지도 못한 주술을 사용하면서 거기에 그 본인의 무위는 강기를 뽑아낼 수준에도 이르렀다고?
초인이라 일컬어지는 수준의... 뛰어난 술사들이 온갖 주술을 써서 강기를 사용하는 초인과 동등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언정, 아예 그들의 능력마저 배워버리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저만한 경지를 양쪽 모두, 저 어린 나이에... 아무리 봐도 2년 만에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만의 이루었다는 것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저 호문쿨루스를 보호하고 있던, 혹은 만들어낸 자를 죽인 것은 호아란님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행했을 가능성도 있겠군.”
환영을 보아하니, 서로 생사투를 벌인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상대가 초인의 경지에 이른 웨어울프가 아니었더라면, 아니 그마저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싸움이었더라면 진작 끝났을 싸움을 타고난 재생능력 덕분에 지진부진하게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환영의 끝...
끝내 강한조에게 손등에서 솟구친 송곳과 같은 것에 꿰뚫려서 들어올려진 자와 달리 강한조는 옷이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것 외에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죽이지 않는 선에서 힘 조절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초인을 상대로 압도적이진 않았으나, 힘을 조절해가며 싸웠다는 것 자체가 상대와의 실력 차이는 이미 현저하게 벌어진 상태였다는 거다.
분명 지금 보이는 실력만이 다가 아닐 터.
하지만...
“...대체 이것들은 어디서 구한 것들인가요?”
자신이 묻고 싶었던 것을 먼저 언급하는 타이 후의 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껏 강한조란 자는 제 실력을 숨기고 웅크리고 있었던 자였을 것이다.
호아란님의 뜻이었던, 본인의 의지였던 간에.
하지만, 그렇게 숨기고 있던 것을 드러낸 이유는... 그것도 남궁무휼을 통해 우리에게 보인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기 위함인가.
혹은...
생각을 정리하며 남궁무휼을 바라보자, 그가 흐르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조금 전의 결투의 보증인이 직접 전송한 자료입니다.”
“보증이라면...? 무언가를 걸고서 벌인 결투였다는 건가요?”
“네, 해당 결투를 벌인 웨어울프는 은빛 갈기 일족의 족장인 보리스로, 해당 결투는 은빛 갈기 일족과 강한조님이 보유하기로 예정된... 땅의 권리를 서로 걸고 했던 결투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승자였던 강한조님은 은빛 갈기 일족을 얻었고, 전 족장인 보리스의 적장녀인 에일레야와 아내로 들이기로...”
“...뭐라고요? 다시 말해보세요. 뭐가 어쨌다고요?”
싸늘하게 중얼거리는 타이 후의 말에 움찔하는 남궁무휼이 보였다.
이내, 더욱 짙게 배어 나오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미 질척해진 손수건으로 그 땀을 닦으며 말했다.
“...보리스의 적장녀인 에일레야를 아내로 들이고, 차후 그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에게 족장 자리를 이어받게 하는 것으로 한 모양입니다만...”
흔한 혼인동맹이었다.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효율적이란 소리기도 했다.
피를 섞는 것만큼 서로가 다른 세력을 합치기 쉬운 것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
호아란님께서는 그리 정치에 밝으신 분이 아니셨으니, 아마 강한조란 자가 이에 능한 자이리라.
본인의 무력도 뛰어난데, 정치력도 뛰어나다라...
인물은 인물인가.
그러하니 호아란님께서 제자로 들이신 것이겠지만.
그나저나 혼인으로 세력을 합치는 것이 이 세상에선 그리 흔한 일도 아닐 터이고, 타이 후도 알고 있을 터인데 초조하게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매사가 당당한 여걸이었던 타이 후랑 다른 모습이었기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때 아이라도 생겼으면이니, 왜 하필 웨어울프냐니하는 식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한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세력이 일어난 셈이군요.”
“제가 조사한 바로는, 저 자... 실례, 호아란님의 제자인 강한조가 이번에 얻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이 도시 둘은 세울만한 크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지요?”
“지금 알아보니 은빛 갈기 일족은 일만이 훌쩍 넘는 숫자로군. 도시 둘을 세울 수 있는 땅에, 웨어울프로만 일만이란 숫자는 너무 많지 않나? 일개 개인의 세력으로는 터무니없이 크군. 왕국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야. 아니, 이미 왕국이라 칭해도 되는 존재였나?”
“본인의 힘을 드러내고, 동시에 세력을 구축했는가? 어디부터 계획한 것이지. 애당초 그가 웨어허니비의 여왕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언가 조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모두 천호께서 가담하신 일일 것이 분명하니,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애당초 뭘 어떤 조처를 취하란 것이고? 따지고 보면 이번 건도 단순한 혼인 동맹이잖나, 작금의 세상에서 종족주의니 순혈주의니 하면서 서로 같은 종족끼리 혼인을 성사시켜서 힘을 합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닐 텐데?”
“조처를 취하려면 여기 있는 의원 중에서도 몇몇도 자리를 내려와야겠지. 당장 본인들도 하는 짓이니. 댁의 손자 결혼식에 나도 초청한 건 잊지 않았겠지?”
“만에 하나지만, 호아란님께서 저 자에게 놀아나고 있을 가능성도...”
“놈! 어디서 그딴 망발을...! 그대가 감히 영웅을, 천호를 모욕하는가!”
“아니, 내가 어찌 모욕했다고...”
“분명 호아란님께서 하실 일에 필요한 일이니 제자가 저리 노력하는 것이지 않겠나, 오히려 우리도 저자를 도와야 하는 것은...”
고작 스물둘 밖에 없었는데, 서로가 한 마디씩만 꺼내도 스물두 마디였고 한마디씩 꺼내는 일이 없으니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이래서야 의논이고 뭐고 되질 않으리라.
그리고 본 회의의 혼란을 유도한 남궁무휼을, 사우르 라이가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대체 무슨 의도를 갖고서 이러한 짓을 했는가.
아니, 애당초 이것이 그의 의도가 맞는가?
처음부터 강한조에 대한 것을 알려온 자는 남궁무휼이었다.
지금도, 이러한 것을 알린 자 역시 남궁무휼이었다.
그 역시, 강한조란 자에게 이미 포섭됐을... 아니, 애당초 그의 사람이었을 가능성조차도 있었다.
그때, 남궁무휼의 입이 열렸다.
“모두의 의견을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어찌됐건 강한조님이 공적을 세운 것은 맞으니 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할 텐데 어쩌면 좋을 지부터 의논합시다. 또...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방침도 의논해보도록 하죠.”